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은 ‘강약약강’?…끝없는 특혜논란

입력 2019.04.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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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재판 증인 정다주 부장판사, 피고인 통로로 출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의 '키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2일) 열린 공판에는 현직 판사 가운데 처음으로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정 부장판사가 법정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정 부장판사가 재판부에 '증인지원 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 규칙 84조엔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거나 증언에 부담을 느끼는 증인의 경우 미리 '증인지원 절차'를 신청하면, 법정 출석 전후 법원 직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놓았습니다. 이 절차에 따라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드나드는 통로를 통해 법정에 들어선 겁니다. 통상 증인이 출석할 때에는 지정된 출입구로 입장해 방청석에서 대기하다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진행할 때 증인석에 섭니다.


'법잘알'만 혜택?...포토라인도 오락가락

정 부장판사는 증인을 위해 마련된 절차를 잘 활용해 자신의 권리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 부장판사가 '법을 잘 아는' 현직 판사가 아니었다면 증인지원 절차를 이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출석하며, 언론이 쳐놓은 포토라인을 그대로 통과했습니다. 그러자 전 현직 판사들도 SNS와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출석 시각과 동선 등 불필요한 정보를 조사 전에 알려 취재 대상이 되게 한다며 비판했습니다.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언론이 임의적으로 설정했을 뿐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패싱 사태'를 제외하곤 법조계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일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애초에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은 포토라인을 지나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로 알려져 검찰 조사를 받았던 사업가 김 모 씨는 자신이 거부했는데도 수사팀이 자신을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워 수갑을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며 정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김 씨는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수사관의 말에 "공인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느냐"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포토라인에 서게 됐습니다. 정작 김 전 부장검사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비공개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김 씨에게는 굳건했던 '포토라인'이 양 전 대법관과 김 전 부장검사 앞에선 무너진 겁니다.


'강약약강(强弱弱强)'…법은 평등한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지난달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보석 석방이 허가되는 과정에서 재판부에게 쏟아졌던 비판도 맥을 같이합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해준단 공판 중심주의의 취지에서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했습니다. 원칙을 원칙대로 적용한 것이니, 특혜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똑같은 원칙이 적용됐을지 의문이 남습니다. 재판부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석을 허가해 주는 장면은 분명 낯섭니다.

물론 어렵게 재판으로 발길을 옮긴 증인은 보호돼야 하고, 포토라인이 과도하게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없어져야 합니다. 피의자의 방어권도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하지만 법이 자신을 잘 아는 증인과 피의자만 보호한다면 국민들이 이를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법은 평등한가?' 긴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 남겨진 의문이지만, 요즘따라 더욱 고개를 갸웃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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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法은 ‘강약약강’?…끝없는 특혜논란
    • 입력 2019-04-03 15:55:23
    취재K
'사법농단' 재판 증인 정다주 부장판사, 피고인 통로로 출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의 '키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2일) 열린 공판에는 현직 판사 가운데 처음으로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정 부장판사가 법정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정 부장판사가 재판부에 '증인지원 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 규칙 84조엔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거나 증언에 부담을 느끼는 증인의 경우 미리 '증인지원 절차'를 신청하면, 법정 출석 전후 법원 직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놓았습니다. 이 절차에 따라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드나드는 통로를 통해 법정에 들어선 겁니다. 통상 증인이 출석할 때에는 지정된 출입구로 입장해 방청석에서 대기하다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진행할 때 증인석에 섭니다.


'법잘알'만 혜택?...포토라인도 오락가락

정 부장판사는 증인을 위해 마련된 절차를 잘 활용해 자신의 권리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 부장판사가 '법을 잘 아는' 현직 판사가 아니었다면 증인지원 절차를 이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출석하며, 언론이 쳐놓은 포토라인을 그대로 통과했습니다. 그러자 전 현직 판사들도 SNS와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출석 시각과 동선 등 불필요한 정보를 조사 전에 알려 취재 대상이 되게 한다며 비판했습니다.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언론이 임의적으로 설정했을 뿐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패싱 사태'를 제외하곤 법조계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일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애초에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은 포토라인을 지나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로 알려져 검찰 조사를 받았던 사업가 김 모 씨는 자신이 거부했는데도 수사팀이 자신을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워 수갑을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며 정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김 씨는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수사관의 말에 "공인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느냐"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포토라인에 서게 됐습니다. 정작 김 전 부장검사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비공개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김 씨에게는 굳건했던 '포토라인'이 양 전 대법관과 김 전 부장검사 앞에선 무너진 겁니다.


'강약약강(强弱弱强)'…법은 평등한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지난달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보석 석방이 허가되는 과정에서 재판부에게 쏟아졌던 비판도 맥을 같이합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해준단 공판 중심주의의 취지에서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했습니다. 원칙을 원칙대로 적용한 것이니, 특혜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똑같은 원칙이 적용됐을지 의문이 남습니다. 재판부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석을 허가해 주는 장면은 분명 낯섭니다.

물론 어렵게 재판으로 발길을 옮긴 증인은 보호돼야 하고, 포토라인이 과도하게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없어져야 합니다. 피의자의 방어권도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하지만 법이 자신을 잘 아는 증인과 피의자만 보호한다면 국민들이 이를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법은 평등한가?' 긴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 남겨진 의문이지만, 요즘따라 더욱 고개를 갸웃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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