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단독] 임시정부 숨은 주역…2백여 명 단체사진 발굴

입력 2019.04.10 (16:17) 수정 2019.04.1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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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임시정부 초기 사진으로는 유일하다”
“임시정부 기초를 다진 젊은 주역들이다”

이 사진을 접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꼭 100년 전 1919년 3월 1일 민초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이 시작되었고, 운동의 동력이 상하이로 이어져 4월 11일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시초였다. 이 사진은 임시정부 수립 초기, 그러니까 1919년 4월부터 9월까지의 기간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발굴된 사진이다.

KBS 탐사보도부, 일본 방위연구소에서 단독 발굴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 자료를 확인 중인 취재진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 자료를 확인 중인 취재진

KBS 탐사보도부는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 현지에서 단독 발굴한 '임시정부 초기 2백여 명 단체 사진'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KBS는 취재의 정확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 달여 전부터 독립기념관·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발굴 작업과 내용 확인을 함께 해왔다.

이번에 발굴한 사진은 1919년 7월 9일 조선군참모장이 육군차관에게 올린 보고서에 첨부된 것으로, [조선 소요사건 관계 서류]라는 제목의 자료에 포함돼 있다. 원본 사진은 가로 54cm·세로 20cm다. 사진은 현재 일본군 자료가 모여있는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임정 수립 초기 '유일한 사진'...225명 등장

지금까지 발굴된 사진 가운데 임정 수립 초기 상황을 드러내주는 유일한 사진이다. 일본 보고서에는 사진 속 인물을 "상하이에 있는 조선인 간부와 결사자 2백여 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성 178명, 여성 24명, 아이들 23명 등 모두 225명이 등장하는 단체사진이다. 역사적·학문적 가치가 높고 이를 토대로 후속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취재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문답으로 정리해봤다.

① 언제, 왜 촬영했나?

→ 1919년 4월 30일 또는 그 직후로 추정된다. 일본 측이 이 사진을 내부 보고한 시점이 1919년 7월 9일이다. 그렇다면 촬영 시점은 그 전이다. 복장을 보면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이다. 남성들 한가운데에 손정도 선생이 앉아 있다. 그날의 '주인공'으로 보인다.(아래 사진 참조) 손정도 선생은 1919년 4월 30일 임시의정원 2대 의장으로 선출된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한가운데 자리잡은 손정도 선생. 이번에 발굴된 사진에서 확대한 얼굴과(위), 기존 자료 사진(아래)에서 손정도 선생의 얼굴을 비교했다한가운데 자리잡은 손정도 선생. 이번에 발굴된 사진에서 확대한 얼굴과(위), 기존 자료 사진(아래)에서 손정도 선생의 얼굴을 비교했다

② 어디에서 촬영했나?

→ 당시 상하이 내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프랑스 공원'(현 푸싱공원)이 확실해 보인다. 사진 속 구조물과 당시 상하이 지도로 확인한 결과다. KBS 탐사보도부는 상하이 현지 취재를 통해 장소를 특정했고 내일(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뉴스9]에서 구체적 내용을 소개한다.

③ 독립운동가 몇 명이 확인되었나?

→ 전문가들 분석으로 지금까지 26명을 확인했다. 김구·여운형·신익희·김홍서·엄항섭 등이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비교적 얼굴 식별이 가능하다.

발굴된 사진의 오른쪽 부분을 확대한 모습발굴된 사진의 오른쪽 부분을 확대한 모습

④ 특정되지 않은 이들은 누구인가?

→ 아쉽게도 특정되지 않은 인물이 대다수다. 학계 전문가들은 "임정 수립 초기 궂은일을 도맡았던 젊은 실무자들"로 보고 있다. 특히 초기 임시의정원 의원들(지금의 국회의원)의 경우 이름만 남아있고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임정의 '숨은 주역들'이다. 이번 사진이 주는 가장 큰 의미 가운데 하나이며 학계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⑤ 사진 왼쪽에 있는 여성과 아이들은 누구인가?

→ 임시정부 사람들의 가족으로 보인다. 적극적으로 임시정부 관련 업무를 맡은 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경우 당시 상하이에 있었던 '인성학교' 학생들로 보인다. 인성학교는 한국 교민 자제들의 초등교육을 맡은 곳이다.

KBS 탐사보도부가 공개한 이번 자료는 원본에 있는 흠집과 자국을 없애기 위해 보정 작업을 거친 사진이다.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임시정부 수립 초기 2백여 명 단체 사진 내려받기

탐사보도부는 4월 11일 상하이 현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뉴스9]에서 이번 사진의 발굴 과정과 구체적 취재 내용을 보도한다. 특히 임시정부 사람들에게 '극비'로 취급된 이 사진이 어떻게 일본군 손에 들어갔는지 그 '내막'을 전한다.

(※KBS 탐사보도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달,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를 단독 발굴해 보도했고 번역본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 있다. 탐사보도부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올해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기 위한 다각도의 취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연관기사] [탐사K] 총독부가 만든 ‘3·1운동 계보도’ 단독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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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단독] 임시정부 숨은 주역…2백여 명 단체사진 발굴
    • 입력 2019-04-10 16:17:49
    • 수정2019-04-11 22:23:44
    탐사K
“상해임시정부 초기 사진으로는 유일하다”
“임시정부 기초를 다진 젊은 주역들이다”

이 사진을 접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꼭 100년 전 1919년 3월 1일 민초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이 시작되었고, 운동의 동력이 상하이로 이어져 4월 11일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시초였다. 이 사진은 임시정부 수립 초기, 그러니까 1919년 4월부터 9월까지의 기간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발굴된 사진이다.

KBS 탐사보도부, 일본 방위연구소에서 단독 발굴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 자료를 확인 중인 취재진
KBS 탐사보도부는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 현지에서 단독 발굴한 '임시정부 초기 2백여 명 단체 사진'을 KBS 뉴스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KBS는 취재의 정확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 달여 전부터 독립기념관·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발굴 작업과 내용 확인을 함께 해왔다.

이번에 발굴한 사진은 1919년 7월 9일 조선군참모장이 육군차관에게 올린 보고서에 첨부된 것으로, [조선 소요사건 관계 서류]라는 제목의 자료에 포함돼 있다. 원본 사진은 가로 54cm·세로 20cm다. 사진은 현재 일본군 자료가 모여있는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임정 수립 초기 '유일한 사진'...225명 등장

지금까지 발굴된 사진 가운데 임정 수립 초기 상황을 드러내주는 유일한 사진이다. 일본 보고서에는 사진 속 인물을 "상하이에 있는 조선인 간부와 결사자 2백여 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성 178명, 여성 24명, 아이들 23명 등 모두 225명이 등장하는 단체사진이다. 역사적·학문적 가치가 높고 이를 토대로 후속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취재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문답으로 정리해봤다.

① 언제, 왜 촬영했나?

→ 1919년 4월 30일 또는 그 직후로 추정된다. 일본 측이 이 사진을 내부 보고한 시점이 1919년 7월 9일이다. 그렇다면 촬영 시점은 그 전이다. 복장을 보면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이다. 남성들 한가운데에 손정도 선생이 앉아 있다. 그날의 '주인공'으로 보인다.(아래 사진 참조) 손정도 선생은 1919년 4월 30일 임시의정원 2대 의장으로 선출된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한가운데 자리잡은 손정도 선생. 이번에 발굴된 사진에서 확대한 얼굴과(위), 기존 자료 사진(아래)에서 손정도 선생의 얼굴을 비교했다
② 어디에서 촬영했나?

→ 당시 상하이 내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프랑스 공원'(현 푸싱공원)이 확실해 보인다. 사진 속 구조물과 당시 상하이 지도로 확인한 결과다. KBS 탐사보도부는 상하이 현지 취재를 통해 장소를 특정했고 내일(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뉴스9]에서 구체적 내용을 소개한다.

③ 독립운동가 몇 명이 확인되었나?

→ 전문가들 분석으로 지금까지 26명을 확인했다. 김구·여운형·신익희·김홍서·엄항섭 등이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비교적 얼굴 식별이 가능하다.

발굴된 사진의 오른쪽 부분을 확대한 모습
④ 특정되지 않은 이들은 누구인가?

→ 아쉽게도 특정되지 않은 인물이 대다수다. 학계 전문가들은 "임정 수립 초기 궂은일을 도맡았던 젊은 실무자들"로 보고 있다. 특히 초기 임시의정원 의원들(지금의 국회의원)의 경우 이름만 남아있고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임정의 '숨은 주역들'이다. 이번 사진이 주는 가장 큰 의미 가운데 하나이며 학계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⑤ 사진 왼쪽에 있는 여성과 아이들은 누구인가?

→ 임시정부 사람들의 가족으로 보인다. 적극적으로 임시정부 관련 업무를 맡은 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경우 당시 상하이에 있었던 '인성학교' 학생들로 보인다. 인성학교는 한국 교민 자제들의 초등교육을 맡은 곳이다.

KBS 탐사보도부가 공개한 이번 자료는 원본에 있는 흠집과 자국을 없애기 위해 보정 작업을 거친 사진이다.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임시정부 수립 초기 2백여 명 단체 사진 내려받기

탐사보도부는 4월 11일 상하이 현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뉴스9]에서 이번 사진의 발굴 과정과 구체적 취재 내용을 보도한다. 특히 임시정부 사람들에게 '극비'로 취급된 이 사진이 어떻게 일본군 손에 들어갔는지 그 '내막'을 전한다.

(※KBS 탐사보도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달,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를 단독 발굴해 보도했고 번역본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 있다. 탐사보도부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올해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기 위한 다각도의 취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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