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밀어내고 설치한 태양광 시설, 친환경 맞나?

입력 2019.04.0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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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 에너지를 육성하려고 하는데,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선 수십 년 간 자라온 숲을 훼손해야 한다면, 과연 그 에너지는 '친환경'일까요, 아닐까요?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나무와 숲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요즘,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의 딜레마를 취재했습니다.


법정으로 간 태양광 시설…모두가 '남 탓'만

태양광 시설 중에 환경영향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곳을 찾았습니다. 1만 8천여 제곱미터의 임야에 대규모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있었는데요. 비가 많이 오면 인근으로 토사가 흘러내렸습니다. 해당 발전소 바로 아래에 위치한 복지시설은 안전의 위협을 느껴, 시설 설치를 강력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업자와 복지시설은 몇 년 동안 법정 소송을 벌이며 다투고 있습니다.

'사업자는 지자체에서 정당하게 허가를 받고 설치를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괴롭다고 말합니다.'지자체는 법에 따라 위반사항이 없어 허가를 내줬다, 자신들 잘못은 없다고 말합니다. 산림청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허가를 내 준 지자체 잘못이지, 산림청이 관여할 사안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결국,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양광 시설은 '노후 확실한 재테크'?

태양광 시설이 급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 준 것이 가장 큰 동력이 됐습니다. 특히 산지의 경우 태양광 시설로 허가를 받으면 지목을 임야에서 잡종지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땅값이 대폭 오르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한전에 전기를 팔면 시설 설치를 위한 대출금 등을 갚고도 수백만 원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이전까지는 관련 규제가 약해 어렵지 않게 설치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태양광이 손쉽고 돈이 되는 노후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되면서,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법 개정 전 신청하자" 지난해에만 5,500여 개 허가

그런데 이렇게 숲을 밀어내고 설치한 태양광 시설들에서 산사태가 잇따르고 화재도 났습니다. 태양광 시설로 얻는 이득보다 산림을 훼손해서 생기는 손실이 더 크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관련법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경사도가 15도가 넘으면 시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땅값 상승을 목표로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태양광 발전소 지목 변경도 금지했습니다. 20년 동안 산지를 사용한 뒤에는 원상 복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법 개정 예고와 시행까지의 시차를 이용했습니다. 관련 규정을 강화하겠다는 예고가 나온 뒤 법이 실제 시행되기 전까지 수천여 개 사업장이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전체 태양광 시설 1만 500여 개의 절반이 넘는 5,500여 건이 지난 한 해 동안 허가를 받았습니다.


숲에 설치할 필요는 없다…나무의 역할 주목해야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 태양광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전문가들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산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공기를 정화하고 기후 온난화를 막고, 뿌리로 토사를 지탱해가며 자연재해를 막는 나무 본연의 역할을 간과했다는 지적입니다.

자연이 늘상 하는 역할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당장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나무를 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치명적인 환경파괴로 돌아오게 됩니다.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숲에 하는 것보다는 도심지같이 자투리땅이 많거나 유휴지가 많은 곳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옵니다.


"사라진 숲 면적이 새로 조성된 숲의 10배"

지난해 미세먼지 저감 사업으로 조성된 도시숲은 248헥타르, 태양광 시설로 사라진 숲의 면적은 2,443헥타르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숲의 10배에 달하는 숲이 사라지고 만 겁니다. 면적도 면적이지만, 수십 년 간 성장해온 나무의 울창함은 막 조성된 숲의 모습에 비할 데가 안 돼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태양광 시설의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회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재해방지책을 해마다 제출하도록 하고, 산림청도 해마다 보전계획을 수립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태양광 설치가 규제를 받게 된 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번 베어나간 나무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건 아닌지 '식목일'을 맞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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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밀어내고 설치한 태양광 시설, 친환경 맞나?
    • 입력 2019-04-05 07:02:01
    취재K
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 에너지를 육성하려고 하는데,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선 수십 년 간 자라온 숲을 훼손해야 한다면, 과연 그 에너지는 '친환경'일까요, 아닐까요?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나무와 숲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요즘,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의 딜레마를 취재했습니다.


법정으로 간 태양광 시설…모두가 '남 탓'만

태양광 시설 중에 환경영향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곳을 찾았습니다. 1만 8천여 제곱미터의 임야에 대규모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있었는데요. 비가 많이 오면 인근으로 토사가 흘러내렸습니다. 해당 발전소 바로 아래에 위치한 복지시설은 안전의 위협을 느껴, 시설 설치를 강력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업자와 복지시설은 몇 년 동안 법정 소송을 벌이며 다투고 있습니다.

'사업자는 지자체에서 정당하게 허가를 받고 설치를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괴롭다고 말합니다.'지자체는 법에 따라 위반사항이 없어 허가를 내줬다, 자신들 잘못은 없다고 말합니다. 산림청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허가를 내 준 지자체 잘못이지, 산림청이 관여할 사안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결국,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양광 시설은 '노후 확실한 재테크'?

태양광 시설이 급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 준 것이 가장 큰 동력이 됐습니다. 특히 산지의 경우 태양광 시설로 허가를 받으면 지목을 임야에서 잡종지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땅값이 대폭 오르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한전에 전기를 팔면 시설 설치를 위한 대출금 등을 갚고도 수백만 원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이전까지는 관련 규제가 약해 어렵지 않게 설치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태양광이 손쉽고 돈이 되는 노후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되면서,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법 개정 전 신청하자" 지난해에만 5,500여 개 허가

그런데 이렇게 숲을 밀어내고 설치한 태양광 시설들에서 산사태가 잇따르고 화재도 났습니다. 태양광 시설로 얻는 이득보다 산림을 훼손해서 생기는 손실이 더 크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관련법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경사도가 15도가 넘으면 시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땅값 상승을 목표로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태양광 발전소 지목 변경도 금지했습니다. 20년 동안 산지를 사용한 뒤에는 원상 복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법 개정 예고와 시행까지의 시차를 이용했습니다. 관련 규정을 강화하겠다는 예고가 나온 뒤 법이 실제 시행되기 전까지 수천여 개 사업장이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전체 태양광 시설 1만 500여 개의 절반이 넘는 5,500여 건이 지난 한 해 동안 허가를 받았습니다.


숲에 설치할 필요는 없다…나무의 역할 주목해야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 태양광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전문가들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산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공기를 정화하고 기후 온난화를 막고, 뿌리로 토사를 지탱해가며 자연재해를 막는 나무 본연의 역할을 간과했다는 지적입니다.

자연이 늘상 하는 역할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당장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나무를 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치명적인 환경파괴로 돌아오게 됩니다.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숲에 하는 것보다는 도심지같이 자투리땅이 많거나 유휴지가 많은 곳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옵니다.


"사라진 숲 면적이 새로 조성된 숲의 10배"

지난해 미세먼지 저감 사업으로 조성된 도시숲은 248헥타르, 태양광 시설로 사라진 숲의 면적은 2,443헥타르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숲의 10배에 달하는 숲이 사라지고 만 겁니다. 면적도 면적이지만, 수십 년 간 성장해온 나무의 울창함은 막 조성된 숲의 모습에 비할 데가 안 돼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태양광 시설의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회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재해방지책을 해마다 제출하도록 하고, 산림청도 해마다 보전계획을 수립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태양광 설치가 규제를 받게 된 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한번 베어나간 나무는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건 아닌지 '식목일'을 맞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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