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논란은 나경원의 잘못”

입력 2019.03.30 (08:00) 수정 2019.04.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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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은 의원들의 삿대질 속에 아수라장이 됐다. 발단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나경원 원내대표의 ‘여덟 글자’였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나 원내대표는 단상에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이 이제는 부끄럽다"며 "더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이라고 이어갔지만, 이후의 말은 고성 속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소란 속에서도 한 시간여에 걸친 연설을 마친 나 원내대표는 “나경원! 나경원!”이라는 연호 속에 본회의장을 나서며, 대기 중이던 언론사 카메라들 앞에서 파이팅 포즈까지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논란의 중심은‘제1야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정도였다.


하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나 원내대표가 ‘외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후 민주당에서 나 원내대표가 인용한 기사를 쓴 블룸버그 기자를 강하게 비판하는 논평이 나오며 정치권과 외신의 갈등으로 격화됐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오는 31일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에 담긴 언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수석대변인' 논란 '인용한 자'의 잘못"

'저널리즘토크쇼 J'의 패널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비유적 표현 측면에서 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을 김정은 위원장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면서 쓴 기사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인용한 자의 잘못"이라고 평가했다.

'J'의 또 다른 패널인 독일 ARD 안톤 숄츠 기자도 “이 기사를 읽어보면, 전문가들의 견해가 등장하고 문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약간의 문제라면, 기자 개인적인 생각과 팩트를 섞어 (‘수석대변인’) 표현이 나온 것인데 기사 제목 외에는 별다른 지적을 할 수 없는 기사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인용했다는 외신 보도를 들여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해 9월 26일 작성한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이라는 기사의 제목이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UN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 됐다.’ 정도로 번역된다. 기사는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UN 총회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칭찬하며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시작된다.

이어지는 기사에는 제목처럼 문 대통령을 ‘대변인’으로 명시하는 내용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의 다른 견해가 등장한다. “나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대변인이라기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둘 다 다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는 스테판 노에르퍼 코리아소사이어티 정책 선임연구원의 평가가 실렸다. “문 대통령이 전 세계 회의론자들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직 미국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등의 문장도 담겼다.

언론도 정치인도 "외신에 따르면…"

정준희 교수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 기사의 일부를 인용이라고 밝히지 않고 연설에 인용을 했고, 논란 이후 '블룸버그 기사 중 일부를 인용했다'고 화살을 돌렸는데, 이제 이 '외신 기사'로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이상한 양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외신이 갖는 권위가 남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을 중시하는 콤플렉스가 존재하고, 외신을 활용하는 것이 여전히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속에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6개월 전, 블룸버그통신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 기사가 처음 등장하자, 이틀 뒤 조선일보가 <외신, “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됐다”>는 제목의 사설로 이 기사를 인용했다. '문 대통령이 중재 외교는 해야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북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외신으로부터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평가를 듣고 있다'고 재차 '외신'을 언급했다.

외교관 출신인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는 이에 대해 “진보와 보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수 천 개 넘는 외신을 국내 언론이 하나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있고, 하나의 기사를 인용해 '외신 모두가 이런 방향으로 평가한다’는 착각을 들도록 몰아가는 것도 위험한 지점이다”라고 밝혔다.

“여당 대변인이 '검은 머리 외신'… 충격”


‘여덟 글자’의 화살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을 썼던 외신기자를 저격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지난 3월 13일, 블룸버그통신 기자의 실명을 언급한 논평을 내놨다. 이 대변인은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賣國)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했고, 다음날에도 "해당 기사는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 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나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기사를 쓴 블룸버그 기자의 이력과 자격을 지적한 점, '매국', '검은 머리 외신' 등의 단어 사용을 놓고 새로운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외신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지난 16일, 서울외신기자클럽이 특파원 집단 중에서 가장 먼저 성명을 냈는데 ‘민주당이 발표한 성명 때문에 기자 개인의 신변에 큰 위협이 가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특히 기자 개인에 대해서 국가 원수를 모독한 매국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언론 통제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에는 아시아 출신 미국 언론인 모임인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가 성명을 내고 "외신에 대한 오해를 명백히 드러냈다, '검은 머리 외신'이라는 표현에 한국 기자가 외국 언론사 소속으로 취재활동을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서울외신기자클럽은 3백여 명의 외신기자가 등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현지 채용된 '한국인' 주재원이다.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 아시아지부에도 역시, 한국인이면서 외신에 몸담고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들이 많이 소속돼있다.
안톤 숄츠 기자는 ‘외신 기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사를 쓴 기자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일단 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외신기자 입장에서는 ‘검은 머리 외신’이라는 인종차별적 용어를 쓴 것도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가장 슬픈 것은 국내 정치공방에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지금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야깃거리가 돼버렸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박근혜 정부 때 '편지' 보낸 외신기자클럽

외신기자들이 '충격'을 받아 행동에 나선 대표적인 또 다른 사건으로는 지난 정부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기소돼 출국금지 된 '산케이 지국장 카토 타츠야 씨' 사례가 있다. 당시 서울외신기자협회는 "박근혜 대통령 귀하"로 시작되는 편지를 작성해 게재했다.


'팔순이 넘는 어머니와 장모가 귀국할 거라 믿고 있다'라는 사연과 함께 '서울외신기자클럽'이 그동안 많은 기여를 했다며 선처를 부탁하고 있는 형식이다. 민주당을 향해 '성명'을 발표한 최근의 행보와는 달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준희 교수는 "단순한 발언이 아닌, 실질적인 형사법을 외국 기자에게 적용시키려고 했던 상황인데 훨씬 강한 반발이 나와도 되는 상황이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 자유 측면에서 보면 '산케이 지국장 사건'은 훨씬 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 사례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안톤 숄츠 기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은 외신 기자들도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가 낮다는 것을 인지하고있던 때"라면서 "외신기자클럽의 '편지'형식의 항의문에 대해 유추해보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너무 강하게 항의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 담론'을 '언론 담론'으로 바꾼 건 민주당"

외신기자들의 직접적인 항의를 받은 민주당은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며 결국 엿새 만에 서면 브리핑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이해식 대변인 이름의 논평을 내고, 기자의 이름, 개인 이력을 삭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면서도 '기자의 글을 비평하고 때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의 정치 활동의 자유에 속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정준희 교수는 “대변인은 정당인으로서가 아니라 정당의 '입'으로 언론을 상대하는 위치에 있는데, 이런 논평은 부적절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타깃을 잘못 잡아 ‘정치 담론’을 ‘언론 담론화’ 시키면서 논점을 이탈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대응을 하고 해석하는 것이 논평의 기초가 돼야 하는데, 상대 당파가 아니라 기사를 쓴 기자 자격을 문제삼으면서 스스로 수렁에 빠졌다는 것이다.

장부승 교수는 "정당이 언론의 기사에 맞대응 할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당 기사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과 맥락을 따져보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매국' '검은 머리' 등의 표현으로 애국 등의 이념을 강조하는 듯한 방향을 잡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31일(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37회 '무엇이 외교 결례인가?'는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독일 기자 안톤 숄츠,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송수진·김덕훈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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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논란은 나경원의 잘못”
    • 입력 2019-03-30 08:00:43
    • 수정2019-04-12 14:06:21
    저널리즘 토크쇼 J
3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은 의원들의 삿대질 속에 아수라장이 됐다. 발단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나경원 원내대표의 ‘여덟 글자’였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나 원내대표는 단상에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이 이제는 부끄럽다"며 "더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이라고 이어갔지만, 이후의 말은 고성 속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소란 속에서도 한 시간여에 걸친 연설을 마친 나 원내대표는 “나경원! 나경원!”이라는 연호 속에 본회의장을 나서며, 대기 중이던 언론사 카메라들 앞에서 파이팅 포즈까지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논란의 중심은‘제1야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정도였다. 하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나 원내대표가 ‘외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후 민주당에서 나 원내대표가 인용한 기사를 쓴 블룸버그 기자를 강하게 비판하는 논평이 나오며 정치권과 외신의 갈등으로 격화됐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오는 31일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에 담긴 언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수석대변인' 논란 '인용한 자'의 잘못" '저널리즘토크쇼 J'의 패널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비유적 표현 측면에서 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을 김정은 위원장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면서 쓴 기사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인용한 자의 잘못"이라고 평가했다. 'J'의 또 다른 패널인 독일 ARD 안톤 숄츠 기자도 “이 기사를 읽어보면, 전문가들의 견해가 등장하고 문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약간의 문제라면, 기자 개인적인 생각과 팩트를 섞어 (‘수석대변인’) 표현이 나온 것인데 기사 제목 외에는 별다른 지적을 할 수 없는 기사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인용했다는 외신 보도를 들여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해 9월 26일 작성한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이라는 기사의 제목이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UN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 됐다.’ 정도로 번역된다. 기사는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UN 총회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칭찬하며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시작된다. 이어지는 기사에는 제목처럼 문 대통령을 ‘대변인’으로 명시하는 내용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의 다른 견해가 등장한다. “나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대변인이라기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둘 다 다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는 스테판 노에르퍼 코리아소사이어티 정책 선임연구원의 평가가 실렸다. “문 대통령이 전 세계 회의론자들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직 미국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등의 문장도 담겼다. 언론도 정치인도 "외신에 따르면…" 정준희 교수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 기사의 일부를 인용이라고 밝히지 않고 연설에 인용을 했고, 논란 이후 '블룸버그 기사 중 일부를 인용했다'고 화살을 돌렸는데, 이제 이 '외신 기사'로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이상한 양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외신이 갖는 권위가 남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을 중시하는 콤플렉스가 존재하고, 외신을 활용하는 것이 여전히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속에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6개월 전, 블룸버그통신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 기사가 처음 등장하자, 이틀 뒤 조선일보가 <외신, “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됐다”>는 제목의 사설로 이 기사를 인용했다. '문 대통령이 중재 외교는 해야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북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외신으로부터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평가를 듣고 있다'고 재차 '외신'을 언급했다. 외교관 출신인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는 이에 대해 “진보와 보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수 천 개 넘는 외신을 국내 언론이 하나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있고, 하나의 기사를 인용해 '외신 모두가 이런 방향으로 평가한다’는 착각을 들도록 몰아가는 것도 위험한 지점이다”라고 밝혔다. “여당 대변인이 '검은 머리 외신'… 충격” ‘여덟 글자’의 화살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표현을 썼던 외신기자를 저격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지난 3월 13일, 블룸버그통신 기자의 실명을 언급한 논평을 내놨다. 이 대변인은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賣國)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했고, 다음날에도 "해당 기사는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 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나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기사를 쓴 블룸버그 기자의 이력과 자격을 지적한 점, '매국', '검은 머리 외신' 등의 단어 사용을 놓고 새로운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외신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지난 16일, 서울외신기자클럽이 특파원 집단 중에서 가장 먼저 성명을 냈는데 ‘민주당이 발표한 성명 때문에 기자 개인의 신변에 큰 위협이 가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특히 기자 개인에 대해서 국가 원수를 모독한 매국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언론 통제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에는 아시아 출신 미국 언론인 모임인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가 성명을 내고 "외신에 대한 오해를 명백히 드러냈다, '검은 머리 외신'이라는 표현에 한국 기자가 외국 언론사 소속으로 취재활동을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서울외신기자클럽은 3백여 명의 외신기자가 등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현지 채용된 '한국인' 주재원이다.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 아시아지부에도 역시, 한국인이면서 외신에 몸담고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들이 많이 소속돼있다. 안톤 숄츠 기자는 ‘외신 기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사를 쓴 기자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일단 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외신기자 입장에서는 ‘검은 머리 외신’이라는 인종차별적 용어를 쓴 것도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가장 슬픈 것은 국내 정치공방에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지금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야깃거리가 돼버렸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박근혜 정부 때 '편지' 보낸 외신기자클럽 외신기자들이 '충격'을 받아 행동에 나선 대표적인 또 다른 사건으로는 지난 정부 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기소돼 출국금지 된 '산케이 지국장 카토 타츠야 씨' 사례가 있다. 당시 서울외신기자협회는 "박근혜 대통령 귀하"로 시작되는 편지를 작성해 게재했다. '팔순이 넘는 어머니와 장모가 귀국할 거라 믿고 있다'라는 사연과 함께 '서울외신기자클럽'이 그동안 많은 기여를 했다며 선처를 부탁하고 있는 형식이다. 민주당을 향해 '성명'을 발표한 최근의 행보와는 달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준희 교수는 "단순한 발언이 아닌, 실질적인 형사법을 외국 기자에게 적용시키려고 했던 상황인데 훨씬 강한 반발이 나와도 되는 상황이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 자유 측면에서 보면 '산케이 지국장 사건'은 훨씬 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 사례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안톤 숄츠 기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은 외신 기자들도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가 낮다는 것을 인지하고있던 때"라면서 "외신기자클럽의 '편지'형식의 항의문에 대해 유추해보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너무 강하게 항의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 담론'을 '언론 담론'으로 바꾼 건 민주당" 외신기자들의 직접적인 항의를 받은 민주당은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며 결국 엿새 만에 서면 브리핑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이해식 대변인 이름의 논평을 내고, 기자의 이름, 개인 이력을 삭제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면서도 '기자의 글을 비평하고 때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의 정치 활동의 자유에 속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정준희 교수는 “대변인은 정당인으로서가 아니라 정당의 '입'으로 언론을 상대하는 위치에 있는데, 이런 논평은 부적절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타깃을 잘못 잡아 ‘정치 담론’을 ‘언론 담론화’ 시키면서 논점을 이탈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대응을 하고 해석하는 것이 논평의 기초가 돼야 하는데, 상대 당파가 아니라 기사를 쓴 기자 자격을 문제삼으면서 스스로 수렁에 빠졌다는 것이다. 장부승 교수는 "정당이 언론의 기사에 맞대응 할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당 기사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과 맥락을 따져보고 비판한 것이 아니라, '매국' '검은 머리' 등의 표현으로 애국 등의 이념을 강조하는 듯한 방향을 잡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오는 31일(일) 밤 10시 3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37회 '무엇이 외교 결례인가?'는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독일 기자 안톤 숄츠, 장부승 일본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송수진·김덕훈 KBS 기자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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