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기 태명이 쏘나타”…출산이 ‘로또’인 부부들

입력 2019.03.22 (16:50) 수정 2019.03.2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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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보는 난임 환자

◆"임신 시도에만 차 한 대 값" 난임 시술 경제적 부담 커
◆건강보험 적용에 지원 늘었다지만…시술별 횟수 제한·나이 제한 남아 있어
◆호르몬주사 1~2달 매일 맞아야 하는데…병·의원에선 외면
◆난임 주요 원인은 '높은 출산 나이'…예방 지원도 중요

[연관 기사] [앵커의 눈] “임신 시도에만 차 한 대 값”…속 타는 난임 부부들

"임신에 성공한 이웃 난임 부부의 아기 태명은 '쏘나타'예요. 이유가 '쏘나타' 1대 값이 들었다는 거죠. 저는 지금 거의 경기도 외곽에 있는 아파트 1채 정도의 비용이 들었어요."

"한 번 시술비로 나가는 게 월급 이상이죠. 저희 부부 월급의 1.5배가 지금 시술비인 거죠. 월급에서 조금씩 조금씩 떼놓기는 하는데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예요. 어떤 분들은 빚지고 하시는 분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 시술에 성공하는 건 '로또'라고 해요."

아기를 낳기 위한 시도에만 수천만 원, 집 한 챗값이 든다는 부부들. 난임 환자들의 얘기입니다. 난임이란 부부가 피임하지 않고 1년 이상 규칙적인 성관계를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난임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해마다 21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부부 1만 6백여 쌍을 대상 설문조사 결과, 12%가 난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부부 10쌍 가운데 1쌍 이상이 난임을 겪을 정도로 적지 않은 부부들이 난임을 경험합니다.

얼마 전 KBS로 제보를 한 박 모(40) 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저출산 관련 뉴스를 보다가 연락드립니다.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대변해주세요. 난임 지원에 대해 다뤄주세요." 박 씨는 결혼 5년 차에 아직 아이가 없었습니다.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됐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체감하기 어려워 답답한 마음에 제보한 것이었습니다.

5년간 7번의 난임 시술을 받은 박 씨는 최근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수시로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박 씨처럼 중간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계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수정은 평균 70만 원, 시험관 시술은 3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 정도 하는데 평균 성공률은 15~30% 정도라서 대부분 여러 차례 시술을 받습니다. 여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매하게 되는 각종 약값까지 더하면, 난임 부부들은 금세 수천만 원을 씁니다.


'난임' 시술 10번 지원?…"다 쓰는 경우 드물어"

난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06년부터 난임 부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0월부터는 건강보험에 난임 시술을 적용해 만 44세 이하 부부는 시술비의 30%만 내면 됩니다. 건강보험에서는 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신선배아 4회, 냉동배아 3회 지원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도 최대 50만 원 지원받을 수 있는데, 올해부터는 부부 소득 523만 원 이하로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지원이 확대됐다지만 상당수 난임 부부들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난임 시술별로 건강보험 적용 횟수가 정해져 있는데, 몸 상태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시술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어려우면 시험관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관 시술은 수정된 배아를 바로 자궁에 착상시키는 '신선배아' 이식과 남은 배아를 얼렸다가 나중에 이식하는 '냉동배아' 이식이 있습니다. 각각 4번과 3번 지원하는데, 여성의 배란이 적으면 냉동배아 시술은 할 수 없습니다. 시술별로 횟수 제한이 있고 교차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환자에게 불가능한 시술은 지원 기회가 남아 있어도 쓸 수 없습니다.

나이가 만 45살을 넘으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 확률이 떨어지고 유산 위험은 커져 의학적 안전성과 비용 효과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난임 부부들은 단 몇 %라도 성공할 가능성 때문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부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난임 환자들이 놓아야 하는 주사난임 환자들이 놓아야 하는 주사

일반 병·의원서 주사 시술 거부…"보건소 주사 허용해주세요."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배란을 돕는 과배란 주사와 자궁 안에 이식된 배아가 잘 착상하게 돕는 호르몬 주사를 한두 달간 거의 매일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웬만한 병·의원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해 주사를 놔주지 않습니다. 난임을 겪고 있는 이 모 씨는 제시간에 주사를 못 맞는다는 두려움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운 적도 많다고 말합니다.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난임 부부들의 요구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난임 부부들은 정신적 고통마저 심합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도 고통스럽지만, 난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은 가슴을 멍들게 합니다. 난임은 누구나 언제 겪을지 모르는 '질병'으로 봐야 합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난임의 원인은 저출산이 심각해지는 것과 같은 원인이다. 만혼, 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이 주된 이유인데 20대, 30대 초반부터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최 센터장은 "나이가 들수록 난임 시술 성공률이 낮아지는 만큼 미혼이라도 검진 지원이나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난임 예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출산 시대에 아기를 못 낳는 난임 부부들의 고통은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예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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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16:50:22
    • 수정2019-03-22 20:34:35
    취재후·사건후
▲아기 보는 난임 환자

◆"임신 시도에만 차 한 대 값" 난임 시술 경제적 부담 커
◆건강보험 적용에 지원 늘었다지만…시술별 횟수 제한·나이 제한 남아 있어
◆호르몬주사 1~2달 매일 맞아야 하는데…병·의원에선 외면
◆난임 주요 원인은 '높은 출산 나이'…예방 지원도 중요

[연관 기사] [앵커의 눈] “임신 시도에만 차 한 대 값”…속 타는 난임 부부들

"임신에 성공한 이웃 난임 부부의 아기 태명은 '쏘나타'예요. 이유가 '쏘나타' 1대 값이 들었다는 거죠. 저는 지금 거의 경기도 외곽에 있는 아파트 1채 정도의 비용이 들었어요."

"한 번 시술비로 나가는 게 월급 이상이죠. 저희 부부 월급의 1.5배가 지금 시술비인 거죠. 월급에서 조금씩 조금씩 떼놓기는 하는데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예요. 어떤 분들은 빚지고 하시는 분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 시술에 성공하는 건 '로또'라고 해요."

아기를 낳기 위한 시도에만 수천만 원, 집 한 챗값이 든다는 부부들. 난임 환자들의 얘기입니다. 난임이란 부부가 피임하지 않고 1년 이상 규칙적인 성관계를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난임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해마다 21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부부 1만 6백여 쌍을 대상 설문조사 결과, 12%가 난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부부 10쌍 가운데 1쌍 이상이 난임을 겪을 정도로 적지 않은 부부들이 난임을 경험합니다.

얼마 전 KBS로 제보를 한 박 모(40) 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저출산 관련 뉴스를 보다가 연락드립니다.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대변해주세요. 난임 지원에 대해 다뤄주세요." 박 씨는 결혼 5년 차에 아직 아이가 없었습니다.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됐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체감하기 어려워 답답한 마음에 제보한 것이었습니다.

5년간 7번의 난임 시술을 받은 박 씨는 최근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수시로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박 씨처럼 중간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계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수정은 평균 70만 원, 시험관 시술은 3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 정도 하는데 평균 성공률은 15~30% 정도라서 대부분 여러 차례 시술을 받습니다. 여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매하게 되는 각종 약값까지 더하면, 난임 부부들은 금세 수천만 원을 씁니다.


'난임' 시술 10번 지원?…"다 쓰는 경우 드물어"

난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06년부터 난임 부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0월부터는 건강보험에 난임 시술을 적용해 만 44세 이하 부부는 시술비의 30%만 내면 됩니다. 건강보험에서는 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신선배아 4회, 냉동배아 3회 지원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도 최대 50만 원 지원받을 수 있는데, 올해부터는 부부 소득 523만 원 이하로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지원이 확대됐다지만 상당수 난임 부부들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난임 시술별로 건강보험 적용 횟수가 정해져 있는데, 몸 상태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시술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어려우면 시험관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관 시술은 수정된 배아를 바로 자궁에 착상시키는 '신선배아' 이식과 남은 배아를 얼렸다가 나중에 이식하는 '냉동배아' 이식이 있습니다. 각각 4번과 3번 지원하는데, 여성의 배란이 적으면 냉동배아 시술은 할 수 없습니다. 시술별로 횟수 제한이 있고 교차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환자에게 불가능한 시술은 지원 기회가 남아 있어도 쓸 수 없습니다.

나이가 만 45살을 넘으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 확률이 떨어지고 유산 위험은 커져 의학적 안전성과 비용 효과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난임 부부들은 단 몇 %라도 성공할 가능성 때문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부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난임 환자들이 놓아야 하는 주사
일반 병·의원서 주사 시술 거부…"보건소 주사 허용해주세요."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배란을 돕는 과배란 주사와 자궁 안에 이식된 배아가 잘 착상하게 돕는 호르몬 주사를 한두 달간 거의 매일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웬만한 병·의원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해 주사를 놔주지 않습니다. 난임을 겪고 있는 이 모 씨는 제시간에 주사를 못 맞는다는 두려움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운 적도 많다고 말합니다.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난임 부부들의 요구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난임 부부들은 정신적 고통마저 심합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도 고통스럽지만, 난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은 가슴을 멍들게 합니다. 난임은 누구나 언제 겪을지 모르는 '질병'으로 봐야 합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난임의 원인은 저출산이 심각해지는 것과 같은 원인이다. 만혼, 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이 주된 이유인데 20대, 30대 초반부터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최 센터장은 "나이가 들수록 난임 시술 성공률이 낮아지는 만큼 미혼이라도 검진 지원이나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난임 예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출산 시대에 아기를 못 낳는 난임 부부들의 고통은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예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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