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산불 대응’ 핀란드 배우기…‘갈퀴’ 아닌 ‘망치’

입력 2019.04.09 (07:00) 수정 2019.04.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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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닌 북유럽 신화 원전에 나오는 라그나뢰크(Ragnarök, Destruction of the Powers)는 신과 거인들 사이에 벌어진 세계 종말을 초래하는 최후의 전쟁입니다. 가장 뛰어난 신 오딘도 늑대 펜리르에 죽고, '토르'도 미트가르트 뱀을 망치로 내려치지만, 그 독에 결국 목숨을 잃습니다.

오늘의 초점은 이때 나오는 불의 거인 주르트르(Surtr)입니다. 불의 군대를 이끌고 온 사방에 불을 지르는 주르트르, 더는 탈 게 남아 있질 않자 그제야 스스로 꺼졌습니다. 태울 것은 다 태우고 나서야 꺼지는 무서운 불의 속성입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번 강원 산불의 무서움이 겹칩니다.

거인들과 싸우는 토르, Mårten Eskil Winge 작, 1872  [그림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D%8C%8C%EC%9D%BC:Thor%27s_Battle_Against_the_J%C3%B6tnar_(1872)_by_M%C3%A5rten_Eskil_Winge.jpg]거인들과 싸우는 토르, Mårten Eskil Winge 작, 1872 [그림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D%8C%8C%EC%9D%BC:Thor%27s_Battle_Against_the_J%C3%B6tnar_(1872)_by_M%C3%A5rten_Eskil_Winge.jpg]

핀란드, '산불 막기' 갈퀴질이 아니다

북유럽 국가의 하나인 핀란드는 국토면적 대비 산림비율이 7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입니다. 2위와 3위는 일본(68.5%)과 스웨덴(68.4%) 4위는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나라(63.2%)입니다.

대표적인 산림 국가(forest nation)인 핀란드는 숲을 잘 지켜나가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촌극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86명의 사망자를 낸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달 17일 화재 현장인 파라다이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핀란드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핀란드는 갈퀴질과 청소(raking and cleaning)에 많은 시간을 들여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주가 산림 관리를 잘 못 해서 불이 났다는 얘깁니다.


이에 대해 바로 다음날 사울리 니니스토 핀란드 대통령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핀란드 산림 관리의 장점을 설명은 했지만, '갈퀴질'은 언급한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핀란드 국민들도 황당하다며 소셜미디어에 숲에서 갈퀴질 하는 사진들을 올리기도 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조기 경보, 공중 감시, 도로 네트워크가 비결

그렇다면 핀란드의 진정한 산림 관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핀란드 남부의 해메(Häme) 응용과학 대학의 산림 화재 연구원인 헨리크 린드베리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조기 경보 시스템, 둘째, 공중 감시 시스템, 마지막으로 잘 발달한 산림 도로망입니다.

린드베리 교수는 화재 위험이 큰 시기에, 핀란드 당국은 가능한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위험성을 효율적으로 전파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방송, 라디오는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얘깁니다.

핀란드의 지역 항공 클럽은 또 숲에 가장 위협적인 지역으로 비행해, 불이 삽시간에 번져 나갈 가능성 있는 지점을 집어내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산불이 날 확률은 옆 나라인 스웨덴과 거의 비슷하지만, 진화 속도는 더 빠른 이유라고 린드베리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목재와 종이 회사들은 광범위한 산림 도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도로를 만들 때 단지 벌목하기 편하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번져가는 속도를 늦추도록, 그러니까 불길을 차단하는 방향까지 고려해서 도로를 깔았다는 설명입니다. 나아가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 www.bbc.com][사진 출처 : www.bbc.com]

"죽은 나무 가능한 제거…자원 봉사자들도 한 몫"

핀란드 내무부의 산림 화재 전문가 라미 루스카는 '낙엽을 갈퀴로 긁어내는 일'이 핀란드의 화재 예방법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죽은 나무를 가능한 한 많이 제거'하는 데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죽은 나무는 건조되면 살아 있는 나무보다 불에 더 잘 타기 때문입니다. 숲 속에 땔감을 쌓아놓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름 나라가 넓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물론 핀란드가 산불에 강한 데는 자연환경의 원인도 있습니다.

유럽 산림 기구(European Forest Institute) 페카 레스키넨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연 평균 기온이 캘리포니아보다 낮고, 핀란드의 나무와 식물들이 상대적으로 덜 타는(less flammable) 종류이며, 특히 숲들이 나무와 호수로 작게 나뉘어있는 점을 들었습니다.

레스키넨 교수도 린드베리 교수와 같이, 핀란드의 광범위한 도로 네트워크가 화재 전파를 억제하는(firebreaks)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핀란드는 초기 경보 시스템에 정보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불은 역시 초기에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효율적인 화재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핀란드에서 산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만 1,000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에 탔습니다. 2006년 이후 가장 피해가 컸습니다. 지구 어디에서나 인간의 더 깊은 주의와 발 빠른 대처가 여전히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숲, 다시 재생으로

다시 북유럽 신화로 돌아갑니다. 라그나뢰크. 이 끔찍한 종말을 견디고 미드가르드(Midgard, Middle World :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남녀 한 쌍이 살아남았습니다. 리프와 리프르라시트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남녀는 이그드라실(Yggdrasill)이라는 모든 세상에 뻗어 있으며 세상을 보호해 주는 물푸레나무 사이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숲은 이렇게 생명을 지켜주고, 지속 가능한 삶의 모태가 됩니다.

토르의 쇠망치, 묠니르(Mjolinr)는 파괴를 뜻하기도 하지만, 다산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토르의 아들인 모디와 마그니는 되살아난 푸른 땅에서 아버지의 묠니르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작은 망치를 들고, 우리의 방제시스템을 돌아보고, 삶의 터전을 재건하는 일, 앞으로 산불의 비극을 막고, 재출발하는 모색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1. https://www.nytimes.com/2018/11/18/world/europe/finland-california-wildfires-trump-raking.html
2.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46183690
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256296
4. 바이킹의 신들 북유럽 신화,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저, 현대지성, 2016
5.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2, 웅진 지식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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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9 07:00:08
    • 수정2019-04-09 14: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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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닌 북유럽 신화 원전에 나오는 라그나뢰크(Ragnarök, Destruction of the Powers)는 신과 거인들 사이에 벌어진 세계 종말을 초래하는 최후의 전쟁입니다. 가장 뛰어난 신 오딘도 늑대 펜리르에 죽고, '토르'도 미트가르트 뱀을 망치로 내려치지만, 그 독에 결국 목숨을 잃습니다.

오늘의 초점은 이때 나오는 불의 거인 주르트르(Surtr)입니다. 불의 군대를 이끌고 온 사방에 불을 지르는 주르트르, 더는 탈 게 남아 있질 않자 그제야 스스로 꺼졌습니다. 태울 것은 다 태우고 나서야 꺼지는 무서운 불의 속성입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번 강원 산불의 무서움이 겹칩니다.

거인들과 싸우는 토르, Mårten Eskil Winge 작, 1872  [그림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D%8C%8C%EC%9D%BC:Thor%27s_Battle_Against_the_J%C3%B6tnar_(1872)_by_M%C3%A5rten_Eskil_Winge.jpg]
핀란드, '산불 막기' 갈퀴질이 아니다

북유럽 국가의 하나인 핀란드는 국토면적 대비 산림비율이 7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입니다. 2위와 3위는 일본(68.5%)과 스웨덴(68.4%) 4위는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나라(63.2%)입니다.

대표적인 산림 국가(forest nation)인 핀란드는 숲을 잘 지켜나가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촌극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86명의 사망자를 낸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달 17일 화재 현장인 파라다이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핀란드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핀란드는 갈퀴질과 청소(raking and cleaning)에 많은 시간을 들여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주가 산림 관리를 잘 못 해서 불이 났다는 얘깁니다.


이에 대해 바로 다음날 사울리 니니스토 핀란드 대통령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핀란드 산림 관리의 장점을 설명은 했지만, '갈퀴질'은 언급한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핀란드 국민들도 황당하다며 소셜미디어에 숲에서 갈퀴질 하는 사진들을 올리기도 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조기 경보, 공중 감시, 도로 네트워크가 비결

그렇다면 핀란드의 진정한 산림 관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핀란드 남부의 해메(Häme) 응용과학 대학의 산림 화재 연구원인 헨리크 린드베리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조기 경보 시스템, 둘째, 공중 감시 시스템, 마지막으로 잘 발달한 산림 도로망입니다.

린드베리 교수는 화재 위험이 큰 시기에, 핀란드 당국은 가능한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위험성을 효율적으로 전파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방송, 라디오는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얘깁니다.

핀란드의 지역 항공 클럽은 또 숲에 가장 위협적인 지역으로 비행해, 불이 삽시간에 번져 나갈 가능성 있는 지점을 집어내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산불이 날 확률은 옆 나라인 스웨덴과 거의 비슷하지만, 진화 속도는 더 빠른 이유라고 린드베리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목재와 종이 회사들은 광범위한 산림 도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도로를 만들 때 단지 벌목하기 편하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번져가는 속도를 늦추도록, 그러니까 불길을 차단하는 방향까지 고려해서 도로를 깔았다는 설명입니다. 나아가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 www.bbc.com]
"죽은 나무 가능한 제거…자원 봉사자들도 한 몫"

핀란드 내무부의 산림 화재 전문가 라미 루스카는 '낙엽을 갈퀴로 긁어내는 일'이 핀란드의 화재 예방법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죽은 나무를 가능한 한 많이 제거'하는 데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죽은 나무는 건조되면 살아 있는 나무보다 불에 더 잘 타기 때문입니다. 숲 속에 땔감을 쌓아놓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름 나라가 넓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물론 핀란드가 산불에 강한 데는 자연환경의 원인도 있습니다.

유럽 산림 기구(European Forest Institute) 페카 레스키넨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연 평균 기온이 캘리포니아보다 낮고, 핀란드의 나무와 식물들이 상대적으로 덜 타는(less flammable) 종류이며, 특히 숲들이 나무와 호수로 작게 나뉘어있는 점을 들었습니다.

레스키넨 교수도 린드베리 교수와 같이, 핀란드의 광범위한 도로 네트워크가 화재 전파를 억제하는(firebreaks)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핀란드는 초기 경보 시스템에 정보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불은 역시 초기에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효율적인 화재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핀란드에서 산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만 1,000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에 탔습니다. 2006년 이후 가장 피해가 컸습니다. 지구 어디에서나 인간의 더 깊은 주의와 발 빠른 대처가 여전히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숲, 다시 재생으로

다시 북유럽 신화로 돌아갑니다. 라그나뢰크. 이 끔찍한 종말을 견디고 미드가르드(Midgard, Middle World :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남녀 한 쌍이 살아남았습니다. 리프와 리프르라시트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남녀는 이그드라실(Yggdrasill)이라는 모든 세상에 뻗어 있으며 세상을 보호해 주는 물푸레나무 사이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숲은 이렇게 생명을 지켜주고, 지속 가능한 삶의 모태가 됩니다.

토르의 쇠망치, 묠니르(Mjolinr)는 파괴를 뜻하기도 하지만, 다산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토르의 아들인 모디와 마그니는 되살아난 푸른 땅에서 아버지의 묠니르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작은 망치를 들고, 우리의 방제시스템을 돌아보고, 삶의 터전을 재건하는 일, 앞으로 산불의 비극을 막고, 재출발하는 모색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1. https://www.nytimes.com/2018/11/18/world/europe/finland-california-wildfires-trump-raking.html
2.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46183690
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256296
4. 바이킹의 신들 북유럽 신화,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저, 현대지성, 2016
5.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2, 웅진 지식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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