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낙태죄 폐지되면 낙태율 올라간다?

입력 2019.04.11 (09:01) 수정 2019.04.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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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오늘(11일)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임신부가 인공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행위'를 죄로 규정했다. 의사가 임신부의 동의를 받아 임신중절수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헌재는 이미 2012년에 낙태죄에 대해 재판관 4대4의 비율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낙태죄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 그만큼 오늘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폐지 찬반의 한 가운데, 3가지 쟁점을 검증해 봤다.


[검증1. '낙태죄 폐지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2012년 헌재는 낙태죄 합헌 결정의 이유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까지 허용한다면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는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과 프로라이프 등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다.

오늘 헌재 결정 이후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단순히 낙태죄의 유무가 낙태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OECD 36개 국가 가운데 본인의 요청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나라(낙태 허용)와 그렇지 않은 나라(낙태 금지)의 인공임신중절률을 비교해봤다.

인공임신중절률(낙태율)은 만 15~44세 여성의 '천 명당 인공임신중절 건수(‰, 퍼밀)'를 의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인용된 OECD 자료를 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추정 낙태율'은 15.8‰인데, 낙태가 허용된 미국은 11.8‰(2015년 기준), 독일 7.2‰(2015년 기준), 벨기에 9.3‰(2011년 기준)으로 낙태가 허용된 국가의 낙태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칠레의 경우 0.5‰(2005년 기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폴란드도 0.1‰(2012년 기준) 등으로 낙태율이 낮았다.
낙태죄 유무가 낙태율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낙태가 불법인 나라는 공식 통계가 잡히지 않는 만큼 실제보다 더 적게 추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은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미국의 사례를 든다.


미국은 1973년 낙태를 합법화했는데 당시 16.3‰이던 낙태율은 1980년에 29.3‰까지 높아졌다가 2014년에 14.6‰으로 합법화 시점보다 더 떨어졌다.

최정윤 프로라이프 사무처장은 "미국이 낙태를 합법화한 이후 낙태율이 1.8배 치솟았고 다양한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다시 낮아지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미국에 비해 낙태를 숙고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덜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통계를 놓고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2014년 미국의 낙태율이 낙태 합법화 전에 비해 더 낮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의 나영 집행위원장은 "합법화 직후에는 임신중지율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는 안 할 사람들이 낙태를 해서가 아니라 합법화가 됐기 때문에 해야 할 사람들이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합법화 이후 사회·경제적 조건과 보건의료 체계, 성교육, 피임 실천율 등이 어떻게 보장되느냐에 따라 임신중지율(중절률)이 달라지게 된다"며 "중요한건 처벌이 아니라 성관계와 피임, 임신, 양육 등과 관련한 조건 보장 등 국가가 어떤 조치를 잘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검증2. 잘 사는 나라는 낙태율도 낮다?]


대체로 사실이다.

낙태 허용 여부보다 낙태율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회경제적 여건과 보건의료 체계 등 구조적 요인이다.


미국 비영리 연구단체 구트마허 연구소의 '세계의 인공임신중절 2017(Abortion Worldwide 2017)'보고서를 보면, 2010-2014년 사이 선진국들의 낙태율 평균은 27‰였는데 같은 기간 개발도상국은 36‰으로 더 높았다.

개발도상국 통계에는 낙태가 엄격히 금지된 파키스탄 50‰(2012년 기준)과 인도 47‰(2015년 기준)가 포함돼 있다.

낙태의 허용 여부 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검증3. "낙태죄 폐지하면 아이 낳고 싶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대체로 사실 아니다.

낙태죄 폐지 반대측은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에게서 아이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법 제31조 1항에 따라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도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성이 협박 등의 방법으로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할 경우 '낙태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면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에게서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낙태죄는 일차적으로는 부녀에게 책임을 묻는 법으로, 낙태 교사로 타인을 처벌받게 하려면 낙태를 한 여성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교사한 사람을 신고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낙태죄가 폐지되더라도 협박이나 폭행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현행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참고자료

1. [내려받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
2. [내려받기]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 세계의 인공임신중절 2017(Abortion Worldwide 2017)
3.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 <미국의 인공임신중절(Induced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
4. 관련 형법 조문
형법(강요) [PDF] 형법(교사) [PDF] 형법(낙태) [PDF] 형법(폭행)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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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낙태죄 폐지되면 낙태율 올라간다?
    • 입력 2019-04-11 09:01:03
    • 수정2019-04-11 10:13:51
    팩트체크K
헌법재판소가 오늘(11일)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임신부가 인공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행위'를 죄로 규정했다. 의사가 임신부의 동의를 받아 임신중절수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헌재는 이미 2012년에 낙태죄에 대해 재판관 4대4의 비율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낙태죄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 그만큼 오늘 헌재의 결정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낙태죄 폐지 찬반의 한 가운데, 3가지 쟁점을 검증해 봤다.


[검증1. '낙태죄 폐지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2012년 헌재는 낙태죄 합헌 결정의 이유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까지 허용한다면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는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과 프로라이프 등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다.

오늘 헌재 결정 이후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단순히 낙태죄의 유무가 낙태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OECD 36개 국가 가운데 본인의 요청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나라(낙태 허용)와 그렇지 않은 나라(낙태 금지)의 인공임신중절률을 비교해봤다.

인공임신중절률(낙태율)은 만 15~44세 여성의 '천 명당 인공임신중절 건수(‰, 퍼밀)'를 의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인용된 OECD 자료를 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추정 낙태율'은 15.8‰인데, 낙태가 허용된 미국은 11.8‰(2015년 기준), 독일 7.2‰(2015년 기준), 벨기에 9.3‰(2011년 기준)으로 낙태가 허용된 국가의 낙태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칠레의 경우 0.5‰(2005년 기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폴란드도 0.1‰(2012년 기준) 등으로 낙태율이 낮았다.
낙태죄 유무가 낙태율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낙태가 불법인 나라는 공식 통계가 잡히지 않는 만큼 실제보다 더 적게 추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은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미국의 사례를 든다.


미국은 1973년 낙태를 합법화했는데 당시 16.3‰이던 낙태율은 1980년에 29.3‰까지 높아졌다가 2014년에 14.6‰으로 합법화 시점보다 더 떨어졌다.

최정윤 프로라이프 사무처장은 "미국이 낙태를 합법화한 이후 낙태율이 1.8배 치솟았고 다양한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다시 낮아지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미국에 비해 낙태를 숙고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덜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통계를 놓고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2014년 미국의 낙태율이 낙태 합법화 전에 비해 더 낮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의 나영 집행위원장은 "합법화 직후에는 임신중지율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는 안 할 사람들이 낙태를 해서가 아니라 합법화가 됐기 때문에 해야 할 사람들이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합법화 이후 사회·경제적 조건과 보건의료 체계, 성교육, 피임 실천율 등이 어떻게 보장되느냐에 따라 임신중지율(중절률)이 달라지게 된다"며 "중요한건 처벌이 아니라 성관계와 피임, 임신, 양육 등과 관련한 조건 보장 등 국가가 어떤 조치를 잘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검증2. 잘 사는 나라는 낙태율도 낮다?]


대체로 사실이다.

낙태 허용 여부보다 낙태율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회경제적 여건과 보건의료 체계 등 구조적 요인이다.


미국 비영리 연구단체 구트마허 연구소의 '세계의 인공임신중절 2017(Abortion Worldwide 2017)'보고서를 보면, 2010-2014년 사이 선진국들의 낙태율 평균은 27‰였는데 같은 기간 개발도상국은 36‰으로 더 높았다.

개발도상국 통계에는 낙태가 엄격히 금지된 파키스탄 50‰(2012년 기준)과 인도 47‰(2015년 기준)가 포함돼 있다.

낙태의 허용 여부 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검증3. "낙태죄 폐지하면 아이 낳고 싶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대체로 사실 아니다.

낙태죄 폐지 반대측은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에게서 아이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법 제31조 1항에 따라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도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성이 협박 등의 방법으로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할 경우 '낙태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면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에게서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낙태죄는 일차적으로는 부녀에게 책임을 묻는 법으로, 낙태 교사로 타인을 처벌받게 하려면 낙태를 한 여성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교사한 사람을 신고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낙태죄가 폐지되더라도 협박이나 폭행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현행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참고자료

1. [내려받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
2. [내려받기]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 세계의 인공임신중절 2017(Abortion Worldwide 2017)
3.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 <미국의 인공임신중절(Induced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
4. 관련 형법 조문
형법(강요) [PDF] 형법(교사) [PDF] 형법(낙태) [PDF] 형법(폭행)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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