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까지 이송”…대선 전날 김현희 인도 계획 재확인

입력 2019.03.31 (15:14) 수정 2019.03.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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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외교 교섭 과정이 구체적으로 담긴 당시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당시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 10일 전문을 보면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는 표현은 다음날인 대선(12월 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김현희 인도 지연'에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있습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하여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며, "마유미(김현희)의 인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미묘한(Delicate)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전두환 정부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확인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으로 사실로 확인된 데 이어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재확인된것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에 김현희의 이송을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돼 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돼 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김현희 이송에 대한 한일 간의 신경전은 사건 발생 사흘만인 1987년 12월 2일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주일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당시 전문을 보면, 주일대사관의 박련 공사는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국(한국)은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신병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후지타 국장은 "(김현희 등이) 일본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후지타 국장은 또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더라도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에 어떠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상호 긴밀히 연락, 협조해 나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날 일본 도쿄신문에는 외무성 수뇌부를 인용해 '마유미(김현희)의 신병 인도와 관련, 1차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청구권리가 있다. 여권법 위반 혐의 수사를 위해 신병 인도를 요청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기사가 실렸고 이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에 신병인도 문제를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튿날 주일대사관 측은 일본 외무성을 다시 방문, "마유미에 대한 수사 관할권 문제에 있어 한국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관할권을 가지고 다툼으로써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은 12월 7일 바레인 정부에 '바레인이 김현희를 한국 정부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 최대한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통보했고, "한국과 신병인도를 둘러싸고 경쟁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공식적으로 전했습니다.

김현희를 인도받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이 연기돼 정부가 당혹스러워하는 상황도 당시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레인은 김현희를 현지시간으로 12월 13일 오후 8시 (한국으로) 이송한다고 우리측에 통보했다가 출발을 5시간 앞둔 13일 오후 3시 바레인 내무장관은 현지에 있던 박수길 차관보에게 전화해 '이유는 밝힐 수 없다'면서 이송계획을 24시간 연기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박 차관보는 "인수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시점에서 계획 변경은 커다란 충격"이라며 "연기는 우리측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국내 사정으로 말미암아 마유미를 언제나 인수할 수 있는 입장은 반드시 아니다"며 바레인을 압박했고 한 시간 뒤 내무장관과 다시 통화한 뒤 "(바레인의) 일부 각료가 오늘 비상 각의에서 이의를 제기해 일단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습니다.

대선 전 김현희를 데려온다는 계획에 막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주사우디 대사에게 사우디 정부에 연락해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고, 바레인 고위직들과 친분이 있는 한일개발 조중식 사장과도 접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바레인은 하루 뒤에 김현희의 이송을 승인했고 김현희는 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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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일까지 이송”…대선 전날 김현희 인도 계획 재확인
    • 입력 2019-03-31 15:14:26
    • 수정2019-03-31 16: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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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외교 교섭 과정이 구체적으로 담긴 당시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당시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 10일 전문을 보면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는 표현은 다음날인 대선(12월 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김현희 인도 지연'에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있습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하여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며, "마유미(김현희)의 인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미묘한(Delicate)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전두환 정부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확인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으로 사실로 확인된 데 이어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재확인된것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에 김현희의 이송을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돼 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김현희 이송에 대한 한일 간의 신경전은 사건 발생 사흘만인 1987년 12월 2일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주일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당시 전문을 보면, 주일대사관의 박련 공사는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국(한국)은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신병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후지타 국장은 "(김현희 등이) 일본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후지타 국장은 또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더라도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에 어떠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상호 긴밀히 연락, 협조해 나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날 일본 도쿄신문에는 외무성 수뇌부를 인용해 '마유미(김현희)의 신병 인도와 관련, 1차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청구권리가 있다. 여권법 위반 혐의 수사를 위해 신병 인도를 요청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기사가 실렸고 이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에 신병인도 문제를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튿날 주일대사관 측은 일본 외무성을 다시 방문, "마유미에 대한 수사 관할권 문제에 있어 한국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관할권을 가지고 다툼으로써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은 12월 7일 바레인 정부에 '바레인이 김현희를 한국 정부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 최대한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통보했고, "한국과 신병인도를 둘러싸고 경쟁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공식적으로 전했습니다.

김현희를 인도받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이 연기돼 정부가 당혹스러워하는 상황도 당시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레인은 김현희를 현지시간으로 12월 13일 오후 8시 (한국으로) 이송한다고 우리측에 통보했다가 출발을 5시간 앞둔 13일 오후 3시 바레인 내무장관은 현지에 있던 박수길 차관보에게 전화해 '이유는 밝힐 수 없다'면서 이송계획을 24시간 연기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박 차관보는 "인수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시점에서 계획 변경은 커다란 충격"이라며 "연기는 우리측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국내 사정으로 말미암아 마유미를 언제나 인수할 수 있는 입장은 반드시 아니다"며 바레인을 압박했고 한 시간 뒤 내무장관과 다시 통화한 뒤 "(바레인의) 일부 각료가 오늘 비상 각의에서 이의를 제기해 일단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습니다.

대선 전 김현희를 데려온다는 계획에 막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주사우디 대사에게 사우디 정부에 연락해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고, 바레인 고위직들과 친분이 있는 한일개발 조중식 사장과도 접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바레인은 하루 뒤에 김현희의 이송을 승인했고 김현희는 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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