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건 갑질 정규직화입니다” LG전자 수리기사들이 정규직화 거절하는 이유는?

입력 2019.03.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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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만난 A씨는 LG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수리기사, '서비스 엔지니어'(Service Engineer)입니다. LG전자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LG전자 직원은 아닙니다. LG전자와 AS업무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의 직원입니다. 10년 차인 A씨는 출장 방문 서비스가 주 업무입니다. 휴대전화를 제외한 모든 LG전자 제품을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지난해 7000만 원 정도 벌었습니다.

A씨의 수입은 대부분 에어컨 성수기인 여름 석 달 안에 들어옵니다. 이때는 아침 7시부터 일을 하는데, 밤 12시가 돼서야 집에 옵니다. 건물 외벽으로 나가 "목숨 걸고" 실외기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석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합니다. 여름휴가는 가본 적도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LG전자는 A씨와 같은 수리기사 등 서비스센터 직원 3,900여 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A씨는 정규직화 똑바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연봉만 줄어드는 정규직화

LG전자 정규직이 되면 주 52시간 근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A씨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라고 합니다. 출장 서비스 업무의 특성상 정시퇴근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고객의 부엌에서 냉장고를 잔뜩 분해해 뒀는데, 저녁 6시가 됐다고 "내일 오겠습니다"하고 돌아갈 수 없다는 거죠. 하는 일은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정규직이 되면 연봉이 크게 줄어듭니다. 정규직 임금체계는 5년 단위로 평균금액이 산정됐는데, 10년 차인 A씨의 경우 평균 수령액이 5669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일부 상위 등급 직원만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까지 포함된 금액입니다.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을 따져보면 A씨는 연봉이 40% 정도 줄어듭니다. 정규직이 되면서 얻게 되는 복리후생은 연간 440만 원 수준에 그칩니다.

서울 시내의 한 LG전자 서비스센터서울 시내의 한 LG전자 서비스센터

"어이 기자님, 연봉은 둘째치고라도..."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수리기사들은 "연봉이 줄어드는건 감내할 수 있다"며 더 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정규직 전환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입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서비스센터 직원 정규직화를 발표합니다. LG전자 수리기사들의 기대도 컸지만, LG전자는 정규직 전환은 없다는 내부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부 기사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금속노조 LG전자서비스지회'를 설립합니다.

그러자 LG전자가 곧바로 정규직화를 선언했다는 게 수리기사들 주장입니다. 자기들도 언론보도를 보고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정규직화 협의는 회사와 노조가 파트너입니다. LG전자에는 한국노총소속인 LG전자노조가 있습니다. 회사와 29년째 분규가 없는 사이좋은 관계입니다. 수리기사들에게 여기에 가입하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도태될 수 있다" 특정노조 가입할 때까지 무한 면담

전국 130개 센터에 LG전자노조 소속 직원이 2명씩 배치돼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같은 LG전자 직원인데 노조가 다르면 도태될 수 있다"면서요. 센터장들은 기사들과 일대일 면담을 끝없이 진행하며 가입을 강요했습니다. "민주노총에 남아있으면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 정규직이 돼도 정리해고 1순위가 될 것이다"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급기야 개인정보를 도용해 LG전자노조에 가입시킨 경우도 드러났습니다. 명백한 사문서위조 행위입니다.

이렇게 싫든 좋든 센터직원 90% 정도가 한국노총 소속 LG전자노조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12명의 대표가 선정돼 사측과 정규직화 협상에 들어갑니다.

내 미래를 결정할 협상, 도대체 누가 하고 있습니까?

A씨의 미래를 결정한 노측 대표 12명은 누구일까요? A씨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수리기사다, 센터 회계직원이다, 말은 많지만 결국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협상안 역시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수리기사 B씨는 노측 대표 12명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협상장에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촬영이나 녹음을 막았다는 겁니다.

문제의 12명은 결국 3월 13일 최종 협상안에 도장을 찍습니다. 수리기사 C씨는 "LG전자노조가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이기 때문에 사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섭이 흘러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규직화 협상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LG전자 수리기사들정규직화 협상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LG전자 수리기사들

LG전자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 LG전자 입사지원서를 신청 받았습니다. 협상안에 동의할 수 없지만, 수리기사 A,B,C씨 모두 정규직 전환 신청을 했습니다. 정규직 대상 3,900여 명 대부분이 지원서를 냈다는 게 LG전자 설명입니다.

정규직 전환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우선은 입사지원서를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으로 기존의 하청업체는 모두 사라집니다. LG전자에 입사하지 않으면 바로 실업자가 됩니다. 수리기사 B씨는 "애도 커가는데 길거리에 나앉는 거 보다는 깎인 연봉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삼성이 부럽다는 LG전자 수리기사들

누구나 해외 직구로 손쉽게 외제 전자제품을 살 수 있는 시대죠. 그래도 소비자들이 LG전자와 같은 국산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수한 품질과 편리한 AS 때문입니다. 생산만큼 중요한 수리를 맡은 수리기사들인데 정규직화 전환 과정에서 자존심이 크게 상했습니다.

LG전자는 면접 등 경력사원 채용에 준하는 입사절차를 거쳐 5월 1일 자로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LG전자는 회사가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만큼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합니다. 일부 수리기사들의 불만을 이해한다면서도, 협상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노조 가입 강요에 사측은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다고도 해명했습니다.

LG 전자 수리기사들은 삼성전자가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서비스 기사들과 충분한 시간을 들여 투명하게 정규직화 협상을 진행했다고요.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며 대한민국 노조탄압의 아이콘이었던 삼성이 부럽다고 하는 현실. LG전자 경영진은 영업 최전선 수리기사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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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07:00:03
    취재후·사건후
취재진이 만난 A씨는 LG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수리기사, '서비스 엔지니어'(Service Engineer)입니다. LG전자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LG전자 직원은 아닙니다. LG전자와 AS업무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의 직원입니다. 10년 차인 A씨는 출장 방문 서비스가 주 업무입니다. 휴대전화를 제외한 모든 LG전자 제품을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지난해 7000만 원 정도 벌었습니다.

A씨의 수입은 대부분 에어컨 성수기인 여름 석 달 안에 들어옵니다. 이때는 아침 7시부터 일을 하는데, 밤 12시가 돼서야 집에 옵니다. 건물 외벽으로 나가 "목숨 걸고" 실외기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석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합니다. 여름휴가는 가본 적도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LG전자는 A씨와 같은 수리기사 등 서비스센터 직원 3,900여 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A씨는 정규직화 똑바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연봉만 줄어드는 정규직화

LG전자 정규직이 되면 주 52시간 근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A씨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라고 합니다. 출장 서비스 업무의 특성상 정시퇴근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고객의 부엌에서 냉장고를 잔뜩 분해해 뒀는데, 저녁 6시가 됐다고 "내일 오겠습니다"하고 돌아갈 수 없다는 거죠. 하는 일은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정규직이 되면 연봉이 크게 줄어듭니다. 정규직 임금체계는 5년 단위로 평균금액이 산정됐는데, 10년 차인 A씨의 경우 평균 수령액이 5669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일부 상위 등급 직원만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까지 포함된 금액입니다.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을 따져보면 A씨는 연봉이 40% 정도 줄어듭니다. 정규직이 되면서 얻게 되는 복리후생은 연간 440만 원 수준에 그칩니다.

서울 시내의 한 LG전자 서비스센터
"어이 기자님, 연봉은 둘째치고라도..."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수리기사들은 "연봉이 줄어드는건 감내할 수 있다"며 더 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정규직 전환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입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서비스센터 직원 정규직화를 발표합니다. LG전자 수리기사들의 기대도 컸지만, LG전자는 정규직 전환은 없다는 내부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부 기사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금속노조 LG전자서비스지회'를 설립합니다.

그러자 LG전자가 곧바로 정규직화를 선언했다는 게 수리기사들 주장입니다. 자기들도 언론보도를 보고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정규직화 협의는 회사와 노조가 파트너입니다. LG전자에는 한국노총소속인 LG전자노조가 있습니다. 회사와 29년째 분규가 없는 사이좋은 관계입니다. 수리기사들에게 여기에 가입하라는 압박이 시작됐습니다.


"도태될 수 있다" 특정노조 가입할 때까지 무한 면담

전국 130개 센터에 LG전자노조 소속 직원이 2명씩 배치돼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같은 LG전자 직원인데 노조가 다르면 도태될 수 있다"면서요. 센터장들은 기사들과 일대일 면담을 끝없이 진행하며 가입을 강요했습니다. "민주노총에 남아있으면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 정규직이 돼도 정리해고 1순위가 될 것이다"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급기야 개인정보를 도용해 LG전자노조에 가입시킨 경우도 드러났습니다. 명백한 사문서위조 행위입니다.

이렇게 싫든 좋든 센터직원 90% 정도가 한국노총 소속 LG전자노조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12명의 대표가 선정돼 사측과 정규직화 협상에 들어갑니다.

내 미래를 결정할 협상, 도대체 누가 하고 있습니까?

A씨의 미래를 결정한 노측 대표 12명은 누구일까요? A씨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수리기사다, 센터 회계직원이다, 말은 많지만 결국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협상안 역시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수리기사 B씨는 노측 대표 12명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협상장에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촬영이나 녹음을 막았다는 겁니다.

문제의 12명은 결국 3월 13일 최종 협상안에 도장을 찍습니다. 수리기사 C씨는 "LG전자노조가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이기 때문에 사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섭이 흘러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규직화 협상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LG전자 수리기사들
LG전자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 LG전자 입사지원서를 신청 받았습니다. 협상안에 동의할 수 없지만, 수리기사 A,B,C씨 모두 정규직 전환 신청을 했습니다. 정규직 대상 3,900여 명 대부분이 지원서를 냈다는 게 LG전자 설명입니다.

정규직 전환 조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우선은 입사지원서를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으로 기존의 하청업체는 모두 사라집니다. LG전자에 입사하지 않으면 바로 실업자가 됩니다. 수리기사 B씨는 "애도 커가는데 길거리에 나앉는 거 보다는 깎인 연봉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삼성이 부럽다는 LG전자 수리기사들

누구나 해외 직구로 손쉽게 외제 전자제품을 살 수 있는 시대죠. 그래도 소비자들이 LG전자와 같은 국산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수한 품질과 편리한 AS 때문입니다. 생산만큼 중요한 수리를 맡은 수리기사들인데 정규직화 전환 과정에서 자존심이 크게 상했습니다.

LG전자는 면접 등 경력사원 채용에 준하는 입사절차를 거쳐 5월 1일 자로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LG전자는 회사가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만큼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합니다. 일부 수리기사들의 불만을 이해한다면서도, 협상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노조 가입 강요에 사측은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다고도 해명했습니다.

LG 전자 수리기사들은 삼성전자가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서비스 기사들과 충분한 시간을 들여 투명하게 정규직화 협상을 진행했다고요.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며 대한민국 노조탄압의 아이콘이었던 삼성이 부럽다고 하는 현실. LG전자 경영진은 영업 최전선 수리기사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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