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K] 암흑 물질 없는 은하 관측…‘존재’를 ‘비존재’로 증명하기

입력 2019.04.03 (11:38) 수정 2019.04.0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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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신은 죽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유신론적일까요? 무신론적일까요?. 니체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말만으로 판단해보겠습니다.

신은 죽었다면, 신이 없다는 얘깁니다. 신이 죽어 없어져 사라졌으니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 무신론적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을 느껴보겠습니다. 신이 죽으려면, 신은 존재했었어야 합니다. 존재했던 것만이 죽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은 죽었다는 말에는 신은 존재했었는데, 이제 죽어 사라졌다는 뜻이 됩니다. 즉 유신론적이 됩니다. 신이 (과거에) 있었다는 선언입니다. 무신론은 처음부터 신이 없어야 합니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그래서 양가적입니다. '있다'는 것을 '없다'는 것으로 역으로 증명한 것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식으로 읽었습니다. 데리다는 마지막에 다시 나옵니다.

이제 과학입니다. 천문학에 관한 얘기입니다.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이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암흑 물질,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는 한다?

'암흑 물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어로는 DARK MATTER입니다. 이 이론을 뉴욕시립대 물리학과 석좌교수인 미치오 카구 박사의 설명으로 이해해보겠습니다.

우주라는 공간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별, 은하 등은 그 공간의 4% 정도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나머지 공간은 비어있을까요? 아닙니다. 우주의 23% 정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로 들어차 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측자료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암흑 물질은 보이지는 않지만, 질량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질량이 있는 물질은 공간을 휘게 하고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빛을 굴절시키고, 궤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성질을 이용해 관찰하면 간접적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달(3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회보(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 아주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습니다.

암흑 물질이 없는 즉 결핍된 은하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DF2'와 'DF4'로 명명됐는데 예일대 천문학과 미터 도쿰 교수팀이 그 발견의 주인공입니다.

DF2 은하 [사진 출처 : Yale University]DF2 은하 [사진 출처 : Yale University]

암흑 물질, 존재의 존재를 부재로 증명하다

사진은 DF2입니다. 이 은하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성단(clusters, 항성의 집단)이 눈으로 보이는 '실제 은하계의 질량과 일치하는 속도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암흑 물질이 있었다면, 그 무게만큼 더 무거웠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라 공간의 모양이 달라져, 속도도 달랐겠죠. 실제로 연구팀은 DF2에 암흑 물질이 있었다면, 성단의 움직임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무게와 동일하게 움직였기에 이 은하에는 암흑 물질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결국, 암흑 물질의 '없음'을 관찰해 내서, 암흑 물질의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DF2와 마찬가지로 DF4는 UDG(Ultra-diffuse galaxies) '초 분산 은하'라고 불리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은하인데, 우리 은하계만큼 크지만 100배에서 1,000배 작은 항성들을 갖고 있어 관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DF4 역시 '암흑 물질 결핍 은하'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연구팀은 이러한 '암흑 물질 결핍 은하'들의 존재가 우주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암흑 물질의 결핍은 암흑 물질들이 정상적인 보통의 물질들과 섞일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암흑 물질의 '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 왼쪽 아래가 DF2, 오른쪽 위가 DF4입니다. [사진 출처 : P. Van Dokkum (Yale University)/STScI/ACS]사진 왼쪽 아래가 DF2, 오른쪽 위가 DF4입니다. [사진 출처 : P. Van Dokkum (Yale University)/STScI/ACS]

다시 미치오 카쿠 교수의 설명으로 돌아갑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주가 별 등 일상적인 물질 4%와 암흑 물질 23%를 더해도 27%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뭘까요? 이 미지의 73%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1917년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가 폐기했는데, 최근 관찰 기술의 발달로 다시 암흑 에너지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암흑 에너지의 개념이 논쟁적이듯 이번 암흑 물질에 대한 논문도 여전히 천문학계에서는 비판과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논문 1 저자인 샤니 다니엘리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은하계의 구성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론을 지지할 더 많은 증거를 찾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인 암흑 물질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희망이 될 것입니다."

다시 인문학으로 돌아갑니다.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라고 전해지지만, 정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는 그 문구는 없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봅니다. 친구가 있다는 얘긴가요 없다는 얘긴가요. 먼저 오 나의 친구여~ 하고 친구를 부릅니다. 현재 친분을 맺고 친구일 수도 있고, 앞으로 친구가 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쳐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놓고 '친구는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친구가 되면, 그 친구 가운데 둘 중의 하나는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친구를 맺는 순간 죽음에 의한 이별도 포함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철학자 데리다는 친구를 맺게 되는 행위에는 '애도'가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 존재와 비존재는 그렇게 겹쳐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 앞서 말한 '신은 죽었다'는 문장 구조와 겹쳐 보이지 않나요? 데리다는 우정에 관한 세미나를 항상 이 문구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존재는 '이미 항상' 비존재와 등을 맞대고 겹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암흑 물질의 존재론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1. Unusual galaxies defy dark matter theory https://phys.org/news/2019-03-unusual-galaxies-defy-dark-theory.html
2. '평행 우주' 미치오 카쿠 저. 김영사, 2018
3.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 민승기, 두산인문극장 2014, https://www.youtube.com/watch?v=Gu6280Ggc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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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3 11:38:14
    • 수정2019-04-04 10:08:38
    지식K
먼저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신은 죽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유신론적일까요? 무신론적일까요?. 니체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말만으로 판단해보겠습니다.

신은 죽었다면, 신이 없다는 얘깁니다. 신이 죽어 없어져 사라졌으니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 무신론적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을 느껴보겠습니다. 신이 죽으려면, 신은 존재했었어야 합니다. 존재했던 것만이 죽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은 죽었다는 말에는 신은 존재했었는데, 이제 죽어 사라졌다는 뜻이 됩니다. 즉 유신론적이 됩니다. 신이 (과거에) 있었다는 선언입니다. 무신론은 처음부터 신이 없어야 합니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그래서 양가적입니다. '있다'는 것을 '없다'는 것으로 역으로 증명한 것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식으로 읽었습니다. 데리다는 마지막에 다시 나옵니다.

이제 과학입니다. 천문학에 관한 얘기입니다.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이 다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암흑 물질,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는 한다?

'암흑 물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어로는 DARK MATTER입니다. 이 이론을 뉴욕시립대 물리학과 석좌교수인 미치오 카구 박사의 설명으로 이해해보겠습니다.

우주라는 공간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별, 은하 등은 그 공간의 4% 정도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나머지 공간은 비어있을까요? 아닙니다. 우주의 23% 정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로 들어차 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측자료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암흑 물질은 보이지는 않지만, 질량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질량이 있는 물질은 공간을 휘게 하고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빛을 굴절시키고, 궤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성질을 이용해 관찰하면 간접적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달(3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회보(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 아주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습니다.

암흑 물질이 없는 즉 결핍된 은하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DF2'와 'DF4'로 명명됐는데 예일대 천문학과 미터 도쿰 교수팀이 그 발견의 주인공입니다.

DF2 은하 [사진 출처 : Yale University]
암흑 물질, 존재의 존재를 부재로 증명하다

사진은 DF2입니다. 이 은하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성단(clusters, 항성의 집단)이 눈으로 보이는 '실제 은하계의 질량과 일치하는 속도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암흑 물질이 있었다면, 그 무게만큼 더 무거웠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라 공간의 모양이 달라져, 속도도 달랐겠죠. 실제로 연구팀은 DF2에 암흑 물질이 있었다면, 성단의 움직임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무게와 동일하게 움직였기에 이 은하에는 암흑 물질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결국, 암흑 물질의 '없음'을 관찰해 내서, 암흑 물질의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DF2와 마찬가지로 DF4는 UDG(Ultra-diffuse galaxies) '초 분산 은하'라고 불리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은하인데, 우리 은하계만큼 크지만 100배에서 1,000배 작은 항성들을 갖고 있어 관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DF4 역시 '암흑 물질 결핍 은하'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연구팀은 이러한 '암흑 물질 결핍 은하'들의 존재가 우주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암흑 물질의 결핍은 암흑 물질들이 정상적인 보통의 물질들과 섞일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암흑 물질의 '있음'을 드러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 왼쪽 아래가 DF2, 오른쪽 위가 DF4입니다. [사진 출처 : P. Van Dokkum (Yale University)/STScI/ACS]
다시 미치오 카쿠 교수의 설명으로 돌아갑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주가 별 등 일상적인 물질 4%와 암흑 물질 23%를 더해도 27%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뭘까요? 이 미지의 73%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1917년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가 폐기했는데, 최근 관찰 기술의 발달로 다시 암흑 에너지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암흑 에너지의 개념이 논쟁적이듯 이번 암흑 물질에 대한 논문도 여전히 천문학계에서는 비판과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논문 1 저자인 샤니 다니엘리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은하계의 구성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론을 지지할 더 많은 증거를 찾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인 암흑 물질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희망이 될 것입니다."

다시 인문학으로 돌아갑니다.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라고 전해지지만, 정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는 그 문구는 없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봅니다. 친구가 있다는 얘긴가요 없다는 얘긴가요. 먼저 오 나의 친구여~ 하고 친구를 부릅니다. 현재 친분을 맺고 친구일 수도 있고, 앞으로 친구가 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쳐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놓고 '친구는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친구가 되면, 그 친구 가운데 둘 중의 하나는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친구를 맺는 순간 죽음에 의한 이별도 포함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철학자 데리다는 친구를 맺게 되는 행위에는 '애도'가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 존재와 비존재는 그렇게 겹쳐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 앞서 말한 '신은 죽었다'는 문장 구조와 겹쳐 보이지 않나요? 데리다는 우정에 관한 세미나를 항상 이 문구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존재는 '이미 항상' 비존재와 등을 맞대고 겹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암흑 물질의 존재론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1. Unusual galaxies defy dark matter theory https://phys.org/news/2019-03-unusual-galaxies-defy-dark-theory.html
2. '평행 우주' 미치오 카쿠 저. 김영사, 2018
3.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 민승기, 두산인문극장 2014, https://www.youtube.com/watch?v=Gu6280Ggc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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