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대폭 축소·경찰수사 통제…한국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속내는?

입력 2019.03.27 (18:41) 수정 2019.03.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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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수사체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어제(26일)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내놓은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접한 검경 관계자들의 반응입니다. 한국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되 검찰총장의 임기를 늘려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했고, 경찰 수사에 대한 다양한 통제방안도 마련했습니다.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 수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정부·여당의 취지에 원칙적으로 발을 맞추되 시행 과정에서 일어날 문제점을 더욱 세밀하게 보완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 방안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요? 또 한국당은 왜 지금에서야 이런 조정안을 내놓았을까요? 떠오르는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작지만 독립적인 검찰

 
검찰 내에서 '인지수사'와 '직접수사', '특별수사'는 통상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검찰 내 '특별수사부'가 직접 범죄 동향을 파악한 뒤 상당 기간 내사를 거쳐 시작하는 수사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재벌 등 '거악'을 겨눕니다.

거악의 부패를 척결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이지만 오히려 후폭풍이 몰아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찰은 정권 초기에는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전 정부의 적폐'를 소탕하다가 임기 4, 5년 차에 정권의 힘이 빠지면 그제야 현 정부의 실세들을 겨눠 '조직의 힘'을 과시해 왔습니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 초기엔 현 정부 관련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오지만 검찰이 정부와 정치권 동향에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당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면 바로 이 '특별수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대상을 국회의원이나 30대 대규모기업집단, 5급 이상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등 6가지 사건으로 제한하고, 수사에 나설 때는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습니다. 특별수사의 총량을 줄이되 수사 내용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입니다.

'청와대가 시키는 수사만 한다'는 논란을 없애기 위해 검찰총장의 독립성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2년인 검찰총장의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현재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사 인사는 검사장급을 제외하고는 검찰총장이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이 수사하는 구체적인 사건에 관여할 수 없도록 법령을 손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더없이 좋은 안이지만 만약 검찰총장이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코드인사'라면 총장 임기 내내 검찰 내 줄서기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철저한 통제


한국당은 검찰의 힘을 빼는 것과 동시에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방안도 더욱 촘촘하게 짰습니다. 경찰이 반대하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이를 '수사요구권'이라는 말로 대체했습니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요구하면 경찰은 지체없이 따라야 하고, 불응할 경우 검찰은 수사경찰에 대한 업무 배제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도 마련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의 대등한 협력관계를 마련하려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검찰에 대한 종속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대폭 인정한 정부 안과 달리 한국당은 경찰이 무혐의나 불기소로 자체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도 모든 기록을 검찰에 넘기도록 했습니다. 정부 안을 받아들일 경우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수사를 종결하거나 고소인이 경찰 수사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 한국당의 논리입니다. 다만 고소·고발이 취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했습니다.

 2006년 7월 설립된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전경 2006년 7월 설립된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전경

한국당은 정부의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도 '무늬만 자치경찰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보다는 행정경찰과 사법경찰, 정보경찰을 분리하는 것이 경찰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현재 경찰 수사는 사법경찰관(수사과, 형사과)의 수사 내용을 행정경찰(경찰서장)이 보고받고 지시하게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청 내에 국가수사본부를 만들어 여기에 소속된 사법경찰관은 검찰과 협력하고, 행정경찰이 관여하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 한국당 안의 내용입니다. 또 정보경찰은 경찰조직에서 분리해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정보청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내놓았습니다.

한국당의 속내는?

검찰과 경찰의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당의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수사 현실을 반영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검경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심지어 "검찰의 막강한 특별수사를 견제하지도 못하고 경찰 권한만 늘려버린 정부 안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실무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한국당이 이제서야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부·여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나아가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현재 바른미래당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공수처 안을 내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조율하고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선거제 개편안도 패스트트랙으로 함께 지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당으로선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당론을 공개하고 함께 논의하자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여야4당의 일방적인 패스트트랙 독주를 막겠다는 전략입니다.

한국당은 특히 수사권 조정안 설명자료에서 공수처의 문제점을 두 쪽에 걸쳐 자세하게 풀어놓았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의 중요한 방향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지, 공수처라는 비리전담기구 설치가 아니다"라며 "공수처장만 장악하면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주요기관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또 하나의 크고 예리한 칼'을 갖는 것만은 분명히 막겠다는 뜻입니다.

한국당 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당이 지금 집권당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은 약 20년간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한국당이 집권당일 때 이런 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았으면 어땠을까요? 반대로 민주당이 야당일 때처럼 거대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면 어땠을까요? 수사기관을 '권력의 전리품'으로 보는 정략적 판단이 존재하는 한 국민의 눈에는 그 어떤 수사권 조정도 달갑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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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수사 대폭 축소·경찰수사 통제…한국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속내는?
    • 입력 2019-03-27 18:41:16
    • 수정2019-03-27 18:56:14
    취재K
"현행 수사체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어제(26일)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내놓은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접한 검경 관계자들의 반응입니다. 한국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되 검찰총장의 임기를 늘려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했고, 경찰 수사에 대한 다양한 통제방안도 마련했습니다.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 수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정부·여당의 취지에 원칙적으로 발을 맞추되 시행 과정에서 일어날 문제점을 더욱 세밀하게 보완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 방안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요? 또 한국당은 왜 지금에서야 이런 조정안을 내놓았을까요? 떠오르는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작지만 독립적인 검찰   검찰 내에서 '인지수사'와 '직접수사', '특별수사'는 통상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검찰 내 '특별수사부'가 직접 범죄 동향을 파악한 뒤 상당 기간 내사를 거쳐 시작하는 수사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재벌 등 '거악'을 겨눕니다. 거악의 부패를 척결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이지만 오히려 후폭풍이 몰아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찰은 정권 초기에는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전 정부의 적폐'를 소탕하다가 임기 4, 5년 차에 정권의 힘이 빠지면 그제야 현 정부의 실세들을 겨눠 '조직의 힘'을 과시해 왔습니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 초기엔 현 정부 관련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오지만 검찰이 정부와 정치권 동향에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당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면 바로 이 '특별수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대상을 국회의원이나 30대 대규모기업집단, 5급 이상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등 6가지 사건으로 제한하고, 수사에 나설 때는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습니다. 특별수사의 총량을 줄이되 수사 내용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입니다. '청와대가 시키는 수사만 한다'는 논란을 없애기 위해 검찰총장의 독립성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2년인 검찰총장의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현재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사 인사는 검사장급을 제외하고는 검찰총장이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이 수사하는 구체적인 사건에 관여할 수 없도록 법령을 손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더없이 좋은 안이지만 만약 검찰총장이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코드인사'라면 총장 임기 내내 검찰 내 줄서기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철저한 통제 한국당은 검찰의 힘을 빼는 것과 동시에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방안도 더욱 촘촘하게 짰습니다. 경찰이 반대하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이를 '수사요구권'이라는 말로 대체했습니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요구하면 경찰은 지체없이 따라야 하고, 불응할 경우 검찰은 수사경찰에 대한 업무 배제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도 마련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의 대등한 협력관계를 마련하려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검찰에 대한 종속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대폭 인정한 정부 안과 달리 한국당은 경찰이 무혐의나 불기소로 자체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도 모든 기록을 검찰에 넘기도록 했습니다. 정부 안을 받아들일 경우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수사를 종결하거나 고소인이 경찰 수사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 한국당의 논리입니다. 다만 고소·고발이 취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했습니다.  2006년 7월 설립된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전경 한국당은 정부의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도 '무늬만 자치경찰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보다는 행정경찰과 사법경찰, 정보경찰을 분리하는 것이 경찰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현재 경찰 수사는 사법경찰관(수사과, 형사과)의 수사 내용을 행정경찰(경찰서장)이 보고받고 지시하게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청 내에 국가수사본부를 만들어 여기에 소속된 사법경찰관은 검찰과 협력하고, 행정경찰이 관여하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 한국당 안의 내용입니다. 또 정보경찰은 경찰조직에서 분리해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정보청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내놓았습니다. 한국당의 속내는? 검찰과 경찰의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당의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수사 현실을 반영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검경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심지어 "검찰의 막강한 특별수사를 견제하지도 못하고 경찰 권한만 늘려버린 정부 안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실무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한국당이 이제서야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부·여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나아가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현재 바른미래당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공수처 안을 내놓고 더불어민주당과 조율하고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선거제 개편안도 패스트트랙으로 함께 지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당으로선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당론을 공개하고 함께 논의하자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여야4당의 일방적인 패스트트랙 독주를 막겠다는 전략입니다. 한국당은 특히 수사권 조정안 설명자료에서 공수처의 문제점을 두 쪽에 걸쳐 자세하게 풀어놓았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의 중요한 방향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지, 공수처라는 비리전담기구 설치가 아니다"라며 "공수처장만 장악하면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 주요기관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또 하나의 크고 예리한 칼'을 갖는 것만은 분명히 막겠다는 뜻입니다. 한국당 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당이 지금 집권당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은 약 20년간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한국당이 집권당일 때 이런 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았으면 어땠을까요? 반대로 민주당이 야당일 때처럼 거대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면 어땠을까요? 수사기관을 '권력의 전리품'으로 보는 정략적 판단이 존재하는 한 국민의 눈에는 그 어떤 수사권 조정도 달갑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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