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소수자 차별” vs “학교 정체성”…숭실대의 현수막 싸움

입력 2019.03.07 (18:08) 수정 2019.03.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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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에 오신 성 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합니다."

지난달 28일, 숭실대학교 성 소수자 모임 '이방인' 회원들은 새로 만든 현수막을 들고 학생 서비스팀을 찾았습니다. 현수막에 적힌 문구는 단 한 줄. 새로 입학한 성 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신입생 모두를 환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한 학생서비스팀장은 면담 2분 만에 다음과 같은 말로 현수막 게시를 불허합니다. "'숭실에 온 숭실대학교 학생을 환영합니다' 그래야지, 뭐 굳이 이렇게 접두사를 넣을 필요가 있습니까?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사라든지 이런 것들은 저희가 지금 (허용)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제(6일), 학생들은 시위에 나섰습니다. 현수막을 걸 수 없게 한다면, 직접 들어서 보여주겠다며 15분 동안 '인간 현수막'이 되기로 한 거죠. 이날 모인 학생들은 '성 소수자'는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접두사'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존재를 설명하는 단어라고 맞받았습니다. '성 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했을 뿐인데,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로 현수막 게시를 허락하지 않는 건 엄연한 차별이라는 취지입니다.


■ "현수막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기자님."

학생들과 학교의 입장은 이처럼 팽팽하게 엇갈립니다. 하지만 딱 하나, 양측이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게 '현수막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학교의 정체성이 걸려있다'며, 이례적으로 방송 인터뷰에 응한 숭실대학교 대외협력실장과 홍보팀장도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성 소수자 학생들의 '인간 현수막' 시위 몇 시간 뒤, 학교 측은 '동성애자 시위 관련 숭실대 입장'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2015년의 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번 현수막 사건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사건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5년 11월, 학교는 '숭실대학교 인권영화제' 개최를 위해 강의실을 빌린 학내 성 소수자 모임 대표와 총여학생회 회장에게 대관 허가를 번복합니다.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건 학교의 설립 이념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강의실을 빌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2015년 '대관 취소' 사건 이해해야...동성애자 옹호 안 돼"

문제가 된 영화는 '마이 페어 웨딩'이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영화감독인 김조광수와 그의 동성 커플 김승환 씨의 결혼식 과정을 담은 영화인데요. 2015년 12세 관람가를 받아 전국 39개 영화관에서 개봉했습니다.

학생들은 이 영화제에 김조광수 본인을 초청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김조 씨가 본인의 트위터에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일부 기독교 단체와 성 소수자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학교 측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결국, 상영 전날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행사는 앞으로도 일체 허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아든 학생들. 궁여지책으로 학교 본관 앞에서 야외 영화제를 치른 학생들은 인권위에 진정을 냅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학교가 부당한 차별을 해 피해를 보았다는 건데요.

반면 학교 측은 '학생들이 학교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학교가 동성애 관련 학술 토론이나 논쟁까지 불허하는 건 아니에요. 학생들이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신의를 저버리면서 그런 여지가 다 없어진 거죠." 김조 씨를 초청할 거라는 내용을 쏙 빼놓은 채, 평범한 영화제처럼 꾸며 허가를 받고선 실제로는 동성애를 옹호·홍보하려는 장으로 삼으려 했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인권위는 지난 1월 성 소수자 관련 행사에만 교육 시설 이용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앞으로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시설 대관을 불허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건 맞지만, 건학 이념을 이유로 학내 구성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숭실대의 입시 요강이나 학칙에 성 소수자 학생에 관한 규정이 없고, 기독교인 중에서도 성 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점, 그리고 종교단체가 세운 대학 중에서도 타 종교 동아리 활동을 인정하는 학교가 있는 점 등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고 인권위는 밝혔습니다.


■ "동성애에 동의할 수 없다"는 학교,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학생들

하지만 이러한 인권위 판단 자체가 헌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는 게 숭실대의 해석입니다. 숭실대는 앞서 소개한 입장문에서 "현행 헌법상 동성 결혼을 불허하고 있고, 군에서도 동성애는 처벌 대상임을 고려할 때 인권위 권고사항은 헌법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동성애 자체가 처벌 대상인 건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 측은 "마음속 생각마저 처벌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강제 추행 등 행위로 드러났을 때는 군대에서도 처벌하고 있다"며, "학교 역시 학생들이 현수막을 걸거나 강의실을 빌리는 등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려는 행위를 할 때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숭실대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에 속한 대학입니다. 연세대와 서울여대 등도 같은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학교 측은 "우리는 기독교의 넓은 스펙트럼 가운데에서도 원리주의적 입장을 가진 교단"이라며,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 학교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조치"라고 이번 사태를 설명했습니다.


반면 학생들은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외쳤습니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 소수자는 찬성과 반대, 혹은 동의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죠.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이미 우리는 같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여기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누가 뭐래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손팻말도 들었습니다.

"지나가시는 학우 여러분은 개강 초부터 왜 이렇게 유난 법석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학교의 구성원이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한 '이방인' 대표 A 씨는 집회 뒤 기자를 만나 '핍박받지 않을 자유'를 말했습니다.

"사실 현수막 하나 허가 안 해주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떠들썩하게 하느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인권위 권고가 나온 지 2달도 안 돼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는 건 사실상 올 한 해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불허하겠다는 의미거든요. 현수막 한 장이 저희에겐 동아리의 존재와 성 소수자 구성원의 존재를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하고요. 저희가 학교 전체를 동성애로 물들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동아리 방도 배정받고 치킨도 시켜먹는 정도는 핍박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 다시, 현수막의 문제로

A 씨는 '숭실대에 입학했을 때, 성 소수자 동아리 현수막이 걸린 걸 보고 많은 힘을 받았는데 이번에 불허됐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는 인터넷 댓글을 언급했습니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배지 하나 달고 있을 때에도 주위의 시선을 걱정하게 되는 입장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대상을 만나는 건 가슴 벅찬 일이라고요.

사실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각종 동아리나 학생회 현수막은 선배들의 재치를 뽐내는 장이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소속감과 애교심을 갖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서야 이 정도면 잘했다'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패러디한 성균관대 의과대학 학생회의 재치있는 현수막은 여러 매체에 언급됐을 정도였고요. 인천대 성 소수자 모임의 심드렁한 현수막도 SNS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사태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의 체통과 권위(?)를 내던지고 훨씬 더 파격적인 유머 감각을 자랑하는 현수막이 많은데, 왜 이 현수막만 문제가 된 것 인지가요. '성 소수자, 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한다'는 표현이 동성애 옹호와 홍보에 해당한다는 학교 측의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성 소수자'만' 환영한다고 하면 모를까, 모두 환영한다는 게 어떻게 동성애 홍보인가요?"하고 여러 차례 묻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 벌어진 영화제 대관 취소 사건 이후 동성애 옹호로 비칠 수 있는 일체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성애자를 비성소수자라고 지칭한 '표현에 담긴 생각'이 문제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학교 측의 입장을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습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는 서울대와 연세대 등 전국 서른 곳이 넘는 학교에 성 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하는 현수막 등이 붙었거나 붙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이 만든 현수막을 학교가 일일이 허가해주는 일도 드물거니와, 허가받지 않은 현수막을 철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아직 게시되지 않은 10여 곳의 대학들도, 현수막 배송이 늦어져 못 붙이고 있을 뿐 학교와의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인권위는 숭실대의 강의실 대관 불허는 차별이라고 판단한 결정문에서 헌법 제11조를 언급합니다. 반면 숭실대는 헌법 제31조가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이 먼저라며,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지요. 개강을 맞아 캠퍼스에 내걸려던 현수막 때문에 헌법 11조와 31조가 또다시 불려 나오게 된 상황인데요. 결국, 이 모든 게 '단순히 현수막 한 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던 양측의 주장은 유효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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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소수자 차별” vs “학교 정체성”…숭실대의 현수막 싸움
    • 입력 2019-03-07 18:08:48
    • 수정2019-03-07 18:08:59
    취재후·사건후
■"숭실에 오신 성 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합니다."

지난달 28일, 숭실대학교 성 소수자 모임 '이방인' 회원들은 새로 만든 현수막을 들고 학생 서비스팀을 찾았습니다. 현수막에 적힌 문구는 단 한 줄. 새로 입학한 성 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신입생 모두를 환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한 학생서비스팀장은 면담 2분 만에 다음과 같은 말로 현수막 게시를 불허합니다. "'숭실에 온 숭실대학교 학생을 환영합니다' 그래야지, 뭐 굳이 이렇게 접두사를 넣을 필요가 있습니까?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사라든지 이런 것들은 저희가 지금 (허용)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제(6일), 학생들은 시위에 나섰습니다. 현수막을 걸 수 없게 한다면, 직접 들어서 보여주겠다며 15분 동안 '인간 현수막'이 되기로 한 거죠. 이날 모인 학생들은 '성 소수자'는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접두사'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존재를 설명하는 단어라고 맞받았습니다. '성 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했을 뿐인데,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로 현수막 게시를 허락하지 않는 건 엄연한 차별이라는 취지입니다.


■ "현수막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기자님."

학생들과 학교의 입장은 이처럼 팽팽하게 엇갈립니다. 하지만 딱 하나, 양측이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게 '현수막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학교의 정체성이 걸려있다'며, 이례적으로 방송 인터뷰에 응한 숭실대학교 대외협력실장과 홍보팀장도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성 소수자 학생들의 '인간 현수막' 시위 몇 시간 뒤, 학교 측은 '동성애자 시위 관련 숭실대 입장'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2015년의 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번 현수막 사건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사건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5년 11월, 학교는 '숭실대학교 인권영화제' 개최를 위해 강의실을 빌린 학내 성 소수자 모임 대표와 총여학생회 회장에게 대관 허가를 번복합니다.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건 학교의 설립 이념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강의실을 빌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2015년 '대관 취소' 사건 이해해야...동성애자 옹호 안 돼"

문제가 된 영화는 '마이 페어 웨딩'이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영화감독인 김조광수와 그의 동성 커플 김승환 씨의 결혼식 과정을 담은 영화인데요. 2015년 12세 관람가를 받아 전국 39개 영화관에서 개봉했습니다.

학생들은 이 영화제에 김조광수 본인을 초청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김조 씨가 본인의 트위터에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일부 기독교 단체와 성 소수자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학교 측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결국, 상영 전날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행사는 앞으로도 일체 허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아든 학생들. 궁여지책으로 학교 본관 앞에서 야외 영화제를 치른 학생들은 인권위에 진정을 냅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학교가 부당한 차별을 해 피해를 보았다는 건데요.

반면 학교 측은 '학생들이 학교를 속였다'고 말합니다. "학교가 동성애 관련 학술 토론이나 논쟁까지 불허하는 건 아니에요. 학생들이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신의를 저버리면서 그런 여지가 다 없어진 거죠." 김조 씨를 초청할 거라는 내용을 쏙 빼놓은 채, 평범한 영화제처럼 꾸며 허가를 받고선 실제로는 동성애를 옹호·홍보하려는 장으로 삼으려 했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인권위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인권위는 지난 1월 성 소수자 관련 행사에만 교육 시설 이용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앞으로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시설 대관을 불허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건 맞지만, 건학 이념을 이유로 학내 구성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숭실대의 입시 요강이나 학칙에 성 소수자 학생에 관한 규정이 없고, 기독교인 중에서도 성 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점, 그리고 종교단체가 세운 대학 중에서도 타 종교 동아리 활동을 인정하는 학교가 있는 점 등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고 인권위는 밝혔습니다.


■ "동성애에 동의할 수 없다"는 학교,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학생들

하지만 이러한 인권위 판단 자체가 헌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는 게 숭실대의 해석입니다. 숭실대는 앞서 소개한 입장문에서 "현행 헌법상 동성 결혼을 불허하고 있고, 군에서도 동성애는 처벌 대상임을 고려할 때 인권위 권고사항은 헌법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동성애 자체가 처벌 대상인 건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 측은 "마음속 생각마저 처벌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강제 추행 등 행위로 드러났을 때는 군대에서도 처벌하고 있다"며, "학교 역시 학생들이 현수막을 걸거나 강의실을 빌리는 등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려는 행위를 할 때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숭실대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에 속한 대학입니다. 연세대와 서울여대 등도 같은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학교 측은 "우리는 기독교의 넓은 스펙트럼 가운데에서도 원리주의적 입장을 가진 교단"이라며,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는 학교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조치"라고 이번 사태를 설명했습니다.


반면 학생들은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외쳤습니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 소수자는 찬성과 반대, 혹은 동의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죠.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이미 우리는 같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여기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누가 뭐래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손팻말도 들었습니다.

"지나가시는 학우 여러분은 개강 초부터 왜 이렇게 유난 법석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학교의 구성원이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한 '이방인' 대표 A 씨는 집회 뒤 기자를 만나 '핍박받지 않을 자유'를 말했습니다.

"사실 현수막 하나 허가 안 해주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떠들썩하게 하느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인권위 권고가 나온 지 2달도 안 돼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는 건 사실상 올 한 해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불허하겠다는 의미거든요. 현수막 한 장이 저희에겐 동아리의 존재와 성 소수자 구성원의 존재를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하고요. 저희가 학교 전체를 동성애로 물들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동아리 방도 배정받고 치킨도 시켜먹는 정도는 핍박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 다시, 현수막의 문제로

A 씨는 '숭실대에 입학했을 때, 성 소수자 동아리 현수막이 걸린 걸 보고 많은 힘을 받았는데 이번에 불허됐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는 인터넷 댓글을 언급했습니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배지 하나 달고 있을 때에도 주위의 시선을 걱정하게 되는 입장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대상을 만나는 건 가슴 벅찬 일이라고요.

사실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각종 동아리나 학생회 현수막은 선배들의 재치를 뽐내는 장이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소속감과 애교심을 갖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서야 이 정도면 잘했다'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패러디한 성균관대 의과대학 학생회의 재치있는 현수막은 여러 매체에 언급됐을 정도였고요. 인천대 성 소수자 모임의 심드렁한 현수막도 SNS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사태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의 체통과 권위(?)를 내던지고 훨씬 더 파격적인 유머 감각을 자랑하는 현수막이 많은데, 왜 이 현수막만 문제가 된 것 인지가요. '성 소수자, 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한다'는 표현이 동성애 옹호와 홍보에 해당한다는 학교 측의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성 소수자'만' 환영한다고 하면 모를까, 모두 환영한다는 게 어떻게 동성애 홍보인가요?"하고 여러 차례 묻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 벌어진 영화제 대관 취소 사건 이후 동성애 옹호로 비칠 수 있는 일체의 행사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성애자를 비성소수자라고 지칭한 '표현에 담긴 생각'이 문제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학교 측의 입장을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습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는 서울대와 연세대 등 전국 서른 곳이 넘는 학교에 성 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하는 현수막 등이 붙었거나 붙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이 만든 현수막을 학교가 일일이 허가해주는 일도 드물거니와, 허가받지 않은 현수막을 철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아직 게시되지 않은 10여 곳의 대학들도, 현수막 배송이 늦어져 못 붙이고 있을 뿐 학교와의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인권위는 숭실대의 강의실 대관 불허는 차별이라고 판단한 결정문에서 헌법 제11조를 언급합니다. 반면 숭실대는 헌법 제31조가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이 먼저라며,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지요. 개강을 맞아 캠퍼스에 내걸려던 현수막 때문에 헌법 11조와 31조가 또다시 불려 나오게 된 상황인데요. 결국, 이 모든 게 '단순히 현수막 한 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던 양측의 주장은 유효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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