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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300km 해안장벽을 가다…대지진 8년 그곳에서는 지금
입력 2019.03.11 (09:13) 특파원 리포트
[특파원리포트] 300km 해안장벽을 가다…대지진 8년 그곳에서는 지금
- 인구의 10%를 앗아간 쓰나미...그리고 장벽
- 휴전선보다 더 긴 300km의 해안 장벽
-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게 최선일까요?"

그것은 만리장성을 연상시켰다. 만약 트럼프의 국경 장벽이 들어선다면 저런 모습일까?

외부 그 어떤 것의 침입도 허락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낸 듯, 장벽은 해안가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일본 동북부 이와테 현 오후나토 시 카도노하마 해안에 들어선 장벽을 밑에서 올려다봤다. 건물 5층 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장벽이 해안의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완벽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장벽 뒤에 바로 마을이 있지만, 해변에서는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문이 장벽 안의 세상과 장벽 밖의 세상, 그리고 장벽 밖에서 밀려올 위협을 막아서는 그 엄중함 속에 조그만 틈을 내줄 뿐이었다.


진격해오는 거인, 바다에서 덮쳐와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던 '쓰나미(지진해일)'를 막아서기 위한 거대한 구조물이 일본 동북지역 해안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구의 10%를 앗아간 쓰나미...그리고 장벽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역을 뒤흔든 강력한 지진.

규모 9가 넘는 강력한 지진이 해저에서 발생했고, 거기에서 발생한 지진 해일은 불과 30여 분 뒤 일본 동북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을 덮쳐 궤멸적인 피해를 냈다.

원자력 발전소를 기능 정지에 빠트려 원전 폭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아직도 그 피해가 수습되지 않았으며 2,674명의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모두 21,377명이 희생됐다(일본 소방청 집계, 2013년).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보다는 대부분 밀려드는 바닷물에 숨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취재진이 찾은 리쿠젠다카다 시. 오후나토 시에서 본 장벽보다 족히 몇 배는 되어 보이는 거리의 해안에 장벽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해송 7만 그루가 감싸 안은 아름다운 바닷가, 여유롭게 해수욕과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리쿠젠다카다 시였다.

하지만 그 풍광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 3m 정도라던 쓰나미는 몇 배의 높이로 해안가를 덮쳐왔다. 곳에 따라서는 해발 고도 17~8m까지 물이 차올랐고, 강을 따라 해안에서 9km 지점까지 바닷물이 밀고 올라왔다.

5층까지 지진해일이 덮친 아파트. 당시 높이가 14.5m였음을 가리키고 있다.5층까지 지진해일이 덮친 아파트. 당시 높이가 14.5m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높이 5.5m의 방조제가 있어 초기 예보된 3m 규모의 지진 해일은 충분히 막아줄 것으로 안심했던 마을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행불자를 포함해 모두 1,813명이 지진해일로 숨졌다. 리쿠젠다카다 시 인구의 10% 이상, 열 명 중 한 명이 순식간에 희생됐다. 동북 해안 지역에서 인구대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리쿠젠다카다시다.

"바닷가 쪽에 집이 있었죠. 집이 완전히 들려서 떠내려가 버려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어요. 가족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뭐랄까 제 인생에 있어서 지나온 발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에요. 지금도 자다가 자주 깹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요(니누마 씨. 현지 주민)."

휴전선보다 더 긴 300km의 해안 장벽

큰 피해를 냈기에 대응책 마련은 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해 가을 바로 거대 방조제 건설이 결정됐다. 높이는 12.5m로 정해졌다. 기초 부분을 포함하면 15m에 다다른다고 공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해안선 6km에 들어서는 바다를 향한 '성'은 2021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지진 해일에 휩쓸려 수만 그루의 소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렇게 해안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사실 12.5m 높이의 방조제는 지난번에 왔던 쓰나미의 높이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100년에 한 번 오는 규모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천 년에 한 번 오는 쓰나미는 어쩔지 모르겠고요. 그래서 하드웨어적인 부분뿐 아니라 주민 피난 계획 등 소프웨어적인 부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은 높은 곳으로 신속하게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니까요(리쿠젠다카다 시 방재안전과장)"

소프트웨어적 대책의 일환일까? 우리가 찾은 시의 방재안전과는 해안가가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소방본부와 같이 자리 잡아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등의 현에 세워진 해안 장벽, 방조제의 길이는 총연장 295km에 달한다. 250km 우리 휴전선보다 더 긴 지역에 장벽이 세워졌다. 가장 높은 곳은 최고 15.5m 규모다.

공사비용은 모두 1조 3,500억 엔, 우리 돈 13조 5,000억 원이 소요됐다.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게 최선일까요?"

안전을 위한 일이라지만 지역에서 해안 장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복잡함이 얽혀 있었다.

"쓰나미로부터 지켜주잖아요. 이제 안심이에요( 타바타 씨, 현지 주민)."
"바다에서 양식하는데, 역시 바다가 직접 보이지 않는 건 불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니누마, 현지 어민)."

곤노 씨는 거대한 규모의 방조제 설치에 반대하는 쪽이다.

"저희가 쓰나미에 모든 것을 잃고 가설 주택에 살며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시에서 일방적으로 방조제 높이를 정하고 건설을 강행한 겁니다. 결정 과정에서 어떤 정보 공개도, 이게 앞으로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도 없었어요."

지진해일에 다시 피해를 볼 수 있는 거주 지역은 상당 부분이 아예 산을 깎아 조성된 높은 지역의 주택 단지로 옮겨갔다. 지진해일이 쓸고 간 연안 지역도 방조제 뒤쪽은 지진해일 피해 공원을 만들고, 시가지였던 곳은 주변 산을 깎아 흙을 옮겨와 원래보다 3m나 지대를 높이고 다시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해당 용지의 70%는 아직 어떻게 사용될지 미정인 상태다.

"바다 쪽을 완전히 막는 괴물을 만드느니 그 돈으로 더 높은 곳에 사람들을 살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 지역의 삶과 풍경, 역사는 모두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진행되고 있어요."


방조제가 건설되는 한쪽 끝에는 '기적의 소나무'라고 불리는 높이 20m의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소나무 숲이 철저히 파괴됐지만, 지진 해일 후에도 살아남아 '기적의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나무다.

기적의 소나무기적의 소나무

하지만 이 나무도 염분과의 사투를 벌이다 그해 여름 명을 다했다. 지금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속을 긁어내 보충재를 채우고, 가공의 잎을 붙인 사실상의 '인공 조형물'이다.

기적의 소나무가 사라져 간 것처럼 리쿠젠다카다 시에서는 지금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것이 단절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채워지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거대했던 자연의 힘에 굴복했던 인간이 그 힘에 맞서기 위해 장벽을 세우고 있다. 100년 뒤 혹은 500년 뒤, 인간의 노력은 어떻게 평가될지, 장벽은 그렇게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특파원리포트] 300km 해안장벽을 가다…대지진 8년 그곳에서는 지금
    • 입력 2019.03.11 (09:13)
    특파원 리포트
[특파원리포트] 300km 해안장벽을 가다…대지진 8년 그곳에서는 지금
- 인구의 10%를 앗아간 쓰나미...그리고 장벽
- 휴전선보다 더 긴 300km의 해안 장벽
-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게 최선일까요?"

그것은 만리장성을 연상시켰다. 만약 트럼프의 국경 장벽이 들어선다면 저런 모습일까?

외부 그 어떤 것의 침입도 허락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낸 듯, 장벽은 해안가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일본 동북부 이와테 현 오후나토 시 카도노하마 해안에 들어선 장벽을 밑에서 올려다봤다. 건물 5층 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장벽이 해안의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완벽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장벽 뒤에 바로 마을이 있지만, 해변에서는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문이 장벽 안의 세상과 장벽 밖의 세상, 그리고 장벽 밖에서 밀려올 위협을 막아서는 그 엄중함 속에 조그만 틈을 내줄 뿐이었다.


진격해오는 거인, 바다에서 덮쳐와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던 '쓰나미(지진해일)'를 막아서기 위한 거대한 구조물이 일본 동북지역 해안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구의 10%를 앗아간 쓰나미...그리고 장벽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역을 뒤흔든 강력한 지진.

규모 9가 넘는 강력한 지진이 해저에서 발생했고, 거기에서 발생한 지진 해일은 불과 30여 분 뒤 일본 동북부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을 덮쳐 궤멸적인 피해를 냈다.

원자력 발전소를 기능 정지에 빠트려 원전 폭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 아직도 그 피해가 수습되지 않았으며 2,674명의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모두 21,377명이 희생됐다(일본 소방청 집계, 2013년).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보다는 대부분 밀려드는 바닷물에 숨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취재진이 찾은 리쿠젠다카다 시. 오후나토 시에서 본 장벽보다 족히 몇 배는 되어 보이는 거리의 해안에 장벽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해송 7만 그루가 감싸 안은 아름다운 바닷가, 여유롭게 해수욕과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리쿠젠다카다 시였다.

하지만 그 풍광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 3m 정도라던 쓰나미는 몇 배의 높이로 해안가를 덮쳐왔다. 곳에 따라서는 해발 고도 17~8m까지 물이 차올랐고, 강을 따라 해안에서 9km 지점까지 바닷물이 밀고 올라왔다.

5층까지 지진해일이 덮친 아파트. 당시 높이가 14.5m였음을 가리키고 있다.5층까지 지진해일이 덮친 아파트. 당시 높이가 14.5m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높이 5.5m의 방조제가 있어 초기 예보된 3m 규모의 지진 해일은 충분히 막아줄 것으로 안심했던 마을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행불자를 포함해 모두 1,813명이 지진해일로 숨졌다. 리쿠젠다카다 시 인구의 10% 이상, 열 명 중 한 명이 순식간에 희생됐다. 동북 해안 지역에서 인구대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리쿠젠다카다시다.

"바닷가 쪽에 집이 있었죠. 집이 완전히 들려서 떠내려가 버려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어요. 가족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뭐랄까 제 인생에 있어서 지나온 발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에요. 지금도 자다가 자주 깹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요(니누마 씨. 현지 주민)."

휴전선보다 더 긴 300km의 해안 장벽

큰 피해를 냈기에 대응책 마련은 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해 가을 바로 거대 방조제 건설이 결정됐다. 높이는 12.5m로 정해졌다. 기초 부분을 포함하면 15m에 다다른다고 공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해안선 6km에 들어서는 바다를 향한 '성'은 2021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지진 해일에 휩쓸려 수만 그루의 소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렇게 해안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사실 12.5m 높이의 방조제는 지난번에 왔던 쓰나미의 높이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100년에 한 번 오는 규모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천 년에 한 번 오는 쓰나미는 어쩔지 모르겠고요. 그래서 하드웨어적인 부분뿐 아니라 주민 피난 계획 등 소프웨어적인 부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은 높은 곳으로 신속하게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니까요(리쿠젠다카다 시 방재안전과장)"

소프트웨어적 대책의 일환일까? 우리가 찾은 시의 방재안전과는 해안가가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소방본부와 같이 자리 잡아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등의 현에 세워진 해안 장벽, 방조제의 길이는 총연장 295km에 달한다. 250km 우리 휴전선보다 더 긴 지역에 장벽이 세워졌다. 가장 높은 곳은 최고 15.5m 규모다.

공사비용은 모두 1조 3,500억 엔, 우리 돈 13조 5,000억 원이 소요됐다.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게 최선일까요?"

안전을 위한 일이라지만 지역에서 해안 장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복잡함이 얽혀 있었다.

"쓰나미로부터 지켜주잖아요. 이제 안심이에요( 타바타 씨, 현지 주민)."
"바다에서 양식하는데, 역시 바다가 직접 보이지 않는 건 불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니누마, 현지 어민)."

곤노 씨는 거대한 규모의 방조제 설치에 반대하는 쪽이다.

"저희가 쓰나미에 모든 것을 잃고 가설 주택에 살며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시에서 일방적으로 방조제 높이를 정하고 건설을 강행한 겁니다. 결정 과정에서 어떤 정보 공개도, 이게 앞으로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도 없었어요."

지진해일에 다시 피해를 볼 수 있는 거주 지역은 상당 부분이 아예 산을 깎아 조성된 높은 지역의 주택 단지로 옮겨갔다. 지진해일이 쓸고 간 연안 지역도 방조제 뒤쪽은 지진해일 피해 공원을 만들고, 시가지였던 곳은 주변 산을 깎아 흙을 옮겨와 원래보다 3m나 지대를 높이고 다시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해당 용지의 70%는 아직 어떻게 사용될지 미정인 상태다.

"바다 쪽을 완전히 막는 괴물을 만드느니 그 돈으로 더 높은 곳에 사람들을 살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 지역의 삶과 풍경, 역사는 모두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진행되고 있어요."


방조제가 건설되는 한쪽 끝에는 '기적의 소나무'라고 불리는 높이 20m의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소나무 숲이 철저히 파괴됐지만, 지진 해일 후에도 살아남아 '기적의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나무다.

기적의 소나무기적의 소나무

하지만 이 나무도 염분과의 사투를 벌이다 그해 여름 명을 다했다. 지금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속을 긁어내 보충재를 채우고, 가공의 잎을 붙인 사실상의 '인공 조형물'이다.

기적의 소나무가 사라져 간 것처럼 리쿠젠다카다 시에서는 지금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것이 단절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채워지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거대했던 자연의 힘에 굴복했던 인간이 그 힘에 맞서기 위해 장벽을 세우고 있다. 100년 뒤 혹은 500년 뒤, 인간의 노력은 어떻게 평가될지, 장벽은 그렇게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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