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삶의 목표? ‘동일본 대지진 8년’이 남긴 트라우마

입력 2019.03.0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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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이후 8년. 미증유의 자연재해는 사람들의 삶도 생각도 바꿔놓았다. 일본 사회는 3·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상흔은 깊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미야기 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의 대지진. 초대형 쓰나미(지진해일)는 해안 지방을 초토화했다. 최소 만 5천여 명이 숨졌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재해 생존자들은 깊고 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없다… 기약 없는 피난생활 5만여 명 ]
▶ 생활여건 열악한 조립식 가설주택 거주자 3천여 명 ]
▶ "슬퍼요", "삶의 목표가 없어요"… 피해 주민 64% 후유증 ]
▶ 객지에서 고독사 급증… 연 70여 명 '쓸쓸한 죽음']

■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없다… 기약 없는 피난생활 5만여 명

NHK는 지자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진피해 지역의 인구 변화를 분석했다. 피해가 집중됐던 이와테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의 기초자치단체 35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20곳에서 인구가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현의 7곳은 인구 조사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지자체 7곳의 인구는 20% 이상 감소했다. 미야기 현 오나가와 초의 경우 감소율이 40.7%나 됐다.


8년 전 대지진 직후 피난민은 최대 47만 명이나 됐다. 이후 고지대에 재건한 주택이나 재해 공영주택 등으로 이주가 이뤄지면서, 피난민 수가 급감했다. 그러나 가설 주택 등에서 난민 아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이 지난달(2월) 7일 기준으로 5만 천여 명이나 된다. 그나마 1년 전보다 2만 천여 명이 줄어든 것이 이 정도이다.

현 외 피난자, 즉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광역 지자체로 옮겨 사는 사람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현이 3만 2천여 명으로 가장 많다. 미야기 현이 4천여 명, 이와테 현이 천여 명 순으로 나타났다.

■ 생활여건 열악한 조립식 가설주택 거주자 3천여 명

피난 거주지 종류별로 보면,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한 조립식 가설주택 또는 지자체가 민간 임대주택을 빌려 제공하는 간주가설주택 등에 사는 사람은 2만 천여 명. 친척이나 지인 집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만 9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생활 환경이 가장 열악한 조립식 가설 주택 거주자는 3천 4백여 명이나 된다. 지난해보다 만여 명이 줄었다. 가장 많을 때는 11만 명이 조립식 주택에서 살았다.

정부는 지진 피해 지역 주민과 원전 사고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입주할 재해 공영주택 2만 9천여 가구를 짓고 있다. 98%가 완성된 상태이다. 대피령이 해제된 주민들은 가설 주택을 떠나야 하지만, 원전 주변으로 선뜻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 "슬퍼요", "삶의 목표가 없어요"… 피해 주민 64% 후유증

NHK가 지난해(2018년)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등 4천4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전체의 36%인 천600여 명이 설문에 응했다.


지금도 지진의 영향이 심신에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있다'가 33.4%, '어느 쪽일까 하고 말한다면, 있다'가 30.9%로, 영향이 있다는 응답이 모두 64.3%로 나타났다.

어떤 영향이 있는지 복수 응답으로 질문한 결과, '(잠을)잘 잘 수 없다.' 42.4%, '기분이 가라앉기 쉽다.' 42.2%, '걷기 어려워졌다.' 26.4%, '개호(간호)가 필요해졌다.' 4.9% 순으로 나타났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호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살던 곳에서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이룬다. 매일 스트레스가 쌓인다. 집은 없어졌지만, 돌아가고 싶다. 많은 생명을 잃고 사는 목표가 없어졌다. 두렵다. 괴롭다. 슬프다."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67.4%는 거주지를 옮긴 뒤, 지역 주민이나 친구·지인과의 대화나 교류가 줄었다고 답변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라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인 가구, 노인 가구의 고립감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 객지에서 고독사 급증… 연 70여 명 '쓸쓸한 죽음'

지난해 3개 현의 재해 공영주택에서 '고독사'한 사람은 76명. 전년도보다 40%나 늘었다. 남성이 59명으로 70% 이상을 차지했다. 나이별로는 70대가 26명, 80대 이상이 21명, 60대가 20명 순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관내에서 피난 생활 중 '지진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된 사람은 2천200여 명으로, 지진 당시 해일 등으로 희생된 사람 천600여 명을 크게 웃돌고 있다.

NHK가 이 가운데 190여 명의 실태를 조사했다. 거주지 이전 횟수는 평균 6.7회로 나타났다. 1∼2회가 10명, 3∼4회 37명, 5∼9회 99명, 10회 이상 24명이었다. 이전 횟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31회나 가족이나 친척 집을 전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인을 보면, 폐렴이 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심장질환 39명, 노쇠 19명, 뇌혈관 질환 15명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자도 11명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생활이 큰 스트레스가 되면서, 심장, 뇌혈관 질환 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지진재해 관련 사망자 수는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물리적·경제적 복구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붕괴한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유대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느냐가 더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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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삶의 목표? ‘동일본 대지진 8년’이 남긴 트라우마
    • 입력 2019-03-08 07:01:42
    특파원 리포트
동일본 대지진 이후 8년. 미증유의 자연재해는 사람들의 삶도 생각도 바꿔놓았다. 일본 사회는 3·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상흔은 깊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미야기 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의 대지진. 초대형 쓰나미(지진해일)는 해안 지방을 초토화했다. 최소 만 5천여 명이 숨졌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재해 생존자들은 깊고 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없다… 기약 없는 피난생활 5만여 명 ]
▶ 생활여건 열악한 조립식 가설주택 거주자 3천여 명 ]
▶ "슬퍼요", "삶의 목표가 없어요"… 피해 주민 64% 후유증 ]
▶ 객지에서 고독사 급증… 연 70여 명 '쓸쓸한 죽음']

■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없다… 기약 없는 피난생활 5만여 명

NHK는 지자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진피해 지역의 인구 변화를 분석했다. 피해가 집중됐던 이와테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의 기초자치단체 35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20곳에서 인구가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현의 7곳은 인구 조사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지자체 7곳의 인구는 20% 이상 감소했다. 미야기 현 오나가와 초의 경우 감소율이 40.7%나 됐다.


8년 전 대지진 직후 피난민은 최대 47만 명이나 됐다. 이후 고지대에 재건한 주택이나 재해 공영주택 등으로 이주가 이뤄지면서, 피난민 수가 급감했다. 그러나 가설 주택 등에서 난민 아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이 지난달(2월) 7일 기준으로 5만 천여 명이나 된다. 그나마 1년 전보다 2만 천여 명이 줄어든 것이 이 정도이다.

현 외 피난자, 즉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광역 지자체로 옮겨 사는 사람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현이 3만 2천여 명으로 가장 많다. 미야기 현이 4천여 명, 이와테 현이 천여 명 순으로 나타났다.

■ 생활여건 열악한 조립식 가설주택 거주자 3천여 명

피난 거주지 종류별로 보면,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한 조립식 가설주택 또는 지자체가 민간 임대주택을 빌려 제공하는 간주가설주택 등에 사는 사람은 2만 천여 명. 친척이나 지인 집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만 9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생활 환경이 가장 열악한 조립식 가설 주택 거주자는 3천 4백여 명이나 된다. 지난해보다 만여 명이 줄었다. 가장 많을 때는 11만 명이 조립식 주택에서 살았다.

정부는 지진 피해 지역 주민과 원전 사고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입주할 재해 공영주택 2만 9천여 가구를 짓고 있다. 98%가 완성된 상태이다. 대피령이 해제된 주민들은 가설 주택을 떠나야 하지만, 원전 주변으로 선뜻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 "슬퍼요", "삶의 목표가 없어요"… 피해 주민 64% 후유증

NHK가 지난해(2018년)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현의 피난민 등 4천4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전체의 36%인 천600여 명이 설문에 응했다.


지금도 지진의 영향이 심신에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있다'가 33.4%, '어느 쪽일까 하고 말한다면, 있다'가 30.9%로, 영향이 있다는 응답이 모두 64.3%로 나타났다.

어떤 영향이 있는지 복수 응답으로 질문한 결과, '(잠을)잘 잘 수 없다.' 42.4%, '기분이 가라앉기 쉽다.' 42.2%, '걷기 어려워졌다.' 26.4%, '개호(간호)가 필요해졌다.' 4.9% 순으로 나타났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호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살던 곳에서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이룬다. 매일 스트레스가 쌓인다. 집은 없어졌지만, 돌아가고 싶다. 많은 생명을 잃고 사는 목표가 없어졌다. 두렵다. 괴롭다. 슬프다."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67.4%는 거주지를 옮긴 뒤, 지역 주민이나 친구·지인과의 대화나 교류가 줄었다고 답변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라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인 가구, 노인 가구의 고립감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 객지에서 고독사 급증… 연 70여 명 '쓸쓸한 죽음'

지난해 3개 현의 재해 공영주택에서 '고독사'한 사람은 76명. 전년도보다 40%나 늘었다. 남성이 59명으로 70% 이상을 차지했다. 나이별로는 70대가 26명, 80대 이상이 21명, 60대가 20명 순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관내에서 피난 생활 중 '지진재해 관련 사망'으로 인정된 사람은 2천200여 명으로, 지진 당시 해일 등으로 희생된 사람 천600여 명을 크게 웃돌고 있다.

NHK가 이 가운데 190여 명의 실태를 조사했다. 거주지 이전 횟수는 평균 6.7회로 나타났다. 1∼2회가 10명, 3∼4회 37명, 5∼9회 99명, 10회 이상 24명이었다. 이전 횟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31회나 가족이나 친척 집을 전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인을 보면, 폐렴이 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심장질환 39명, 노쇠 19명, 뇌혈관 질환 15명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자도 11명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생활이 큰 스트레스가 되면서, 심장, 뇌혈관 질환 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지진재해 관련 사망자 수는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물리적·경제적 복구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붕괴한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유대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느냐가 더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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