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연장’된 ILO 핵심협약 논의…미비준 후폭풍은 얼마나?

입력 2019.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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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된 노사정 대화가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어제(28일) 한 달 만에 전체회의를 잡았는데,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논의시한을 4월 초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경사노위는 '4월 초'라고만 말했지만, 실질적인 마감 시한은 4월 9일로 여겨집니다. EU가 한국에 'ILO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성과'를 제출해 달라고 못 박은 날이 4월 9일이기 때문입니다. EU는 이런 성과물이 없다면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할 것이라고 우리나라에 일종의 '경고'를 해 둔 상태입니다.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를 시작했던 게 지난해 7월. 벌써 8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진척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의 중요성이나 파장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EU의 '경고'의 의미를 놓고 각 주체별 입장차가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경영계 "EU 보복 우려는 선동적인 추측일 뿐"

경영계는 경사노위 의제별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이틀(26일, 27일)에 걸쳐 두 차례나 입장문을 냈습니다. 26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단독 명의였지만, 27일에는 경총과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단체 입장문으로 '격'을 높였습니다. 26일엔 A4 용지 8페이지의 입장문과 참고자료를, 27일에는 6페이지의 본 입장문과 4페이지의 설명자료를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단체의 입장문 치고는 이례적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입니다.

경영계의 입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한국 상황에는 시기상조"이고, 그런 만큼 경영계에게도 별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①대체근로 허용 ②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③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④쟁의행위 찬반투표 유효기간 등 도입 ⑤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EU FTA 협정 관련 이슈’에 대한 경영계 입장 / 2019년 3월 26일‘한-EU FTA 협정 관련 이슈’에 대한 경영계 입장 / 2019년 3월 26일

특히 EU의 이른바 '경고'를 놓고 경영계는 노동계와 큰 인식 차를 드러냈습니다. 노동계가 ILO 핵심협약 미비준시 EU가 실질적인 통상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경영계는 "보복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한-EU FTA 협정문에 대한 법적‧논리적 기본구조에 대한 근거가 미약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 노동계의 이런 우려가 "과장되고 선동적인 추측"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협정문이 비준 자체가 아니라 '비준 노력'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 자체가 곧바로 EU의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겁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 "EU 분명히 응징할 것"

경사노위는 ILO 관련 논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 박수근 위원장은 28일 진행된 전체회의 직후 브리핑을 5분여 만에 끝냈습니다. 기자들에게도 별도의 질의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합의가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온 뒤 이승욱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기자들에게 경영계의 입장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승욱 위원도 경영계 못지 않게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26일, 27일 발표된 경영계의 입장은 "엉터리 해석", "대단히 무책임한 소리"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 위원은 먼저 '법적 구속력'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EU는 3월 4일자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4월 9일까지 한국정부가 '실체적인 행동(Substantive Action)'을 하지 않으면 '이행 강제(Enforcement Machanism)'로 넘기겠다고 했는데, 이는 분명히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4월 9일까지 '실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수준의 제재가 나올지에 대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센 내용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전망하면서 "과거 EU가 유사한 상황에서 라트비아나 스리랑카 등의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한 바가 있고, ILO도 지난 2000년 모든 회원국에 미얀마에 대해 모든 협력관계를 중단하라는 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EU가 우리나라에 피해가 갈 행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경제단체가 아닌 개별 기업체에 집중될 것"이라며 "특히 현대기아차와 같이 EU에 수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거의 궤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총 등 경영계가 개별 기업이 아닌 경제단체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남은 시간 불과 일주일... 간극 좁힐 수 있을까

이 위원의 발언이 알려지자 경총도 곧바로 재반박 입장문을 냈습니다. 경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나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비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위원의 발언은 경사노위 공익위원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발언이라 여기는 바, 경사노위가 이 교수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반면 이 위원은 "경영계에서 이 위원이 편향된 인식을 가졌다고 불만을 제기한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나는 국제노동기준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며 "만약 이런 말이 편향된 것이라면 국제노동기구, ILO가 편향됐다고 얘기해야 하고, 항의를 하려면 내가 아닌 국제노동기구에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월 초까지 논의가 마무리되려면 남은 시간은 불과 일주일 안팎입니다. 경사노위는 이제부터 협상의 급을 각 단체들의 '부대표급'으로 높여 논의에 속도를 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노사정 각자의 입장 사이에 인식차가 큰 만큼,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 만약 부대표급 협상을 통해 결론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탄력근로제 본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드러났던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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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연장’된 ILO 핵심협약 논의…미비준 후폭풍은 얼마나?
    • 입력 2019-03-29 07:00:41
    취재K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된 노사정 대화가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어제(28일) 한 달 만에 전체회의를 잡았는데,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논의시한을 4월 초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경사노위는 '4월 초'라고만 말했지만, 실질적인 마감 시한은 4월 9일로 여겨집니다. EU가 한국에 'ILO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성과'를 제출해 달라고 못 박은 날이 4월 9일이기 때문입니다. EU는 이런 성과물이 없다면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할 것이라고 우리나라에 일종의 '경고'를 해 둔 상태입니다.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를 시작했던 게 지난해 7월. 벌써 8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진척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의 중요성이나 파장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EU의 '경고'의 의미를 놓고 각 주체별 입장차가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경영계 "EU 보복 우려는 선동적인 추측일 뿐"

경영계는 경사노위 의제별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이틀(26일, 27일)에 걸쳐 두 차례나 입장문을 냈습니다. 26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단독 명의였지만, 27일에는 경총과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단체 입장문으로 '격'을 높였습니다. 26일엔 A4 용지 8페이지의 입장문과 참고자료를, 27일에는 6페이지의 본 입장문과 4페이지의 설명자료를 첨부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단체의 입장문 치고는 이례적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입니다.

경영계의 입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한국 상황에는 시기상조"이고, 그런 만큼 경영계에게도 별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①대체근로 허용 ②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③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④쟁의행위 찬반투표 유효기간 등 도입 ⑤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EU FTA 협정 관련 이슈’에 대한 경영계 입장 / 2019년 3월 26일
특히 EU의 이른바 '경고'를 놓고 경영계는 노동계와 큰 인식 차를 드러냈습니다. 노동계가 ILO 핵심협약 미비준시 EU가 실질적인 통상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경영계는 "보복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한-EU FTA 협정문에 대한 법적‧논리적 기본구조에 대한 근거가 미약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 노동계의 이런 우려가 "과장되고 선동적인 추측"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협정문이 비준 자체가 아니라 '비준 노력'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 자체가 곧바로 EU의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겁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 "EU 분명히 응징할 것"

경사노위는 ILO 관련 논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 박수근 위원장은 28일 진행된 전체회의 직후 브리핑을 5분여 만에 끝냈습니다. 기자들에게도 별도의 질의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합의가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온 뒤 이승욱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기자들에게 경영계의 입장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승욱 위원도 경영계 못지 않게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26일, 27일 발표된 경영계의 입장은 "엉터리 해석", "대단히 무책임한 소리"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 위원은 먼저 '법적 구속력'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EU는 3월 4일자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4월 9일까지 한국정부가 '실체적인 행동(Substantive Action)'을 하지 않으면 '이행 강제(Enforcement Machanism)'로 넘기겠다고 했는데, 이는 분명히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4월 9일까지 '실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수준의 제재가 나올지에 대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센 내용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전망하면서 "과거 EU가 유사한 상황에서 라트비아나 스리랑카 등의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한 바가 있고, ILO도 지난 2000년 모든 회원국에 미얀마에 대해 모든 협력관계를 중단하라는 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EU가 우리나라에 피해가 갈 행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경제단체가 아닌 개별 기업체에 집중될 것"이라며 "특히 현대기아차와 같이 EU에 수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거의 궤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총 등 경영계가 개별 기업이 아닌 경제단체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남은 시간 불과 일주일... 간극 좁힐 수 있을까

이 위원의 발언이 알려지자 경총도 곧바로 재반박 입장문을 냈습니다. 경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나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비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위원의 발언은 경사노위 공익위원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발언이라 여기는 바, 경사노위가 이 교수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반면 이 위원은 "경영계에서 이 위원이 편향된 인식을 가졌다고 불만을 제기한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나는 국제노동기준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며 "만약 이런 말이 편향된 것이라면 국제노동기구, ILO가 편향됐다고 얘기해야 하고, 항의를 하려면 내가 아닌 국제노동기구에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월 초까지 논의가 마무리되려면 남은 시간은 불과 일주일 안팎입니다. 경사노위는 이제부터 협상의 급을 각 단체들의 '부대표급'으로 높여 논의에 속도를 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노사정 각자의 입장 사이에 인식차가 큰 만큼,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 만약 부대표급 협상을 통해 결론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탄력근로제 본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드러났던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도 여전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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