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걸린 인왕산 그림, 누가 그렸을까?

입력 2019.03.29 (13: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청와대 본관 로비. 회견이 진행되는 사이 회견장에 걸린 그림 몇 점이 카메라에 언뜻언뜻 비쳤습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어떤 그림인지 알아차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았죠. 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끈 그림이 있습니다. 회견장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인왕산을 그린 풍경화였습니다. 청와대 뒤 북악산을 등지고 선 자리를 기준으로 보면 서쪽에 인왕산이 있죠. 그림도 딱 그 방향에 걸렸습니다.


높이 338미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 온몸이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 훤한 이마를 드러내고, 기이한 모습을 한 갖가지 바위가 곳곳에 숨어 있는 자연 돌조각 공원.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한양 도성을 품 안에 가만히 끌어안은 산.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철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산. 경복궁 서쪽 마을 서촌에 깃든 화가와 문인, 건축가들에게 지금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상상의 샘. 이름에 임금 왕(王) 자를 품은 몇 안 되는 산. 경복궁 근처에 가면 어디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산.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산은 어디일까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림으로만 보자면 단연 1위는 금강산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그려진 산은 어디일까요? 네, 바로 인왕산입니다. 따지고 보면 경복궁 뒤편에 늠름하게 서 있는 북악산도 있고 남산도 있고, 좀 멀게는 관악산, 낙산, 북한산, 도봉산도 있잖아요. 하지만 조선의 화성(畵聖)으로 불린 겸재 정선이 저 유명한 <인왕제색도>를 그려 수도 한양의 '랜드마크'로 만든 이후 인왕산은 명실상부 '재발견'됩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화가들은 인왕산을 그리고 또 그려오고 있는 것이고요.

오용길 [서울-인왕산], 2005, 종이에 수묵담채, 196.5×136.5×(2)cm, 196.5×136.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오용길 [서울-인왕산], 2005, 종이에 수묵담채, 196.5×136.5×(2)cm, 196.5×136.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시 청와대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린 인왕산 그림은 한국화가 오용길 화백의 <서울-인왕산>(2005)이란 작품입니다.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 옛 한국일보 사옥 자리에서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며 경복궁 앞마당과 인왕산 아래 주택가까지 넉넉하게 품고 있는 인왕산을 그렸습니다. 2005년에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선보였던 것으로,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사들여 이번에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린 겁니다.

오용길 [봄의 기운-인왕산],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53×65cm오용길 [봄의 기운-인왕산],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53×65cm

풍경을 주로 그리는 오용길 화백은 꽤 많은 인왕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에 소개한 사진은 수성동 계곡에서 찍은 인왕산의 모습인데요.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인왕산을 바라본 작품이 바로 <봄의 기운-인왕산>(2019)입니다. 온갖 꽃이 알록달록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인왕산은 예로부터 꽃놀이 장소로 유명했답니다. 노랗게 물든 산수유와 개나리, 분홍 진달래까지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봄의 정경에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그림입니다.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오용길 화백은 '서양화 같은 산수화'로 우리 전통 한국화를 혁신한 화가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전통 수묵 산수화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화가 자신도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가 아니라 지필묵채로 이룩된 풍경화"라고 한 모양입니다. 5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의 풍경을 그려온 화가답게 녹록지 않은 내공이 그림마다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오용길 [봄의 기운-산동],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94×170cm오용길 [봄의 기운-산동],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94×170cm

봄입니다. 어쩌면 화가는 풍경에 스며드는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화가는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다가오는 봄을 한껏 담아낸 그림으로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활짝 만개한 산수유 꽃 물결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봄의 기운-산동>(2019)을 비롯해서 전시장에 걸린 작품 20점 대부분 지난해와 올해 완성한 최신작들입니다.

1973년, 스물일곱 나이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화가는 세월이 흘러 일흔이 넘은 지금도 봄이 오는 소리에 한없이 가슴 설레는 현역입니다. 그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봄볕만큼이나 따뜻한 화가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그런 봄을 만나러 오늘 전시장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전시 정보
제목: 오용길 展
기간: 2019년 4월 9일까지
장소: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
작품: 수묵 채색화 20점

오용길 [봄의 기운-예술공원],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41×53cm오용길 [봄의 기운-예술공원],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41×53cm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청와대에 걸린 인왕산 그림, 누가 그렸을까?
    • 입력 2019-03-29 13:53:28
    취재K
2019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청와대 본관 로비. 회견이 진행되는 사이 회견장에 걸린 그림 몇 점이 카메라에 언뜻언뜻 비쳤습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어떤 그림인지 알아차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았죠. 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끈 그림이 있습니다. 회견장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인왕산을 그린 풍경화였습니다. 청와대 뒤 북악산을 등지고 선 자리를 기준으로 보면 서쪽에 인왕산이 있죠. 그림도 딱 그 방향에 걸렸습니다.


높이 338미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 온몸이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 훤한 이마를 드러내고, 기이한 모습을 한 갖가지 바위가 곳곳에 숨어 있는 자연 돌조각 공원.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한양 도성을 품 안에 가만히 끌어안은 산.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철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산. 경복궁 서쪽 마을 서촌에 깃든 화가와 문인, 건축가들에게 지금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상상의 샘. 이름에 임금 왕(王) 자를 품은 몇 안 되는 산. 경복궁 근처에 가면 어디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산.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산은 어디일까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림으로만 보자면 단연 1위는 금강산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그려진 산은 어디일까요? 네, 바로 인왕산입니다. 따지고 보면 경복궁 뒤편에 늠름하게 서 있는 북악산도 있고 남산도 있고, 좀 멀게는 관악산, 낙산, 북한산, 도봉산도 있잖아요. 하지만 조선의 화성(畵聖)으로 불린 겸재 정선이 저 유명한 <인왕제색도>를 그려 수도 한양의 '랜드마크'로 만든 이후 인왕산은 명실상부 '재발견'됩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화가들은 인왕산을 그리고 또 그려오고 있는 것이고요.

오용길 [서울-인왕산], 2005, 종이에 수묵담채, 196.5×136.5×(2)cm, 196.5×136.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시 청와대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린 인왕산 그림은 한국화가 오용길 화백의 <서울-인왕산>(2005)이란 작품입니다.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 옛 한국일보 사옥 자리에서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며 경복궁 앞마당과 인왕산 아래 주택가까지 넉넉하게 품고 있는 인왕산을 그렸습니다. 2005년에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 선보였던 것으로,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 사들여 이번에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린 겁니다.

오용길 [봄의 기운-인왕산],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53×65cm
풍경을 주로 그리는 오용길 화백은 꽤 많은 인왕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에 소개한 사진은 수성동 계곡에서 찍은 인왕산의 모습인데요.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인왕산을 바라본 작품이 바로 <봄의 기운-인왕산>(2019)입니다. 온갖 꽃이 알록달록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인왕산은 예로부터 꽃놀이 장소로 유명했답니다. 노랗게 물든 산수유와 개나리, 분홍 진달래까지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봄의 정경에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그림입니다.

실제 풍경을 화폭에 담아온 오용길 화백은 '서양화 같은 산수화'로 우리 전통 한국화를 혁신한 화가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전통 수묵 산수화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화가 자신도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가 아니라 지필묵채로 이룩된 풍경화"라고 한 모양입니다. 5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의 풍경을 그려온 화가답게 녹록지 않은 내공이 그림마다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오용길 [봄의 기운-산동],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94×170cm
봄입니다. 어쩌면 화가는 풍경에 스며드는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화가는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다가오는 봄을 한껏 담아낸 그림으로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활짝 만개한 산수유 꽃 물결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봄의 기운-산동>(2019)을 비롯해서 전시장에 걸린 작품 20점 대부분 지난해와 올해 완성한 최신작들입니다.

1973년, 스물일곱 나이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화가는 세월이 흘러 일흔이 넘은 지금도 봄이 오는 소리에 한없이 가슴 설레는 현역입니다. 그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봄볕만큼이나 따뜻한 화가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그런 봄을 만나러 오늘 전시장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전시 정보
제목: 오용길 展
기간: 2019년 4월 9일까지
장소: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
작품: 수묵 채색화 20점

오용길 [봄의 기운-예술공원], 2019, 화선지에 먹과 채색, 41×53cm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