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B737 추락’ 생존자 없는데…“탑승객 마지막 영상”

입력 2019.03.15 (15:36) 수정 2019.03.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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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오피아 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꽃을 들고 추모하는 유족들


강풍에 전신주가 휘청이고, 비행기가 뒤집힐 듯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땅으로 고꾸라진다. (영상 1) 폭발로 화염이 치솟고 마치 영화 같은 장면 끝엔 에티오피아 항공사 로고와 함께 불 켜진 촛불이 등장한다. 지난 10일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기 화면이라며 트위터에 올라온 이 영상은 79만 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가짜다.



SNS 달구는 "추락 사고 당시 영상" 알고 보니…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2013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부근에서 추락한 미국 보잉 747 화물기라고 한다. 6년 전 발생한 불운의 사고 영상이 최근 추락 장면으로 둔갑해 SNS를 달구고 있는 것이다.

'단독 입수'란 태그까지 달린 다른 영상은 추락 전 탑승객이 휴대전화로 찍은 화면이라며 페이스북에 번졌다.(영상 2) 불안하게 요동치는 기내엔 아이들의 울음 섞인 비명이 들리고, 촬영자를 포함한 승객들은 산소 마스크를 하고 있다.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승무원들. 좌석 등받이엔 에티오피아 항공사 로고까지 선명하다. 이건 실제 상황일까?



이번 추락 사고의 정황과 함께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자. 사고 항공기는 3월 10일 오전 8시 38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했고, 6분 만인 8시 44분 추락했다. 하지만 영상 속 유리창 밖은 온통 컴컴하다. 환하게 밝아야 할 시각에 촬영된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몇몇 승객들의 앞자리엔 기내식 쟁반까지 놓여있다. 이륙 6분 만에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는 없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사고 항공기는 오전 이륙했지만 영상 속 창밖은 밤을 가리킨다(좌) 좌석에 있는 에티오피아 항공 로고. 하지만 내부 구조가 다른 기종이다(우)사고 항공기는 오전 이륙했지만 영상 속 창밖은 밤을 가리킨다(좌) 좌석에 있는 에티오피아 항공 로고. 하지만 내부 구조가 다른 기종이다(우)

기술적인 관점에서 정교하게 살펴보면 영상 속 비행기의 기종 역시 추락한 보잉 737 맥스-8과 차이가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보잉 737 맥스 8은 좌석 배치가 3개씩 2열로 돼 있지만, 영상에선 복도가 2개인 3열 좌석 배치고, 이는 보잉 737 드림라이너 기종으로 분석된다.

노란 튜브로 연결된 산소마스크의 모양 역시 드림라이너 기종으로 보이는데, 여객기의 경우 14,000피트, 즉 4,270m 고도에서 기내 압력이 낮아지면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오지만, 추락 여객기의 고도는 당시 8,000피트, 약 2,400m를 넘지 않았다.

'CNN' 로고 단 가짜 뉴스…페이크 계정으로 무한 확산

이렇게 전문가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석은 물론, 진위를 가릴 만한 영상 속 단순한 디테일도 무심코 봤을 땐 발견하기 힘들다. 하물며 '추락 사고 당시 화면' '탑승객의 마지막 영상' 등 제목이 달린 출처 불명의 동영상들은 기존 언론을 표방하거나, 정식 매체인 양 그럴듯하게 꾸며진 페이크 계정을 통해 무한 확산되는 만큼 대중들이 실제 사고 영상과 가짜 영상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버젓이 미국 CNN 로고까지 박힌 영상은 난기류로 공포에 빠진 기내 상황을 보여준다.(영상3) 이슬람 교도들의 다급한 기도 소리가 들리고 마치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잘 들어보면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저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습니다. 좌석 벨트를 메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아부다비발 자카르타행 에티하드 항공기의 내부 동영상은 그해 이집트 항공기 추락 사고 때도 이미 SNS에 나돌았던 가짜 뉴스. 이번엔 에피오피아 항공편으로 둔갑해 재등장했다.

조종사의 시점에서 추락 장면을 재구성한 동영상까지 등장했다. (영상 4) 실제 영상도 아닌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지만 비행기가 이륙해서 추락하기까지 과정을 마치 현실인 양 꾸몄다. 조종사, 탑승객 또는 제3의 관찰자 시점이 뒤섞인 그래픽 영상은 가짜 비명소리까지 의도적으로 삽입해 살린 리얼리티 탓인지 유튜브에서 70만 번 넘게 조회수를 올렸고, 짧게 편집된 버전들이 트위터 등에 '최후의 순간, 승객이 찍은 영상' 같은 검색어 제목을 달고 전파됐다.



항공기 추락사고의 정확한 원인 분석은 최대 몇 년까지 걸리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고, 블랙박스 등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끝내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사고와 같은 보잉737 맥스8 기종으로 지난해 10월 말 인도네시아 해상에서 추락했던 라이언에어 항공기의 경우,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장치는 바로 찾았지만, 조종실 음성기록 장치는 사고 두 달 반이 지나서야 바닷속 개펄에서 발견됐다.

'추락 원인' 미궁 빠지기도…혼란 부추기는 가짜 뉴스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향하던 항공기는 이륙 6분 만에 땅으로 돌아왔지만, 탑승객 157명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생존자가 아무도 없어 사고 당시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 엄청난 추락에 동체마저 처참히 조각난 사고 현장에선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SNS에서 활개 치는 가짜 뉴스는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과정을 교란시키며 대중들에게 근거 없는 불안과 혼란을 부추긴다. 이미 사고 충격과 더불어 해당 기종의 전 세계적인 운항 중단 등 후폭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안타까운 이번 추락 사고의 진실 규명과 함께 탑승객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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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5 15:36:28
    • 수정2019-03-15 15:53:46
    특파원 리포트
▲에피오피아 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꽃을 들고 추모하는 유족들
강풍에 전신주가 휘청이고, 비행기가 뒤집힐 듯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땅으로 고꾸라진다. (영상 1) 폭발로 화염이 치솟고 마치 영화 같은 장면 끝엔 에티오피아 항공사 로고와 함께 불 켜진 촛불이 등장한다. 지난 10일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기 화면이라며 트위터에 올라온 이 영상은 79만 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가짜다. SNS 달구는 "추락 사고 당시 영상" 알고 보니…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2013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부근에서 추락한 미국 보잉 747 화물기라고 한다. 6년 전 발생한 불운의 사고 영상이 최근 추락 장면으로 둔갑해 SNS를 달구고 있는 것이다. '단독 입수'란 태그까지 달린 다른 영상은 추락 전 탑승객이 휴대전화로 찍은 화면이라며 페이스북에 번졌다.(영상 2) 불안하게 요동치는 기내엔 아이들의 울음 섞인 비명이 들리고, 촬영자를 포함한 승객들은 산소 마스크를 하고 있다.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승무원들. 좌석 등받이엔 에티오피아 항공사 로고까지 선명하다. 이건 실제 상황일까? 이번 추락 사고의 정황과 함께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자. 사고 항공기는 3월 10일 오전 8시 38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했고, 6분 만인 8시 44분 추락했다. 하지만 영상 속 유리창 밖은 온통 컴컴하다. 환하게 밝아야 할 시각에 촬영된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몇몇 승객들의 앞자리엔 기내식 쟁반까지 놓여있다. 이륙 6분 만에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는 없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사고 항공기는 오전 이륙했지만 영상 속 창밖은 밤을 가리킨다(좌) 좌석에 있는 에티오피아 항공 로고. 하지만 내부 구조가 다른 기종이다(우) 기술적인 관점에서 정교하게 살펴보면 영상 속 비행기의 기종 역시 추락한 보잉 737 맥스-8과 차이가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보잉 737 맥스 8은 좌석 배치가 3개씩 2열로 돼 있지만, 영상에선 복도가 2개인 3열 좌석 배치고, 이는 보잉 737 드림라이너 기종으로 분석된다. 노란 튜브로 연결된 산소마스크의 모양 역시 드림라이너 기종으로 보이는데, 여객기의 경우 14,000피트, 즉 4,270m 고도에서 기내 압력이 낮아지면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오지만, 추락 여객기의 고도는 당시 8,000피트, 약 2,400m를 넘지 않았다. ■ 'CNN' 로고 단 가짜 뉴스…페이크 계정으로 무한 확산 이렇게 전문가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석은 물론, 진위를 가릴 만한 영상 속 단순한 디테일도 무심코 봤을 땐 발견하기 힘들다. 하물며 '추락 사고 당시 화면' '탑승객의 마지막 영상' 등 제목이 달린 출처 불명의 동영상들은 기존 언론을 표방하거나, 정식 매체인 양 그럴듯하게 꾸며진 페이크 계정을 통해 무한 확산되는 만큼 대중들이 실제 사고 영상과 가짜 영상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버젓이 미국 CNN 로고까지 박힌 영상은 난기류로 공포에 빠진 기내 상황을 보여준다.(영상3) 이슬람 교도들의 다급한 기도 소리가 들리고 마치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잘 들어보면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저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습니다. 좌석 벨트를 메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아부다비발 자카르타행 에티하드 항공기의 내부 동영상은 그해 이집트 항공기 추락 사고 때도 이미 SNS에 나돌았던 가짜 뉴스. 이번엔 에피오피아 항공편으로 둔갑해 재등장했다. 조종사의 시점에서 추락 장면을 재구성한 동영상까지 등장했다. (영상 4) 실제 영상도 아닌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지만 비행기가 이륙해서 추락하기까지 과정을 마치 현실인 양 꾸몄다. 조종사, 탑승객 또는 제3의 관찰자 시점이 뒤섞인 그래픽 영상은 가짜 비명소리까지 의도적으로 삽입해 살린 리얼리티 탓인지 유튜브에서 70만 번 넘게 조회수를 올렸고, 짧게 편집된 버전들이 트위터 등에 '최후의 순간, 승객이 찍은 영상' 같은 검색어 제목을 달고 전파됐다. 항공기 추락사고의 정확한 원인 분석은 최대 몇 년까지 걸리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고, 블랙박스 등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끝내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사고와 같은 보잉737 맥스8 기종으로 지난해 10월 말 인도네시아 해상에서 추락했던 라이언에어 항공기의 경우,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장치는 바로 찾았지만, 조종실 음성기록 장치는 사고 두 달 반이 지나서야 바닷속 개펄에서 발견됐다. ■ '추락 원인' 미궁 빠지기도…혼란 부추기는 가짜 뉴스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향하던 항공기는 이륙 6분 만에 땅으로 돌아왔지만, 탑승객 157명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생존자가 아무도 없어 사고 당시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 엄청난 추락에 동체마저 처참히 조각난 사고 현장에선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SNS에서 활개 치는 가짜 뉴스는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과정을 교란시키며 대중들에게 근거 없는 불안과 혼란을 부추긴다. 이미 사고 충격과 더불어 해당 기종의 전 세계적인 운항 중단 등 후폭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안타까운 이번 추락 사고의 진실 규명과 함께 탑승객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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