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삼성 비리 제보하려면 생업 걸어야 하나?…조직 이기주의의 민낯

입력 2019.03.21 (14:39) 수정 2019.03.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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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변속기 전문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모 씨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달에 직원 월급을 제 개인 돈으로 줬습니다. 이 상태가 꾸준히 간다고 하면 많이 버텨봐야 한 5개월, 6개월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보 이후에 몸무게가 8kg 정도 빠진 것 같아요. 50일 가까이 잠을 1시간, 2시간밖에 못 잤거든요. 너무 잠을 못 자니까 병원 치료를 받아보라고 주위에서 하는데 지금 먹고살기 바쁘니까…"

1월 말부터 양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 달 평균 6건, 많게는 12건까지 수리 의뢰를 받았는데 1월 말 이후 거의 두 달 동안 받은 의뢰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자동변속기는 수리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대신 수리비가 수백만 원 안팎이기 때문에 의뢰 한 건, 한 건이 중요합니다.

30년이 넘는 경력에 한때 전국 가맹점을 8개까지 운영했던 양 씨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요? 발단은 삼성화재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임원의 비리를 삼성화재 본사 감사실에 제보한 것이었습니다.


대물 보상 총괄하는 임원이 배우자 명의로 수리업체 설립

제보는 삼성화재 자회사 임원 이 모 씨가 배우자 명의로 자동변속기 전문 수리업체를 설립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동변속기 수리는 일반 정비와는 달리 전문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일반 정비업체에 차 수리를 맡겼는데 자동변속기를 수리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또다시 전문 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간에 수수료가 추가로 발생하니까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급되는 지출 비용이 커지겠죠? 이걸 줄이기 위해 보험사는 되도록 자동변속기 수리는 곧바로 전문 업체에 맡기길 원합니다.

문제는 업무 협약 등으로 직접 계약을 맺고 있는 일반 정비업체와 달리 자동변속기 전문 수리업체는 그런 계약 없이 알음알음 일감이 오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자동차 대물 보상을 총괄하는 담당 임원이었습니다. 이런 사각지대를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자신이 지정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위치였습니다.


“임원 퇴직 프로그램이니까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실제로 삼성화재 측에서 이 씨의 배우자 명의 업체를 조직적으로 도와주려고 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대물 보상을 담당하는 한 부서장은 지역 센터장들을 소집해 "임원의 퇴직 프로그램이니 이 업체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배우자 명의 업체의 관계자들도 참석해서 자신들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센터장은 "현직 임원이 너무 노골적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습니다.

업체를 홍보하는 공문을 전사적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공문에는 자동변속기 진단 및 수리, 부품 교환이 필요할 경우 이 업체를 활용하길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새로운 업체를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다수 직원의 전언입니다.


제보 이후 일감이 줄어든 게 우연?

취재 과정에서 삼성화재 측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건 '조직 이기주의'입니다.

먼저 삼성화재 본사의 일처리입니다. 처음 취재에 들어갔을 때 해당 내용과 자동변속기 수리 의뢰 시스템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사 감사실에 알렸으니 감사실이 내용을 확인했을 텐데 말입니다.

삼성화재 자화사의 일처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리 당사자인 내부 임원 이 씨는 아무런 징계 없이 사직 처리됐습니다. 실질적으로 배우자 명의 업체를 지원해서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내부 윤리강령은 직원에 대한 규정이지 임원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외부 관계자인 제보자에 대해선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제보 이후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씨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던 건 정말 일이 없어서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럼 하필 왜 제보 이후에 일이 줄어들었느냐는 질문에는 우연이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년간 이 씨와 일을 했던 내역을 한 번만 살펴봤으면 우연이라고 답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삼성화재 측은 지역 센터장들을 소집해 업체를 홍보한 건 맞지만, 임원 퇴직 프로그램이니까 도와주자는 말은 한 적 없고, 내부 공문을 통해서 새로운 업체를 소개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회의에 참석했던 센터장들과 내부 직원들의 증언과는 모두 배치되는 해명입니다.

비리 당사자는 멀쩡·결국 제보자만 피해?

임원 이 씨는 사직 후 배우자 명의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직 삼성화재 임원 출신 관계자도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지난달 이 업체는 삼성화재로부터 자동변속기 수리 의뢰를 5건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씨는 여전히 생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임원 이 씨와 밀접한 관계였던 직원으로부터는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욕설과 고함에 여러 차례 시달렸습니다. 삼성화재 측 내부에선 '양 씨가 거짓으로 임원을 투서해서 잘랐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도중 양 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제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부당한 일을 제보한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만큼 힘들지만 아내 때문에 겨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내가 그럽니다. 불이익을 받더라도 내가 당신 먹여 살릴 테니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싸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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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1 14:39:46
    • 수정2019-03-21 14:40:06
    취재후·사건후
자동변속기 전문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모 씨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달에 직원 월급을 제 개인 돈으로 줬습니다. 이 상태가 꾸준히 간다고 하면 많이 버텨봐야 한 5개월, 6개월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보 이후에 몸무게가 8kg 정도 빠진 것 같아요. 50일 가까이 잠을 1시간, 2시간밖에 못 잤거든요. 너무 잠을 못 자니까 병원 치료를 받아보라고 주위에서 하는데 지금 먹고살기 바쁘니까…"

1월 말부터 양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 달 평균 6건, 많게는 12건까지 수리 의뢰를 받았는데 1월 말 이후 거의 두 달 동안 받은 의뢰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자동변속기는 수리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대신 수리비가 수백만 원 안팎이기 때문에 의뢰 한 건, 한 건이 중요합니다.

30년이 넘는 경력에 한때 전국 가맹점을 8개까지 운영했던 양 씨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요? 발단은 삼성화재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임원의 비리를 삼성화재 본사 감사실에 제보한 것이었습니다.


대물 보상 총괄하는 임원이 배우자 명의로 수리업체 설립

제보는 삼성화재 자회사 임원 이 모 씨가 배우자 명의로 자동변속기 전문 수리업체를 설립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동변속기 수리는 일반 정비와는 달리 전문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일반 정비업체에 차 수리를 맡겼는데 자동변속기를 수리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또다시 전문 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간에 수수료가 추가로 발생하니까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급되는 지출 비용이 커지겠죠? 이걸 줄이기 위해 보험사는 되도록 자동변속기 수리는 곧바로 전문 업체에 맡기길 원합니다.

문제는 업무 협약 등으로 직접 계약을 맺고 있는 일반 정비업체와 달리 자동변속기 전문 수리업체는 그런 계약 없이 알음알음 일감이 오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자동차 대물 보상을 총괄하는 담당 임원이었습니다. 이런 사각지대를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자신이 지정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위치였습니다.


“임원 퇴직 프로그램이니까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실제로 삼성화재 측에서 이 씨의 배우자 명의 업체를 조직적으로 도와주려고 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대물 보상을 담당하는 한 부서장은 지역 센터장들을 소집해 "임원의 퇴직 프로그램이니 이 업체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배우자 명의 업체의 관계자들도 참석해서 자신들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센터장은 "현직 임원이 너무 노골적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습니다.

업체를 홍보하는 공문을 전사적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공문에는 자동변속기 진단 및 수리, 부품 교환이 필요할 경우 이 업체를 활용하길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새로운 업체를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다수 직원의 전언입니다.


제보 이후 일감이 줄어든 게 우연?

취재 과정에서 삼성화재 측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건 '조직 이기주의'입니다.

먼저 삼성화재 본사의 일처리입니다. 처음 취재에 들어갔을 때 해당 내용과 자동변속기 수리 의뢰 시스템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사 감사실에 알렸으니 감사실이 내용을 확인했을 텐데 말입니다.

삼성화재 자화사의 일처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리 당사자인 내부 임원 이 씨는 아무런 징계 없이 사직 처리됐습니다. 실질적으로 배우자 명의 업체를 지원해서 이득을 취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내부 윤리강령은 직원에 대한 규정이지 임원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외부 관계자인 제보자에 대해선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제보 이후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씨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던 건 정말 일이 없어서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럼 하필 왜 제보 이후에 일이 줄어들었느냐는 질문에는 우연이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년간 이 씨와 일을 했던 내역을 한 번만 살펴봤으면 우연이라고 답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삼성화재 측은 지역 센터장들을 소집해 업체를 홍보한 건 맞지만, 임원 퇴직 프로그램이니까 도와주자는 말은 한 적 없고, 내부 공문을 통해서 새로운 업체를 소개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회의에 참석했던 센터장들과 내부 직원들의 증언과는 모두 배치되는 해명입니다.

비리 당사자는 멀쩡·결국 제보자만 피해?

임원 이 씨는 사직 후 배우자 명의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직 삼성화재 임원 출신 관계자도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지난달 이 업체는 삼성화재로부터 자동변속기 수리 의뢰를 5건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소수리업체 대표 양 씨는 여전히 생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임원 이 씨와 밀접한 관계였던 직원으로부터는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욕설과 고함에 여러 차례 시달렸습니다. 삼성화재 측 내부에선 '양 씨가 거짓으로 임원을 투서해서 잘랐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도중 양 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제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부당한 일을 제보한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만큼 힘들지만 아내 때문에 겨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내가 그럽니다. 불이익을 받더라도 내가 당신 먹여 살릴 테니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싸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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