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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조선업계 ‘갑질’ 백태…‘합의서’로 입까지 막았다
입력 2019.03.27 (07:02) 수정 2019.03.27 (07:35) 취재후
[취재후] 조선업계 ‘갑질’ 백태…‘합의서’로 입까지 막았다
조선업계 고질적 갑질...'공사 먼저 계약은 나중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에 이어 한진중공업까지... 유명 조선사에서 일했다가 폐업한 하청업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사업자(조선사)가 하청업체에 공사부터 시키고 계약은 나중에 자사에 유리하게 맺는 겁니다. '선시공 후계약'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인데요, 조선업을 포함해 하도급 관계에서 가장 많이 악용되는 관행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 행위입니다.


해민씨텍은 2014년말부터 1년 남짓 한진중공업 다대포 조선소에서 선박 블록들을 쌓아올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첫 공사의 계약기간은 2014년 11월초부터 2015년 1월까지로 혜민씨텍이 올린 견적 비용은 3억4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은 예산과 맞지 않는다며 견적서를 몇 차례 돌려보냈고 하청업체가 2억6천만 원으로 대금을 낮춰서야 견적서를 받아들였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을 때입니다. 직원들에게 줄 임금이 밀린 하청업체로서는 빨리 돈을 받아내야 하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한진중공업은 이 때서야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계약이 마치 공사 전에 합의해서 이뤄진 것처럼 계약날짜를 11월초라고 기재했습니다. 첨부한 최종 견적서의 날짜는 화이트로 쓱 지웠습니다. 하청업체에 왜 이계약을 받아들였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손해본 것은 다음 계약에서 덜 손해보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실질적으로 다음 계약할 때는 그거보다 또 금액을 더 깎는 상황이 생기고요. 그러면 (하청)업체는 이제 계속 그 일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만두고 나가면 어디서 밥 먹고 살 길이 없잖아요. 그러면서 다음을 또 기약하면서 그거보다 낮은 금액에 또 계약을 하고."

이러다보니 해민씨텍은 1년여에 걸쳐 여러 공사를 하면서 손해만 봤다고 주장합니다. 자사가 처음에 계산한 견적은 11억 원이었지만 깎고 깎아 계약서에 올라간 공사비는 모두 합쳐 3억 3천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법적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하청업체 입 막는 ‘합의서’

"하자보수 용도로 받아간 보증금도 겨우 돌려받았어요"

해민씨텍은 공사 때마다 계약금액의 5%를 '하자보수보증금'으로 냈습니다. 해민씨텍의 잘못으로 하자를 보수하게 될 때를 대비해 한진중공업이 받아둔 보증금입니다. 계약에 따르면 공사가 끝난 뒤 6개월 안에 돌려주게 돼있지만 해민씨텍은 이 돈을 6개월이 지나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하도급 대금도 제대로못받고 직원들 임금이 자꾸 밀리자 해민씨텍은 한진중공업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보증금이라도 빨리 돌려달라고 독촉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이 돈을 돌려줄테니 계약서에 합의된 공사비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해민씨텍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을 한진중공업이 악용했다고 말합니다.

"하자보증금 명목으로 받아갔던 보증금도 저희가 받아야 되는 금액보다 더 낮은 금액에 합의를 보기 위해서 잡아놓는 볼모의 돈이었어요."

“법적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하청업체 입 막는 ‘합의서’

대기업이 이런 '갑질'을 하고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합의서' 때문입니다. 해민씨텍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도장을 찍은 '완료 정산 합의서'에는 공사와 관련해 민·형사상 제소 등 일체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돼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뿐 아니라 조선업계에서는 자금난으로 궁지에 몰린 하청업체에 합의서를 들이대고 분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조사 결과 지난 4년 동안 대우조선해양 한 군데서만 계약서 없이 작업을 한 뒤 합의서를 작성한 경우가 1,800여 건이나 됩니다.


"공사한 만큼 인정받기도 어려워요"...엉터리 '선행공정률'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던 또다른 하청업체 B사. 앞서 공사를 맡았던 업체가 폐업하자 한진중공업은 B사에 이 공사를 마무리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가 이미 70%는 진행됐으니 30%만 더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B사가 실제로 작업해보니 공사는 절반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30%에 해당하는 비용만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청업체 B사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행공정률이 70%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일을 전부 다 엉터리로 해가지고 (우리 업체가) 전부 다 수정 작업을 해가지고 일을 하면 우리가 70% 받고 간 사람이 30%를 받아야 되는데... 그래 가지고 결국 30%만 받고, 40%를 못 받은 거죠. "

이 업체는 또 처음에 계약할 때는 한진중공업이 상대적으로 작업이 용이한 배의 중간 부분을 맡기겠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말이 달라져 배의 앞과 뒷부분을 맡겼다고 합니다. 배의 선수, 선미 부분은 굴곡이 많아 작업이 복잡한데도 돈을 더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래 저래 B사는 7억 5천만 원 정도를 손해봤다고 주장합니다. 취재진이 이번에 알게 된 한진중공업 '갑질' 피해업체는 B사를 포함해 4곳. 이 업체들이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모두 30억 원입니다. 다른 조선사들처럼 한진중공업도 대형로펌을 내세워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청업체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더라도 억울해서 참을 수 없다며 일한 만큼 돈을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 [취재후] 조선업계 ‘갑질’ 백태…‘합의서’로 입까지 막았다
    • 입력 2019.03.27 (07:02)
    • 수정 2019.03.27 (07:35)
    취재후
[취재후] 조선업계 ‘갑질’ 백태…‘합의서’로 입까지 막았다
조선업계 고질적 갑질...'공사 먼저 계약은 나중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에 이어 한진중공업까지... 유명 조선사에서 일했다가 폐업한 하청업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사업자(조선사)가 하청업체에 공사부터 시키고 계약은 나중에 자사에 유리하게 맺는 겁니다. '선시공 후계약'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인데요, 조선업을 포함해 하도급 관계에서 가장 많이 악용되는 관행으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 행위입니다.


해민씨텍은 2014년말부터 1년 남짓 한진중공업 다대포 조선소에서 선박 블록들을 쌓아올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첫 공사의 계약기간은 2014년 11월초부터 2015년 1월까지로 혜민씨텍이 올린 견적 비용은 3억4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은 예산과 맞지 않는다며 견적서를 몇 차례 돌려보냈고 하청업체가 2억6천만 원으로 대금을 낮춰서야 견적서를 받아들였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을 때입니다. 직원들에게 줄 임금이 밀린 하청업체로서는 빨리 돈을 받아내야 하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한진중공업은 이 때서야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계약이 마치 공사 전에 합의해서 이뤄진 것처럼 계약날짜를 11월초라고 기재했습니다. 첨부한 최종 견적서의 날짜는 화이트로 쓱 지웠습니다. 하청업체에 왜 이계약을 받아들였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손해본 것은 다음 계약에서 덜 손해보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실질적으로 다음 계약할 때는 그거보다 또 금액을 더 깎는 상황이 생기고요. 그러면 (하청)업체는 이제 계속 그 일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만두고 나가면 어디서 밥 먹고 살 길이 없잖아요. 그러면서 다음을 또 기약하면서 그거보다 낮은 금액에 또 계약을 하고."

이러다보니 해민씨텍은 1년여에 걸쳐 여러 공사를 하면서 손해만 봤다고 주장합니다. 자사가 처음에 계산한 견적은 11억 원이었지만 깎고 깎아 계약서에 올라간 공사비는 모두 합쳐 3억 3천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법적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하청업체 입 막는 ‘합의서’

"하자보수 용도로 받아간 보증금도 겨우 돌려받았어요"

해민씨텍은 공사 때마다 계약금액의 5%를 '하자보수보증금'으로 냈습니다. 해민씨텍의 잘못으로 하자를 보수하게 될 때를 대비해 한진중공업이 받아둔 보증금입니다. 계약에 따르면 공사가 끝난 뒤 6개월 안에 돌려주게 돼있지만 해민씨텍은 이 돈을 6개월이 지나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하도급 대금도 제대로못받고 직원들 임금이 자꾸 밀리자 해민씨텍은 한진중공업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보증금이라도 빨리 돌려달라고 독촉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이 돈을 돌려줄테니 계약서에 합의된 공사비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해민씨텍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을 한진중공업이 악용했다고 말합니다.

"하자보증금 명목으로 받아갔던 보증금도 저희가 받아야 되는 금액보다 더 낮은 금액에 합의를 보기 위해서 잡아놓는 볼모의 돈이었어요."

“법적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하청업체 입 막는 ‘합의서’

대기업이 이런 '갑질'을 하고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합의서' 때문입니다. 해민씨텍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도장을 찍은 '완료 정산 합의서'에는 공사와 관련해 민·형사상 제소 등 일체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돼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뿐 아니라 조선업계에서는 자금난으로 궁지에 몰린 하청업체에 합의서를 들이대고 분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조사 결과 지난 4년 동안 대우조선해양 한 군데서만 계약서 없이 작업을 한 뒤 합의서를 작성한 경우가 1,800여 건이나 됩니다.


"공사한 만큼 인정받기도 어려워요"...엉터리 '선행공정률'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던 또다른 하청업체 B사. 앞서 공사를 맡았던 업체가 폐업하자 한진중공업은 B사에 이 공사를 마무리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가 이미 70%는 진행됐으니 30%만 더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B사가 실제로 작업해보니 공사는 절반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30%에 해당하는 비용만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청업체 B사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행공정률이 70%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일을 전부 다 엉터리로 해가지고 (우리 업체가) 전부 다 수정 작업을 해가지고 일을 하면 우리가 70% 받고 간 사람이 30%를 받아야 되는데... 그래 가지고 결국 30%만 받고, 40%를 못 받은 거죠. "

이 업체는 또 처음에 계약할 때는 한진중공업이 상대적으로 작업이 용이한 배의 중간 부분을 맡기겠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말이 달라져 배의 앞과 뒷부분을 맡겼다고 합니다. 배의 선수, 선미 부분은 굴곡이 많아 작업이 복잡한데도 돈을 더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래 저래 B사는 7억 5천만 원 정도를 손해봤다고 주장합니다. 취재진이 이번에 알게 된 한진중공업 '갑질' 피해업체는 B사를 포함해 4곳. 이 업체들이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모두 30억 원입니다. 다른 조선사들처럼 한진중공업도 대형로펌을 내세워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청업체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더라도 억울해서 참을 수 없다며 일한 만큼 돈을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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