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습격사건’…북한은 왜 말이 없을까?

입력 2019.03.28 (20:35) 수정 2019.03.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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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지난달 22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괴한들이 침입해 대사관 직원들을 감금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다, 북미간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스페인 대사를 지냈다는 점 등이 겹쳐 북한 공작원 개입설 등 갖은 추측이 잇따랐습니다.

■ 스페인 당국 "北 대사관 침입 괴한 FBI 접촉"...美 정부 부인

한 달이 흐른 지난 26일(현지시간) 스페인 고등법원은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괴한들 중 1명이 이후 미국 FBI와 접촉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페인 고등법원이 수사상황을 토대로 작성한 공식 문서에 따르면 침입한 괴한은 모두 10명으로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 중 '에이드리언 홍 창' 이라는 이름의 멕시코 국적 미국 거주자는 사건 발생 닷새 뒤인 지난달 27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넘기기 위해 미국 FBI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 국무부는 "미 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즉각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 '자신들의 소행' 주장... '자유조선' 정체는?

이때 '자유조선'이라는 단체가 등장합니다. '자유조선'은 스페인 당국의 발표가 이뤄진 26일 홈페이지에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대사관 침입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고, FBI와 접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일은 습격(attack)이 아니라 대사관 내 긴급한 상황에 대해 대응했던(responded) 것"이라며 "우리는 대사관에 초대받았고(invited) 억압되거나 맞은 사람도 없었다,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조선’이 26일 홈페이지에 올린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이라는 제목의 글‘자유조선’이 26일 홈페이지에 올린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이라는 제목의 글

'자유조선'은 그러면서 "FBI와 상호 비밀유지에 합의하고 막대한 잠재적 가치가 있는 특정 정보를 공유했다. 해당 정보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공유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합의는 깨진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것은 엄청난 배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北, 한 달 넘게 침묵... 이유는?

괴한들이 북한 대사관을 습격했고, 스페인 당국은 괴한들이 속한 단체가 FBI와 연관됐다는 수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대내 매체는 물론이고 대외 창구 역할을 하는 조선중앙통신이나 각종 대외선전매체들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요.

여기서 '자유조선'이 어떤 단체인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조선'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하는 단체로, 당초 이름은 '천리마 민방위'였습니다. 당시 행적이 묘연했던 김한솔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올려 단숨에 이목을 끌었습니다.

2017년 3월 ‘천리마민방위’가 게재한 김한솔 등장 동영상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이달 1일 이름을 '자유조선'으로 바꾸고 북한 체제 전복에 앞장서겠다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자유조선'은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누군가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 액자를 바닥에 내던지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게재했습니다. '조국땅에서'라는 제목을 감안할 때 이 영상이 스페인 대사관 습격 당시 촬영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옵니다.

지난 20일 ‘자유조선’이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북한이 침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 경위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이 '자유조선'을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체제 전복을 꾀한다는 단체의 존재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북한에선 일종의 최고 영도자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한 내부적인 동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단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암살된 뒤 그 아들인 김한솔을 피신시켰다고 밝혔던 만큼, 북한 정권으로서는 더더욱 언급하기 힘들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의 큰아들, 이른바 '백두혈통'의 장자인 김한솔의 존재는 김정은 정권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남이나 김한솔에 대해 일반 주민은 거의 알지 못할 만큼 존재 자체가 감춰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배후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북한이 침묵하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힙니다.

하지만 북한이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이 사건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정말 FBI가 개입된 사건이라면 미국이 김한솔의 존재를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 김한솔이 현재 미국 정보기관의 보호 속에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FBI와의 연계설까지 나온 마당에 '대사관 습격 사건'과 관련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FBI 개입설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북한은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지 지켜볼 일입니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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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8 20:35:43
    • 수정2019-03-29 18:18:10
    취재K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지난달 22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에 괴한들이 침입해 대사관 직원들을 감금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다, 북미간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스페인 대사를 지냈다는 점 등이 겹쳐 북한 공작원 개입설 등 갖은 추측이 잇따랐습니다.

■ 스페인 당국 "北 대사관 침입 괴한 FBI 접촉"...美 정부 부인

한 달이 흐른 지난 26일(현지시간) 스페인 고등법원은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괴한들 중 1명이 이후 미국 FBI와 접촉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페인 고등법원이 수사상황을 토대로 작성한 공식 문서에 따르면 침입한 괴한은 모두 10명으로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 중 '에이드리언 홍 창' 이라는 이름의 멕시코 국적 미국 거주자는 사건 발생 닷새 뒤인 지난달 27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넘기기 위해 미국 FBI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 국무부는 "미 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즉각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 '자신들의 소행' 주장... '자유조선' 정체는?

이때 '자유조선'이라는 단체가 등장합니다. '자유조선'은 스페인 당국의 발표가 이뤄진 26일 홈페이지에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대사관 침입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고, FBI와 접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일은 습격(attack)이 아니라 대사관 내 긴급한 상황에 대해 대응했던(responded) 것"이라며 "우리는 대사관에 초대받았고(invited) 억압되거나 맞은 사람도 없었다,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조선’이 26일 홈페이지에 올린 ‘마드리드에 관한 팩트들’이라는 제목의 글
'자유조선'은 그러면서 "FBI와 상호 비밀유지에 합의하고 막대한 잠재적 가치가 있는 특정 정보를 공유했다. 해당 정보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공유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합의는 깨진 것으로 보인다"며 "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것은 엄청난 배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北, 한 달 넘게 침묵... 이유는?

괴한들이 북한 대사관을 습격했고, 스페인 당국은 괴한들이 속한 단체가 FBI와 연관됐다는 수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대내 매체는 물론이고 대외 창구 역할을 하는 조선중앙통신이나 각종 대외선전매체들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요.

여기서 '자유조선'이 어떤 단체인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조선'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하는 단체로, 당초 이름은 '천리마 민방위'였습니다. 당시 행적이 묘연했던 김한솔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올려 단숨에 이목을 끌었습니다.

2017년 3월 ‘천리마민방위’가 게재한 김한솔 등장 동영상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이달 1일 이름을 '자유조선'으로 바꾸고 북한 체제 전복에 앞장서겠다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자유조선'은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누군가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 액자를 바닥에 내던지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게재했습니다. '조국땅에서'라는 제목을 감안할 때 이 영상이 스페인 대사관 습격 당시 촬영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옵니다.

지난 20일 ‘자유조선’이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북한이 침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 경위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이 '자유조선'을 얘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체제 전복을 꾀한다는 단체의 존재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북한에선 일종의 최고 영도자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한 내부적인 동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단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암살된 뒤 그 아들인 김한솔을 피신시켰다고 밝혔던 만큼, 북한 정권으로서는 더더욱 언급하기 힘들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의 큰아들, 이른바 '백두혈통'의 장자인 김한솔의 존재는 김정은 정권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남이나 김한솔에 대해 일반 주민은 거의 알지 못할 만큼 존재 자체가 감춰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배후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북한이 침묵하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힙니다.

하지만 북한이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이 사건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정말 FBI가 개입된 사건이라면 미국이 김한솔의 존재를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실제 김한솔이 현재 미국 정보기관의 보호 속에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FBI와의 연계설까지 나온 마당에 '대사관 습격 사건'과 관련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FBI 개입설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북한은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지 지켜볼 일입니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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