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48차례 출격 성공리에”…5·18 적극 개입한 공군

입력 2019.04.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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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사 요구'로 공군 작전 수행
단순 수송 넘어 '위협 비행' 목적 가능성
5.18 전후 '계엄사―공군'의 긴밀한 협의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공군 비밀문건을 KBS가 입수했습니다. 이 문건을 보면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지휘부가 했던 회의의 세세한 내용과 공군이 계엄사령부와 함께 벌인 작전은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수한 문건은 크게 <공군 지휘부 회의록>과 <광주소요사태 작전>으로 나뉘는데 주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1980년 공군 비밀문건 ‘광주소요사태 작전’1980년 공군 비밀문건 ‘광주소요사태 작전’

'계엄사 요구'로 공군 작전 수행

먼저 <광주소요사태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문건은 모두 6쪽입니다. 5.18 당시 공군의 작전 내용은 무엇이었고 공군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교훈>과 <요망사항> 등의 소제목으로 봐선 5.18 직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계엄사 요구에 의거 공수지원 148쏘티를 위시한 긴급 공수를 성공리에 수행했다"는 문장입니다. 그동안 5.18 당시 계엄사령부의 지시로 각 군이 긴급히 움직였다는 정황은 있었지만 이렇게 '계엄사 요구'로 공군이 임무를 수행했다고 명시화된 건 처음입니다.

'148쏘티'에서 1쏘티는 항공기가 1회 이륙과 착륙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5.18 당시 군 항공기가 148차례 이·착륙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수송기로 추정되는데 이 문건을 보면 태운 인원은 2,579명, 화물은 414,000파운드(187톤)에 이릅니다. 문건은 그러면서 긴급 공수를 '성공리에'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했던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당시 광주의 상황에 대해 공군도 개입을 했고 육군만이 아니라 공군도 수송이라든지 여러가지 것들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지원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습니다.

‘공수지원 148쏘티’‘공수지원 148쏘티’

단순 수송 넘어 '위협 비행' 목적 가능성

이 많은 항공기들의 출격은 단순 수송 목적뿐 아니라 당시 광주 상공에서 시민들을 위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발간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보고서는 "조사 과정에서 기무사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계엄사 연락장교가 작성한 '광주 동향'에서 80년 5월 26일 상황으로 '공군기 시위는 요청 시 공군에서 실시 예정'이라고 기재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또 "<전투지휘비 제6호>에 '5전비 및 36전대는 광주기지에 입출항시에는 광주시내 상공을 통과하고 5,000피트 이상을 유지할 것, 1전비 항공기도 이를 준수할 것'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전합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항공기가 5,000피트 이상을 통과하더라도 비행기의 소음 등으로 시민들에게 항공기가 비행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킬 수 있는데 이것으로도 충분히 위력시위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노영기 교수도 "항공기도 위력시위 형태로 광주 시내 상공을 날아다닌다 할지 이런 부분들은 참모총장이 그러한 지시를 했다라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위력시위 정도는 했지 않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공군 지휘부 회의록 (1980.5.16.)공군 지휘부 회의록 (1980.5.16.)

5.18 전후 '계엄사―공군'의 긴밀한 협의

함께 입수한 <공군 지휘부 회의록>은 모두 10쪽으로 5월 16일부터 19일, 23일, 26일, 28일에 회의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회의록을 보면 5.18 전후로 당시 공군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5.18 이틀 전인 16일 회의록에서 군수 분야 업무보고를 보면 'AV-GAS 획득 방안 다각도 추진 중', '지상화기 공포탄 긴급대여 육군과 협의 중 (5,000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AV-GAS는 Aviation Gasoline으로 항공유를 뜻합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17일에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발표합니다. 16일은 바로 하루 전이므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군이 긴급히 준비하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출격을 대비해 항공유를 넉넉히 준비하고 공포탄도 육군과 협의해 넉넉히 확보하려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5월 23일엔 계엄사로부터 자위권 발동 훈령을 접수한다, 28일엔 장갑차를 계엄사에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점을 미뤄봤을 때 당시 계엄사령부와 공군은 5.18 전후 상황에 긴밀히 협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AWACS(공중조기경보기) 전개 정황

5월 23일 지휘부 회의록 작전 분야의 업무보고를 보면 "AWACS 2대 5.24 한국지역 전개 예정"이라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AWACS는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의 줄인 말로 미국의 공중조기경보기입니다. 공중경보와 통제 체제 기기를 탑재해 적의 침입을 최대한 빠른 시기에 탐지하고 자동으로 정보를 해석, 파악해 아군의 전투기를 지휘ㆍ통제하는 첨단 기능을 갖춘 항공기입니다. 우리 군의 요청으로 AWACS가 출격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 군과 미군이 당시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고 미군은 한반도의 군사 동향을 면밀히 살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장병 정신교육에 심혈 기울인 공군

지휘부 회의록을 보면 각 날짜별로 <참모총장 지시사항>이 업무보고에 이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지시사항을 보면 당시 윤자중 공군참모총장은 특히 장병들의 정신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6일 회의록에서 참모총장은 "학원 소요사태, 정치활동 등에 편승 엄금, 군 본연의 자세 견지"를 지시합니다. 당시 각 대학들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셌는데 대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장병들이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특별히 당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주말(5.17~18) 외출금지를 지시합니다.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대비한 조치로 보입니다.

참모총장 지시사항 (1980.5.19.)참모총장 지시사항 (1980.5.19.)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

5.18 다음날인 19일 회의록을 보면 정훈 분야에서 "국가현실과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슬라이드 교육을 브리핑합니다. 그 내용은 북괴동향, 국내정세, 군의 현실, 당면 과업, 우리의 각오 등으로 군의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 참모총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 슬라이드 교육을 "단시일 내에 전부대 장병에게 철저히 교육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북괴의 노골화된 남침 야욕과 대외적인 도전 및 학원 소요사태 등 국내적인 시련으로 국가마저 위태로운 백척간두의 위험한 국가현실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5.18을 북한의 남침 야욕과 연관지으며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남북 간에 총리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접촉(5월 22일 8차 실무대표 접촉)이 이어지는 등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우세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장된 북한의 위협을 악용해 민주화 요구를 막고 계엄을 합리화하는데 공군도 발벗고 나섰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노영기 교수는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시키는 전국으로 확대를 시키면서 군이 내각을 경유하지 않고 전 사회를 민간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며 "그 근거로 북괴 남침설을 내세웠고 그렇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된다고 했었던 것인데 당시에 판문점이나 북측지역에서 남북회담이 열리고 있었으니까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윤자중 참모총장은 또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임을 인식하고 휘하 장병에게도 교육해야 한다"며 다시금 장병 교육을 지시합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을 위험 세력으로 간주하고 계엄 확대를 정당화하는 반시대적인 군의 상황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김병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공군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데 협조했고 반시대적으로 상황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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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148차례 출격 성공리에”…5·18 적극 개입한 공군
    • 입력 2019-04-04 20:11:30
    취재K
'계엄사 요구'로 공군 작전 수행
단순 수송 넘어 '위협 비행' 목적 가능성
5.18 전후 '계엄사―공군'의 긴밀한 협의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공군 비밀문건을 KBS가 입수했습니다. 이 문건을 보면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지휘부가 했던 회의의 세세한 내용과 공군이 계엄사령부와 함께 벌인 작전은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수한 문건은 크게 <공군 지휘부 회의록>과 <광주소요사태 작전>으로 나뉘는데 주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1980년 공군 비밀문건 ‘광주소요사태 작전’
'계엄사 요구'로 공군 작전 수행

먼저 <광주소요사태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문건은 모두 6쪽입니다. 5.18 당시 공군의 작전 내용은 무엇이었고 공군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교훈>과 <요망사항> 등의 소제목으로 봐선 5.18 직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계엄사 요구에 의거 공수지원 148쏘티를 위시한 긴급 공수를 성공리에 수행했다"는 문장입니다. 그동안 5.18 당시 계엄사령부의 지시로 각 군이 긴급히 움직였다는 정황은 있었지만 이렇게 '계엄사 요구'로 공군이 임무를 수행했다고 명시화된 건 처음입니다.

'148쏘티'에서 1쏘티는 항공기가 1회 이륙과 착륙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5.18 당시 군 항공기가 148차례 이·착륙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수송기로 추정되는데 이 문건을 보면 태운 인원은 2,579명, 화물은 414,000파운드(187톤)에 이릅니다. 문건은 그러면서 긴급 공수를 '성공리에'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했던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당시 광주의 상황에 대해 공군도 개입을 했고 육군만이 아니라 공군도 수송이라든지 여러가지 것들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지원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습니다.

‘공수지원 148쏘티’
단순 수송 넘어 '위협 비행' 목적 가능성

이 많은 항공기들의 출격은 단순 수송 목적뿐 아니라 당시 광주 상공에서 시민들을 위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발간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보고서는 "조사 과정에서 기무사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계엄사 연락장교가 작성한 '광주 동향'에서 80년 5월 26일 상황으로 '공군기 시위는 요청 시 공군에서 실시 예정'이라고 기재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또 "<전투지휘비 제6호>에 '5전비 및 36전대는 광주기지에 입출항시에는 광주시내 상공을 통과하고 5,000피트 이상을 유지할 것, 1전비 항공기도 이를 준수할 것'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전합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항공기가 5,000피트 이상을 통과하더라도 비행기의 소음 등으로 시민들에게 항공기가 비행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킬 수 있는데 이것으로도 충분히 위력시위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노영기 교수도 "항공기도 위력시위 형태로 광주 시내 상공을 날아다닌다 할지 이런 부분들은 참모총장이 그러한 지시를 했다라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위력시위 정도는 했지 않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공군 지휘부 회의록 (1980.5.16.)
5.18 전후 '계엄사―공군'의 긴밀한 협의

함께 입수한 <공군 지휘부 회의록>은 모두 10쪽으로 5월 16일부터 19일, 23일, 26일, 28일에 회의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회의록을 보면 5.18 전후로 당시 공군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5.18 이틀 전인 16일 회의록에서 군수 분야 업무보고를 보면 'AV-GAS 획득 방안 다각도 추진 중', '지상화기 공포탄 긴급대여 육군과 협의 중 (5,000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AV-GAS는 Aviation Gasoline으로 항공유를 뜻합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17일에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발표합니다. 16일은 바로 하루 전이므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군이 긴급히 준비하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출격을 대비해 항공유를 넉넉히 준비하고 공포탄도 육군과 협의해 넉넉히 확보하려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5월 23일엔 계엄사로부터 자위권 발동 훈령을 접수한다, 28일엔 장갑차를 계엄사에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점을 미뤄봤을 때 당시 계엄사령부와 공군은 5.18 전후 상황에 긴밀히 협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AWACS(공중조기경보기) 전개 정황

5월 23일 지휘부 회의록 작전 분야의 업무보고를 보면 "AWACS 2대 5.24 한국지역 전개 예정"이라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AWACS는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의 줄인 말로 미국의 공중조기경보기입니다. 공중경보와 통제 체제 기기를 탑재해 적의 침입을 최대한 빠른 시기에 탐지하고 자동으로 정보를 해석, 파악해 아군의 전투기를 지휘ㆍ통제하는 첨단 기능을 갖춘 항공기입니다. 우리 군의 요청으로 AWACS가 출격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 군과 미군이 당시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고 미군은 한반도의 군사 동향을 면밀히 살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장병 정신교육에 심혈 기울인 공군

지휘부 회의록을 보면 각 날짜별로 <참모총장 지시사항>이 업무보고에 이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지시사항을 보면 당시 윤자중 공군참모총장은 특히 장병들의 정신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6일 회의록에서 참모총장은 "학원 소요사태, 정치활동 등에 편승 엄금, 군 본연의 자세 견지"를 지시합니다. 당시 각 대학들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셌는데 대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한 장병들이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특별히 당부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주말(5.17~18) 외출금지를 지시합니다.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대비한 조치로 보입니다.

참모총장 지시사항 (1980.5.19.)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

5.18 다음날인 19일 회의록을 보면 정훈 분야에서 "국가현실과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슬라이드 교육을 브리핑합니다. 그 내용은 북괴동향, 국내정세, 군의 현실, 당면 과업, 우리의 각오 등으로 군의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 참모총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 슬라이드 교육을 "단시일 내에 전부대 장병에게 철저히 교육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북괴의 노골화된 남침 야욕과 대외적인 도전 및 학원 소요사태 등 국내적인 시련으로 국가마저 위태로운 백척간두의 위험한 국가현실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5.18을 북한의 남침 야욕과 연관지으며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남북 간에 총리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접촉(5월 22일 8차 실무대표 접촉)이 이어지는 등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우세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장된 북한의 위협을 악용해 민주화 요구를 막고 계엄을 합리화하는데 공군도 발벗고 나섰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노영기 교수는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시키는 전국으로 확대를 시키면서 군이 내각을 경유하지 않고 전 사회를 민간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며 "그 근거로 북괴 남침설을 내세웠고 그렇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된다고 했었던 것인데 당시에 판문점이나 북측지역에서 남북회담이 열리고 있었으니까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윤자중 참모총장은 또 "전국 비상계엄 선포는 불가피한 당연한 조치임을 인식하고 휘하 장병에게도 교육해야 한다"며 다시금 장병 교육을 지시합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을 위험 세력으로 간주하고 계엄 확대를 정당화하는 반시대적인 군의 상황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김병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은 "당시 공군도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데 협조했고 반시대적으로 상황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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