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봤자 또 위헌 논란?…선거제 개편논의 “갈 길이 멀다”

입력 2019.03.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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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선거제도 개혁을 외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3월 10일까지는 선거제도 개혁의 확고한 실현 방도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 자유한국당에 통첩한 선거제 개편안 제출 시한은 10일이었습니다. 민주당과 야 3당은 한국당이 답이 없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태우겠다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결국 한국당은 10일 당 정개특위를 열어 자체 개편안을 제시했는데, 이때부터 난데없는 '위헌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포문 연 한국당…“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 소지”

10일 열린 한국당 정개특위 회의 브리핑 모습10일 열린 한국당 정개특위 회의 브리핑 모습

먼저 포문을 연 건 한국당입니다. 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당 정개특위 회의에서 민주당과 야 3당이 논의 중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겨냥해 "위헌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근거로 2001년 헌재 결정을 들었습니다.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는 1인1표제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비례대표 선거는 지역구 선거와 별도의 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별도의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한다.'라며 지역구 투표 결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은 직접 선거 원칙 등을 위배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 의원은 이를 토대로 "일부 정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당 투표(비례대표 투표)에 가중치를 둬서 전체 의석수를 배정하게 되면, 지역구 후보에 투표하는 표와 정당에 투표하는 표가 똑같은 가치를 갖지 못하게 돼 표의 등가성을 침해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가 위헌심판 청구를 하면 당연히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힘을 실었습니다.

발끈한 野 3당…“헌법에 대한 무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지도부가 11일 오전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해 조찬 회동을 하고 있다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지도부가 11일 오전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해 조찬 회동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이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위헌'을 운운하는 한국당이 내놓은 안이 오히려 위헌이라는 겁니다.

한국당이 당 정개특위를 거쳐 제시한 선거제 개편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입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위헌적 발상까지 하면서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놓았다."라고 평했고,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헌법이 보장하는 비례대표 제도를 폐지하자는 건 헌법에 대한 무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본인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입지를 다진 장본인"이라면서 "사다리를 걷어차고 헌법도, 상식도 거스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팽팽한 위헌 공방…누구 말이 맞을까?

서로가 "상대 측 안은 위헌"이라는 주장인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헌이라는 한국당 주장에 대한 의견입니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와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역의 대표성을 훼손하는 요소도 있다."라고 지적했지만, 위헌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정개특위 자문위원인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현재 논의 중인 선거제 개편안이 모두 위헌 논란이 있다."라고 전제하고 "그중에서 차라리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헌 소지가 가장 낮아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위헌 소지는 전혀 없고, 다만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의견을 냈습니다.

다음으로 비례대표 폐지안이 위헌이라는 야 3당의 주장에 대한 의견입니다.

헌법재판소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국회의원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41조 3항은 비례대표제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면서 비례대표 폐지안은 위헌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장영수 교수와 한상희 교수 등 다른 헌법학자들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다만 허영 경희대 법대 교수는 "헌법에 비례대표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해서 꼭 도입하라는 취지로 해석할 건 아니다"라면서 "선거의 룰은 국회 합의 사항이지 헌법으로 따질 게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위헌 논란의 장에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준 연동형, 복합연동형 등 민주당 안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입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이 안이야말로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오히려 위헌성이 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역구 의석은 지역구 투표로, 비례대표 의석은 비례대표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게 헌재 판단인데, 지역구 투표 결과와 비례대표 투표 결과 등을 국회가 자의적으로 '짬뽕'해 기준을 만든 뒤 의석수 배분에 반영하는 건 위헌성이 높다는 겁니다.

싸워봤자 또 위헌 논란? “갈 길이 먼데…”

사실 우리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중대한 변화를 갖고 올 선거제 개편안의 위헌성은 각 당별이든 국회 정개특위 차원이든 일찌감치 검토가 끝났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이렇게 여야가 싸우고 담판을 하고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서 통과시키려는 법안이 이렇게 봐도 위헌, 저렇게 봐도 위헌 논란이 있다는 걸 국회는 과연 몰랐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위헌 소지는 한국당이 지난해 말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왔습니다. 준 연동형이나 복합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위헌성 역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연초 주장한 바 있습니다. 비례대표 폐지안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심지어 이 안을 제안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조차 "논란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라면서 "디테일은 앞으로 논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내년 4월 총선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선거제 개편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까지 아무도 심각하게 검토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한 정당 원내 지도부의 언급입니다.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먼데, 검토는 아직 심각해지지도 않았고, 공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겁니다. "투닥투닥 싸우다가 결국엔 현행 선거제도 그대로 갈 것"이라는 일부 의원들의 푸념을 빈말로 넘기기 힘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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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워봤자 또 위헌 논란?…선거제 개편논의 “갈 길이 멀다”
    • 입력 2019-03-12 09:55:50
    취재K
"끝내 선거제도 개혁을 외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3월 10일까지는 선거제도 개혁의 확고한 실현 방도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 자유한국당에 통첩한 선거제 개편안 제출 시한은 10일이었습니다. 민주당과 야 3당은 한국당이 답이 없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태우겠다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결국 한국당은 10일 당 정개특위를 열어 자체 개편안을 제시했는데, 이때부터 난데없는 '위헌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포문 연 한국당…“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 소지”

10일 열린 한국당 정개특위 회의 브리핑 모습
먼저 포문을 연 건 한국당입니다. 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당 정개특위 회의에서 민주당과 야 3당이 논의 중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겨냥해 "위헌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근거로 2001년 헌재 결정을 들었습니다.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는 1인1표제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비례대표 선거는 지역구 선거와 별도의 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별도의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한다.'라며 지역구 투표 결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은 직접 선거 원칙 등을 위배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 의원은 이를 토대로 "일부 정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당 투표(비례대표 투표)에 가중치를 둬서 전체 의석수를 배정하게 되면, 지역구 후보에 투표하는 표와 정당에 투표하는 표가 똑같은 가치를 갖지 못하게 돼 표의 등가성을 침해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가 위헌심판 청구를 하면 당연히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힘을 실었습니다.

발끈한 野 3당…“헌법에 대한 무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지도부가 11일 오전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해 조찬 회동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이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위헌'을 운운하는 한국당이 내놓은 안이 오히려 위헌이라는 겁니다.

한국당이 당 정개특위를 거쳐 제시한 선거제 개편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입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위헌적 발상까지 하면서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놓았다."라고 평했고,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헌법이 보장하는 비례대표 제도를 폐지하자는 건 헌법에 대한 무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본인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입지를 다진 장본인"이라면서 "사다리를 걷어차고 헌법도, 상식도 거스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팽팽한 위헌 공방…누구 말이 맞을까?

서로가 "상대 측 안은 위헌"이라는 주장인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헌이라는 한국당 주장에 대한 의견입니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와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역의 대표성을 훼손하는 요소도 있다."라고 지적했지만, 위헌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정개특위 자문위원인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현재 논의 중인 선거제 개편안이 모두 위헌 논란이 있다."라고 전제하고 "그중에서 차라리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헌 소지가 가장 낮아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위헌 소지는 전혀 없고, 다만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의견을 냈습니다.

다음으로 비례대표 폐지안이 위헌이라는 야 3당의 주장에 대한 의견입니다.

헌법재판소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국회의원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41조 3항은 비례대표제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면서 비례대표 폐지안은 위헌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장영수 교수와 한상희 교수 등 다른 헌법학자들도 비슷하게 분석했습니다. 다만 허영 경희대 법대 교수는 "헌법에 비례대표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해서 꼭 도입하라는 취지로 해석할 건 아니다"라면서 "선거의 룰은 국회 합의 사항이지 헌법으로 따질 게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위헌 논란의 장에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준 연동형, 복합연동형 등 민주당 안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입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이 안이야말로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오히려 위헌성이 짙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역구 의석은 지역구 투표로, 비례대표 의석은 비례대표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게 헌재 판단인데, 지역구 투표 결과와 비례대표 투표 결과 등을 국회가 자의적으로 '짬뽕'해 기준을 만든 뒤 의석수 배분에 반영하는 건 위헌성이 높다는 겁니다.

싸워봤자 또 위헌 논란? “갈 길이 먼데…”

사실 우리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중대한 변화를 갖고 올 선거제 개편안의 위헌성은 각 당별이든 국회 정개특위 차원이든 일찌감치 검토가 끝났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이렇게 여야가 싸우고 담판을 하고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서 통과시키려는 법안이 이렇게 봐도 위헌, 저렇게 봐도 위헌 논란이 있다는 걸 국회는 과연 몰랐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위헌 소지는 한국당이 지난해 말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왔습니다. 준 연동형이나 복합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위헌성 역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연초 주장한 바 있습니다. 비례대표 폐지안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심지어 이 안을 제안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조차 "논란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라면서 "디테일은 앞으로 논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내년 4월 총선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선거제 개편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까지 아무도 심각하게 검토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한 정당 원내 지도부의 언급입니다.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먼데, 검토는 아직 심각해지지도 않았고, 공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겁니다. "투닥투닥 싸우다가 결국엔 현행 선거제도 그대로 갈 것"이라는 일부 의원들의 푸념을 빈말로 넘기기 힘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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