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지역 주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입력 2019.03.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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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 이후 지역 주민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봄은 온다’의 한 장면

2011년 3월 11일, 미야기 현에서 목공 일을 하는 신이치 씨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강진을 느꼈다. 세 자녀가 있는 집을 향해 뛰었다. 아이들은 무사했다. 연락이 끊긴 친척들이 걱정됐다. 두 딸과 아들을 다독인 뒤 다시 집을 나와 친척들을 찾았다. 잠시 후 진원지로부터 밀려온 쓰나미가 집을 덮쳤다. 집 밖에 있던 신이치 씨만 살아남았다.

부인 료코 씨는 그때 직장에 있었다. 이틀 동안 발이 묶였고 모든 통신이 끊겼다. 영원 같기만 했던 40여 시간 후, 남편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특별할 것 없는 인사를 나누고 나온 집은 세 자녀와 함께 사라진 뒤였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료코 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묻지 않는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남편을 탓하는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쓰나미에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신이치·료코 씨 부부(왼쪽) 세 자녀의 영정 사진(오른쪽)쓰나미에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신이치·료코 씨 부부(왼쪽) 세 자녀의 영정 사진(오른쪽)

첫째 딸은 맏이 노릇을 잘했다. 선물을 세 개 사오면 동생들에게 먼저 고르게 한 뒤 남는 걸 가졌다. 아들은 달리기를 잘해 육상부 선수로 뛰었다. 아빠와 함께 뜀박질하는 걸 좋아했다. 그 해 8살이던 막내딸은 친구를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보면 피하기보다 맞서는 쪽이었다. 신이치 씨는 그때 집을 비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모두가 누군가를 잃었다. 일본 후쿠시마 현, 미야기 현, 이와테 현의 많은 해안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그렇다. 재일교포 3세인 윤미아 감독의 다큐 '봄은 온다'는 이들의 그 날 이후를 살핀다. 결혼한 지 5일 만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 아내와 아들 부부와 손주를 한꺼번에 잃은 소방관, 경작지를 잃은 농부, 방사능 우려에 생업을 잇지 못하는 어부가 나온다. 영화는 이들의 슬픔을 앞세우지 않는다. 제목이 말하듯 '봄은 온다'는 회생의 이야기다. 더디게나마 이들의 회복이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지역 공동체 덕이었다.

규모 9.0의 대지진은 인근의 '간요 호텔'에도 시설 피해를 줬다. 호텔 주인 노리코 씨가 시설 복구보다 먼저 챙긴 건 이재민들이 머물 장소였다. 호텔은 6개월간 무료 피난처가 됐다. 호텔에서는 매일 '재해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운행한다. 지금까지 3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 버스투어를 찾았다. 참가자들은 지역 곳곳에 남은 재해 흔적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호텔 직원 이토 씨는 "중요한 것은 그 날의 재해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남겨진 우리가 잊어버린다면 희생자들의 마음도 잊힐 것"이라며 투어를 안내한다.

재해를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매일 운영하는 지역 호텔(왼쪽) 호텔 직원은 재해를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매일 운영하는 지역 호텔(왼쪽) 호텔 직원은

세 자녀를 집과 함께 떠나보낸 신이치·료코 씨 부부의 집터는 피난소로 운영되다 마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어린이 놀이터와 야외 바비큐 시설을 갖추고 이웃을 맞는다.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있었고 부부는 이곳 운영을 직접 맡았다. 초기에 료코 씨는 이 장소에서 사람들이 모여 고기 굽고 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만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난소에 머물고 있던 료코 씨에게, 큰 부상으로 누워 있던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지금 바다는 조용하죠?" 모든 걸 앗아가 버린 바다를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시기였다. 바다에 다녀왔다. "정말 그러네요. 정말 그래요." 료코 씨는 이 아주머니와 지금까지 마음을 의지하고 지낸다. 뭐라 논리적인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그 대화를 나눈 이후, 더는 바다를 원망하지 않게 됐다. 료코 씨와 동네 여성들은 작은 공방을 만들어 수시로 모여 웃고 떠든다.

목수인 신이치 씨는 책장 제작에 열중이다. 세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테일러 문고'를 조성해 해마다 증설 중이어서 책장이 여럿 필요하다. 테일러 씨는 이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강사였다. 신이치 씨의 아이들도 가르쳤다. 그 날 학생들을 모두 대피시킨 다음 집으로 향하다 변을 당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딸을 잃은 테일러 씨의 부모가 책을 기증해 조성한 것이 '테일러 문고'다.

희생된 딸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일본을 찾아 도서를 기증하는 테일러 씨의 부모(왼쪽) 테일러 씨의 아버지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신이치 씨와 친구가 된다(오른쪽)희생된 딸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일본을 찾아 도서를 기증하는 테일러 씨의 부모(왼쪽) 테일러 씨의 아버지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신이치 씨와 친구가 된다(오른쪽)

테일러 씨 부모는 매년 이 학교를 찾아 아이들과 만나고 책을 기증한다. 아버지 앤디 씨는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신이치 씨와 술친구가 된다. 서로의 아들딸들은 문고와 책장으로 남아 그들 곁에 머문다. 신이치 씨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 도왔어요. 이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봄은 온다'는 애써 희망을 찾겠답시고 감상을 주입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피해자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카메라는 말없이 그들을 살핀다. 그렇게 취재하다 보니 각자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던 피해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취재 초기에 "지옥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게 지옥이라고 느낀다"고 말하던 신이치 씨는 오늘도 테일러 문고를 위해 목재를 켠다. 다시 불을 밝힌 해변 식당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배를 채운다.

동일본대지진을 '우리나라에 방사능 피해를 주는 사고'로만 인식해온 관객이라면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비통해하고 좌절하고 또 위로하며 그렇게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걸 얼마나 생각해봤는지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봄은 온다'는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작품의 표면 아래에서, 타인을 지켜보고 알게 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의 출발임을 알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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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지진 지역 주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 입력 2019-03-16 14:01:04
    취재K
▲동일본대지진 이후 지역 주민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봄은 온다’의 한 장면

2011년 3월 11일, 미야기 현에서 목공 일을 하는 신이치 씨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강진을 느꼈다. 세 자녀가 있는 집을 향해 뛰었다. 아이들은 무사했다. 연락이 끊긴 친척들이 걱정됐다. 두 딸과 아들을 다독인 뒤 다시 집을 나와 친척들을 찾았다. 잠시 후 진원지로부터 밀려온 쓰나미가 집을 덮쳤다. 집 밖에 있던 신이치 씨만 살아남았다.

부인 료코 씨는 그때 직장에 있었다. 이틀 동안 발이 묶였고 모든 통신이 끊겼다. 영원 같기만 했던 40여 시간 후, 남편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특별할 것 없는 인사를 나누고 나온 집은 세 자녀와 함께 사라진 뒤였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료코 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묻지 않는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남편을 탓하는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쓰나미에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신이치·료코 씨 부부(왼쪽) 세 자녀의 영정 사진(오른쪽)
첫째 딸은 맏이 노릇을 잘했다. 선물을 세 개 사오면 동생들에게 먼저 고르게 한 뒤 남는 걸 가졌다. 아들은 달리기를 잘해 육상부 선수로 뛰었다. 아빠와 함께 뜀박질하는 걸 좋아했다. 그 해 8살이던 막내딸은 친구를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보면 피하기보다 맞서는 쪽이었다. 신이치 씨는 그때 집을 비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모두가 누군가를 잃었다. 일본 후쿠시마 현, 미야기 현, 이와테 현의 많은 해안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그렇다. 재일교포 3세인 윤미아 감독의 다큐 '봄은 온다'는 이들의 그 날 이후를 살핀다. 결혼한 지 5일 만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 아내와 아들 부부와 손주를 한꺼번에 잃은 소방관, 경작지를 잃은 농부, 방사능 우려에 생업을 잇지 못하는 어부가 나온다. 영화는 이들의 슬픔을 앞세우지 않는다. 제목이 말하듯 '봄은 온다'는 회생의 이야기다. 더디게나마 이들의 회복이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지역 공동체 덕이었다.

규모 9.0의 대지진은 인근의 '간요 호텔'에도 시설 피해를 줬다. 호텔 주인 노리코 씨가 시설 복구보다 먼저 챙긴 건 이재민들이 머물 장소였다. 호텔은 6개월간 무료 피난처가 됐다. 호텔에서는 매일 '재해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운행한다. 지금까지 3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 버스투어를 찾았다. 참가자들은 지역 곳곳에 남은 재해 흔적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호텔 직원 이토 씨는 "중요한 것은 그 날의 재해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남겨진 우리가 잊어버린다면 희생자들의 마음도 잊힐 것"이라며 투어를 안내한다.

재해를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 버스를 매일 운영하는 지역 호텔(왼쪽) 호텔 직원은
세 자녀를 집과 함께 떠나보낸 신이치·료코 씨 부부의 집터는 피난소로 운영되다 마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어린이 놀이터와 야외 바비큐 시설을 갖추고 이웃을 맞는다.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있었고 부부는 이곳 운영을 직접 맡았다. 초기에 료코 씨는 이 장소에서 사람들이 모여 고기 굽고 노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만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난소에 머물고 있던 료코 씨에게, 큰 부상으로 누워 있던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지금 바다는 조용하죠?" 모든 걸 앗아가 버린 바다를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시기였다. 바다에 다녀왔다. "정말 그러네요. 정말 그래요." 료코 씨는 이 아주머니와 지금까지 마음을 의지하고 지낸다. 뭐라 논리적인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그 대화를 나눈 이후, 더는 바다를 원망하지 않게 됐다. 료코 씨와 동네 여성들은 작은 공방을 만들어 수시로 모여 웃고 떠든다.

목수인 신이치 씨는 책장 제작에 열중이다. 세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테일러 문고'를 조성해 해마다 증설 중이어서 책장이 여럿 필요하다. 테일러 씨는 이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인 강사였다. 신이치 씨의 아이들도 가르쳤다. 그 날 학생들을 모두 대피시킨 다음 집으로 향하다 변을 당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딸을 잃은 테일러 씨의 부모가 책을 기증해 조성한 것이 '테일러 문고'다.

희생된 딸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일본을 찾아 도서를 기증하는 테일러 씨의 부모(왼쪽) 테일러 씨의 아버지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신이치 씨와 친구가 된다(오른쪽)
테일러 씨 부모는 매년 이 학교를 찾아 아이들과 만나고 책을 기증한다. 아버지 앤디 씨는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신이치 씨와 술친구가 된다. 서로의 아들딸들은 문고와 책장으로 남아 그들 곁에 머문다. 신이치 씨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 도왔어요. 이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봄은 온다'는 애써 희망을 찾겠답시고 감상을 주입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피해자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카메라는 말없이 그들을 살핀다. 그렇게 취재하다 보니 각자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던 피해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취재 초기에 "지옥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게 지옥이라고 느낀다"고 말하던 신이치 씨는 오늘도 테일러 문고를 위해 목재를 켠다. 다시 불을 밝힌 해변 식당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배를 채운다.

동일본대지진을 '우리나라에 방사능 피해를 주는 사고'로만 인식해온 관객이라면 스스로 놀라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비통해하고 좌절하고 또 위로하며 그렇게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걸 얼마나 생각해봤는지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봄은 온다'는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작품의 표면 아래에서, 타인을 지켜보고 알게 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의 출발임을 알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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