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송나라 동전 4톤 도굴…“대륙은 도굴도 남달라”

입력 2019.03.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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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석기 '홍산문화' 옥용(玉龍) 유물

황하 문명 이후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반복한 중국. 역사가 깊은 만큼 중국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 중국의 문화재는 문명사적으로 중국을 넘어 인류가 밟아온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적 증거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은 후세대의 몫이다. 그런데 아직 중국의 문화재 관리는 이런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수많은 유물이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비싼 만큼 유물을 훔쳐 가는 도굴 스케일도 남다르다. 최근 중국 국영 방송사 CCTV 등 중국 매체는 허난성에서 일어난 한 도굴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지난 1월 허난성 위저우 경찰은 도로를 달리던 한 차량을 검문했다. 차에는 뭔가를 담은 자루가 가득 실려 있었다. 자루를 열어본 경찰은 차량에 타고 있던 4명을 현장에서 즉시 체포했다. 차에 무엇이 실려 있었던 걸까?


송나라 동전 4톤, 도굴꾼 손에서 압수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부터 1천 년 전 서기 960~1127년 무렵 북송시대 동전이었다. 일일이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무게를 쟀더니 무려 2.2톤이나 됐다. 경찰은 송나라 동전을 어디에서 훔쳤는지 체포한 양 모 씨 등을 추궁했다. 양 씨 등은 위저우시의 한 시골 밀밭에서 동전을 '캐냈다'고 자백했다. '동전을 캐냈다? '얼마나 많길래? '도굴 현장을 본 경찰은 도굴꾼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아차렸다.


밀밭 2m 아래에는 아직도 캐내지 못한 송나라 동전이 엄청나게 묻혀 있었다. 경찰은 양 씨 등이 작년 12월 이미 1.8톤의 송나라 동전을 캐내, 100만 위안(우리 돈 1억 7천만 원)을 받고 팔아치웠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장물아비를 추적해 이 동전도 모두 압수했다. 그리고 경찰은 도굴 현장에서 1.3톤의 송나라 동전을 추가로 발굴했다. 밀밭에 무려 5.3톤의 송나라 동전이 묻혀 있었던 거다.

모우더신 중국 쉬창시 문화여유국 연구원은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옛날 동전은 대부분 북송 시대의 것으로, 전쟁 같은 긴급 상황에 대비해 보관해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송·금 시대 정치와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역사적 유물로, 규모도 엄청나다"고 평가했다. 도굴꾼을 우연히 체포한 덕분에 이들 유물은 중국 당국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선 유구한 역사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음마 수준의 문화재 관리에 또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850억 대 도굴, 중국 도굴왕 '야오위종(姚玉忠)'


2015년 체포된 신중국 최대 도굴왕 '야오위종'에 비하면 허난성의 송나라 동전 도굴꾼은 새발의 피다. 위 첫 사진이 야오위종이 도굴한 5천 년 전 중국 신석기 시대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물 '옥용(玉龍)'이다. 제사 때 쓰였던 신물로 추정되는데, 디자인 감각이 지금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국가급 문화재다.

2015년 5월 중국 공안부는 신중국 성립이래 최대 도굴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한다. 12개 도굴 조직이 적발됐고, 225명이 검거됐다. 그중에 주범이 '야오위종'이다. 중국 네이멍구 출신인 야오위종은 30년 동안 현지 선사시대 '홍산문화' 유적지를 집중적으로 도굴했다.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가급 중점 문화재 보호지역이다. 중국 정부가 발굴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국가 보호 유적지만 골라 도굴을 한 것이다.

 야오위종이 직접 만든 도굴 삽 ‘자쯔’ 야오위종이 직접 만든 도굴 삽 ‘자쯔’

도굴꾼이었던 아버지에게 풍수와 지리를 배운 야오위종은 금속탐지기와 3D 입체 영상기(지하를 3차원으로 촬영하는 장비) 등 첨단장비를 동원해 기술적으로 도굴을 했다. 그런데 문화재 발굴 전문가들이 혀를 내둘렀던 장비는 뜻밖에 야오위종이 직접 만든 '자쯔'라는 길고 얇은 일종의 삽이었다. 흙 속에 박아 넣어 파낸 흙 색깔로 땅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냈다.

경찰에 체포됐을 때 야오위종이 보관하고 있던 도굴 유물이 2,063점에 달했다. 신석기 홍산문화의 대표 유물인 옥용과 옥팔지, 옥테, 옥벽 등 진귀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야오위종에게서 압수한 유물을 시장 경매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5억 위안(우리 돈 843억 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야오위종 도굴 ‘옥주용’, 중국 역사학계에서 용(龍)인지 돼지인지 논쟁 중인 유물로 대체로 고대 용의 최초 모양으로 평가한다.야오위종 도굴 ‘옥주용’, 중국 역사학계에서 용(龍)인지 돼지인지 논쟁 중인 유물로 대체로 고대 용의 최초 모양으로 평가한다.

2016년 4월 랴오닝성 사법부는 야오위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다음 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재판 중 야오위종의 진술은 두고두고 중국 사회에 반향을 불러왔다. "평생 5억 위안의 문화재를 훔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100명의 전문가가 있어도 나보다 못하다." 비록 훔치기는 했으나 100명의 전문가도 하지 못한 유물을 발굴해 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야오위종. 당시 중국은 야오위종의 적반하장격 진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세계 문명의 중심, 중화(中華)라고 내세우면서도 정작 역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는 인색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퍼져 나갔다. 2019년 지금의 중국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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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송나라 동전 4톤 도굴…“대륙은 도굴도 남달라”
    • 입력 2019-03-17 07:01:34
    특파원 리포트
▲중국 신석기 '홍산문화' 옥용(玉龍) 유물

황하 문명 이후 수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반복한 중국. 역사가 깊은 만큼 중국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 중국의 문화재는 문명사적으로 중국을 넘어 인류가 밟아온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적 증거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은 후세대의 몫이다. 그런데 아직 중국의 문화재 관리는 이런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수많은 유물이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비싼 만큼 유물을 훔쳐 가는 도굴 스케일도 남다르다. 최근 중국 국영 방송사 CCTV 등 중국 매체는 허난성에서 일어난 한 도굴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지난 1월 허난성 위저우 경찰은 도로를 달리던 한 차량을 검문했다. 차에는 뭔가를 담은 자루가 가득 실려 있었다. 자루를 열어본 경찰은 차량에 타고 있던 4명을 현장에서 즉시 체포했다. 차에 무엇이 실려 있었던 걸까?


송나라 동전 4톤, 도굴꾼 손에서 압수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부터 1천 년 전 서기 960~1127년 무렵 북송시대 동전이었다. 일일이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무게를 쟀더니 무려 2.2톤이나 됐다. 경찰은 송나라 동전을 어디에서 훔쳤는지 체포한 양 모 씨 등을 추궁했다. 양 씨 등은 위저우시의 한 시골 밀밭에서 동전을 '캐냈다'고 자백했다. '동전을 캐냈다? '얼마나 많길래? '도굴 현장을 본 경찰은 도굴꾼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아차렸다.


밀밭 2m 아래에는 아직도 캐내지 못한 송나라 동전이 엄청나게 묻혀 있었다. 경찰은 양 씨 등이 작년 12월 이미 1.8톤의 송나라 동전을 캐내, 100만 위안(우리 돈 1억 7천만 원)을 받고 팔아치웠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장물아비를 추적해 이 동전도 모두 압수했다. 그리고 경찰은 도굴 현장에서 1.3톤의 송나라 동전을 추가로 발굴했다. 밀밭에 무려 5.3톤의 송나라 동전이 묻혀 있었던 거다.

모우더신 중국 쉬창시 문화여유국 연구원은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옛날 동전은 대부분 북송 시대의 것으로, 전쟁 같은 긴급 상황에 대비해 보관해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송·금 시대 정치와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역사적 유물로, 규모도 엄청나다"고 평가했다. 도굴꾼을 우연히 체포한 덕분에 이들 유물은 중국 당국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선 유구한 역사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음마 수준의 문화재 관리에 또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850억 대 도굴, 중국 도굴왕 '야오위종(姚玉忠)'


2015년 체포된 신중국 최대 도굴왕 '야오위종'에 비하면 허난성의 송나라 동전 도굴꾼은 새발의 피다. 위 첫 사진이 야오위종이 도굴한 5천 년 전 중국 신석기 시대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물 '옥용(玉龍)'이다. 제사 때 쓰였던 신물로 추정되는데, 디자인 감각이 지금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국가급 문화재다.

2015년 5월 중국 공안부는 신중국 성립이래 최대 도굴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한다. 12개 도굴 조직이 적발됐고, 225명이 검거됐다. 그중에 주범이 '야오위종'이다. 중국 네이멍구 출신인 야오위종은 30년 동안 현지 선사시대 '홍산문화' 유적지를 집중적으로 도굴했다.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가급 중점 문화재 보호지역이다. 중국 정부가 발굴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국가 보호 유적지만 골라 도굴을 한 것이다.

 야오위종이 직접 만든 도굴 삽 ‘자쯔’
도굴꾼이었던 아버지에게 풍수와 지리를 배운 야오위종은 금속탐지기와 3D 입체 영상기(지하를 3차원으로 촬영하는 장비) 등 첨단장비를 동원해 기술적으로 도굴을 했다. 그런데 문화재 발굴 전문가들이 혀를 내둘렀던 장비는 뜻밖에 야오위종이 직접 만든 '자쯔'라는 길고 얇은 일종의 삽이었다. 흙 속에 박아 넣어 파낸 흙 색깔로 땅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냈다.

경찰에 체포됐을 때 야오위종이 보관하고 있던 도굴 유물이 2,063점에 달했다. 신석기 홍산문화의 대표 유물인 옥용과 옥팔지, 옥테, 옥벽 등 진귀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야오위종에게서 압수한 유물을 시장 경매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5억 위안(우리 돈 843억 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야오위종 도굴 ‘옥주용’, 중국 역사학계에서 용(龍)인지 돼지인지 논쟁 중인 유물로 대체로 고대 용의 최초 모양으로 평가한다.
2016년 4월 랴오닝성 사법부는 야오위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다음 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재판 중 야오위종의 진술은 두고두고 중국 사회에 반향을 불러왔다. "평생 5억 위안의 문화재를 훔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100명의 전문가가 있어도 나보다 못하다." 비록 훔치기는 했으나 100명의 전문가도 하지 못한 유물을 발굴해 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야오위종. 당시 중국은 야오위종의 적반하장격 진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세계 문명의 중심, 중화(中華)라고 내세우면서도 정작 역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는 인색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퍼져 나갔다. 2019년 지금의 중국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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