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서른은 멋진 나이, ‘짜치게’ 살지 마세요”

입력 2019.03.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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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다니던 스무살 윤종신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학사경고까지 맞았지만 공부는 적성에 안 맞았고,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기회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우연히 나간 교내 가요제에서 금상을 거머쥐며 그룹 015B 객원 보컬로 영입된 것. 오늘날 가수 겸 프로듀서가 된 윤종신의 연예 기획사 미스틱89(현 미스틱스토리)에 '89'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유다.

이후 행보는 모두 아는 대로다. 베테랑 창작자에 경영인, 방송가를 누비는 예능 MC로 입담까지 갖췄다. 매월 신곡을 내는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과 유튜브 1인 방송 '탈곡(曲)기'까지 가동한다.

숨 가쁘게 달린 윤종신이 잠시 멈춰섰다. 지난 30년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는 먼저 30주년을 맞은 삼성물산 패션 부문 캐주얼 브랜드 '빈폴'과 손잡고 월간윤종신 3월호 '멋'(부제: 서른에게)을 공개한다. 나아가 변곡점이 된 숫자 '1989'를 기념해 1989년생 가수들을 불러모으고, 1989년 발매된 가요를 재해석하기로 했다.

버스커버스커 출신 장범준이 4월 사랑과평화의 '그대 떠난 뒤'를 리메이크하며 소녀시대 태연이 5월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다시 부른다. 6월에는 어반자카파가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을 재해석한다.

26일 용산구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윤종신은 "멋쟁이의 시작은 서른"이라며 음악인으로서 살아온 30년을 되짚고 물리적 나이로 50세가 된 소감을 털어놨다. 사회는 최근 KBS를 퇴사한 조수빈 아나운서가 맡았다.

다음은 윤종신 및 장범준, 태연, 어반자카파와의 일문일답.

-- 1989년은 어떤 해였나.

▲ (윤종신) 방황하던 시기였다. 원하던 전공을 하지도 못했고 군대 갈까 재수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나갔는데 금상을 받은 거다. 015B와 연결되고, 015B와 신해철이 연결되고, 그곳이 조용필 형님의 소속사였다. 인생의 방향을 못 찾던 제게 기적 같은 일이 생긴 거다. 1989년 실타래 풀리듯 인생이 풀렸다. 그래서 '89'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 30년간 인생을 보는 시야는 어떻게 달라졌나.

▲ (윤종신) 한 길을 걸어오진 않았다. 노래도 하고 예능도 하고 최근에 식당까지 한다. 따라서 '외길인생'은 제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잡다하게 살아왔다. 다만 음악을 놓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는다.

20대 때는 순진무구하게 뭣도 모르고 했는데 좋아해 주시더라. 30대가 되니 성공 원인을 모르겠고, 반성하게 되더라. 실패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의 기간이었어. 40대 초반, 데뷔 20주년 때가 위기였다. 히트곡도 더 안 나올 것 같고, 이러다 몇 년 못하겠다 고민하던 차에 시작한 게 2010년 '월간 윤종신'이었다. 창작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매달 음악을 내다보니 지루함 없이 시간이 지났다. 저는 데뷔 3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40주년을 맞기 전 하나의 계단 정도로 느낀다.

-- 신곡 '멋'의 부제 '서른에게'에서 '서른'은 어떤 의미가 있나.

▲ (윤종신) 10∼20대는 타고난 감각이 뿜어져 나오는 시기다. 남이 해주는 것도 많다. 그러다 서른살부터 할 말이 생긴다. '내 생각'이 생긴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마흔, 쉰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서른에 달렸다. 고(故) 김광석 선배가 이미 서른의 의미를 노래했지 않나.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김광석 선배의 '서른즈음에'가 깊은 생각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멋'이란 노래에서 서른은 훨씬 기회가 많은 나이다.

-- '멋' 가사 가운데 '짜치게 살지마'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쪼들리다'의 경상도 사투리인데, 어떤 의도로 넣었나.

▲ (윤종신) 1990년대는 틈이 많았다. 멋 부리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실속있는 사람이 예찬받던 시대였다. 요즘은 모든 젊은이가 실속파다. 경쟁적이고, 손해 안 봐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란 사람들도 '멋 그런 거 소용없어, 지금 안 해놓으면 너 나중에 '폭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해는 된다. 그래도 지금 세대는 멋 좀 부리고 풍류가 있어도 될 것 같다. 옷 잘 입고 머리 멋있게 하거나, 돈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뒤처져도 된다는 생각이나 조금씩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20대, 30대가 조금만 더 이런 걸 신경 쓰면 눈살 찌푸릴 일이 없을 거고 남을 미워할 일도 없을 거다.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 2030 세대에 조금만 헐거워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 음악계 전반도 이야기 해달라.

▲ (윤종신) 1년 준비한 노래가 요즘은 하루 만에 승부 난다. 오후 6시에 공개하고 7시 음원차트에 못 들면 "망했다"고 한다. 제가 회사를 해봐서 아는데, 신곡이 나오면 전 직원에게 '스트리밍해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낸다. 음원 이용자들은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건 편중됐다. 사람들의 취향이 골고루 있다는 걸 언론이나 플랫폼에서 보여주면 좋겠다. 그래야 창작자들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취향이 딱히 없어서 음원차트 100위 안에 있는 것만 듣는다'는 분들이 최대한 줄어들게 하는 게 제 목표다.

▲ (태연) 너무 안타깝다. 우리 노력이 한 시간 만에 좌절된다. 6∼7시는 마의 시간이다.

-- 빈폴과의 협업으로 음악에 상업성이 들어간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윤종신) 저는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음악을 한다. '월간 윤종신' 3~4년 차부터 어떤 기업이건 투자건 문을 열었다. 자본과 대중음악의 만남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면 꾸준히 있어야 한다. 모든 앨범이 흑자가 나는 건 아닌데, 이렇게 한 번씩 협업하면 숨통이 트인다. 그게 '월간 윤종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 앞으로 계획은.

▲ (윤종신) 마흔살이 될 때만 해도 젊은이 촉이 있다고 여겼다. 50세는 확연한 아저씨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젊어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떠오르는 걸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는 50대가 되겠다.

-- 1989년생 가수 여러분에게 서른살은 어떤 의미인가. 앞으로 계획은.

▲ (태연) 앞으로 더 열심히 노래하기 위해 몸 관리를 해야겠다. 소녀시대로 춤출 때와 다르니 목 관리도 잘해야겠다. 사실 전 좀 혼란스럽다. 어떤 곡을 만나면 제가 어떻게 보일지, 저도 잘 모르고 과연 정답이 뭘까 싶다. 계속 자신을 찾고 있는 단계다. 그래서 장르에 제한도 두지 않는다.

▲ (장범준) 육아하고 군 복무하면서 음악이 하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하고 나서 고민도 많았다. 저는 청춘의 느낌이 나는 가사와 멜로디로 사랑받은 사람 아닌가. 엠넷 '슈퍼스타K' 나갈 때는 JYP를 존경하는 가수라고 썼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제가 연구해야 할 대상은 윤종신 선배님이더라. 결혼하고 나서 왕성하게 활동하셨고 하림 선배님의 '출국'이나 '난치병', 시트콤 '논스톱' 주제가였던 '그댄 달라요' 등의 가사를 쓰셨다. 앞으로 선배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많다.

▲ (어반자카파 조현아) 저도 서른이 되면서 생각이 참 많아진다. 뒤돌아보면 모두 제가 선택한 길이더라. 그래서 앞으로의 선택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마흔이 됐을 때 내 모습은 어떨지 기대된다. 기쁜 30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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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종신 “서른은 멋진 나이, ‘짜치게’ 살지 마세요”
    • 입력 2019-03-26 14:45:07
    연합뉴스
1989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다니던 스무살 윤종신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학사경고까지 맞았지만 공부는 적성에 안 맞았고,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기회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우연히 나간 교내 가요제에서 금상을 거머쥐며 그룹 015B 객원 보컬로 영입된 것. 오늘날 가수 겸 프로듀서가 된 윤종신의 연예 기획사 미스틱89(현 미스틱스토리)에 '89'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유다.

이후 행보는 모두 아는 대로다. 베테랑 창작자에 경영인, 방송가를 누비는 예능 MC로 입담까지 갖췄다. 매월 신곡을 내는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과 유튜브 1인 방송 '탈곡(曲)기'까지 가동한다.

숨 가쁘게 달린 윤종신이 잠시 멈춰섰다. 지난 30년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는 먼저 30주년을 맞은 삼성물산 패션 부문 캐주얼 브랜드 '빈폴'과 손잡고 월간윤종신 3월호 '멋'(부제: 서른에게)을 공개한다. 나아가 변곡점이 된 숫자 '1989'를 기념해 1989년생 가수들을 불러모으고, 1989년 발매된 가요를 재해석하기로 했다.

버스커버스커 출신 장범준이 4월 사랑과평화의 '그대 떠난 뒤'를 리메이크하며 소녀시대 태연이 5월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다시 부른다. 6월에는 어반자카파가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을 재해석한다.

26일 용산구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윤종신은 "멋쟁이의 시작은 서른"이라며 음악인으로서 살아온 30년을 되짚고 물리적 나이로 50세가 된 소감을 털어놨다. 사회는 최근 KBS를 퇴사한 조수빈 아나운서가 맡았다.

다음은 윤종신 및 장범준, 태연, 어반자카파와의 일문일답.

-- 1989년은 어떤 해였나.

▲ (윤종신) 방황하던 시기였다. 원하던 전공을 하지도 못했고 군대 갈까 재수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나갔는데 금상을 받은 거다. 015B와 연결되고, 015B와 신해철이 연결되고, 그곳이 조용필 형님의 소속사였다. 인생의 방향을 못 찾던 제게 기적 같은 일이 생긴 거다. 1989년 실타래 풀리듯 인생이 풀렸다. 그래서 '89'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 30년간 인생을 보는 시야는 어떻게 달라졌나.

▲ (윤종신) 한 길을 걸어오진 않았다. 노래도 하고 예능도 하고 최근에 식당까지 한다. 따라서 '외길인생'은 제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잡다하게 살아왔다. 다만 음악을 놓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는다.

20대 때는 순진무구하게 뭣도 모르고 했는데 좋아해 주시더라. 30대가 되니 성공 원인을 모르겠고, 반성하게 되더라. 실패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의 기간이었어. 40대 초반, 데뷔 20주년 때가 위기였다. 히트곡도 더 안 나올 것 같고, 이러다 몇 년 못하겠다 고민하던 차에 시작한 게 2010년 '월간 윤종신'이었다. 창작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매달 음악을 내다보니 지루함 없이 시간이 지났다. 저는 데뷔 3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40주년을 맞기 전 하나의 계단 정도로 느낀다.

-- 신곡 '멋'의 부제 '서른에게'에서 '서른'은 어떤 의미가 있나.

▲ (윤종신) 10∼20대는 타고난 감각이 뿜어져 나오는 시기다. 남이 해주는 것도 많다. 그러다 서른살부터 할 말이 생긴다. '내 생각'이 생긴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마흔, 쉰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서른에 달렸다. 고(故) 김광석 선배가 이미 서른의 의미를 노래했지 않나.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김광석 선배의 '서른즈음에'가 깊은 생각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멋'이란 노래에서 서른은 훨씬 기회가 많은 나이다.

-- '멋' 가사 가운데 '짜치게 살지마'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쪼들리다'의 경상도 사투리인데, 어떤 의도로 넣었나.

▲ (윤종신) 1990년대는 틈이 많았다. 멋 부리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실속있는 사람이 예찬받던 시대였다. 요즘은 모든 젊은이가 실속파다. 경쟁적이고, 손해 안 봐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란 사람들도 '멋 그런 거 소용없어, 지금 안 해놓으면 너 나중에 '폭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해는 된다. 그래도 지금 세대는 멋 좀 부리고 풍류가 있어도 될 것 같다. 옷 잘 입고 머리 멋있게 하거나, 돈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뒤처져도 된다는 생각이나 조금씩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20대, 30대가 조금만 더 이런 걸 신경 쓰면 눈살 찌푸릴 일이 없을 거고 남을 미워할 일도 없을 거다. 빡빡하게 살아야 하는 2030 세대에 조금만 헐거워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 음악계 전반도 이야기 해달라.

▲ (윤종신) 1년 준비한 노래가 요즘은 하루 만에 승부 난다. 오후 6시에 공개하고 7시 음원차트에 못 들면 "망했다"고 한다. 제가 회사를 해봐서 아는데, 신곡이 나오면 전 직원에게 '스트리밍해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낸다. 음원 이용자들은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건 편중됐다. 사람들의 취향이 골고루 있다는 걸 언론이나 플랫폼에서 보여주면 좋겠다. 그래야 창작자들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취향이 딱히 없어서 음원차트 100위 안에 있는 것만 듣는다'는 분들이 최대한 줄어들게 하는 게 제 목표다.

▲ (태연) 너무 안타깝다. 우리 노력이 한 시간 만에 좌절된다. 6∼7시는 마의 시간이다.

-- 빈폴과의 협업으로 음악에 상업성이 들어간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윤종신) 저는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음악을 한다. '월간 윤종신' 3~4년 차부터 어떤 기업이건 투자건 문을 열었다. 자본과 대중음악의 만남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면 꾸준히 있어야 한다. 모든 앨범이 흑자가 나는 건 아닌데, 이렇게 한 번씩 협업하면 숨통이 트인다. 그게 '월간 윤종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 앞으로 계획은.

▲ (윤종신) 마흔살이 될 때만 해도 젊은이 촉이 있다고 여겼다. 50세는 확연한 아저씨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젊어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떠오르는 걸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는 50대가 되겠다.

-- 1989년생 가수 여러분에게 서른살은 어떤 의미인가. 앞으로 계획은.

▲ (태연) 앞으로 더 열심히 노래하기 위해 몸 관리를 해야겠다. 소녀시대로 춤출 때와 다르니 목 관리도 잘해야겠다. 사실 전 좀 혼란스럽다. 어떤 곡을 만나면 제가 어떻게 보일지, 저도 잘 모르고 과연 정답이 뭘까 싶다. 계속 자신을 찾고 있는 단계다. 그래서 장르에 제한도 두지 않는다.

▲ (장범준) 육아하고 군 복무하면서 음악이 하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하고 나서 고민도 많았다. 저는 청춘의 느낌이 나는 가사와 멜로디로 사랑받은 사람 아닌가. 엠넷 '슈퍼스타K' 나갈 때는 JYP를 존경하는 가수라고 썼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제가 연구해야 할 대상은 윤종신 선배님이더라. 결혼하고 나서 왕성하게 활동하셨고 하림 선배님의 '출국'이나 '난치병', 시트콤 '논스톱' 주제가였던 '그댄 달라요' 등의 가사를 쓰셨다. 앞으로 선배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많다.

▲ (어반자카파 조현아) 저도 서른이 되면서 생각이 참 많아진다. 뒤돌아보면 모두 제가 선택한 길이더라. 그래서 앞으로의 선택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마흔이 됐을 때 내 모습은 어떨지 기대된다. 기쁜 30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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