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봐줬으면 김학의는 장관도 했다”

입력 2019.03.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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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동영상' 의혹에도 차관 임명된 김학의
■ '4번의 수사' 모두 넘기고도 살아남은 이유는?

“최순실이요? 전혀 몰라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호호”

국정농단 사건으로 어수선하던 2016년 말, 김학의 전 차관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전 차관이 '별장 성접대' 의혹에도 차관이 된 이유. 그 뒤에 '비선 실세' 최순실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의혹이 야금야금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도 '김학의의 누나가 최순실과 친분이 있었다던데?'라는 현안 질의가 나왔습니다.

"최순실 씨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던데요."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차관의 부인은 곧바로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김학의 전 차관의 누나가 최 씨와 아는 사이라는 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역시 부인했습니다. "남편은 누나가 없어요. 사촌, 친척 중에도 누나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이 "헛고생한다"는 말처럼 들려, 더 묻지 않고 허무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최순실이 김학의를 봐줬으면 장관까지 시켰지”

그 이후로도 김 전 차관과 최 씨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팩트체크를 위해 물을 수 있는 상대는 김학의 전 차관과 최순실 씨 두 사람뿐인,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최 씨도 줄곧 부인했습니다. 최순실 변호인 중 한 명과 통화한 내용을 옮겨봅니다.

"나도 여러 번 물었는데 최순실은 개인적으로 김학의도 그쪽 가족도 전혀 모른대요. 최순실이 김학의를 알았으면 김학의가 그렇게 됐겠어? 장관까지 다 시켜줬겠지."

('비선 실세'라는 걸 부정하던 최 씨 측에서, 이렇게 '최순실 파워'를 인정하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어리둥절했습니다만) 또 허무하게 전화를 마쳤습니다.

검찰 과거사위 진상조사단도 비슷한 상황인 듯합니다. 최 씨는 옥중 조사를 거부했고, 김 전 차관 측은'할 말이 없다'며 숨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로부터 김학의를 추천받았냐"라고 묻고 싶어도, 박 전 대통령 역시 모든 조사를 거부하고 있으니 쉽지 않을 듯합니다.

분명한 건, 이런 의혹이 계속 나올 정도로 그가 차관이 된 이유가 미스터리로 남았다는 겁니다. 정권 초기 관심을 집중 받는 인사였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차관을 시켜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김학의라는 미스터리

차관 임명 그 이후도 역시 미스터리입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의 주인공은 김학의'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는 곧장 사표를 냈습니다. 경찰 수사를 받던 입장이었습니다.

정부로선 사직서를 바로 수리하지 않고 수사 결과를 보는 게 마땅하죠. 징계로 옷을 벗는 것과 스스로 나가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요. 하지만 즉시 수리가 됐습니다.

갑자기 김 전 차관이 마지막 퇴근을 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서둘러 법무부 청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취재진이 던지는 질문에 입을 다문 채 뛰어서 차에 올라탔고, 그 이후로 그를 본 기자는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수사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에 김 전 차관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거동할 수 없다며 입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병실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친정인 검찰로 사건이 넘어오고 나서야, 딱 한 번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주요 사건에다 전직 고위 공직자였지만 '비공개' 조사였습니다. 검찰 수사만 두 차례, 결과는 모두 무혐의였습니다.

지금도 구체적으로 "그때 ○○○이 김학의를 봐주라고 했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 수첩에 적어두지 않은 이상, 그런 부적절한 지시가 문건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낮습니다. 하지만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김 전 차관을 안전하게 모셨던 건, 이런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우주의 기운'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시골에서 봉사하며 남은 인생을 살겠다.”?

세월이 흐르고 김 전 차관을 잊을 때쯤 그는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 신청했을 땐, 논란이 되자 스스로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재도전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고 합니다. 물의를 빚은 인물을 받아줘도 되느냐, 검찰에서 무혐의가 났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 안에도 김 전 차관의 오랜 친구, 잘 나가는 동문이 포진해있었습니다. 변호사회 내부 논의를 김 전 차관에게 바로바로 전달해주는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김 전 차관은 '시골에서 봉사하며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곧장 서울 삼성동에 있는 로펌에 들어갔습니다. 김 전 차관이 약속한 '시골'은 분명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 '삼성동'은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둥지를 튼 로펌, 국내 최대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함께하는 곳이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개인 사무실을 열었고, 개업식에는 '잘 나가는' 동문들이 몰려왔습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의 장소인 윤중천씨 별장‘별장 성접대’ 의혹의 장소인 윤중천씨 별장

“김학의는 앞으로도 잘 살 겁니다”

과거사위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재조사하는 지금, 상황은 좀 다를까요? 왜 다른 사건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을 논하지 않을까요?

이유를 추측해볼 뿐입니다. 성접대가 이뤄졌다는 그 별장에 갔거나, 별장 소유주 윤중천 씨와 친분이 있는 인물은 수십 명에 이릅니다. 여야 현직 정치인, 사정기관 관계자들, 대기업 간부,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

물론 별장에 갔다고 성접대를 받았다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별장에 간 사실이나 윤중천 씨와 친분이 있었던 사실은 누구라도 숨기고 싶을 겁니다. 이 사건이 또 불거지는 게 껄끄러울 겁니다. 실명을 적을 수 없지만, 진실을 알만한 많은 권력자들은 아직도 쉬쉬하고 있습니다. 피해 여성을 돕는 여성단체만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윤중천 씨는 수사가 끝난 뒤에야 "김학의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털어놨습니다. 장관은 되지 못했지만 망친 인생은 아닌 듯합니다. 그를 위해 입을 다문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까요. 과거사위 조사는 이번 달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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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이 봐줬으면 김학의는 장관도 했다”
    • 입력 2019-03-07 16:55:03
    취재K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동영상' 의혹에도 차관 임명된 김학의
■ '4번의 수사' 모두 넘기고도 살아남은 이유는?

“최순실이요? 전혀 몰라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호호”

국정농단 사건으로 어수선하던 2016년 말, 김학의 전 차관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전 차관이 '별장 성접대' 의혹에도 차관이 된 이유. 그 뒤에 '비선 실세' 최순실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의혹이 야금야금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도 '김학의의 누나가 최순실과 친분이 있었다던데?'라는 현안 질의가 나왔습니다.

"최순실 씨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던데요."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차관의 부인은 곧바로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김학의 전 차관의 누나가 최 씨와 아는 사이라는 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역시 부인했습니다. "남편은 누나가 없어요. 사촌, 친척 중에도 누나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는 말이 "헛고생한다"는 말처럼 들려, 더 묻지 않고 허무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최순실이 김학의를 봐줬으면 장관까지 시켰지”

그 이후로도 김 전 차관과 최 씨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팩트체크를 위해 물을 수 있는 상대는 김학의 전 차관과 최순실 씨 두 사람뿐인,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최 씨도 줄곧 부인했습니다. 최순실 변호인 중 한 명과 통화한 내용을 옮겨봅니다.

"나도 여러 번 물었는데 최순실은 개인적으로 김학의도 그쪽 가족도 전혀 모른대요. 최순실이 김학의를 알았으면 김학의가 그렇게 됐겠어? 장관까지 다 시켜줬겠지."

('비선 실세'라는 걸 부정하던 최 씨 측에서, 이렇게 '최순실 파워'를 인정하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어리둥절했습니다만) 또 허무하게 전화를 마쳤습니다.

검찰 과거사위 진상조사단도 비슷한 상황인 듯합니다. 최 씨는 옥중 조사를 거부했고, 김 전 차관 측은'할 말이 없다'며 숨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로부터 김학의를 추천받았냐"라고 묻고 싶어도, 박 전 대통령 역시 모든 조사를 거부하고 있으니 쉽지 않을 듯합니다.

분명한 건, 이런 의혹이 계속 나올 정도로 그가 차관이 된 이유가 미스터리로 남았다는 겁니다. 정권 초기 관심을 집중 받는 인사였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차관을 시켜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김학의라는 미스터리

차관 임명 그 이후도 역시 미스터리입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의 주인공은 김학의'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는 곧장 사표를 냈습니다. 경찰 수사를 받던 입장이었습니다.

정부로선 사직서를 바로 수리하지 않고 수사 결과를 보는 게 마땅하죠. 징계로 옷을 벗는 것과 스스로 나가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요. 하지만 즉시 수리가 됐습니다.

갑자기 김 전 차관이 마지막 퇴근을 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서둘러 법무부 청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취재진이 던지는 질문에 입을 다문 채 뛰어서 차에 올라탔고, 그 이후로 그를 본 기자는 없었습니다. 이어지는 수사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에 김 전 차관은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거동할 수 없다며 입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병실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친정인 검찰로 사건이 넘어오고 나서야, 딱 한 번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주요 사건에다 전직 고위 공직자였지만 '비공개' 조사였습니다. 검찰 수사만 두 차례, 결과는 모두 무혐의였습니다.

지금도 구체적으로 "그때 ○○○이 김학의를 봐주라고 했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 수첩에 적어두지 않은 이상, 그런 부적절한 지시가 문건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낮습니다. 하지만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김 전 차관을 안전하게 모셨던 건, 이런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우주의 기운'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시골에서 봉사하며 남은 인생을 살겠다.”?

세월이 흐르고 김 전 차관을 잊을 때쯤 그는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 신청했을 땐, 논란이 되자 스스로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재도전했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고 합니다. 물의를 빚은 인물을 받아줘도 되느냐, 검찰에서 무혐의가 났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 안에도 김 전 차관의 오랜 친구, 잘 나가는 동문이 포진해있었습니다. 변호사회 내부 논의를 김 전 차관에게 바로바로 전달해주는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김 전 차관은 '시골에서 봉사하며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곧장 서울 삼성동에 있는 로펌에 들어갔습니다. 김 전 차관이 약속한 '시골'은 분명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 '삼성동'은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둥지를 튼 로펌, 국내 최대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함께하는 곳이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개인 사무실을 열었고, 개업식에는 '잘 나가는' 동문들이 몰려왔습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의 장소인 윤중천씨 별장
“김학의는 앞으로도 잘 살 겁니다”

과거사위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재조사하는 지금, 상황은 좀 다를까요? 왜 다른 사건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을 논하지 않을까요?

이유를 추측해볼 뿐입니다. 성접대가 이뤄졌다는 그 별장에 갔거나, 별장 소유주 윤중천 씨와 친분이 있는 인물은 수십 명에 이릅니다. 여야 현직 정치인, 사정기관 관계자들, 대기업 간부,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

물론 별장에 갔다고 성접대를 받았다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별장에 간 사실이나 윤중천 씨와 친분이 있었던 사실은 누구라도 숨기고 싶을 겁니다. 이 사건이 또 불거지는 게 껄끄러울 겁니다. 실명을 적을 수 없지만, 진실을 알만한 많은 권력자들은 아직도 쉬쉬하고 있습니다. 피해 여성을 돕는 여성단체만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윤중천 씨는 수사가 끝난 뒤에야 "김학의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털어놨습니다. 장관은 되지 못했지만 망친 인생은 아닌 듯합니다. 그를 위해 입을 다문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까요. 과거사위 조사는 이번 달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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