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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무전불혼’의 시대…결혼 ‘안’하나 ‘못’ 하나
입력 2019.03.21 (14:55) 수정 2019.03.21 (16:12) 취재후
[취재후] ‘무전불혼’의 시대…결혼 ‘안’하나 ‘못’ 하나
'무전유죄'에서 '무전불혼'으로 … 인구 감소, 인식 변화보단 경제적 이유 초점

1988년 지강헌이란 사람이 동료 죄수들과 호송 차량에서 탈출한 뒤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로 소개된 이 충격적인 사건은 지 씨가 남긴 유언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560만 원을 훔친 것 때문에 자신은 17년 동안 감옥에 갇혔는데 수백억 원을 횡령, 탈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겨우 징역 7년을 받은 것을 지적한 겁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무전유죄'란 외침이 이젠 '무전불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매년 혼인 통계가 나올 때마다 '혼인율 감소....역대 최저'란 자료를 7년째 받아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통계청은 결혼 적령기인 2, 30대 인구 자체가 줄고 있고 '결혼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느는 것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주거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경제적 이유를 덧붙였는데 전 이 대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신혼부부 평균 결혼비용 2억 3천만 원" … 집은 어떻게 구하나?


결혼은 돈입니다. 지난해 한 결혼정보회사가 2년 이내에 결혼한 신혼부부 1,000쌍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결혼비용은 2억 3,186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우리 때는 물 한 잔만 떠놓고 했다. 동네 예식장에서 그냥 일가친척들만 불러서 했다. 요새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걸 하니까 쓸데없이 돈 쓰는 거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건 역시나 집입니다. 신혼집 마련 비용이 1억 7,503만 원으로 73.5%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컸습니다.

매번 기사에 오르내리는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보다는 싸다고요? 하지만 이마저도 부모 도움 없이 일반 직장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서 마련하기엔 너무 큰 돈입니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사회 진출도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직장이 번듯해야 어느 정도 금액이 나오고 이자에 원금을 상환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든 생각이 이겁니다.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자유겠지만 정작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 혼인통계에는 공개되지 않는, 소득별 혼인율을 별도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설문 항목에는 '결혼 여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청 마이크로 데이터를 내려받은 뒤 소득에 따라 혼인율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20대는 혼인 건수 자체가 너무 적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고 성별 특성이 뚜렷해서 남녀를 구분해서 분석해봤습니다. 이 작업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소득 상위 10%는 혼인율 86.3% … 하위 10%는 20.3%에 불과


남성은 소득이 많을수록 혼인율이 높았고 적을수록 낮은, 뚜렷한 정비례 관계를 보였습니다. 특히 소득 상위 10%는 혼인율이 무려 86.3%나 됐지만, 하위 10%는 겨우 20.3%에 불과했습니다. 4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집단의 격차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더 벌어졌을까요? 그나마 좁혀진 걸까요?


더 벌어졌습니다. 10년 전엔 소득 하위 10%도 그나마 절반 이상은 결혼을 했는데 1/3가량으로 줄어든 겁니다. 반면 소득 상위 10%는 92.4%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인 비혼을 선택한 건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혼인율 격차가 벌어진 것도 역시나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소득 1분위와 10분위가 버는 돈 자체가 차이가 벌어져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상위 10%는 월 소득이 516만 원에서 596만 원으로 늘었지만, 하위 10%는 107만 원에서 61만 원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습니다. 한 달에 60만 원은 웬만한 원룸 월세 내기도 빠듯한 돈입니다. 결혼을 꿈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성은 'U자형 곡선' … "선후 관계 뒤집어 봐야"


30대 여성은 남성과 달랐습니다.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가 혼인율 87.3%로 오히려 가장 높았습니다. 상위 10%의 혼인율 72.8%보다 오히려 더 높았습니다. 중간층이 오히려 낮은 'U자형 곡선'을 그렸습니다. 여성은 돈이 없어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김유선 이사장은 "남성과 달리 선후 관계를 바꿔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혼인율은 말 그대로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상태를 보여주는 건데 돈이 없는 여성이 결혼을 했다기보단 결혼을 한 여성이 질 낮은 일자리에 뛰어들다 보니 저소득층 집단에 혼인율이 높게 나왔단 겁니다.

여성은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살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커졌고,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서 가계에 보탬을 주려고 하다 보니 저소득층으로 분류돼 혼인율을 끌어올렸단 얘깁니다.

2년 전 이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KBS 뉴스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에 '결혼이 사라진다'를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 쓴 글은 "많은 젊은이가 결혼을 '안'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다"였습니다. 그때의 우울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더 나빠져 무척 슬픕니다.
  • [취재후] ‘무전불혼’의 시대…결혼 ‘안’하나 ‘못’ 하나
    • 입력 2019.03.21 (14:55)
    • 수정 2019.03.21 (16:12)
    취재후
[취재후] ‘무전불혼’의 시대…결혼 ‘안’하나 ‘못’ 하나
'무전유죄'에서 '무전불혼'으로 … 인구 감소, 인식 변화보단 경제적 이유 초점

1988년 지강헌이란 사람이 동료 죄수들과 호송 차량에서 탈출한 뒤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로 소개된 이 충격적인 사건은 지 씨가 남긴 유언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560만 원을 훔친 것 때문에 자신은 17년 동안 감옥에 갇혔는데 수백억 원을 횡령, 탈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겨우 징역 7년을 받은 것을 지적한 겁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무전유죄'란 외침이 이젠 '무전불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매년 혼인 통계가 나올 때마다 '혼인율 감소....역대 최저'란 자료를 7년째 받아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통계청은 결혼 적령기인 2, 30대 인구 자체가 줄고 있고 '결혼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느는 것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주거비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경제적 이유를 덧붙였는데 전 이 대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신혼부부 평균 결혼비용 2억 3천만 원" … 집은 어떻게 구하나?


결혼은 돈입니다. 지난해 한 결혼정보회사가 2년 이내에 결혼한 신혼부부 1,000쌍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결혼비용은 2억 3,186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우리 때는 물 한 잔만 떠놓고 했다. 동네 예식장에서 그냥 일가친척들만 불러서 했다. 요새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걸 하니까 쓸데없이 돈 쓰는 거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건 역시나 집입니다. 신혼집 마련 비용이 1억 7,503만 원으로 73.5%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컸습니다.

매번 기사에 오르내리는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보다는 싸다고요? 하지만 이마저도 부모 도움 없이 일반 직장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서 마련하기엔 너무 큰 돈입니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사회 진출도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직장이 번듯해야 어느 정도 금액이 나오고 이자에 원금을 상환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든 생각이 이겁니다.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자유겠지만 정작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그래서 단순 혼인통계에는 공개되지 않는, 소득별 혼인율을 별도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설문 항목에는 '결혼 여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청 마이크로 데이터를 내려받은 뒤 소득에 따라 혼인율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20대는 혼인 건수 자체가 너무 적어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고 성별 특성이 뚜렷해서 남녀를 구분해서 분석해봤습니다. 이 작업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소득 상위 10%는 혼인율 86.3% … 하위 10%는 20.3%에 불과


남성은 소득이 많을수록 혼인율이 높았고 적을수록 낮은, 뚜렷한 정비례 관계를 보였습니다. 특히 소득 상위 10%는 혼인율이 무려 86.3%나 됐지만, 하위 10%는 겨우 20.3%에 불과했습니다. 4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집단의 격차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더 벌어졌을까요? 그나마 좁혀진 걸까요?


더 벌어졌습니다. 10년 전엔 소득 하위 10%도 그나마 절반 이상은 결혼을 했는데 1/3가량으로 줄어든 겁니다. 반면 소득 상위 10%는 92.4%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발적인 비혼을 선택한 건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혼인율 격차가 벌어진 것도 역시나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소득 1분위와 10분위가 버는 돈 자체가 차이가 벌어져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상위 10%는 월 소득이 516만 원에서 596만 원으로 늘었지만, 하위 10%는 107만 원에서 61만 원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습니다. 한 달에 60만 원은 웬만한 원룸 월세 내기도 빠듯한 돈입니다. 결혼을 꿈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성은 'U자형 곡선' … "선후 관계 뒤집어 봐야"


30대 여성은 남성과 달랐습니다.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가 혼인율 87.3%로 오히려 가장 높았습니다. 상위 10%의 혼인율 72.8%보다 오히려 더 높았습니다. 중간층이 오히려 낮은 'U자형 곡선'을 그렸습니다. 여성은 돈이 없어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김유선 이사장은 "남성과 달리 선후 관계를 바꿔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혼인율은 말 그대로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상태를 보여주는 건데 돈이 없는 여성이 결혼을 했다기보단 결혼을 한 여성이 질 낮은 일자리에 뛰어들다 보니 저소득층 집단에 혼인율이 높게 나왔단 겁니다.

여성은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살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커졌고,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서 가계에 보탬을 주려고 하다 보니 저소득층으로 분류돼 혼인율을 끌어올렸단 얘깁니다.

2년 전 이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KBS 뉴스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에 '결혼이 사라진다'를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 쓴 글은 "많은 젊은이가 결혼을 '안'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다"였습니다. 그때의 우울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더 나빠져 무척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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