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추락 여객기의 미확인 탑승자…그들의 이름은 ‘UN’

입력 2019.03.12 (09:28) 수정 2019.03.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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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여객기 '국적 미확인 탑승자'…그들의 이름은 'UN'

지난 일요일(11일), 모처럼 느긋한 평화를 깬 것은 다급한 속보 알림이었다. 이내 언론사별로 쏟아지기 시작한 '브레이킹 뉴스' 내용은 에티오피아발 케냐행 여객기 추락. 사고 상황과 피해 규모, 특히 한국인 탑승 여부에 촉각이 곤두섰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에티오피아와 중부 케냐 모두 최근 한국과의 교역 증대로 재외국민이 늘고 있는 국가다.

"다행히 현재까지 한국인 국적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확인 탑승객이 서너명 있어요.
유엔 직원들인 것 같은데 끝까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관 통화 中)

사고 초반부터 다급하게 움직인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목소리는 수차례 통화에도 긴장감이 가시질 않았다. 유엔 여권을 사용한 이들이 탑승객에 포함됐는데, 국적까지는 에티오피아 정부 측이 발표한 1차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았단 것이다. 다행히 최종 확인 결과 한국인 국적자는 없었지만, 20명 넘는 유엔 직원이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탑승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희생자 10%가 유엔 직원"…승객 149명 중 최소 21명 해당

탑승한 사람 전원이 사망한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사고에서, 적어도 21명의 직원이 희생됐다고 유엔은 밝혔다. 초기 발표했던 19명보다 더 늘어난 숫자다. 소속도 유엔을 비롯한 산하 기구 5개 이상이 포함됐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소속 직원 7명이 숨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를 비롯해 남수단과 소말리아 지원에 나섰던 국제이주기구(IOM)와 세계은행 직원들도 희생됐다. 지구 온난화 방지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유엔 환경 콘퍼런스에 참석하려던 유엔환경계획(UNEP)과 나이로비 유엔사무소 직원 6명도 종착지에 닿지 못했다. 추락한 여객기에서 숨진 전체 탑승자는 157명, 그 가운데서도 승객 149명의 10% 넘는 비율을 유엔 직원들이 차지한 셈이다. '목숨 바쳐' 일하는 이런 불운한 사고가 유엔에선 흔한 일일까.

유엔의 공식 자료를 보면 임무 수행 도중 사망하는 유엔 직원은 매년 두 자릿수를 넘는다. 특히 자살 테러나 폭탄 등 사전에 계획된 공격으로 숨지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구촌 오지와 험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유엔 직원이란 신분이 노출된 탓에 타깃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희생된 유엔 직원과 관계자 수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44명에 이른다.


사망한 직원들 가운데서는 국제연합군, 즉 유엔군 소속이 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그래프 참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 역시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말리' 였고, 그 뒤를 '콩고'가 잇고 있다. 2017년 한해에만 유엔 직원 71명이 숨졌는데, 유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해로 꼽힌다. 그해 12월 콩고에서 유엔군을 겨냥한 공격으로 15명이 한꺼번에 숨지고 43명이 다쳤는데, 1993년 소말리아에서 직원 23명이 숨진 사건 이래 '가장 끔찍한' 사례였다고 유엔은 밝히고 있다.



자살 테러·폭탄 공격·매복 살해…'표적' 된 유엔 직원들

유엔군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끝내 희생양이 됐다. 유엔의 사망 관련 기록 일부만 봐도 일반적인 산업 재해의 사망 사례와는 판이하게 다른 유형들이 '흔한' 경우처럼 나타난다.

2018년 1월 22일 아프간 UN 지원단 직원 매복 살해.
2월 28일 나이지리아 유니세프 의료진 공격 사망.
4월 5일 말리 평화유지군 박격포 공격 사망
4월 6일 나이지리아 평화유지군 정체불명 저격수에 의한 살해. (2019년 2월 발표된 유엔 자료)

여기에 해마다 납치와 실종으로 생사가 불분명한 직원들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처럼 대형 사고나 재난 재해로 유엔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한 경우는 흔치 않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현장에 파견됐던 직원 14명이 숨진 사례를 제외하면 말이다.


"유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 조합 대표인 비비 쉐리파 칸 씨는 험지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들에 대한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평화 유지 임무에 관련된 예산 삭감은 분쟁지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임무 수행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엔이 직원들을 위험한 곳으로 파견할 때엔 소속 국가들과 함께 안전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직원들을 위협하는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화려한 모습 이면엔 사선에서 직업적 소명을 다 하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유엔 직원들의 생존 투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유엔군을 제외한 유엔 소속 직원은 모두 3만 8천여 명이다.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사고로 21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에, 유엔 본부와 기관들엔 조기가 내걸렸고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생명을 잃은 비극적인 상실감에 가슴 깊이 슬픔을 느낀다'며 애도했다. 유엔의 직원 사망 관련 2018년 보고서 부제는 '유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으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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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2 09:28:48
    • 수정2019-03-12 09:35:35
    특파원 리포트
추락 여객기 '국적 미확인 탑승자'…그들의 이름은 'UN' 지난 일요일(11일), 모처럼 느긋한 평화를 깬 것은 다급한 속보 알림이었다. 이내 언론사별로 쏟아지기 시작한 '브레이킹 뉴스' 내용은 에티오피아발 케냐행 여객기 추락. 사고 상황과 피해 규모, 특히 한국인 탑승 여부에 촉각이 곤두섰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에티오피아와 중부 케냐 모두 최근 한국과의 교역 증대로 재외국민이 늘고 있는 국가다. "다행히 현재까지 한국인 국적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확인 탑승객이 서너명 있어요. 유엔 직원들인 것 같은데 끝까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관 통화 中) 사고 초반부터 다급하게 움직인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목소리는 수차례 통화에도 긴장감이 가시질 않았다. 유엔 여권을 사용한 이들이 탑승객에 포함됐는데, 국적까지는 에티오피아 정부 측이 발표한 1차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았단 것이다. 다행히 최종 확인 결과 한국인 국적자는 없었지만, 20명 넘는 유엔 직원이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탑승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희생자 10%가 유엔 직원"…승객 149명 중 최소 21명 해당 탑승한 사람 전원이 사망한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사고에서, 적어도 21명의 직원이 희생됐다고 유엔은 밝혔다. 초기 발표했던 19명보다 더 늘어난 숫자다. 소속도 유엔을 비롯한 산하 기구 5개 이상이 포함됐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소속 직원 7명이 숨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를 비롯해 남수단과 소말리아 지원에 나섰던 국제이주기구(IOM)와 세계은행 직원들도 희생됐다. 지구 온난화 방지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유엔 환경 콘퍼런스에 참석하려던 유엔환경계획(UNEP)과 나이로비 유엔사무소 직원 6명도 종착지에 닿지 못했다. 추락한 여객기에서 숨진 전체 탑승자는 157명, 그 가운데서도 승객 149명의 10% 넘는 비율을 유엔 직원들이 차지한 셈이다. '목숨 바쳐' 일하는 이런 불운한 사고가 유엔에선 흔한 일일까. 유엔의 공식 자료를 보면 임무 수행 도중 사망하는 유엔 직원은 매년 두 자릿수를 넘는다. 특히 자살 테러나 폭탄 등 사전에 계획된 공격으로 숨지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구촌 오지와 험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유엔 직원이란 신분이 노출된 탓에 타깃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희생된 유엔 직원과 관계자 수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44명에 이른다. 사망한 직원들 가운데서는 국제연합군, 즉 유엔군 소속이 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그래프 참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곳 역시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말리' 였고, 그 뒤를 '콩고'가 잇고 있다. 2017년 한해에만 유엔 직원 71명이 숨졌는데, 유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해로 꼽힌다. 그해 12월 콩고에서 유엔군을 겨냥한 공격으로 15명이 한꺼번에 숨지고 43명이 다쳤는데, 1993년 소말리아에서 직원 23명이 숨진 사건 이래 '가장 끔찍한' 사례였다고 유엔은 밝히고 있다. 자살 테러·폭탄 공격·매복 살해…'표적' 된 유엔 직원들 유엔군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끝내 희생양이 됐다. 유엔의 사망 관련 기록 일부만 봐도 일반적인 산업 재해의 사망 사례와는 판이하게 다른 유형들이 '흔한' 경우처럼 나타난다. 2018년 1월 22일 아프간 UN 지원단 직원 매복 살해. 2월 28일 나이지리아 유니세프 의료진 공격 사망. 4월 5일 말리 평화유지군 박격포 공격 사망 4월 6일 나이지리아 평화유지군 정체불명 저격수에 의한 살해. (2019년 2월 발표된 유엔 자료) 여기에 해마다 납치와 실종으로 생사가 불분명한 직원들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처럼 대형 사고나 재난 재해로 유엔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한 경우는 흔치 않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현장에 파견됐던 직원 14명이 숨진 사례를 제외하면 말이다. "유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 조합 대표인 비비 쉐리파 칸 씨는 험지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들에 대한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평화 유지 임무에 관련된 예산 삭감은 분쟁지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임무 수행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엔이 직원들을 위험한 곳으로 파견할 때엔 소속 국가들과 함께 안전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직원들을 위협하는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화려한 모습 이면엔 사선에서 직업적 소명을 다 하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유엔 직원들의 생존 투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2017년 기준으로 유엔군을 제외한 유엔 소속 직원은 모두 3만 8천여 명이다. 이번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사고로 21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에, 유엔 본부와 기관들엔 조기가 내걸렸고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생명을 잃은 비극적인 상실감에 가슴 깊이 슬픔을 느낀다'며 애도했다. 유엔의 직원 사망 관련 2018년 보고서 부제는 '유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으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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