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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에 들어온 세월호…“기억이 애도의 출발”
입력 2019.03.22 (07:00) 취재K
극영화에 들어온 세월호…“기억이 애도의 출발”
전도연은 기자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언론 인터뷰에 이골이 난 30년차 배우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아들을 잃은 역할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2007) 인터뷰 당시에도 드러내지 않은 모습이었다. 영화 '생일' 합류를 결정하고 팽목항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잊지 말자고 말했었지만, 팽목항은 기억 저편 너머에 있는 빛바랜 곳으로 느껴졌어요." 눈물이 터졌다. 참사 5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팽목항이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탓이다. 영화의 '순남'이라는 인물에 들어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전도연)과 정일(설경구)이 이웃과 함께 아들 순호(윤찬영)의 생일 모임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다. "팽목항에 다녀온 후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밀양' 이후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못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유가족분들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는 모임이 영화에 등장하는 생일 모임이에요. 슬픔을 피해갈 수도 있지만, 슬픔을 넘어가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영화를 연출한 이종언 감독은 참사 이듬해부터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음식 나르고 설거지하고 행사가 있을 때는 사진도 찍었다. 일각에서 "그만 좀 해라" "지겹다"며 진상규명 요구를 가로막는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할 때였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내놔야겠다고 결심하고 허락을 구했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상업영화에서 세월호 참사를 직접 다루는 데 대해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안산에서 직접 보고 느낀 단면을 영화로 공유하면 유족뿐 아니라 다른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치유공간 이웃'에서 생일 모임을 하는 이유는, 떠나간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다. 유치원 때 소방관, 초등학교 때 경찰관이던 꿈은 지금 어떻게 바뀌었는지,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눈치 없이 우유를 통째로 비운 그 먹성은 여전한지, 얘기 나누며 울다가 웃는다.

"보통 생일 모임 하게 되면 3시간 반 정도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물 틀어놓은 것처럼, 제 몸에 모든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눈물이 나요. 그 시간이 너무 힘들고 아프지만 모임을 여러 차례 할수록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아픔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걸 공유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튀어나오곤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이 감독은 본인의 주관이나 오해가 영화에 개입될까 봐 고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본인이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촬영 후 1차 편집본을 유족들에게 보이고 수정을 거친 뒤 최종본 상영회를 했다. 유가족들이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용감히 대면한 결과지만, 감정적이거나 연출적인 요소를 있는 힘껏 절제한 끝에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종반부 30분 가까이 펼쳐지는 아들 순호의 생일 모임 장면이다. 편집을 고려해 끊어서 촬영하지 않고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세워놓고 원테이크로 이어서 찍었다. 배우 수십 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기진맥진했다. 한 아역배우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통곡하기도 했다.

생일을 챙기는 일은 기억을 전제로 한다. 태어난 날짜를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 겪은 크고 작은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치유공간 이웃'의 생일모임은 이 경험을 주변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생일의 주인공에 대해 상세히 알아간다. 영화 속 모임에 참석한 이웃들도 순호의 작은 버릇까지 알게 되면서 순호를 기억한다. 극 중 순남은 줄곧 순호의 생일 모임을 거부해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순남도 여러 이웃의 가슴에 순호가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실제 유족들도 그날 이후를 버티는 방식이 각자 다르다. 영화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위로하겠답시고 있지 않은 희망을 말하거나 공허한 응원구호를 내놓지 않는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이론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물질세계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현상을 기록하고 포착하고 증명함으로써 그것이 일상사 가운데 잊히고 사라지고 무심히 침묵당하지 않도록 구해내는 것이 영화의 능력이다." 영화 '생일'의 감상으로 쓰여도 적절한 코멘트다. '생일'은 4월 3일 개봉한다.
  • 극영화에 들어온 세월호…“기억이 애도의 출발”
    • 입력 2019.03.22 (07:00)
    취재K
극영화에 들어온 세월호…“기억이 애도의 출발”
전도연은 기자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언론 인터뷰에 이골이 난 30년차 배우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아들을 잃은 역할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2007) 인터뷰 당시에도 드러내지 않은 모습이었다. 영화 '생일' 합류를 결정하고 팽목항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잊지 말자고 말했었지만, 팽목항은 기억 저편 너머에 있는 빛바랜 곳으로 느껴졌어요." 눈물이 터졌다. 참사 5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팽목항이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탓이다. 영화의 '순남'이라는 인물에 들어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전도연)과 정일(설경구)이 이웃과 함께 아들 순호(윤찬영)의 생일 모임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다. "팽목항에 다녀온 후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밀양' 이후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못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유가족분들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는 모임이 영화에 등장하는 생일 모임이에요. 슬픔을 피해갈 수도 있지만, 슬픔을 넘어가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영화를 연출한 이종언 감독은 참사 이듬해부터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음식 나르고 설거지하고 행사가 있을 때는 사진도 찍었다. 일각에서 "그만 좀 해라" "지겹다"며 진상규명 요구를 가로막는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할 때였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내놔야겠다고 결심하고 허락을 구했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상업영화에서 세월호 참사를 직접 다루는 데 대해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안산에서 직접 보고 느낀 단면을 영화로 공유하면 유족뿐 아니라 다른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치유공간 이웃'에서 생일 모임을 하는 이유는, 떠나간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다. 유치원 때 소방관, 초등학교 때 경찰관이던 꿈은 지금 어떻게 바뀌었는지,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눈치 없이 우유를 통째로 비운 그 먹성은 여전한지, 얘기 나누며 울다가 웃는다.

"보통 생일 모임 하게 되면 3시간 반 정도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물 틀어놓은 것처럼, 제 몸에 모든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눈물이 나요. 그 시간이 너무 힘들고 아프지만 모임을 여러 차례 할수록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아픔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걸 공유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튀어나오곤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이 감독은 본인의 주관이나 오해가 영화에 개입될까 봐 고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본인이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촬영 후 1차 편집본을 유족들에게 보이고 수정을 거친 뒤 최종본 상영회를 했다. 유가족들이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용감히 대면한 결과지만, 감정적이거나 연출적인 요소를 있는 힘껏 절제한 끝에 맺은 결실이기도 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종반부 30분 가까이 펼쳐지는 아들 순호의 생일 모임 장면이다. 편집을 고려해 끊어서 촬영하지 않고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세워놓고 원테이크로 이어서 찍었다. 배우 수십 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기진맥진했다. 한 아역배우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통곡하기도 했다.

생일을 챙기는 일은 기억을 전제로 한다. 태어난 날짜를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 겪은 크고 작은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치유공간 이웃'의 생일모임은 이 경험을 주변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생일의 주인공에 대해 상세히 알아간다. 영화 속 모임에 참석한 이웃들도 순호의 작은 버릇까지 알게 되면서 순호를 기억한다. 극 중 순남은 줄곧 순호의 생일 모임을 거부해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순남도 여러 이웃의 가슴에 순호가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실제 유족들도 그날 이후를 버티는 방식이 각자 다르다. 영화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위로하겠답시고 있지 않은 희망을 말하거나 공허한 응원구호를 내놓지 않는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이론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물질세계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현상을 기록하고 포착하고 증명함으로써 그것이 일상사 가운데 잊히고 사라지고 무심히 침묵당하지 않도록 구해내는 것이 영화의 능력이다." 영화 '생일'의 감상으로 쓰여도 적절한 코멘트다. '생일'은 4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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