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안 죽였다”는 계획 자백, 표백제는 말했다 “네가 그랬지?”

입력 2019.03.27 (10:04) 수정 2019.03.2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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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안 죽였습니다. 억울합니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씨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은 지난 20일 취재진 앞에 섰다. 범행 동기와 범행 이후 행적을 묻는 기자들에게 김 씨가 한 말은 살해 혐의 부인이었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이 말을 해야겠다고 준비한 듯했다. 구속영장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간 그는 그곳에 있던 취재진에게도 "제가 안 죽였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살해 혐의 적극 부인
"안 죽였다"는 말은 살해 자체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 씨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 2천만 원을 받으러 강도를 계획한 건 맞지만, 살해는 공범들이 우발적으로 했다"는 의미였다.

김 씨는 지난 17일 체포 이후 이튿날인 18일 경찰 조사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빼앗은 돈 5억 원 가운데 4억여 원도 공범들이 가져갔다고 했다. 이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변호사만 접견했다. 자신이 경찰 조사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김 씨 말대로 살해를 계획한 건 아니라고 해도, 자백은 계획한 셈이다.

이런 '계획 자백'에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걸 널리 알리는 것도 포함됐다. 변호사에게 언론 대응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가 묵비권을 행사한 나흘 동안 변호사는 살인사건 변호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방송에 얼굴을 내고 인터뷰까지 했다.

변호사가 전한 김 씨의 핵심 메시지는 역시 '공범들의 우발적 살해'였다. 이런 주장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공범인 중국 동포 3명은 범행 당일 급하게 중국 칭다오행 비행기 표를 끊어서 도주했다. 범행 뒤처리에 친구의 지인, 이삿짐센터, 대리기사를 부르는 등 김 씨가 허둥댄 것도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후에 있음 직한 행동들이었다.

김 씨 관련 기사에 '미스터리', '의문'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김 씨가 모든 걸 계획했다고 보지 않고,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계획 자백의 효과였다.

경찰은 그러나 김 씨가 '계획 살해'를 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수사를 계속했다. 계획을 했지만 허술했다는 게 경찰 판단이었다. 김 씨의 행적을 샅샅이 뒤지고, 국내에 있는 공범들의 지인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공범들이 "우리는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게 알려지기도 했다. 경호만 하는 줄 알고 따라갔는데 일이 커졌다는 주장이었다. 김 씨와 공범들이 서로 범행을 떠넘기면서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양상이었다.


◆표백제가 '계획 살해' 결정적 증거
김 씨는 생각이 다 정리된 듯 나흘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22일부터 경찰 조사에 응했다. 경찰은 그동안 찾은 증거를 토대로 김 씨를 압박했다. 김 씨가 '이희진 씨 주식 사기 사건' 피해자를 접촉하고, 이 씨 부모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장착한 사실이 알려졌다.

변호인은 이런 기사들이 나온 이후인 지난 25일 오전 사임했다. 기사 내용이 접견 때 들은 내용인지 물었더니 못 들었다고 했다. 김 씨가 자백을 계획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변호인에게 알린 것이다. 변호인은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비밀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김 씨가 변호인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을 경찰이 많이 찾은 듯했다.

그중에서 결정적인 건 이른바 '락스'라고 부르는 표백제였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표백제통을 발견했다. 김 씨가 범행 당일 표백제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했고, 표백제를 들고 이 씨 부모 집을 찾았던 김 씨를 CCTV로 확인했다.

단순히 위협해 돈을 뺏는 강도를 계획했으면서 표백제를 들고간 건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살해 흔적을 지우기 위해 들고 간 걸로 강하게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씨는 표백제를 가져간 이유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했다. 추가로 현장 분석 등 과학수사로 김 씨가 공범들과 역할을 나눠 이 씨 부모를 살해한 걸로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공범들의 우발적 살해라는 김 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김 씨가 살해까지 염두에 두고 범행을 계획한 걸로 결론 내렸다.

어제(26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김 씨는 살해 혐의를 여전히 부인했다. 검찰로 향하면서 "일정 부분 계획이 있었는데,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정말 살해에 가담하지 않아 억울한 것일까. '계획적 살해' 여부는 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경찰과 변호인까지 속이려던 계획 자백은 실패한 게 분명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표백제가 우발적 살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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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안 죽였다”는 계획 자백, 표백제는 말했다 “네가 그랬지?”
    • 입력 2019-03-27 10:04:34
    • 수정2019-03-27 22:30:22
    취재후·사건후
"제가 안 죽였습니다. 억울합니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씨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은 지난 20일 취재진 앞에 섰다. 범행 동기와 범행 이후 행적을 묻는 기자들에게 김 씨가 한 말은 살해 혐의 부인이었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이 말을 해야겠다고 준비한 듯했다. 구속영장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간 그는 그곳에 있던 취재진에게도 "제가 안 죽였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살해 혐의 적극 부인
"안 죽였다"는 말은 살해 자체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 씨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 2천만 원을 받으러 강도를 계획한 건 맞지만, 살해는 공범들이 우발적으로 했다"는 의미였다.

김 씨는 지난 17일 체포 이후 이튿날인 18일 경찰 조사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빼앗은 돈 5억 원 가운데 4억여 원도 공범들이 가져갔다고 했다. 이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변호사만 접견했다. 자신이 경찰 조사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김 씨 말대로 살해를 계획한 건 아니라고 해도, 자백은 계획한 셈이다.

이런 '계획 자백'에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걸 널리 알리는 것도 포함됐다. 변호사에게 언론 대응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가 묵비권을 행사한 나흘 동안 변호사는 살인사건 변호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방송에 얼굴을 내고 인터뷰까지 했다.

변호사가 전한 김 씨의 핵심 메시지는 역시 '공범들의 우발적 살해'였다. 이런 주장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공범인 중국 동포 3명은 범행 당일 급하게 중국 칭다오행 비행기 표를 끊어서 도주했다. 범행 뒤처리에 친구의 지인, 이삿짐센터, 대리기사를 부르는 등 김 씨가 허둥댄 것도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후에 있음 직한 행동들이었다.

김 씨 관련 기사에 '미스터리', '의문'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김 씨가 모든 걸 계획했다고 보지 않고,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계획 자백의 효과였다.

경찰은 그러나 김 씨가 '계획 살해'를 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수사를 계속했다. 계획을 했지만 허술했다는 게 경찰 판단이었다. 김 씨의 행적을 샅샅이 뒤지고, 국내에 있는 공범들의 지인도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공범들이 "우리는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게 알려지기도 했다. 경호만 하는 줄 알고 따라갔는데 일이 커졌다는 주장이었다. 김 씨와 공범들이 서로 범행을 떠넘기면서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양상이었다.


◆표백제가 '계획 살해' 결정적 증거
김 씨는 생각이 다 정리된 듯 나흘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22일부터 경찰 조사에 응했다. 경찰은 그동안 찾은 증거를 토대로 김 씨를 압박했다. 김 씨가 '이희진 씨 주식 사기 사건' 피해자를 접촉하고, 이 씨 부모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장착한 사실이 알려졌다.

변호인은 이런 기사들이 나온 이후인 지난 25일 오전 사임했다. 기사 내용이 접견 때 들은 내용인지 물었더니 못 들었다고 했다. 김 씨가 자백을 계획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변호인에게 알린 것이다. 변호인은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비밀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김 씨가 변호인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을 경찰이 많이 찾은 듯했다.

그중에서 결정적인 건 이른바 '락스'라고 부르는 표백제였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표백제통을 발견했다. 김 씨가 범행 당일 표백제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했고, 표백제를 들고 이 씨 부모 집을 찾았던 김 씨를 CCTV로 확인했다.

단순히 위협해 돈을 뺏는 강도를 계획했으면서 표백제를 들고간 건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살해 흔적을 지우기 위해 들고 간 걸로 강하게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씨는 표백제를 가져간 이유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했다. 추가로 현장 분석 등 과학수사로 김 씨가 공범들과 역할을 나눠 이 씨 부모를 살해한 걸로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공범들의 우발적 살해라는 김 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김 씨가 살해까지 염두에 두고 범행을 계획한 걸로 결론 내렸다.

어제(26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김 씨는 살해 혐의를 여전히 부인했다. 검찰로 향하면서 "일정 부분 계획이 있었는데,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정말 살해에 가담하지 않아 억울한 것일까. '계획적 살해' 여부는 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경찰과 변호인까지 속이려던 계획 자백은 실패한 게 분명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표백제가 우발적 살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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