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시간은 미국편?’…5단계 제재 완화-비핵화 퍼즐 맞추기

입력 2019.04.10 (11:47) 수정 2019.04.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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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두고 있는 북한 비핵화의 시간표는?"

한 라디오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핵화의 타이밍을 예측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국제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비핵화 시간표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북 압박 유지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비단 트럼프 행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봐도 하나같이 결론은 '제재 유지'이다. '일부 제재 완화' 카드로 어떻게든 대화 동력을 살려보려는 우리 정부 입장으로선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이 난제일 수밖에 없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인가, 아니면 'Early Harvest'(조기 수확) 할 것인가?

미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이 연락사무소나 종전 선언보다도 유엔 제재 해제를 더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제재의 효과가 확인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논리이다.

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협상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북미 간 협상 재개를 위한 실질적 방안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9일(현지시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다니엘 웰츠(Daniel Wertz) 북한위원회 프로그램 선임담당관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완화를 5단계로 나눠 제시했다.


1단계 (신뢰조성)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과 비확산 확약을 문서화하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에 가입한다. 이와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과 서해 미사일 시험장 해체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하면,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민간인과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예민하지 않은 품목(농기계, 의약품) 등을 북한에 수출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완화한다.

2단계 (초기 협상)

북한은 영변 핵시설 해체에 대한 검증을 허용하고, 미사일 추가 생산과 엔진 테스트를 동결한다. 이어, 북한이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안에 동의할 경우 국제 사회는 일부 제재 완화 조치에 나선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함께 남북 철도 연결과·도로 건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군사 목적이나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품, 사치품을 제외한 민생 목적의 물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완화한다.

■ 3단계 (중간 단계의 협상)

3단계는 사실상 완전한 비핵화의 본격적 절차이다. 북한의 핵분열성 물질을 동결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하며 탄도미사일을 위한 시설을 다른 용도로 변환한다. 이 조치가 이뤄지는 동안 유엔은 북한의 수출품에 대한 경제제재를 보류한다. 또한, 북한 정권에 대량 현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북한용 에스크로 계정(제 3자 예치)등을 활용한다.

■ 4단계 (관계 전환)

북미 간 관계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는 의제이다. 북한은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 개선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경제 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개성 공단을 재가동하고, 북한의 신규 해외노동자 송출을 허용한다. 유엔은 대북 신규 투자를 조건부 허용하며 동시에 미국의 독자 제재도 보류한다.

■ 5단계 (완전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북미 간 관계 정상화와 더불어 비핵화를 선언할 수 있는 단계이다. 북한이 남아있는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신고하며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면, 유엔은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이로써 북한은 국제 사회로 완전히 편입되면서 정상적인 무역을 할 수 있게 된다.

웰츠 담당관은 제재-비핵화 교환의 5단계 접근법은 제재를 지렛대로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일종의 '뼈대'(framework)라고 설명한다. 포괄적 비핵화 합의에서 북미 간 관계 정상화까지 '범위'(scope)를 펼쳐놓고 단계적 접근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 개선 문제도 포함되어 있어, 이 5단계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청와대가 발표한 '포괄적 비핵화 합의'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혹은 '조기 수확'과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모호한 단계적 접근법이 어떤 '뼈대'(framework)안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접근법은 참고할 만하다.

KEI 한미경제연구소 참석 패널들. 왼쪽부터 다니엘 웰츠 북한위원회 프로그램 선임담당관,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조교수, 키엘 페리어 KEI 디렉터KEI 한미경제연구소 참석 패널들. 왼쪽부터 다니엘 웰츠 북한위원회 프로그램 선임담당관,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조교수, 키엘 페리어 KEI 디렉터

시간은 미국 편인가? "그렇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북한 전문가들, "김정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성과 보여야...제재 해제가 급선무"

"시간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비핵화 시간표'가 없다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폐기 시간표를 없앴다. 대신 '올바른 합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단기 목표에 집착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 조지타운대 조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 무대에 나서는 것은 경제상황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20년까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성과를 주민들에게 보여야 하는 김 위원장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제재 해제라는 것이다.

브라운 교수는 게임이론을 설명하며 지금의 상황을 테니스 게임에 비유했다. 단식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2명, 북한과 미국이다. 이 경우이기거나, 혹은 지거나 제로섬 게임이 된다.

그런데 미국과 국제사회, 반대편에는 김정은 정권과 민간 영역으로 놓고 게임을 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즉, 국가의 영역(State sector)과 민간 영역(Private Sector)로 분리 대응할 경우 이미 장마당이 활성화된 북한 주민들의 경제 욕구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 욕구를 억누르고, 이는 곧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우려가 김 위원장을 다시 협상장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주장한다.

표면상 한국 정부는 테니스 코트에서 미국과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트 너머 북한의 손을 잡아 이끌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켜야 하는 촉진자 역할도 해야 한다. 스텝이 꼬이지 않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내딛는지가 중요하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풀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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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0 11:47:15
    • 수정2019-04-10 11: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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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두고 있는 북한 비핵화의 시간표는?"

한 라디오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핵화의 타이밍을 예측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국제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비핵화 시간표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북 압박 유지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비단 트럼프 행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봐도 하나같이 결론은 '제재 유지'이다. '일부 제재 완화' 카드로 어떻게든 대화 동력을 살려보려는 우리 정부 입장으로선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이 난제일 수밖에 없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인가, 아니면 'Early Harvest'(조기 수확) 할 것인가?

미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이 연락사무소나 종전 선언보다도 유엔 제재 해제를 더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제재의 효과가 확인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논리이다.

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협상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북미 간 협상 재개를 위한 실질적 방안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9일(현지시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다니엘 웰츠(Daniel Wertz) 북한위원회 프로그램 선임담당관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완화를 5단계로 나눠 제시했다.


1단계 (신뢰조성)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과 비확산 확약을 문서화하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에 가입한다. 이와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과 서해 미사일 시험장 해체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하면,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민간인과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예민하지 않은 품목(농기계, 의약품) 등을 북한에 수출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완화한다.

2단계 (초기 협상)

북한은 영변 핵시설 해체에 대한 검증을 허용하고, 미사일 추가 생산과 엔진 테스트를 동결한다. 이어, 북한이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안에 동의할 경우 국제 사회는 일부 제재 완화 조치에 나선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함께 남북 철도 연결과·도로 건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군사 목적이나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품, 사치품을 제외한 민생 목적의 물품을 수입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완화한다.

■ 3단계 (중간 단계의 협상)

3단계는 사실상 완전한 비핵화의 본격적 절차이다. 북한의 핵분열성 물질을 동결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하며 탄도미사일을 위한 시설을 다른 용도로 변환한다. 이 조치가 이뤄지는 동안 유엔은 북한의 수출품에 대한 경제제재를 보류한다. 또한, 북한 정권에 대량 현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북한용 에스크로 계정(제 3자 예치)등을 활용한다.

■ 4단계 (관계 전환)

북미 간 관계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는 의제이다. 북한은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 개선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경제 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개성 공단을 재가동하고, 북한의 신규 해외노동자 송출을 허용한다. 유엔은 대북 신규 투자를 조건부 허용하며 동시에 미국의 독자 제재도 보류한다.

■ 5단계 (완전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

북미 간 관계 정상화와 더불어 비핵화를 선언할 수 있는 단계이다. 북한이 남아있는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신고하며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면, 유엔은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이로써 북한은 국제 사회로 완전히 편입되면서 정상적인 무역을 할 수 있게 된다.

웰츠 담당관은 제재-비핵화 교환의 5단계 접근법은 제재를 지렛대로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일종의 '뼈대'(framework)라고 설명한다. 포괄적 비핵화 합의에서 북미 간 관계 정상화까지 '범위'(scope)를 펼쳐놓고 단계적 접근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 개선 문제도 포함되어 있어, 이 5단계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청와대가 발표한 '포괄적 비핵화 합의'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혹은 '조기 수확'과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모호한 단계적 접근법이 어떤 '뼈대'(framework)안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접근법은 참고할 만하다.

KEI 한미경제연구소 참석 패널들. 왼쪽부터 다니엘 웰츠 북한위원회 프로그램 선임담당관,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조교수, 키엘 페리어 KEI 디렉터
시간은 미국 편인가? "그렇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북한 전문가들, "김정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성과 보여야...제재 해제가 급선무"

"시간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비핵화 시간표'가 없다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폐기 시간표를 없앴다. 대신 '올바른 합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단기 목표에 집착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 조지타운대 조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 무대에 나서는 것은 경제상황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20년까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성과를 주민들에게 보여야 하는 김 위원장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제재 해제라는 것이다.

브라운 교수는 게임이론을 설명하며 지금의 상황을 테니스 게임에 비유했다. 단식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2명, 북한과 미국이다. 이 경우이기거나, 혹은 지거나 제로섬 게임이 된다.

그런데 미국과 국제사회, 반대편에는 김정은 정권과 민간 영역으로 놓고 게임을 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즉, 국가의 영역(State sector)과 민간 영역(Private Sector)로 분리 대응할 경우 이미 장마당이 활성화된 북한 주민들의 경제 욕구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경제 욕구를 억누르고, 이는 곧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우려가 김 위원장을 다시 협상장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주장한다.

표면상 한국 정부는 테니스 코트에서 미국과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트 너머 북한의 손을 잡아 이끌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켜야 하는 촉진자 역할도 해야 한다. 스텝이 꼬이지 않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내딛는지가 중요하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풀어놓을 보따리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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