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거 왜 이래?”에 대한 응답

입력 2019.03.13 (07:00) 수정 2019.03.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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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꼭 한번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걷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도대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목소리라도 들어보자는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1987년 이후, 32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를 찾은 전두환 씨를 기다리며 든 생각입니다.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은 취재진과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출석하는 전두환 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 씨가 광주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습니다. 5.18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전 씨가 무슨 말을 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입을 열기는 열지, 혹시라도 사과의 뜻을 밝힐지. 시민들이 궁금해했고, 기자들이 물어봐야 했습니다.

전 씨를 태운 차량이 도착할 법정 입구에서 문까지는 불과 10여 미터 거리. 전 씨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30초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질문을 추려야 했습니다. 기자 3명이 세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하느냐. 5.18 당시 발포 명령을 했느냐.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 없느냐. 짧은 순간 실수하지 않도록 질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대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전두환 씨, 침묵할 줄 알았더니 '왈칵'

기다림은 길지 않았습니다. 전 씨의 차량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낮 12시 33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서 전 씨가 내렸습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전 씨는 기다리던 기자들을 지나쳐 계속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준비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 씨는 '혐의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대꾸 없이 걷더니, '발포 명령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갑자기 기자 쪽을 획 돌아봤습니다.

"이거 왜 이래!"

전 씨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고함이었습니다. 얼굴은 심하게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는 기자들과 몸이 살짝 닿은 듯, 손을 뿌리치며 외친 말이었습니다. 아흔 살을 앞둔 노인치고는 목소리와 동작에 상당한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거'라는 말은 마이크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던 기자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습니다. 입을 여는 순간, 전 씨는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사과할 생각 없느냐"는 제 질문에는 다시 침묵했습니다. 더 묻고 싶어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경호원에게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전 씨는 법정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습니다.


전 씨와의 조우는 허무할 만큼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한 마디 외침만 남기고 사라진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재판에서, 그리고 법정을 나서면서 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까 지켜봤지만 결국 전 씨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왜 이래'. 그의 짧디짧은 문장이 온종일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냥 법정으로 들어가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지만 침묵을 지킬 법도 한데. 전 씨는 왜 그렇게 말하며 화를 냈을까.

전 씨의 행적을 다시 돌이켜 보니 이해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전 씨는 줄곧 자신과 5.18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자신이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중앙정보부장이었지만 군 통수권자는 아니었고, 무자비한 진압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전 씨는 문제의 회고록에서도, 5.18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제물'이 됐다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5.18 당시 국군의 무차별적 살상 행위는 없었으며, 5.18에 북한 간첩이 개입했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전두환이 광주에게 하는 말, "이거 왜 이래"

그런 전 씨가 뱉은 문장은, 단순한 몸싸움 때문에 나온 게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치 광주 전체에 대고 전 씨가 외치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5.18과 관련 없는 나를 왜 물고 늘어지느냐.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 나를 괴롭히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따져라. 게다가 5.18은 북한 간첩이 개입한 거다. 5.18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는 전 씨의 입장이 다시금 똑똑히 확인된 겁니다.

그러나 전 씨의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입니다. 1997년, 대법원은 광주에서 일어난 살상 작전을 지시한 책임을 물어 전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전두환 씨 등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살상하는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했다고 결론 내립니다. 당시의 군 기록과 여러 자료들도 전 씨가 무차별 진압을 지시한 신군부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5.18의 비극에 분명히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적 결론, 역사적 사료 모두 5.18의 책임자로 그의 이름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사과는커녕 황당한 말만 들은 5.18 유족과 시민들은 들끓었습니다. 전 씨의 말이 칼이 되어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힌 겁니다. 전 씨가 법정에 들어올 때만 해도 비교적 차분했던 사람들은 전 씨가 보여준 모습에 격분했습니다. 분노 속에 아우성치며 도로에 드러누웠고 차량에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전 씨는 그렇게 광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인 4월 8일에는 출석할 필요가 없지만, 전 씨는 조만간 광주에 내려와야 합니다. 사자명예훼손 재판의 1심 결론이 내려지는 선고기일에는 반드시 법정에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거 왜 이래'라고 외친 전 씨의 입장이 그때까지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계속해 온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억울하게 숨진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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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거 왜 이래?”에 대한 응답
    • 입력 2019-03-13 07:00:03
    • 수정2019-03-13 11:14:58
    취재후·사건후
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꼭 한번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걷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도대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목소리라도 들어보자는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1987년 이후, 32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를 찾은 전두환 씨를 기다리며 든 생각입니다.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은 취재진과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출석하는 전두환 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 씨가 광주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습니다. 5.18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전 씨가 무슨 말을 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입을 열기는 열지, 혹시라도 사과의 뜻을 밝힐지. 시민들이 궁금해했고, 기자들이 물어봐야 했습니다.

전 씨를 태운 차량이 도착할 법정 입구에서 문까지는 불과 10여 미터 거리. 전 씨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30초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질문을 추려야 했습니다. 기자 3명이 세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하느냐. 5.18 당시 발포 명령을 했느냐.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 없느냐. 짧은 순간 실수하지 않도록 질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대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전두환 씨, 침묵할 줄 알았더니 '왈칵'

기다림은 길지 않았습니다. 전 씨의 차량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낮 12시 33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서 전 씨가 내렸습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전 씨는 기다리던 기자들을 지나쳐 계속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준비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 씨는 '혐의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대꾸 없이 걷더니, '발포 명령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갑자기 기자 쪽을 획 돌아봤습니다.

"이거 왜 이래!"

전 씨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고함이었습니다. 얼굴은 심하게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는 기자들과 몸이 살짝 닿은 듯, 손을 뿌리치며 외친 말이었습니다. 아흔 살을 앞둔 노인치고는 목소리와 동작에 상당한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거'라는 말은 마이크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던 기자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습니다. 입을 여는 순간, 전 씨는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사과할 생각 없느냐"는 제 질문에는 다시 침묵했습니다. 더 묻고 싶어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경호원에게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전 씨는 법정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습니다.


전 씨와의 조우는 허무할 만큼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한 마디 외침만 남기고 사라진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재판에서, 그리고 법정을 나서면서 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까 지켜봤지만 결국 전 씨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왜 이래'. 그의 짧디짧은 문장이 온종일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냥 법정으로 들어가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지만 침묵을 지킬 법도 한데. 전 씨는 왜 그렇게 말하며 화를 냈을까.

전 씨의 행적을 다시 돌이켜 보니 이해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전 씨는 줄곧 자신과 5.18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자신이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중앙정보부장이었지만 군 통수권자는 아니었고, 무자비한 진압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전 씨는 문제의 회고록에서도, 5.18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제물'이 됐다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5.18 당시 국군의 무차별적 살상 행위는 없었으며, 5.18에 북한 간첩이 개입했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전두환이 광주에게 하는 말, "이거 왜 이래"

그런 전 씨가 뱉은 문장은, 단순한 몸싸움 때문에 나온 게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치 광주 전체에 대고 전 씨가 외치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5.18과 관련 없는 나를 왜 물고 늘어지느냐.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 나를 괴롭히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따져라. 게다가 5.18은 북한 간첩이 개입한 거다. 5.18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는 전 씨의 입장이 다시금 똑똑히 확인된 겁니다.

그러나 전 씨의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입니다. 1997년, 대법원은 광주에서 일어난 살상 작전을 지시한 책임을 물어 전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전두환 씨 등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살상하는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했다고 결론 내립니다. 당시의 군 기록과 여러 자료들도 전 씨가 무차별 진압을 지시한 신군부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5.18의 비극에 분명히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적 결론, 역사적 사료 모두 5.18의 책임자로 그의 이름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사과는커녕 황당한 말만 들은 5.18 유족과 시민들은 들끓었습니다. 전 씨의 말이 칼이 되어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힌 겁니다. 전 씨가 법정에 들어올 때만 해도 비교적 차분했던 사람들은 전 씨가 보여준 모습에 격분했습니다. 분노 속에 아우성치며 도로에 드러누웠고 차량에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전 씨는 그렇게 광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인 4월 8일에는 출석할 필요가 없지만, 전 씨는 조만간 광주에 내려와야 합니다. 사자명예훼손 재판의 1심 결론이 내려지는 선고기일에는 반드시 법정에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거 왜 이래'라고 외친 전 씨의 입장이 그때까지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계속해 온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억울하게 숨진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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