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비상 사태 맞다니까!”…‘국경 장벽’ 이슈로 승부수 띄우는 트럼프

입력 2019.04.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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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내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멕시코 국경 불법 이민'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부터 가장 열심히 던졌던 화두이며 표심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선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 공약이었던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이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외치는 내년 대선을 향해 한층 거칠어진 항해의 닻을 올리고 있다.

'헛방'으로 끝난 뮬러 특검 수사 보고서 공개 이후 주류 언론들도 '멕시코 국경' 문제를 다시 쟁점화할 태세다. CNN과 NBC는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이 전격 경질된 뒷얘기를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문제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적 논조를 보여주고 있다.

■ '국경 장벽' 주무장관 전격 교체...대선 정비?

닐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 점검차 방문한 지난 5일, 캘리포니아-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가진 국경순찰대원들과의 회의에도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했다. 현장의 애로 사항을 청취한 회의는 토크쇼를 보는 듯 편안해 보였다. 회의 직후 날아든 닐슨 장관 경질 소식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난해 7월 논란이 됐던 불법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 정책을 실행해 총대를 멨던 닐슨 장관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순찰대원들과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닐슨 장관순찰대원들과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닐슨 장관

하지만 현지 언론의 보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닐슨 장관 사이에 앙금은 이미 쌓일 만큼 쌓여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NBC는 현지시각 8일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몇 달 동안 대대적인 가족 분리 정책을 다시 시행할 것을 행정부에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닐슨 장관은 반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 분리 정책은 지난해 샌디에이고 연방법원이 금지 판결을 내린 데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던 사안이다.

두 사람은 멕시코 국경 폐쇄를 놓고도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지난달 백악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엘패소(멕시코 국경지대 중 가장 큰 도시)국경 입구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지만, 닐슨 장관이 반기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합법적 무역과 여행마저 차단될 수 있다는 게 닐슨 장관이 반대한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안보는 나의 핵심 어젠다"라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 분리 정책 재개와 국경 폐쇄. 대통령의 두 가지 지시를 따르지 않은 닐슨 장관의 입장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다만, 닐슨 장관 경질은 중요한 정책과 관련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되면 자신과 100% 뜻이 맞는 사람으로 정책 실행자를 교체하는 트럼프 특유의 인사 방식이 작동된 또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차기 장관 후보군으로는 크리스 코백 전 캔자스주 법무장관 등 이민 문제 강경파들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지금은 내년 대선의 '핵심 어젠다'를 위해서라도 더욱 든든한 우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 끝없는 '비상사태' 논란..."국경 상황 직접 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이 금지 판결을 내린 가족 분리 정책을 왜 재개하려는 걸까?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공화당 일각에서도 반대하는 멕시코 국경 장벽 폐쇄를 왜 강행하려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입장은 지금 미국 국경의 상황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 설치를 위한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민주당은 "국경에는 비상사태가 없다"며 "비상사태 선포가 위헌이자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연관기사] 미국 땅으로 ‘필사의 월경’ 현장…트럼프 “국경 폐쇄”

그렇다면 지금 국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2일, ABC 등 현지 언론들은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몰래 들어오는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모습을 전했다. 철조망에 긁혀 피를 흘리거나 아기를 안은 채 강물을 건너는 등 필사적인 월경 현장들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불쌍하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이민자가 몇만 명 수준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들 중 범죄자들이 포함돼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마약의 경우 미국 내 유통되는 대부분이 멕시코를 거쳐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미 출신 한 가족이 월경해 미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중미 출신 한 가족이 월경해 미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케빈 매커리넌 미국 세관·국경 보호국 국장은 최근, 12,000명이었던 구금 시설에 구금된 사람 수가 하루 만에 13,400명으로 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국토안보부 통계를 보면, 멕시코 국경에서의 불법 이민자 체포 건수는 지난 1월 5만 8천여 건에서 3월 10만 건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미국은 밀물처럼 밀려드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리머'들을 아무 조건 없이 모두 받아줘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SNS를 통해 순찰대원들과의 회의 등 국경 상황을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직접 전하고 있다. 생방송을 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 한 백악관 트위터에는 대통령을 만난 한 여성 요원이 "사방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밀려 들어와 감시할 수 없다. 식구로 가장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하는 장면도 올라와 있다. 이 요원은 "장벽이 있는 곳은 확실히 불법 이민자 수가 적다. 20년 이상 된 낡은 장벽들이 많다"며 장벽 설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백악관 트위터백악관 트위터

순찰대원들의 말을 전하며 백악관은 "지금은 정말로 비상사태"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건 닐슨 장관도 인정한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트위터로 전하는 국경 지역 10m 높이 대형 장벽 설치 광경이나, '우리의 안전을 위해 장벽을 설치해주세요(Build the wall for our safety)'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열렬히 맞이하는 국경 지역 주민들의 모습도 주류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 '법원 장벽'에 또 막힌 트럼프, '멕시코 압박' 유지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각 7일, 하루에만 트위터로 두 번이나 한 말이 있다. '나라가 꽉 찼다!(Country is full!)'이다. 구금시설에도 더는 수용할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통상, 몰래 국경을 넘어들어오다 적발된 불법 이민자나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자에 한해 심사가 끝날 때까지 구금 시설에 머물도록 하게 한다. 망명 신청자의 경우 난민 신청 청문회 참석을 조건으로 미국 영토에 들여보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신청자가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고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

멕시코 내 중미 이주자 보호 시설멕시코 내 중미 이주자 보호 시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망명 신청자들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있다. 구금 시설이 꽉 찼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민자 보호 프로토콜(MPP)'로 불리는 이 정책은 그러나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 리처드 시보그 판사는 현지시각 8일, MPP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판결은 국경을 넘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행정부의 최후의 수단 중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가 임명한 또 다른 자의 사법 독재"라고 쓴 폭스뉴스 토크쇼 진행자의 트위터 글을 링크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렇게 최후 수단 하나를 잃게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를 향한 압박으로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주 내내 했던 '국경 폐쇄' 경고를 현실화하지는 못했지만, 멕시코 쪽에 변화를 감지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국경 폐쇄 발언 이후 "멕시코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했다. 수천 명을 체포해 본국으로 되돌려보냈다"고 전한 바 있다. 불법 이민자들의 월경 장면을 보면 멕시코 순찰대원들은 바로 옆에서도 하나같이 말리기는커녕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국경 폐쇄 발언 이후 바뀌었다는 의미로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라도 국경폐쇄를 강행할 태세다. 닐슨 장관 경질을 발표하면서도 그는 "열린 국경(범죄와 마약)은 안된다.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들을 막지 않으면 국경을 닫고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군병력 배치'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현실 인식

미국의 불법 이민 문제는 지난해 발생한 캐러밴 사태 이후 눈에 띄게 심각해진 게 사실이다.

한 미군이 국경 철조망을 점검하고 있다한 미군이 국경 철조망을 점검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멕시코 국경 경비와 순찰 지원을 위해 군병력 3천 7백여 명을 추가 파견했다. 현재 국경에 배치된 군인은 모두 4천 3백여 명에 달한다. 1월까지는 5천 9백여 명의 군인이 국경 수비대를 지원했다. 지난해 캐러밴이 다가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군병력 배치를 지시한 이래 국경의 군 인력이 4~5천 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비판을 감수하며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 본토 국경에는 군병력을 배치할 정도로 중미 이민자 행렬을 위급 상황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캐러밴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중간 선거 유세에서 "민주당과 그 동맹들이 캐러밴을 후원한다. 그들은 미국으로 오는 모든 사람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민주당 배후론'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를 중심으로 민주당원인 억만장자 자선가 조지 소로스가 캐러밴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소로스가 캐러밴에 돈을 대고 있다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트럼프 타워 도청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내 왔다. 대선 이슈로 선점하려는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접근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특검 수사만으로 결론 날 수 있는 러시아 스캔들과 달리, 국경의 상황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는 미국 국민들의 표심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으로의 대선 레이스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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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0 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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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내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멕시코 국경 불법 이민'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부터 가장 열심히 던졌던 화두이며 표심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선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 공약이었던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이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외치는 내년 대선을 향해 한층 거칠어진 항해의 닻을 올리고 있다.

'헛방'으로 끝난 뮬러 특검 수사 보고서 공개 이후 주류 언론들도 '멕시코 국경' 문제를 다시 쟁점화할 태세다. CNN과 NBC는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이 전격 경질된 뒷얘기를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문제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적 논조를 보여주고 있다.

■ '국경 장벽' 주무장관 전격 교체...대선 정비?

닐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 점검차 방문한 지난 5일, 캘리포니아-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가진 국경순찰대원들과의 회의에도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했다. 현장의 애로 사항을 청취한 회의는 토크쇼를 보는 듯 편안해 보였다. 회의 직후 날아든 닐슨 장관 경질 소식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난해 7월 논란이 됐던 불법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 정책을 실행해 총대를 멨던 닐슨 장관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순찰대원들과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닐슨 장관
하지만 현지 언론의 보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닐슨 장관 사이에 앙금은 이미 쌓일 만큼 쌓여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NBC는 현지시각 8일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몇 달 동안 대대적인 가족 분리 정책을 다시 시행할 것을 행정부에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닐슨 장관은 반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 분리 정책은 지난해 샌디에이고 연방법원이 금지 판결을 내린 데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던 사안이다.

두 사람은 멕시코 국경 폐쇄를 놓고도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지난달 백악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엘패소(멕시코 국경지대 중 가장 큰 도시)국경 입구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지만, 닐슨 장관이 반기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합법적 무역과 여행마저 차단될 수 있다는 게 닐슨 장관이 반대한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안보는 나의 핵심 어젠다"라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 분리 정책 재개와 국경 폐쇄. 대통령의 두 가지 지시를 따르지 않은 닐슨 장관의 입장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면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다만, 닐슨 장관 경질은 중요한 정책과 관련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되면 자신과 100% 뜻이 맞는 사람으로 정책 실행자를 교체하는 트럼프 특유의 인사 방식이 작동된 또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차기 장관 후보군으로는 크리스 코백 전 캔자스주 법무장관 등 이민 문제 강경파들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지금은 내년 대선의 '핵심 어젠다'를 위해서라도 더욱 든든한 우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 끝없는 '비상사태' 논란..."국경 상황 직접 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이 금지 판결을 내린 가족 분리 정책을 왜 재개하려는 걸까?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공화당 일각에서도 반대하는 멕시코 국경 장벽 폐쇄를 왜 강행하려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입장은 지금 미국 국경의 상황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 설치를 위한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민주당은 "국경에는 비상사태가 없다"며 "비상사태 선포가 위헌이자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연관기사] 미국 땅으로 ‘필사의 월경’ 현장…트럼프 “국경 폐쇄”

그렇다면 지금 국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 2일, ABC 등 현지 언론들은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몰래 들어오는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모습을 전했다. 철조망에 긁혀 피를 흘리거나 아기를 안은 채 강물을 건너는 등 필사적인 월경 현장들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불쌍하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이민자가 몇만 명 수준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들 중 범죄자들이 포함돼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마약의 경우 미국 내 유통되는 대부분이 멕시코를 거쳐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미 출신 한 가족이 월경해 미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케빈 매커리넌 미국 세관·국경 보호국 국장은 최근, 12,000명이었던 구금 시설에 구금된 사람 수가 하루 만에 13,400명으로 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국토안보부 통계를 보면, 멕시코 국경에서의 불법 이민자 체포 건수는 지난 1월 5만 8천여 건에서 3월 10만 건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미국은 밀물처럼 밀려드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리머'들을 아무 조건 없이 모두 받아줘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SNS를 통해 순찰대원들과의 회의 등 국경 상황을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직접 전하고 있다. 생방송을 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 한 백악관 트위터에는 대통령을 만난 한 여성 요원이 "사방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밀려 들어와 감시할 수 없다. 식구로 가장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하는 장면도 올라와 있다. 이 요원은 "장벽이 있는 곳은 확실히 불법 이민자 수가 적다. 20년 이상 된 낡은 장벽들이 많다"며 장벽 설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백악관 트위터
순찰대원들의 말을 전하며 백악관은 "지금은 정말로 비상사태"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건 닐슨 장관도 인정한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트위터로 전하는 국경 지역 10m 높이 대형 장벽 설치 광경이나, '우리의 안전을 위해 장벽을 설치해주세요(Build the wall for our safety)'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열렬히 맞이하는 국경 지역 주민들의 모습도 주류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 '법원 장벽'에 또 막힌 트럼프, '멕시코 압박' 유지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각 7일, 하루에만 트위터로 두 번이나 한 말이 있다. '나라가 꽉 찼다!(Country is full!)'이다. 구금시설에도 더는 수용할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통상, 몰래 국경을 넘어들어오다 적발된 불법 이민자나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자에 한해 심사가 끝날 때까지 구금 시설에 머물도록 하게 한다. 망명 신청자의 경우 난민 신청 청문회 참석을 조건으로 미국 영토에 들여보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신청자가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고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

멕시코 내 중미 이주자 보호 시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망명 신청자들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있다. 구금 시설이 꽉 찼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민자 보호 프로토콜(MPP)'로 불리는 이 정책은 그러나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 리처드 시보그 판사는 현지시각 8일, MPP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판결은 국경을 넘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행정부의 최후의 수단 중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가 임명한 또 다른 자의 사법 독재"라고 쓴 폭스뉴스 토크쇼 진행자의 트위터 글을 링크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렇게 최후 수단 하나를 잃게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를 향한 압박으로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주 내내 했던 '국경 폐쇄' 경고를 현실화하지는 못했지만, 멕시코 쪽에 변화를 감지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국경 폐쇄 발언 이후 "멕시코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했다. 수천 명을 체포해 본국으로 되돌려보냈다"고 전한 바 있다. 불법 이민자들의 월경 장면을 보면 멕시코 순찰대원들은 바로 옆에서도 하나같이 말리기는커녕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국경 폐쇄 발언 이후 바뀌었다는 의미로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라도 국경폐쇄를 강행할 태세다. 닐슨 장관 경질을 발표하면서도 그는 "열린 국경(범죄와 마약)은 안된다.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들을 막지 않으면 국경을 닫고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군병력 배치'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현실 인식

미국의 불법 이민 문제는 지난해 발생한 캐러밴 사태 이후 눈에 띄게 심각해진 게 사실이다.

한 미군이 국경 철조망을 점검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멕시코 국경 경비와 순찰 지원을 위해 군병력 3천 7백여 명을 추가 파견했다. 현재 국경에 배치된 군인은 모두 4천 3백여 명에 달한다. 1월까지는 5천 9백여 명의 군인이 국경 수비대를 지원했다. 지난해 캐러밴이 다가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군병력 배치를 지시한 이래 국경의 군 인력이 4~5천 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비판을 감수하며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 본토 국경에는 군병력을 배치할 정도로 중미 이민자 행렬을 위급 상황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캐러밴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중간 선거 유세에서 "민주당과 그 동맹들이 캐러밴을 후원한다. 그들은 미국으로 오는 모든 사람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민주당 배후론'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를 중심으로 민주당원인 억만장자 자선가 조지 소로스가 캐러밴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소로스가 캐러밴에 돈을 대고 있다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트럼프 타워 도청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내 왔다. 대선 이슈로 선점하려는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접근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특검 수사만으로 결론 날 수 있는 러시아 스캔들과 달리, 국경의 상황이 비상사태인지 아닌지는 미국 국민들의 표심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으로의 대선 레이스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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