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최신기·베테랑 기장·의문의 추락사고…컴퓨터 자동 조종의 비극인가?

입력 2019.03.12 (07:00) 수정 2019.03.12 (07: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이스라엘 벤 구리온 공항 이륙 모습 (지난달 8일)


4개월 된 최신 비행기와 베테랑 조종사…의문의 추락사고

지난해 11월 15일 에티오피아 항공에 인도, 보잉의 최신형 737 맥스(MAX) 기종, 8천 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 양호한 날씨, 지상 기준 740km의 속도로 날던 여객기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3월 10일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이륙한지 6분 만에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57명이 모두 숨졌다. 1945년 설립된 에티오피아 항공 역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국제적인 항공사고 조사위원회가 사고기 잔해와 블랙박스, 조종석 음성 녹음장치 등 각종 기록을 오랜 기간 분석한 뒤 내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보잉 737 맥스 기종을 도입한 여러 나라들이 사고 직후 이 기종에 대한 긴급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인도받은 지 2개월 여 만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모두 숨진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610편의 잔해,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610편의 잔해, 지난해 10월

최첨단 추락 방지 시스템이 오작동한다면 어떤 일이?

지난해 10월 29일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 이후 미국 연방항공국은 11월7일 긴급 감항성 개선 보고서(안전 지침)를 발표했다. "737 맥스 기종의 받음각 센서(angle of attack)에서 오류가 발생해 항공기가 급강하하도록 자동 조종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받음각 센서'는 날개와 기류의 각도를 알려주는 장비다. 받음각을 잘못 유지할 경우 항공기는 급속도로 아래로 추락하는 실속(stall) 현상을 겪게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릴 적 종이 비행기를 날릴 때 무조건 위로 던지면 어느 순간 종이 비행기가 급격하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실속(stall) 현상은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가 돌발 상황에서 당황, 수동 조종으로 엔진 출력을 높이며 비행기 기수(nose)를 높이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5월 대서양에서 급상승 뒤 급강하 추락한 228명이 숨진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다.

보잉 737 조종간 시뮬레이터/실속(stall) 상황 훈련 모습보잉 737 조종간 시뮬레이터/실속(stall) 상황 훈련 모습

조종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조종간을 급히 당겨 기수를 올리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 받는다.보잉 737 기종 훈련용 시뮬레이터에선 실속(stall) 상황이 발생, 비행기의 고도가 급격하게 내려갈 경우 '띠띠띠' 하는 경보음과 함께 조종간이 안마의자처럼 떨린다.

노련한 조종사라면 이 상황에서 비행기 기수를 올리지 않고, 적당히 내린다. 구형 737은 경보만 해줄 뿐 사람이 손으로 조종해야 한다. 그런데 최신형인 737 맥스는 실속(stall) 상황에서 받음각 센서를 제어하는 MCAS라는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조종에 개입한다.

만약 정상적인 비행상황에서 소프트웨어가 실속 상황으로 잘못 인식한다면? 비행기는 저절로 기수를 내리며 속도를 높이게 된다. 미 연방항공국은 그래서 기계를 믿지 말고 조종사가 직접 챙기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다.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이륙 후 상황/플레이트레이더24 수직속도지시계(vertical speed)가 오락가락하고 있다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이륙 후 상황/플레이트레이더24 수직속도지시계(vertical speed)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4개월 새 동일 기종 추락 사고, 비행상황 살펴보니…

라이언에어 610편 추락사고 한달 뒤인 지난해 11월 28일, 인도네시아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사고기가 자동 조종 상황에서 추락 전까지 13분 동안 약 30차례에 걸쳐 기수를 내리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조종사들은 그때마다 조종간을 조작해 고도하강을 막았지만, 항공기 자세제어 장치를 끄는 등의 수동 조종을 위한 조치는 하지 않아 기수가 반복적으로 내려가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들은 이륙 직후 관제탑에 조종상의 문제를 호소하며 정확한 고도와 비행속도를 묻는 등 당황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이 정비 불량 때문인지 아니면 장치 결함인지 여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에 관한 최종 보고서는 올해 중순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보잉사는 해당 기종의 결함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항공기 경로를 추적하는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이번에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도 이륙 직후 유사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 추락한다.

사고 당시 아디스아바바 공항의 시계는 10km 이상, 풍속은 10노트 이하였다. 사고기는 고도 상승에 충분한 시속 740km 속도를 냈다.

물론, 이 사고를 '받음각 센서'의 MCAS 문제로 단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최신형 기종에서 4개월 동안 비슷한 형태의 대형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항공업계의 우려가 크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최초 비행에 나선 보잉 737 맥스 8/2016년 1월미국 워싱턴주에서 최초 비행에 나선 보잉 737 맥스 8/2016년 1월

국내 항공사들이 737 맥스 적극 도입하는 이유는?

737 맥스는 2016년 첫 비행을 한 최신 기종이다. 보잉 737 시리즈는 1965년 미국 국내선 용도로 처음 개발됐지만, 오랜 개량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상업용 항공기다.

737 맥스는 최첨단 전자장비 외에 연료 효율이 높은 CFM사의 신형 엔진인 'LEAP-1B'를 사용하고 있다. 기존 737에 비해 연료가 14% 가량 절감되고, 항속거리는 최대 7130km로 더 멀리가는 엔진이다.

국내 항공사에서 기존에 많이 쓰던 737-800 기종은 태국 정도까지만 갈 수 있었다면, 737 맥스는 기존에 중대형 여객기만 갈 수 있던 싱가포르까지도 갈 수 있는 셈이다.

737 맥스는 동체 길이 순으로 '맥스 7'(35미터)부터' 맥스 10'(43미터)까지 4개 세부 기종이 있다. 기본적인 스펙은 같지만, 동체 길이에 차이가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맥스 8'은 210명, 가장 긴 '맥스 10'은 승객 230명(737-800은 180여 명)을 탑승시킬 수 있다. 어지간한 중대형기 못지 않다. 항공사 입장에선 탐나는 기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스타 항공이 2대를 운영 중이고, 5월에 대한항공이 30대, 6월에 티웨이항공이 4대, 내년에 제주항공이 50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는 350여 대가 운영 중이다.

에티오피아 항공 사고 이후 중국 정부 737 맥스 운항 중단 밝혀에티오피아 항공 사고 이후 중국 정부 737 맥스 운항 중단 밝혀

전 세계서 4,700여 대 주문…안전성 우려 해결돼야

문제는 대규모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성 우려다. 보잉사에 따르면 737 맥스는 전세계적으로 100개국에 4천700여 대의 주문을 받았다. 이번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베트남 민간 항공사 비엣젯의 CEO가 737 맥스 기종 100대를 주문했다.

중국도 100대 가까운 737 맥스 기종을 운영 중이다. 해당 기종 주문량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이 이번 사고 이후에 737 맥스 운항을 당분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 전쟁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번 사고로 인한 안전성 논란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세계 민간 항공기의 양대 산맥인 보잉사가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최신기·베테랑 기장·의문의 추락사고…컴퓨터 자동 조종의 비극인가?
    • 입력 2019-03-12 07:00:39
    • 수정2019-03-12 07:11:41
    글로벌 돋보기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이스라엘 벤 구리온 공항 이륙 모습 (지난달 8일)


4개월 된 최신 비행기와 베테랑 조종사…의문의 추락사고

지난해 11월 15일 에티오피아 항공에 인도, 보잉의 최신형 737 맥스(MAX) 기종, 8천 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 양호한 날씨, 지상 기준 740km의 속도로 날던 여객기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3월 10일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이륙한지 6분 만에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57명이 모두 숨졌다. 1945년 설립된 에티오피아 항공 역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국제적인 항공사고 조사위원회가 사고기 잔해와 블랙박스, 조종석 음성 녹음장치 등 각종 기록을 오랜 기간 분석한 뒤 내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보잉 737 맥스 기종을 도입한 여러 나라들이 사고 직후 이 기종에 대한 긴급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인도받은 지 2개월 여 만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모두 숨진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610편의 잔해, 지난해 10월
최첨단 추락 방지 시스템이 오작동한다면 어떤 일이?

지난해 10월 29일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 이후 미국 연방항공국은 11월7일 긴급 감항성 개선 보고서(안전 지침)를 발표했다. "737 맥스 기종의 받음각 센서(angle of attack)에서 오류가 발생해 항공기가 급강하하도록 자동 조종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받음각 센서'는 날개와 기류의 각도를 알려주는 장비다. 받음각을 잘못 유지할 경우 항공기는 급속도로 아래로 추락하는 실속(stall) 현상을 겪게 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릴 적 종이 비행기를 날릴 때 무조건 위로 던지면 어느 순간 종이 비행기가 급격하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실속(stall) 현상은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가 돌발 상황에서 당황, 수동 조종으로 엔진 출력을 높이며 비행기 기수(nose)를 높이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5월 대서양에서 급상승 뒤 급강하 추락한 228명이 숨진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다.

보잉 737 조종간 시뮬레이터/실속(stall) 상황 훈련 모습
조종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조종간을 급히 당겨 기수를 올리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 받는다.보잉 737 기종 훈련용 시뮬레이터에선 실속(stall) 상황이 발생, 비행기의 고도가 급격하게 내려갈 경우 '띠띠띠' 하는 경보음과 함께 조종간이 안마의자처럼 떨린다.

노련한 조종사라면 이 상황에서 비행기 기수를 올리지 않고, 적당히 내린다. 구형 737은 경보만 해줄 뿐 사람이 손으로 조종해야 한다. 그런데 최신형인 737 맥스는 실속(stall) 상황에서 받음각 센서를 제어하는 MCAS라는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조종에 개입한다.

만약 정상적인 비행상황에서 소프트웨어가 실속 상황으로 잘못 인식한다면? 비행기는 저절로 기수를 내리며 속도를 높이게 된다. 미 연방항공국은 그래서 기계를 믿지 말고 조종사가 직접 챙기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다.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 이륙 후 상황/플레이트레이더24 수직속도지시계(vertical speed)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4개월 새 동일 기종 추락 사고, 비행상황 살펴보니…

라이언에어 610편 추락사고 한달 뒤인 지난해 11월 28일, 인도네시아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사고기가 자동 조종 상황에서 추락 전까지 13분 동안 약 30차례에 걸쳐 기수를 내리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조종사들은 그때마다 조종간을 조작해 고도하강을 막았지만, 항공기 자세제어 장치를 끄는 등의 수동 조종을 위한 조치는 하지 않아 기수가 반복적으로 내려가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들은 이륙 직후 관제탑에 조종상의 문제를 호소하며 정확한 고도와 비행속도를 묻는 등 당황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이 정비 불량 때문인지 아니면 장치 결함인지 여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라이언에어 610편 사고에 관한 최종 보고서는 올해 중순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보잉사는 해당 기종의 결함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항공기 경로를 추적하는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이번에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도 이륙 직후 유사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 추락한다.

사고 당시 아디스아바바 공항의 시계는 10km 이상, 풍속은 10노트 이하였다. 사고기는 고도 상승에 충분한 시속 740km 속도를 냈다.

물론, 이 사고를 '받음각 센서'의 MCAS 문제로 단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최신형 기종에서 4개월 동안 비슷한 형태의 대형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항공업계의 우려가 크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최초 비행에 나선 보잉 737 맥스 8/2016년 1월
국내 항공사들이 737 맥스 적극 도입하는 이유는?

737 맥스는 2016년 첫 비행을 한 최신 기종이다. 보잉 737 시리즈는 1965년 미국 국내선 용도로 처음 개발됐지만, 오랜 개량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상업용 항공기다.

737 맥스는 최첨단 전자장비 외에 연료 효율이 높은 CFM사의 신형 엔진인 'LEAP-1B'를 사용하고 있다. 기존 737에 비해 연료가 14% 가량 절감되고, 항속거리는 최대 7130km로 더 멀리가는 엔진이다.

국내 항공사에서 기존에 많이 쓰던 737-800 기종은 태국 정도까지만 갈 수 있었다면, 737 맥스는 기존에 중대형 여객기만 갈 수 있던 싱가포르까지도 갈 수 있는 셈이다.

737 맥스는 동체 길이 순으로 '맥스 7'(35미터)부터' 맥스 10'(43미터)까지 4개 세부 기종이 있다. 기본적인 스펙은 같지만, 동체 길이에 차이가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맥스 8'은 210명, 가장 긴 '맥스 10'은 승객 230명(737-800은 180여 명)을 탑승시킬 수 있다. 어지간한 중대형기 못지 않다. 항공사 입장에선 탐나는 기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스타 항공이 2대를 운영 중이고, 5월에 대한항공이 30대, 6월에 티웨이항공이 4대, 내년에 제주항공이 50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는 350여 대가 운영 중이다.

에티오피아 항공 사고 이후 중국 정부 737 맥스 운항 중단 밝혀
전 세계서 4,700여 대 주문…안전성 우려 해결돼야

문제는 대규모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성 우려다. 보잉사에 따르면 737 맥스는 전세계적으로 100개국에 4천700여 대의 주문을 받았다. 이번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베트남 민간 항공사 비엣젯의 CEO가 737 맥스 기종 100대를 주문했다.

중국도 100대 가까운 737 맥스 기종을 운영 중이다. 해당 기종 주문량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이 이번 사고 이후에 737 맥스 운항을 당분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 전쟁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번 사고로 인한 안전성 논란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세계 민간 항공기의 양대 산맥인 보잉사가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