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안중근’에 욱일기 붙여 욕보이려는 자들…그 치졸함을 넘어

입력 2019.03.26 (09:56) 수정 2019.03.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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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동북 지역으로 3시간 가량,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한참.

안중근 의사 109주기 순국일(3월 26일)을 맞아 일본에 세워진 안 의사의 추모비를 취재하러 가는 길은 그리 녹록한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는 이들이 있다는 말에 나선 발걸음은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가는 역사의 순례길이기도 했다.

'안중근' 그 이름 밑에 숨어 붙은 '욱일기'

먼저 찾아간 곳은 다이린지(大林寺). 일본에서 최초로 안중근 추모비가 세워진 절이다.

미야기 현 측의 허가로 다이린지로 향하는 길목에는 '안중근 기념비'라는 한글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어 절을 찾는 이들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절에 거의 다다를 즈음 바로 옆을 스치는 안내판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와 비슷한 위화감 탓이었을까? 촬영기자 선배가 차를 세워 안내판을 찍자고 한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알 듯 모를 듯한 위화감이 어디서 왔는지, 안내판에 다가가자 뒷골로 무언가 훅 솟구침을 느낀다.

'욱일기'였다. 안중근 그 이름 아래 덕지덕지 붙은 전범기.

대놓고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멀리서 보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한 크기의 작은 욱일기들이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조금이라도 욕보이려는 듯 붙어 있었다.

치졸하다고 해야 할까, 남들은 모르게 슬며시 해코지를 내놓은 양, 아닌 척 의뭉스럽게 붙여 놓은 욱일기 스티커들이었다.

우익의 짓일까? 그 자리에서 몇 장을 뜯어냈지만, 얼마나 세게 붙여 놓았는지 잘 떼어지지도 않는다.

안중근을 흠모한 일본 헌병

다이린지(大林寺)에 안 의사의 추모비가 세워진 것은 지난 1980년. 이 절에 묻힌 '지바 도시치'라는 전 일본 헌병과 안 의사의 인연이 이곳 일본 땅에서까지 이어져 안 의사의 뜻이 일본에 전파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된 곳이다.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 의사가 투옥된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를 감시하던 헌병이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전장에서 적국의 수뇌를 죽인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안 의사의 당당함, 군인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기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 인품에 감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도 적국 헌병이었지만 지바 도시치와 인간적 우애를 나누며 처형당하기 직전 친필로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써주게 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 의사의 유묵을 소중히 간직한 지바 도시치는 본국으로 돌아와 숨질 때까지 이를 모시고 매일 예를 올리며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친필 유묵이 한국으로 반환되는 것을 계기로 다이린지(大林寺)에 세워진 것이 안중근 추모비이다.

조선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로서 국부로 추앙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에 대한 추모비는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샀고, 그 뒤로도 다이린지(大林寺)에는 비를 철거하라는 협박 전화 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이 절의 사이토 주지 스님은 말했다.

그리고 전화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몰래 욱일기를 안중근 의사 이름 밑에 붙여 놓는 치졸함까지 보였다.

다이린지(大林寺) 불당 안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의 위패 다이린지(大林寺) 불당 안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의 위패

'영웅 안중근'의 비를 세운 천 명의 일본인들

집권 여당 자민당의 숨은 실세 스가 관방장관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안 의사는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험악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본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2002년에는 미야기 현 구리하라 시 '지바 도시치'의 생가 바로 앞쪽에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기리는 비가 새롭게 세워졌다.


이 비를 세운 사람들은 구리하라 시의 역사이야기모임 회원들로 전국적으로 20차례 가까이 안 의사에 대한 강연회까지 열며 우리 돈 1억 원가량을 모금해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당당히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실제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 구절 한 구절이다.

지역 교장 선생님이었던 오노데라 역사이야기모임 회장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안중근 의사의 신념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건 어느 시대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라며 안 의사를 힘주어 '영웅'이자 '의사'라고 말했다.


지금 더 특별한 것은 안중근 의사의 '평화사상'. 평화를 위해 침략을 멈춰야 한다는 사상은 지금도 반목하는 한일 사이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은 강조한다.

"요즘 정치가들이 어떤 말을 하든...깊은 인연을 맺었던 안 의사와 지바 도시치처럼 서로 신뢰하는 마음, 거기서 평화 사상이 출발하는 거지요(스가와라 / 구리하라시 국제교류회 회장)"

그래서 본 비석에는 안 의사와 지바 도시치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고, 그 옆에 마련된 작은 비석에는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빼곡히 새겨 놓았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면 한국을 찾고, 탄생일이면 한국에서 방문객을 맞아 한일 양국민이 함께 매년 안 의사의 뜻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가고 있는 일본인들. 100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안 의사의 정신은 더욱 살아 숨 쉬며 전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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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6 09:56:18
    • 수정2019-03-26 10:01:26
    특파원 리포트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동북 지역으로 3시간 가량,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한참.

안중근 의사 109주기 순국일(3월 26일)을 맞아 일본에 세워진 안 의사의 추모비를 취재하러 가는 길은 그리 녹록한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리는 이들이 있다는 말에 나선 발걸음은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가는 역사의 순례길이기도 했다.

'안중근' 그 이름 밑에 숨어 붙은 '욱일기'

먼저 찾아간 곳은 다이린지(大林寺). 일본에서 최초로 안중근 추모비가 세워진 절이다.

미야기 현 측의 허가로 다이린지로 향하는 길목에는 '안중근 기념비'라는 한글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어 절을 찾는 이들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절에 거의 다다를 즈음 바로 옆을 스치는 안내판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와 비슷한 위화감 탓이었을까? 촬영기자 선배가 차를 세워 안내판을 찍자고 한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알 듯 모를 듯한 위화감이 어디서 왔는지, 안내판에 다가가자 뒷골로 무언가 훅 솟구침을 느낀다.

'욱일기'였다. 안중근 그 이름 아래 덕지덕지 붙은 전범기.

대놓고 붙여 놓은 것도 아니고 멀리서 보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한 크기의 작은 욱일기들이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조금이라도 욕보이려는 듯 붙어 있었다.

치졸하다고 해야 할까, 남들은 모르게 슬며시 해코지를 내놓은 양, 아닌 척 의뭉스럽게 붙여 놓은 욱일기 스티커들이었다.

우익의 짓일까? 그 자리에서 몇 장을 뜯어냈지만, 얼마나 세게 붙여 놓았는지 잘 떼어지지도 않는다.

안중근을 흠모한 일본 헌병

다이린지(大林寺)에 안 의사의 추모비가 세워진 것은 지난 1980년. 이 절에 묻힌 '지바 도시치'라는 전 일본 헌병과 안 의사의 인연이 이곳 일본 땅에서까지 이어져 안 의사의 뜻이 일본에 전파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된 곳이다.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 의사가 투옥된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를 감시하던 헌병이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전장에서 적국의 수뇌를 죽인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안 의사의 당당함, 군인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기개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 인품에 감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도 적국 헌병이었지만 지바 도시치와 인간적 우애를 나누며 처형당하기 직전 친필로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써주게 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 의사의 유묵을 소중히 간직한 지바 도시치는 본국으로 돌아와 숨질 때까지 이를 모시고 매일 예를 올리며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친필 유묵이 한국으로 반환되는 것을 계기로 다이린지(大林寺)에 세워진 것이 안중근 추모비이다.

조선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로서 국부로 추앙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에 대한 추모비는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샀고, 그 뒤로도 다이린지(大林寺)에는 비를 철거하라는 협박 전화 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이 절의 사이토 주지 스님은 말했다.

그리고 전화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몰래 욱일기를 안중근 의사 이름 밑에 붙여 놓는 치졸함까지 보였다.

다이린지(大林寺) 불당 안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의 위패
'영웅 안중근'의 비를 세운 천 명의 일본인들

집권 여당 자민당의 숨은 실세 스가 관방장관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안 의사는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험악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본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2002년에는 미야기 현 구리하라 시 '지바 도시치'의 생가 바로 앞쪽에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기리는 비가 새롭게 세워졌다.


이 비를 세운 사람들은 구리하라 시의 역사이야기모임 회원들로 전국적으로 20차례 가까이 안 의사에 대한 강연회까지 열며 우리 돈 1억 원가량을 모금해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당당히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실제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 구절 한 구절이다.

지역 교장 선생님이었던 오노데라 역사이야기모임 회장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안중근 의사의 신념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건 어느 시대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라며 안 의사를 힘주어 '영웅'이자 '의사'라고 말했다.


지금 더 특별한 것은 안중근 의사의 '평화사상'. 평화를 위해 침략을 멈춰야 한다는 사상은 지금도 반목하는 한일 사이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은 강조한다.

"요즘 정치가들이 어떤 말을 하든...깊은 인연을 맺었던 안 의사와 지바 도시치처럼 서로 신뢰하는 마음, 거기서 평화 사상이 출발하는 거지요(스가와라 / 구리하라시 국제교류회 회장)"

그래서 본 비석에는 안 의사와 지바 도시치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고, 그 옆에 마련된 작은 비석에는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빼곡히 새겨 놓았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면 한국을 찾고, 탄생일이면 한국에서 방문객을 맞아 한일 양국민이 함께 매년 안 의사의 뜻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가고 있는 일본인들. 100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안 의사의 정신은 더욱 살아 숨 쉬며 전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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