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사람만 위협? 동물도 위험!

입력 2019.03.30 (07:01) 수정 2019.03.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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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사진 속 손바닥만 한 마스크를 쓴 귀여운 강아지 한마리. 한 30살 여성의 반려견 '밤비'입니다. 이 여성은 최근 '밤비'를 위한 반려견용 100% 순면 마스크를 따로 구입했습니다.

또 이 여성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데, 나만 마스크를 쓰고 밤비는 무방비한 상태로 산책했다"며. 밤비가 나보다 바닥과 더 가까워 미세먼지가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들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며 새롭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달 초 사상 처음으로 1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수도권에 발령되면서, 반려동물들의 건강에 대한 반려인들의 걱정도 커져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아닌 동물들은 여전히 바깥에

'위험은 차별적이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미세먼지에 대한 위험도 역시 공평하게 적용되진 않습니다. 반려인들의 돌봄을 받는 반려동물과 아무런 조치 없이 바깥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이 겪는 위험이 같을 순 없겠죠. 바깥에서 생활하는 동물들 대부분은 장시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미세먼지가 가득한 실외 환경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미세먼지는 고스란히 이들의 몸속을 파고듭니다.


이른바 '청계천 애완동물거리'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

가게마다 토끼와 고슴도치 등을 거리에 내놓고 판매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오가는 인도 위로 내놓은 우리 안에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햄스터처럼 크기가 작은 설치류가 들어 있는 유리통에는 뚜껑조차 없습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이렇게 동물들을 밖에 놔둬도 괜찮나요?"

기자가 물어보자,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퉁명스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혀 상관없다.", "무슨 그런 걸 신경 쓰느냐"는 대꾸가 돌아왔습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8시간 이상 동물들을 바깥에 내놓고 판매한다는 동물 가게 주인 A 씨 역시 "상관없다. 오늘은 햇볕이 잘 들어 오히려 좋은 날씨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서울의 미세먼지 수치는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원은...? 여전히 바깥에 '방치'


사정은 야외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도 비슷합니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의 한 동물원을 찾았을 때 사슴과 알파카, 당나귀 등은 모두 야외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온도에 민감한 거북이 우리에만 '추워서 11월부터 실내로 들어갔어요.'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을 뿐, 다른 초식 동물들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씨에도 바깥에서 탁한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새들이 갇혀 있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새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는 크게 제작됐지만, 철망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바깥에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원숭이들이 사는 우리에서도 미세먼지 환기 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해당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외출을 삼가라고 경고할 정도였지만, 동물들은 계속해서 고농도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있는 겁니다.

우리 법은 동물원이나 수족관 운영자는 보유한 생물마다 특성에 맞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적정한 서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세 먼지 가득한 공간을 과연 '적정한 서식 환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 "미세먼지, 동물 건강에 안 좋아"...농림축산식품부, "대안은 아직"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동물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합니다.

수의사인 이학범 데일리벳 대표는 "반려 동물은 사람보다 크기가 작지만, 몸무게당 흡입하는 공기량이 사람보다 많다"며 "그래서 미세먼지 피해를 더 크게 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도 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곳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그런 날 동물이 계속 바깥에 있는 건 좋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소속 명보영 수의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아직 연구된 바는 없지만, 동물의 호흡기와 안과, 피부질환에 미세먼지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 수의사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겁니다.

명 씨는 "미세먼지 속 황산염과 질산염 등 화학물질이 동물의 몸 안에 쌓이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나이가 많거나 심혈관계 질병을 앓고 있는 동물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실제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함께 지내던 반려 동물이 먼저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박희명 건국대 수의 내과학 교수는 "당시 살균제의 영향을 받은 반려견들이 사람처럼 피를 토하거나 죽는 사례가 보고됐다"며 "미세먼지 역시 동물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은 같은 순환기관을 갖고 있어, 같은 환경에 노출될 경우 동물이 사람과 비슷한 피해를 보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 동물들의 '자유롭게 숨 쉴 권리'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습니다. 해마다 3시간씩, 동물 복지나 질병 예방 교육 등을 받아야 하는 동물 판매업자나 전시 업자들의 강의 내용에서도 미세먼지 관련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미세먼지와 직접 관련된 교육 내용은 없다"며, "예방 접종이나 구충 검사 등 질병이나 체중 유지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매년 교육 내용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관련 교육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국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모두 84곳입니다. 분양 가게와 경매장 등 애완동물 판매가 이뤄지는 곳은 2017년 기준 4천 곳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동물에게 미세먼지 보호 조치를 하는 곳은 몇 곳이나 될까요? 피부 두드러기부터 폐암, 심지어 임산부의 조산까지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의 해악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 속수무책으로 미세먼지에 노출된 동물들에게도 보다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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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세먼지, 사람만 위협? 동물도 위험!
    • 입력 2019-03-30 07:01:00
    • 수정2019-03-30 17:49:59
    취재K
인스타그램 사진 속 손바닥만 한 마스크를 쓴 귀여운 강아지 한마리. 한 30살 여성의 반려견 '밤비'입니다. 이 여성은 최근 '밤비'를 위한 반려견용 100% 순면 마스크를 따로 구입했습니다.

또 이 여성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데, 나만 마스크를 쓰고 밤비는 무방비한 상태로 산책했다"며. 밤비가 나보다 바닥과 더 가까워 미세먼지가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들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며 새롭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달 초 사상 처음으로 1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수도권에 발령되면서, 반려동물들의 건강에 대한 반려인들의 걱정도 커져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아닌 동물들은 여전히 바깥에

'위험은 차별적이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미세먼지에 대한 위험도 역시 공평하게 적용되진 않습니다. 반려인들의 돌봄을 받는 반려동물과 아무런 조치 없이 바깥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이 겪는 위험이 같을 순 없겠죠. 바깥에서 생활하는 동물들 대부분은 장시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미세먼지가 가득한 실외 환경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미세먼지는 고스란히 이들의 몸속을 파고듭니다.


이른바 '청계천 애완동물거리'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

가게마다 토끼와 고슴도치 등을 거리에 내놓고 판매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오가는 인도 위로 내놓은 우리 안에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햄스터처럼 크기가 작은 설치류가 들어 있는 유리통에는 뚜껑조차 없습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이렇게 동물들을 밖에 놔둬도 괜찮나요?"

기자가 물어보자,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퉁명스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혀 상관없다.", "무슨 그런 걸 신경 쓰느냐"는 대꾸가 돌아왔습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8시간 이상 동물들을 바깥에 내놓고 판매한다는 동물 가게 주인 A 씨 역시 "상관없다. 오늘은 햇볕이 잘 들어 오히려 좋은 날씨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서울의 미세먼지 수치는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원은...? 여전히 바깥에 '방치'


사정은 야외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도 비슷합니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의 한 동물원을 찾았을 때 사슴과 알파카, 당나귀 등은 모두 야외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온도에 민감한 거북이 우리에만 '추워서 11월부터 실내로 들어갔어요.'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을 뿐, 다른 초식 동물들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씨에도 바깥에서 탁한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새들이 갇혀 있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새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는 크게 제작됐지만, 철망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바깥에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원숭이들이 사는 우리에서도 미세먼지 환기 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해당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외출을 삼가라고 경고할 정도였지만, 동물들은 계속해서 고농도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있는 겁니다.

우리 법은 동물원이나 수족관 운영자는 보유한 생물마다 특성에 맞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적정한 서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세 먼지 가득한 공간을 과연 '적정한 서식 환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 "미세먼지, 동물 건강에 안 좋아"...농림축산식품부, "대안은 아직"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동물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합니다.

수의사인 이학범 데일리벳 대표는 "반려 동물은 사람보다 크기가 작지만, 몸무게당 흡입하는 공기량이 사람보다 많다"며 "그래서 미세먼지 피해를 더 크게 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도 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곳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그런 날 동물이 계속 바깥에 있는 건 좋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소속 명보영 수의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아직 연구된 바는 없지만, 동물의 호흡기와 안과, 피부질환에 미세먼지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 수의사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겁니다.

명 씨는 "미세먼지 속 황산염과 질산염 등 화학물질이 동물의 몸 안에 쌓이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나이가 많거나 심혈관계 질병을 앓고 있는 동물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실제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함께 지내던 반려 동물이 먼저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박희명 건국대 수의 내과학 교수는 "당시 살균제의 영향을 받은 반려견들이 사람처럼 피를 토하거나 죽는 사례가 보고됐다"며 "미세먼지 역시 동물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은 같은 순환기관을 갖고 있어, 같은 환경에 노출될 경우 동물이 사람과 비슷한 피해를 보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 동물들의 '자유롭게 숨 쉴 권리'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습니다. 해마다 3시간씩, 동물 복지나 질병 예방 교육 등을 받아야 하는 동물 판매업자나 전시 업자들의 강의 내용에서도 미세먼지 관련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미세먼지와 직접 관련된 교육 내용은 없다"며, "예방 접종이나 구충 검사 등 질병이나 체중 유지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매년 교육 내용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관련 교육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국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모두 84곳입니다. 분양 가게와 경매장 등 애완동물 판매가 이뤄지는 곳은 2017년 기준 4천 곳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동물에게 미세먼지 보호 조치를 하는 곳은 몇 곳이나 될까요? 피부 두드러기부터 폐암, 심지어 임산부의 조산까지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의 해악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 속수무책으로 미세먼지에 노출된 동물들에게도 보다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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