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바람 바람 바람…중국발 미세먼지의 숨은 진실

입력 2019.03.21 (14:39) 수정 2019.03.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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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KBS 베이징 지국에서 촬영한 궈마오(國貿) 지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양회(兩會) 직후부터 거의 일주일간 짙게 끼었던 베이징의 미세먼지가 오늘 아침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젯밤부터 불기 시작한 강한 바람 덕이다. 초미세먼지 PM 2.5 수치가 4㎍/㎥까지 내려갔다. 북쪽으로부터 강한 찬바람이 불어와 오늘 아침 출근길엔 다시 겨울옷을 찾아 입어야 했지만, 마스크 없이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것만 바라보느라 정작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놓쳤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의 명대사는 미세먼지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통찰을 불어넣는다. 그래 바람이다! 2년 가까이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기자의 머릿속엔 바람은 곧 푸른 하늘이라는 공식이 들어있다. 메케한 미세먼지는 매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차가운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날, 베이징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진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에 미세먼지 나쁨 경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링크] 윈디닷컴(https://on.windy.com/28hp7)

중국발 미세먼지 유발하는 북서 계절풍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북서풍은 베이징 시민들의 입장에선 오늘처럼 무조건 고마운 손님이다. 반면 서울 시민 입장에선 '너무도 미운 불청객'일 때가 많다. 강한 북서풍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까지도 동해 멀리 날려버리지만 약한 북서풍은 중국발 미세먼지를 싣고 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상학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배웠듯 겨울에는 주로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북서풍을 타고 내려온다. 그리고 그 바람에 미세먼지도 쓸려간다. 유독 겨울철에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로 고통받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겨울철에 석탄 난방을 많이 하면서 엄청난 매연이 배출되는데 이게 우리를 괴롭혀왔다.


미세먼지 농축의 주범(主犯)…바람을 막는 산맥(山脈)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또 다른 변수가 드러난다. 바람을 막는 지형(地形)이다. 베이징은 북쪽으로 옌산(燕山)산맥, 서쪽으로는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타이항(太行)산맥에 둘러싸여 있는데 높은 곳은 해발 2천 미터를 훌쩍 넘긴다. 북서풍이 불어오다가 이 거대한 산맥을 지나면서 바람이 약화된다. 바람이 약하면 도시의 자체 오염원이 쌓이게 된다. 베이징시가 이를 악물고 대기 환경 개선에 나서도 한계에 부딪히는 자연적인 이유다.

중국 사람들은 베이징의 지형을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에 비유하곤 한다. 산맥으로 둘러싸여서 이른바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하나뿐인 창은 동남쪽, 우리나라 방향으로 나 있다. 하지만 베이징도 억울할 수 있다. 여름에 남동풍이 불어오면 타지에서 날라온 대기 오염 물질들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베이징에 모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시 당국은 지난해 베이징의 대기 오염원 가운데 1/3가량은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과도한 풍력 발전이 바람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중국 일각에서는 과도한 풍력 발전이 바람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인공 바람은 가능한가?

인공으로 비도 내리게 하는데 바람을 불게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은 옳지 않다. 바람이란 기압 차이에 의한 공기의 흐름이다. 계절에 따라, 여러 기상 조건에 따라, 바뀌는 바람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현재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거대한 선풍기 같은 것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미세먼지의 흐름을 바꿀 정도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오는 11월에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LTP) 공동 연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지만 여러 정황상 우리가 원하는 속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여름철 남동풍이 불면 한국발 미세먼지에 중국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중·일 보다 훨씬 앞서 장거리월경 대기오염조약을 맺은 유럽 국가들도 별수 없었다. 우선 각자 도시 자체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얘기다. 다행인 것은 현지에서 지켜본 결과 중국이 예전보다는 열심히 - 비록 우리 기대에는 못 미칠지라도 -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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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바람 바람 바람…중국발 미세먼지의 숨은 진실
    • 입력 2019-03-21 14:39:44
    • 수정2019-03-21 14:40:33
    특파원 리포트
▲ 오늘 아침 KBS 베이징 지국에서 촬영한 궈마오(國貿) 지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양회(兩會) 직후부터 거의 일주일간 짙게 끼었던 베이징의 미세먼지가 오늘 아침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젯밤부터 불기 시작한 강한 바람 덕이다. 초미세먼지 PM 2.5 수치가 4㎍/㎥까지 내려갔다. 북쪽으로부터 강한 찬바람이 불어와 오늘 아침 출근길엔 다시 겨울옷을 찾아 입어야 했지만, 마스크 없이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것만 바라보느라 정작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놓쳤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의 명대사는 미세먼지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통찰을 불어넣는다. 그래 바람이다! 2년 가까이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기자의 머릿속엔 바람은 곧 푸른 하늘이라는 공식이 들어있다. 메케한 미세먼지는 매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차가운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날, 베이징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진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에 미세먼지 나쁨 경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링크] 윈디닷컴(https://on.windy.com/28hp7)

중국발 미세먼지 유발하는 북서 계절풍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북서풍은 베이징 시민들의 입장에선 오늘처럼 무조건 고마운 손님이다. 반면 서울 시민 입장에선 '너무도 미운 불청객'일 때가 많다. 강한 북서풍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까지도 동해 멀리 날려버리지만 약한 북서풍은 중국발 미세먼지를 싣고 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상학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배웠듯 겨울에는 주로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북서풍을 타고 내려온다. 그리고 그 바람에 미세먼지도 쓸려간다. 유독 겨울철에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로 고통받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겨울철에 석탄 난방을 많이 하면서 엄청난 매연이 배출되는데 이게 우리를 괴롭혀왔다.


미세먼지 농축의 주범(主犯)…바람을 막는 산맥(山脈)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또 다른 변수가 드러난다. 바람을 막는 지형(地形)이다. 베이징은 북쪽으로 옌산(燕山)산맥, 서쪽으로는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타이항(太行)산맥에 둘러싸여 있는데 높은 곳은 해발 2천 미터를 훌쩍 넘긴다. 북서풍이 불어오다가 이 거대한 산맥을 지나면서 바람이 약화된다. 바람이 약하면 도시의 자체 오염원이 쌓이게 된다. 베이징시가 이를 악물고 대기 환경 개선에 나서도 한계에 부딪히는 자연적인 이유다.

중국 사람들은 베이징의 지형을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에 비유하곤 한다. 산맥으로 둘러싸여서 이른바 환기가 잘 안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하나뿐인 창은 동남쪽, 우리나라 방향으로 나 있다. 하지만 베이징도 억울할 수 있다. 여름에 남동풍이 불어오면 타지에서 날라온 대기 오염 물질들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베이징에 모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시 당국은 지난해 베이징의 대기 오염원 가운데 1/3가량은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과도한 풍력 발전이 바람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인공 바람은 가능한가?

인공으로 비도 내리게 하는데 바람을 불게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은 옳지 않다. 바람이란 기압 차이에 의한 공기의 흐름이다. 계절에 따라, 여러 기상 조건에 따라, 바뀌는 바람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현재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거대한 선풍기 같은 것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미세먼지의 흐름을 바꿀 정도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오는 11월에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LTP) 공동 연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지만 여러 정황상 우리가 원하는 속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여름철 남동풍이 불면 한국발 미세먼지에 중국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중·일 보다 훨씬 앞서 장거리월경 대기오염조약을 맺은 유럽 국가들도 별수 없었다. 우선 각자 도시 자체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얘기다. 다행인 것은 현지에서 지켜본 결과 중국이 예전보다는 열심히 - 비록 우리 기대에는 못 미칠지라도 -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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