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겠다”는 SK의 허언, 가습기 피해는 현재진행형

입력 2019.03.14 (15:43) 수정 2019.03.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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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라는 허상, '가습기메이트'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4년, 세상에 없던 제품이 처음 시장에 나왔습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유공, 오늘날의 SK케미칼이 만들었습니다.

"개발비만 18억 원이 들었다", "100%의 살균력을 자랑한다"며 신문과 방송 광고가 이어졌습니다.

1994년 11월 18일자 신문 광고. ‘인체 무해’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1994년 11월 18일자 신문 광고. ‘인체 무해’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하지만 화려했던 출발과 달리 해당 제품은 오늘날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 되면서 그 이듬해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SK케미칼 측은 지금도 해당 제품과 피해자들의 증상 간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또 제품을 출시할 당시 제대로 된 실험을 거쳤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뒤 8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당당하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SK케미칼. 그렇다면 SK의 책임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만들 때의 실험 결과부터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 것입니다.

"개발 당시 실험 결과가 사라졌다" 갑자기 말 바꾼 SK케미칼

2013년 KBS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이같은 문제 의식에서 SK 측에 제품 개발 당시의 '유해성 실험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SK 측은 처음에는 "관련 자료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취재가 계속되자 "자료가 없다"며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당시 제품 개발진이 모두 퇴직했고, 유공에서 SK케미칼로 회사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자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자료가 없어졌다"는 SK 측의 입장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 된 2016년, 국회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당시 SK케미칼 김철 대표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당시 SK케미칼 김철 대표

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질의에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자료를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회사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자료를 아예 받지 못했는지도 알지 못하겠다는 궁색한 변명도 이어졌습니다.

제품을 사용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이 속출했지만 제품이 유해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제품을 개발할 때 문제 없이 만들었지만 입증할 자료는 없어졌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은 그렇게 계속됐습니다.

거짓으로 드러난 SK케미칼의 변명

그런데 최근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SK 측의 이같은 해명이 거짓이라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과거 SK케미칼이 개발 당시의 실험 자료를 확보했음에도 이를 숨겼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2013년 SK케미칼이 별도의 팀을 꾸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응하던 중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개발 당시의 자료를 내놓으라는 요청이 쇄도하자 아예 자료를 숨기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제품 개발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줄곧 설명해오던 SK케미칼인데, 굳이 자료를 숨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계를 다시 2016년 국정조사 청문회로 돌려보겠습니다.

1994년 개발 당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의 ‘독성 실험’ 내역. 실험 기간이 94.10~12월로 표기돼있다.1994년 개발 당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의 ‘독성 실험’ 내역. 실험 기간이 94.10~12월로 표기돼있다.

1994년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처음 생산할 당시 유공은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에 '흡입독성'에 관한 동물 실험을 의뢰합니다. 실험 기간은 94년 10월~12월 3달 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제품의 출시 광고가 난 건 94년 11월 18일입니다. 실험이 진행 중인데 제품은 이미 출시가 됐다? 이에 대해 당시 개발을 맡았던 노승권 팀장과 이영순 교수는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노승권 팀장 : "일정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다만 그런 기사가 나갔다면 당시 연구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기사를 내지 않았을까요? 교수님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건 아니고 저 또한 당시 관련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이영순 교수 : "시험을 의뢰한 지 한 달하고 보름만에 그런 기사가 나갔다는 것은 사실은 짧막한 급성 독성실험을 한 것을 중간에 보고받고 기사를 내보낸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추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완벽한 실험을 마치고 제품을 출시했다는 SK 측의 주장과는 사뭇 대비되는 증언입니다.

개발은 1994년, 실험 보고서는 1995년

당시 실험이 부실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은 또 있습니다. 검찰이 이번에 확보한 SK의 실험 자료는 1995년에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품이 먼저 출시되고 나서 이듬해에 실험보고서가 완성됐다는 건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자 SK 측이 이같은 정황을 내부적으로 파악해 보고서를 은폐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해당 보고서에 나오는 실험 내용입니다. 쥐를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한 뒤 쥐가 죽었는데, 황당하게도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탓인지 명확하지 않고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습니다. SK가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던 '완벽한' 실험의 내용입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SK케미칼의 박 모 부사장 등 임원 3명과 직원 1명 등 모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구속 여부는 오늘(14일) 저녁 결정될 예정입니다.


SK케미칼 김철 대표는 2016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절대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이 SK는 책임을 규명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진실을 감추는 데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처음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 된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아온 건 그보다 훨씬 전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피해자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나긴 고통의 시간마저도 SK에게는 '책임지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시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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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임지겠다”는 SK의 허언, 가습기 피해는 현재진행형
    • 입력 2019-03-14 15:43:09
    • 수정2019-03-14 18:49:48
    취재K
'세계 최초'라는 허상, '가습기메이트'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4년, 세상에 없던 제품이 처음 시장에 나왔습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유공, 오늘날의 SK케미칼이 만들었습니다.

"개발비만 18억 원이 들었다", "100%의 살균력을 자랑한다"며 신문과 방송 광고가 이어졌습니다.

1994년 11월 18일자 신문 광고. ‘인체 무해’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하지만 화려했던 출발과 달리 해당 제품은 오늘날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 되면서 그 이듬해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SK케미칼 측은 지금도 해당 제품과 피해자들의 증상 간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또 제품을 출시할 당시 제대로 된 실험을 거쳤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뒤 8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당당하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SK케미칼. 그렇다면 SK의 책임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만들 때의 실험 결과부터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 것입니다.

"개발 당시 실험 결과가 사라졌다" 갑자기 말 바꾼 SK케미칼

2013년 KBS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이같은 문제 의식에서 SK 측에 제품 개발 당시의 '유해성 실험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SK 측은 처음에는 "관련 자료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취재가 계속되자 "자료가 없다"며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당시 제품 개발진이 모두 퇴직했고, 유공에서 SK케미칼로 회사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자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자료가 없어졌다"는 SK 측의 입장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 된 2016년, 국회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당시 SK케미칼 김철 대표
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질의에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자료를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회사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자료를 아예 받지 못했는지도 알지 못하겠다는 궁색한 변명도 이어졌습니다.

제품을 사용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이 속출했지만 제품이 유해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제품을 개발할 때 문제 없이 만들었지만 입증할 자료는 없어졌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은 그렇게 계속됐습니다.

거짓으로 드러난 SK케미칼의 변명

그런데 최근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SK 측의 이같은 해명이 거짓이라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과거 SK케미칼이 개발 당시의 실험 자료를 확보했음에도 이를 숨겼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2013년 SK케미칼이 별도의 팀을 꾸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응하던 중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개발 당시의 자료를 내놓으라는 요청이 쇄도하자 아예 자료를 숨기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제품 개발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줄곧 설명해오던 SK케미칼인데, 굳이 자료를 숨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계를 다시 2016년 국정조사 청문회로 돌려보겠습니다.

1994년 개발 당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의 ‘독성 실험’ 내역. 실험 기간이 94.10~12월로 표기돼있다.
1994년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처음 생산할 당시 유공은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에 '흡입독성'에 관한 동물 실험을 의뢰합니다. 실험 기간은 94년 10월~12월 3달 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제품의 출시 광고가 난 건 94년 11월 18일입니다. 실험이 진행 중인데 제품은 이미 출시가 됐다? 이에 대해 당시 개발을 맡았던 노승권 팀장과 이영순 교수는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노승권 팀장 : "일정을 기억하지 못 합니다. 다만 그런 기사가 나갔다면 당시 연구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기사를 내지 않았을까요? 교수님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건 아니고 저 또한 당시 관련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이영순 교수 : "시험을 의뢰한 지 한 달하고 보름만에 그런 기사가 나갔다는 것은 사실은 짧막한 급성 독성실험을 한 것을 중간에 보고받고 기사를 내보낸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추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완벽한 실험을 마치고 제품을 출시했다는 SK 측의 주장과는 사뭇 대비되는 증언입니다.

개발은 1994년, 실험 보고서는 1995년

당시 실험이 부실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은 또 있습니다. 검찰이 이번에 확보한 SK의 실험 자료는 1995년에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품이 먼저 출시되고 나서 이듬해에 실험보고서가 완성됐다는 건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자 SK 측이 이같은 정황을 내부적으로 파악해 보고서를 은폐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해당 보고서에 나오는 실험 내용입니다. 쥐를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한 뒤 쥐가 죽었는데, 황당하게도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탓인지 명확하지 않고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습니다. SK가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던 '완벽한' 실험의 내용입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SK케미칼의 박 모 부사장 등 임원 3명과 직원 1명 등 모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구속 여부는 오늘(14일) 저녁 결정될 예정입니다.


SK케미칼 김철 대표는 2016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절대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이 SK는 책임을 규명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진실을 감추는 데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처음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 된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아온 건 그보다 훨씬 전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피해자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나긴 고통의 시간마저도 SK에게는 '책임지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시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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