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찔한 등굣길·주차장 된 운동장…왜 이런 일이?

입력 2019.04.08 (15:54) 수정 2019.04.08 (15:5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전 8시 반. 서울 은평구 어울초등학교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한두 명씩 학교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여느 학교와 다를 것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띄엄띄엄, 아이들과 뒤섞여 교문으로 승용차들이 들고 납니다. 크지 않은 문으로 차와 아이들이 뒤섞이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교 시간은 더 복잡했습니다. 학년별로 하교 시간이 제각각인 데다, 방과 후 선생님과 외부 손님 등이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엔 자동차 가득…"주차장 왜 없을까?"

운동장에는 차들이 십여 대 주차돼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을까? 체육 수업은 가능할까?' 싶은 풍경입니다. 차량용 출입구도, 주차공간도 없어 아이들과 자동차가 '위험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죠.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누구나 권고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주차장은 이미 마련돼 있습니다.


완공됐지만 쓸 수 없는 주차장 "입구가 없어요"

학교 바로 옆에 붙은 주차장. 공사는 깔끔하게 끝났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더 있습니다. 입구가 뚫려 있지 않은 겁니다. 주차장과 도로 사이는 보도블록과 펜스로 막혔습니다. 개교는 지난해 9월에 했는데 다 지어놓은 주차장을 쓰지 못해 운동장과 교문을 자동차에 내어준 지 벌써 8개월쨉니다.


재개발조합-교육청 갈등에 공사 반대

이런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는 새로 지어진 이 학교와 학교 옆 녹번 1~3구역 재개발조합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재개발조합은 학교부지 조성과 지반 고도 하향을 위한 돈 15억 원을 교육청에 기부채납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 조합이 이 돈을 돌려달라며 교육감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합니다. 1심, 2심에서 모두 '기각'(교육청 승소)되고 소송은 올해 1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학교 주차장 입구 바로 앞에 보도블록과 펜스 소유권이 조합 측에 있었던 겁니다. 진입로 공사를 하려면 이를 철거해야 하는데, 조합 측에서 공사하려 할 때마다 사유재산을 건드리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죠. 결국, 교육청의 공사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공사 허가권 쥔 구청은 8개월째 "방법 찾기 어렵다"

개교 직후인 지난해만 해도 전교생이 60명 남짓이었습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입주한 올해는 5배가 넘는 3백 명 수준이 됐습니다. 민원이 쏟아졌죠. 대립하는 교육청-조합 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 해결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사허가권을 쥔 구청은 어땠을까요? 상황을 알면서도 딱히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학교 주변 도로 소유권은 구청에 있고, 주차장 진입로 건설을 위한 '임시 사용 승인권'도 이미 떨어져 있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조합 측의 '강력한 항의'죠. 구청 입장에선 교육청과 싸우다 틀어진 조합 측을 굳이 달랠 이유도, 사유재산을 허가 없이 훼손했다가 강력한 항의에 마주칠 용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3백 명 넘는 초등학생들이 위험한 등하교를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취재 시작되자 해결 "다행이지만..."

문제는 허무하게 해결됐습니다. 취재를 시작하고, 학교 현장과 구청을 KBS 취재진이 방문해 공식 답변을 요구하자 구청 측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결국, 조합 측으로부터 공사를 해도 좋다는 응답을 들었고, 조만간 주차장 진입로를 새로 뚫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담당자는 현장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고 노력했다는 점도 취재진에게 전해왔습니다. 이제 차는 찻길로, 아이들은 교문으로, 자동차는 주차장에 있는 정상적인 상황이 될 테니 잘된 일입니다. 그래도 쓴맛은 남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없었을 때, 학교와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수차례 얘기했을 때 나서서 먼저 해결했으면 이 사례는 미담이 됐을 겁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아찔한 등굣길·주차장 된 운동장…왜 이런 일이?
    • 입력 2019-04-08 15:54:17
    • 수정2019-04-08 15:54:49
    취재후·사건후
오전 8시 반. 서울 은평구 어울초등학교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한두 명씩 학교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여느 학교와 다를 것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띄엄띄엄, 아이들과 뒤섞여 교문으로 승용차들이 들고 납니다. 크지 않은 문으로 차와 아이들이 뒤섞이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교 시간은 더 복잡했습니다. 학년별로 하교 시간이 제각각인 데다, 방과 후 선생님과 외부 손님 등이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엔 자동차 가득…"주차장 왜 없을까?"

운동장에는 차들이 십여 대 주차돼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을까? 체육 수업은 가능할까?' 싶은 풍경입니다. 차량용 출입구도, 주차공간도 없어 아이들과 자동차가 '위험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죠.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누구나 권고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주차장은 이미 마련돼 있습니다.


완공됐지만 쓸 수 없는 주차장 "입구가 없어요"

학교 바로 옆에 붙은 주차장. 공사는 깔끔하게 끝났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더 있습니다. 입구가 뚫려 있지 않은 겁니다. 주차장과 도로 사이는 보도블록과 펜스로 막혔습니다. 개교는 지난해 9월에 했는데 다 지어놓은 주차장을 쓰지 못해 운동장과 교문을 자동차에 내어준 지 벌써 8개월쨉니다.


재개발조합-교육청 갈등에 공사 반대

이런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는 새로 지어진 이 학교와 학교 옆 녹번 1~3구역 재개발조합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재개발조합은 학교부지 조성과 지반 고도 하향을 위한 돈 15억 원을 교육청에 기부채납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 조합이 이 돈을 돌려달라며 교육감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합니다. 1심, 2심에서 모두 '기각'(교육청 승소)되고 소송은 올해 1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학교 주차장 입구 바로 앞에 보도블록과 펜스 소유권이 조합 측에 있었던 겁니다. 진입로 공사를 하려면 이를 철거해야 하는데, 조합 측에서 공사하려 할 때마다 사유재산을 건드리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죠. 결국, 교육청의 공사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공사 허가권 쥔 구청은 8개월째 "방법 찾기 어렵다"

개교 직후인 지난해만 해도 전교생이 60명 남짓이었습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입주한 올해는 5배가 넘는 3백 명 수준이 됐습니다. 민원이 쏟아졌죠. 대립하는 교육청-조합 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 해결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사허가권을 쥔 구청은 어땠을까요? 상황을 알면서도 딱히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학교 주변 도로 소유권은 구청에 있고, 주차장 진입로 건설을 위한 '임시 사용 승인권'도 이미 떨어져 있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조합 측의 '강력한 항의'죠. 구청 입장에선 교육청과 싸우다 틀어진 조합 측을 굳이 달랠 이유도, 사유재산을 허가 없이 훼손했다가 강력한 항의에 마주칠 용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3백 명 넘는 초등학생들이 위험한 등하교를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취재 시작되자 해결 "다행이지만..."

문제는 허무하게 해결됐습니다. 취재를 시작하고, 학교 현장과 구청을 KBS 취재진이 방문해 공식 답변을 요구하자 구청 측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결국, 조합 측으로부터 공사를 해도 좋다는 응답을 들었고, 조만간 주차장 진입로를 새로 뚫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담당자는 현장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고 노력했다는 점도 취재진에게 전해왔습니다. 이제 차는 찻길로, 아이들은 교문으로, 자동차는 주차장에 있는 정상적인 상황이 될 테니 잘된 일입니다. 그래도 쓴맛은 남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없었을 때, 학교와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수차례 얘기했을 때 나서서 먼저 해결했으면 이 사례는 미담이 됐을 겁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