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격차 확대]③ 투자 위해 돈 쌓는다는 기업, 초라한 투자 성적표

입력 2019.04.02 (18:01) 수정 2019.05.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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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늘리는 것을 두고 기업가치와 투자 여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투자 여력을 높이고 있는 만큼 그동안 투자를 제대로 해왔을까?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가 2018년 3월 공시된 재무제표를 토대로 사내유보금을 조사한 결과 10대 재벌이 보유한 유보금이 759조 원, 30대 재벌이 보유한 유보금이 883조 원에 달했다. 대기업 전체로 늘리면 1,4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 기업 설비투자 얼마나 하고 있나?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그 이익을 공급자, 주주, 채권자, 정부, 그리고 노동자에게 분배한다. 다만 미래를 위해 일정 부분을 유보금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이렇게 남겨둔 돈이 실제로 투자에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해당사자들에게 좀 더 나눠주는 게 경제주체 전체를 위해선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노동자나 공급자에게 흘러들어 간 돈이 다시 소비에 쓰여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들의 투자상황은 기대 이하다.

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산업은행이 3,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투자실태와 계획을 조사한 결과 2018년 설비투자는 2017년 189.8조 원보다 4.4% 감소한 181.5조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2019년은 전년대비 6.3% 줄어든 170조 원에 그칠 것으로 조사돼 2년 연속 감소가 예상된다. 그나마 2012년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이 4% 이상 오른 때는 2014년과 2017년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전체 설비투자액 중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의 비중이 특히 높아 이들 업종을 제외하면 사실상 투자는 정체 상태다. 그나마 기업들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행투자보다는 대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노후시설을 개선하는데 설비투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설비투자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은 국내외 수요부진과 글로벌 경기 약세로 국내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게 주요인이다. 설비투자를 해봤자 자칫 설비 과잉을 불러와 공장을 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설비투자를 늘리지 못한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결국 투자를 늘리기 위해 벌어들인 돈을 노동자나 주주, 공급자에게 나누지 않고 사내에 쌓아둔다는 논리는 그래서 설득력을 잃는다.


■ 볼륨 커지는 경제규모, 투자 비중은 반대로

기업이 갈수록 사내에 돈을 쌓아두는 사이 투자는 어느 정도 비중으로 했는지 살펴보자. 총고정자본 형성(총고정투자)는 생산자인 기업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기여도를 살펴볼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1980년 국민총생산 중 총고정투자의 비중은 33%, 1990년 37.7%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계속 떨어져 2000년에 31.6%, 2014년에 29.1%까지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과 가장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설비투자 비중 역시 1990년 14.5%로 정점을 찍은 뒤 IMF 이후 2000년 12.2%, 2014년 8.5%까지 떨어지며 눈에 띄게 감소세를 이어갔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해 투자율 자체가 적다는 게 아니다. 국민총생산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그에 걸맞는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거다. 게다가 그 사이 사내에 돈을 얼마나 쌓아둔단 말인가?

[연관기사] [소득격차 확대]② 곳간만 쌓아둔 대기업, 나누지 않았다

외부 변수로 투자를 하지 못했다고만 변명할 수 없는 것은 기업이 돈을 이해당사자들에게 주지 않고 쌓아두는 사이 국민들의 소득격차는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 투자비율 줄이는 사이 기업들 '저축 또 저축'

경제가 성장하는 사이 기업들은 기업투자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고 대신 저축을 늘렸다. 1980년 이후 국내 총생산 대비 기업의 저축과 투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먼저 기업투자 비율은 1980년 22.5%, 1990년 25.1%까지 올랐다가 2000년 20.8%, 2014년 19.2%로 계속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의 저축 비율은 1980년 11.7%에서 1990년 13.8%, 2000년 14.1%, 2014년 20.8%로 2014년엔 기업저축비율이 투자비율을 앞질렀다.


지난해 말 기준 예금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425조 8778억 원으로 나타났다. 1년 새 6.8% 늘어난 규모다. 기업예금이 40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반면 가계들의 은행예금 잔액은 618조 4422억 원이었다. 우리는 가계가 저축하면 그 돈을 기업이 빌려서 설비투자를 하고 기술연구에 투자해 보다 나은 제품을 생산하고, 다시 늘어난 이익으로 고용을 늘리며 경제가 돌아간다고 배웠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은지 오래됐다.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기업예금 증가율은 가계의 예금증가율을 앞섰다. 또, 전체 은행예금 가운데 기업 예금의 비중은 2000년 26.0%에서 지난해에는 30.5%로 올라섰다. 반면 가계 비중은 59.8%에서 44.3%로 줄었다. 왜 기업은 돈을 은행에 맡기고 있는가? 기업의 소득이 늘고 있지만, 투자나 공급자에 대한 대금, 노동자 임금, 배당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투자도 안 할 거면서 계속 돈을 쌓아두는 게 맞을까? 아니면 적당량을 이익이 남도록 역할을 한 노동자에게 나누고, 공급자(공급 기업)에게 제대로 돈을 지급해 해당 공급 기업이 다시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나눠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게 나을까. 굳이 원청·하청업체간 불공정 계약과 갑질 문제로 하청업체가 입은 금전적 피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제 전체를 위해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쌓는 이유를 투자를 늘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넘었다. 확실한 건 그 시기 이후 소득격차는 확대됐고, 대기업 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이들에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는 정말 남의 나라 얘기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54% 정도만 받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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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득격차 확대]③ 투자 위해 돈 쌓는다는 기업, 초라한 투자 성적표
    • 입력 2019-04-02 18:01:37
    • 수정2019-05-29 17:53:20
    취재K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늘리는 것을 두고 기업가치와 투자 여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투자 여력을 높이고 있는 만큼 그동안 투자를 제대로 해왔을까?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가 2018년 3월 공시된 재무제표를 토대로 사내유보금을 조사한 결과 10대 재벌이 보유한 유보금이 759조 원, 30대 재벌이 보유한 유보금이 883조 원에 달했다. 대기업 전체로 늘리면 1,4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 기업 설비투자 얼마나 하고 있나?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그 이익을 공급자, 주주, 채권자, 정부, 그리고 노동자에게 분배한다. 다만 미래를 위해 일정 부분을 유보금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이렇게 남겨둔 돈이 실제로 투자에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해당사자들에게 좀 더 나눠주는 게 경제주체 전체를 위해선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노동자나 공급자에게 흘러들어 간 돈이 다시 소비에 쓰여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들의 투자상황은 기대 이하다.

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산업은행이 3,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투자실태와 계획을 조사한 결과 2018년 설비투자는 2017년 189.8조 원보다 4.4% 감소한 181.5조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2019년은 전년대비 6.3% 줄어든 170조 원에 그칠 것으로 조사돼 2년 연속 감소가 예상된다. 그나마 2012년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이 4% 이상 오른 때는 2014년과 2017년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전체 설비투자액 중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의 비중이 특히 높아 이들 업종을 제외하면 사실상 투자는 정체 상태다. 그나마 기업들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행투자보다는 대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노후시설을 개선하는데 설비투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설비투자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은 국내외 수요부진과 글로벌 경기 약세로 국내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게 주요인이다. 설비투자를 해봤자 자칫 설비 과잉을 불러와 공장을 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설비투자를 늘리지 못한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결국 투자를 늘리기 위해 벌어들인 돈을 노동자나 주주, 공급자에게 나누지 않고 사내에 쌓아둔다는 논리는 그래서 설득력을 잃는다.


■ 볼륨 커지는 경제규모, 투자 비중은 반대로

기업이 갈수록 사내에 돈을 쌓아두는 사이 투자는 어느 정도 비중으로 했는지 살펴보자. 총고정자본 형성(총고정투자)는 생산자인 기업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기여도를 살펴볼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1980년 국민총생산 중 총고정투자의 비중은 33%, 1990년 37.7%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계속 떨어져 2000년에 31.6%, 2014년에 29.1%까지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과 가장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설비투자 비중 역시 1990년 14.5%로 정점을 찍은 뒤 IMF 이후 2000년 12.2%, 2014년 8.5%까지 떨어지며 눈에 띄게 감소세를 이어갔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해 투자율 자체가 적다는 게 아니다. 국민총생산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그에 걸맞는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거다. 게다가 그 사이 사내에 돈을 얼마나 쌓아둔단 말인가?

[연관기사] [소득격차 확대]② 곳간만 쌓아둔 대기업, 나누지 않았다

외부 변수로 투자를 하지 못했다고만 변명할 수 없는 것은 기업이 돈을 이해당사자들에게 주지 않고 쌓아두는 사이 국민들의 소득격차는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 투자비율 줄이는 사이 기업들 '저축 또 저축'

경제가 성장하는 사이 기업들은 기업투자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았고 대신 저축을 늘렸다. 1980년 이후 국내 총생산 대비 기업의 저축과 투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먼저 기업투자 비율은 1980년 22.5%, 1990년 25.1%까지 올랐다가 2000년 20.8%, 2014년 19.2%로 계속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의 저축 비율은 1980년 11.7%에서 1990년 13.8%, 2000년 14.1%, 2014년 20.8%로 2014년엔 기업저축비율이 투자비율을 앞질렀다.


지난해 말 기준 예금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425조 8778억 원으로 나타났다. 1년 새 6.8% 늘어난 규모다. 기업예금이 40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반면 가계들의 은행예금 잔액은 618조 4422억 원이었다. 우리는 가계가 저축하면 그 돈을 기업이 빌려서 설비투자를 하고 기술연구에 투자해 보다 나은 제품을 생산하고, 다시 늘어난 이익으로 고용을 늘리며 경제가 돌아간다고 배웠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은지 오래됐다.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기업예금 증가율은 가계의 예금증가율을 앞섰다. 또, 전체 은행예금 가운데 기업 예금의 비중은 2000년 26.0%에서 지난해에는 30.5%로 올라섰다. 반면 가계 비중은 59.8%에서 44.3%로 줄었다. 왜 기업은 돈을 은행에 맡기고 있는가? 기업의 소득이 늘고 있지만, 투자나 공급자에 대한 대금, 노동자 임금, 배당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투자도 안 할 거면서 계속 돈을 쌓아두는 게 맞을까? 아니면 적당량을 이익이 남도록 역할을 한 노동자에게 나누고, 공급자(공급 기업)에게 제대로 돈을 지급해 해당 공급 기업이 다시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나눠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게 나을까. 굳이 원청·하청업체간 불공정 계약과 갑질 문제로 하청업체가 입은 금전적 피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제 전체를 위해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쌓는 이유를 투자를 늘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넘었다. 확실한 건 그 시기 이후 소득격차는 확대됐고, 대기업 노동자를 제외한 대부분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이들에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는 정말 남의 나라 얘기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54% 정도만 받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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