“청탁 있었지만, 청탁한 의원은 없다?”…국민의당 재판정보 유출 미스터리

입력 2019.03.05 (22:10) 수정 2019.03.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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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 불똥이 튄 곳이 있습니다. 국회입니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의 부적절한 재판 개입 의혹을 수사하다보니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재판 청탁 의혹까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드러난 겁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통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국회의원은 6명.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유동수 의원과 전병헌 전 의원,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과 이군현 전 의원,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노철래 전 의원 등입니다.

검찰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 재판 정보 유출"

그런데 5일 10명의 전·현직 법관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또 하나의 의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에는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입니다.

검찰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2016년 10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박선숙, 김수민 의원과 같은 당 당직자의 재판과 관련해 보석 허가 여부와 유무죄 심증 등 재판부 동향을 파악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국회의원의 부탁을 받고 해준 일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도움을 받기 위한 조치였다는 겁니다.

2017년 1월, 국민의당 박선숙(왼쪽)·김수민(오른쪽) 의원이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법원은 두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7년 1월, 국민의당 박선숙(왼쪽)·김수민(오른쪽) 의원이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법원은 두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정보 파악해 달라"...청탁한 의원은 누구?

이 전 실장의 혐의가 공개되자 관심은 재판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국회의원이 누구인가에 쏠렸습니다. 2016년 10월은 20대 국회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난 때입니다. 청탁한 의원이 여전히 '뱃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원은 상식적으로 국회 법사위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법사위원은 단 두 명. 현재 민주평화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과 이용주 의원입니다. 두 의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이용주 의원 "초선이라 잘 몰라..."

먼저 국회 법사위 국민의당 간사였던 이용주 의원과 통화해 봤습니다. 통화 당시 이 의원은 검찰이 이민걸 전 실장의 혐의를 공개한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한동안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리베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가 2016년 5월쯤인데 그때는 내가 당선된지 한달 밖에 안됐을 때인데요? 원 구성도 안돼서 법사위 소속도 아니었고 이민걸 실장하고는 당시 일면식도 없었어요."

이 의원은 잠시 통화가 이어지고서야 청탁 시점이 2016년 10월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이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으로 대법원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국민의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리베이트 사건 방어전의 전면에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전 실장과는 통화한 적도 없고 재판 정보를 알아봐달라 부탁한 적도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박지원 의원 전화불통...해프닝 후 전면 부인

먼저 전화 연결이 된 이용주 의원이 의혹을 부인하면서, 기자들의 관심은 박지원 의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박 의원은 한 시간 넘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국회 사개특위 회의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박지원 의원이 청탁한 의원이다"라는 소문이 유포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이 두 시간여 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소문은 한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로서 당시 여당의 홍보비 사용과 비교해 조사의 형평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중앙선관위, 검찰의 편파 수사에 거당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투쟁했지만, 검찰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청탁한 의원은 있는데…검찰도 모른다?

이민걸 전 실장은 의원의 청탁을 받고 재판 정보를 알아봤다는데, 청탁한 의원은 대체 어디있는 걸까요? 문제는 검찰도 청탁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검찰에서 조사받은 이민걸 전 실장은 국회의원의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만 진술하고 해당 의원이 누구인지, 심지어 법사위 소속인지조차 진술하지 않았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단지 '국민의당 소속'이라는 것만 말했다는 겁니다.

검찰도 모르고, 관련 의원들도 모르고, 언론도 모르지만, 청탁자는 존재한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진실을 아는 이는 이민걸 전 실장뿐인 셈입니다.

미궁에 빠진 재판청탁 의혹…정의는 살아있을까?

그렇다면 청탁한 의원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해당 의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할 수 있을까요? 검찰은 "검토하겠다"라고 하지만, 실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민걸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 역시 공소유지가 만만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탁받고 알아봤다."라고 하지만 알아본 사실만 이메일로 남아있을 뿐, "내가 부탁했다"고 확인해줄 사람이 없으니 난감한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다른 전·현직 의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노철래 전 의원, 이군현 전 의원 등의 재판과 관련해서도 2016년 8월쯤 새누리당 법사위원 중 법조계 출신 누군가가 부탁했다고만 밝혔을 뿐 그게 누구인지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 전 차장은 수사 과정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청탁 정황을 진술한 나머지 의원들에 대해서도 구속 이후에는 대부분 입을 다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세먼지만큼이나 앞날이 답답해 보입니다.

대법원 로비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대법원 로비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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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탁 있었지만, 청탁한 의원은 없다?”…국민의당 재판정보 유출 미스터리
    • 입력 2019-03-05 22:10:06
    • 수정2019-03-05 22:14:28
    취재K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 불똥이 튄 곳이 있습니다. 국회입니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의 부적절한 재판 개입 의혹을 수사하다보니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재판 청탁 의혹까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드러난 겁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통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국회의원은 6명.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유동수 의원과 전병헌 전 의원,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과 이군현 전 의원,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노철래 전 의원 등입니다. 검찰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 재판 정보 유출" 그런데 5일 10명의 전·현직 법관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또 하나의 의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에는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입니다. 검찰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2016년 10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박선숙, 김수민 의원과 같은 당 당직자의 재판과 관련해 보석 허가 여부와 유무죄 심증 등 재판부 동향을 파악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국회의원의 부탁을 받고 해준 일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도움을 받기 위한 조치였다는 겁니다. 2017년 1월, 국민의당 박선숙(왼쪽)·김수민(오른쪽) 의원이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법원은 두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정보 파악해 달라"...청탁한 의원은 누구? 이 전 실장의 혐의가 공개되자 관심은 재판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국회의원이 누구인가에 쏠렸습니다. 2016년 10월은 20대 국회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난 때입니다. 청탁한 의원이 여전히 '뱃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원은 상식적으로 국회 법사위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법사위원은 단 두 명. 현재 민주평화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과 이용주 의원입니다. 두 의원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이용주 의원 "초선이라 잘 몰라..." 먼저 국회 법사위 국민의당 간사였던 이용주 의원과 통화해 봤습니다. 통화 당시 이 의원은 검찰이 이민걸 전 실장의 혐의를 공개한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한동안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리베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가 2016년 5월쯤인데 그때는 내가 당선된지 한달 밖에 안됐을 때인데요? 원 구성도 안돼서 법사위 소속도 아니었고 이민걸 실장하고는 당시 일면식도 없었어요." 이 의원은 잠시 통화가 이어지고서야 청탁 시점이 2016년 10월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이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으로 대법원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국민의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리베이트 사건 방어전의 전면에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전 실장과는 통화한 적도 없고 재판 정보를 알아봐달라 부탁한 적도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박지원 의원 전화불통...해프닝 후 전면 부인 먼저 전화 연결이 된 이용주 의원이 의혹을 부인하면서, 기자들의 관심은 박지원 의원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박 의원은 한 시간 넘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국회 사개특위 회의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박지원 의원이 청탁한 의원이다"라는 소문이 유포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이 두 시간여 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소문은 한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로서 당시 여당의 홍보비 사용과 비교해 조사의 형평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중앙선관위, 검찰의 편파 수사에 거당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투쟁했지만, 검찰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청탁한 의원은 있는데…검찰도 모른다? 이민걸 전 실장은 의원의 청탁을 받고 재판 정보를 알아봤다는데, 청탁한 의원은 대체 어디있는 걸까요? 문제는 검찰도 청탁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검찰에서 조사받은 이민걸 전 실장은 국회의원의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만 진술하고 해당 의원이 누구인지, 심지어 법사위 소속인지조차 진술하지 않았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단지 '국민의당 소속'이라는 것만 말했다는 겁니다. 검찰도 모르고, 관련 의원들도 모르고, 언론도 모르지만, 청탁자는 존재한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진실을 아는 이는 이민걸 전 실장뿐인 셈입니다. 미궁에 빠진 재판청탁 의혹…정의는 살아있을까? 그렇다면 청탁한 의원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해당 의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할 수 있을까요? 검찰은 "검토하겠다"라고 하지만, 실제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민걸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 역시 공소유지가 만만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탁받고 알아봤다."라고 하지만 알아본 사실만 이메일로 남아있을 뿐, "내가 부탁했다"고 확인해줄 사람이 없으니 난감한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다른 전·현직 의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노철래 전 의원, 이군현 전 의원 등의 재판과 관련해서도 2016년 8월쯤 새누리당 법사위원 중 법조계 출신 누군가가 부탁했다고만 밝혔을 뿐 그게 누구인지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 전 차장은 수사 과정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청탁 정황을 진술한 나머지 의원들에 대해서도 구속 이후에는 대부분 입을 다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세먼지만큼이나 앞날이 답답해 보입니다. 대법원 로비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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