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재난 상황에서의 동물 구조, 외국은 어떻게?

입력 2019.04.11 (11:00) 수정 2019.04.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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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목줄’과 ‘울타리’가 없었더라면 동물들은 살았을까?기사가 나간 후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 외국의 사례가 꼭 정답인 것만도 아니고, 문화나 역사 등 우리나라만의 실정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이 옳고 우리는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먼저 대형 재난을 겪고 그로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나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과 동물을 함께 대피시키는지를 알게 되면 이번에 제기된 국가나 정부 차원의 '동물 보호 매뉴얼 마련'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미국은 현재 30개 이상의 주 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와 구조 및 보호와 회복을 제공하는 법이나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봉사 동물은 물론이고, 반려 동물과 농장 동물들도 대상으로 포함된다.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도 반려동물의 대피소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재난 대응 계획도 철저히 사람 위주였다. 이 때문에 반려 동물을 두고 대피하라는 구조대원들의 권유를 많은 주민이 꺼렸고, 실제로 반려 동물 때문에 대피를 포기했던 사람 중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그 이듬해인 2006년 한 연구기관(Fritz Institute)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피를 거부한 사람들 가운데 무려 44%가 '반려 동물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대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2005년에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PETS Act(반려 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됐다. 이 법에 따라 연방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려는 지방 정부들은 재난 대응 계획에 반드시 동물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른바 '동반피난'이라고 하는 반려 동물의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animal-friendly shelter)도 대폭 늘었다. 그리고 동반 피난이 불가피하게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동물보호 담당관을 포함한 현장 인력'이 가까운 시 보호소나 따로 마련된 동물 전용 대피소로 반려 동물을 안전하게 안내·인계하고 추후에 주인과 함께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반려 동물 때문에 대피를 거부한 사람들로 인해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 재난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재난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안전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더 공고해졌다.

재난 상황에서 다친 동물들을 이동 진료·치료하고 있는 구조대원들. 뒤로 North Valley Animal Disaster Group Livestock Rescue Unit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노쓰 밸리 동물 재난 구호팀의 이동 진료 차량이라는 뜻.재난 상황에서 다친 동물들을 이동 진료·치료하고 있는 구조대원들. 뒤로 North Valley Animal Disaster Group Livestock Rescue Unit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노쓰 밸리 동물 재난 구호팀의 이동 진료 차량이라는 뜻.

<일본>
2011년 대지진을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환경성의 '반려 동물 재해대책'을 통해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을 점차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아오시마에 이른바 '고양이섬'이 있을 정도로 동물 사랑이 각별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보다도 워낙 지진 같은 재난 상황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응책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동물들에 대한 안전 문제도 자연스레 제기되게 되었다.

일본 환경성은 2013년 '재해 시 반려 동물 구호 대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반려 동물과 함께 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반려 동물 동행 피난을 명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동행 피난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는 공감대에 따라서다. 실제로 대지진 당시 버려진 동물들은 야생화되어 문제를 야기했으며, 애지중지하던 반려 동물과 떨어져야만 했던 사람들은 크나큰 정신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연관기사] 동일본대지진 8년…한해 단 두 번만 허락되는 만남

비록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국가에서 반려 동물과의 동반 피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명시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비반려인들을 배려해 대피소 한쪽에 따로 반려 동물 수용 공간을 마련하거나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반려인들의 공간을 분리해 운영했다. 구호물자에 반려 동물용 사료를 포함해 지급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의 경우는 또, 재난이 워낙 잦으므로 주인이 없을 때 위기가 닥쳤을 경우를 대비해 유사시 이웃의 반려 동물 담당자까지 정해놓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재난 시 반려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민관봉사단체가 응급상담전화를 운영하고 '펫위기관리사'라는 자격증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미국과 일본 모두 "사람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난 발생 시에는 스스로 먼저 나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반려 동물도 챙길 수 없다"면서 "지진 발생 시 무서워서 숨은 반려 동물을 찾다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2차 피해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항상 우선순위는 '나'에게 두고, 다만 내 몸 하나 가눌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반려 동물까지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재난 상황에 대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지진 경보가 울리면 미리 마련해 놓은 피난 장소에 반려 동물이 들어가 몸을 피하도록 교육(크레이트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언제·어디서·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도록 반려 동물에 인식표를 2개 이상 착용하도록 하며, 대문에 반려 동물을 키우는 집임을 알려주는 '펫 레스큐' 표지판을 붙여놓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소방관 등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라고.

<호주·뉴질랜드>
영국 연방으로 동물구호단체의 효시인 RSPCA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재난 상황에서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한 대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들 나라는 그동안 사람에 비해 동물들의 구호 문제가 소홀히 다뤄져 왔음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비용을 진단하고, 특히 독거노인이나 홈리스처럼 반려 동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동물 구호가 체계화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뤄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보호 책임의 소재(liability issues)와 같은 법적 문제 해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성서대학교 김성호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외국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구조하고, 또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재난 속에서 살아남아 '희망의 아이콘'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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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번 강원도 산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더 폭넓은 논의와 위기 상황에서의 체계적 동물 구조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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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1 11:00:48
    • 수정2019-04-15 09: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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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목줄’과 ‘울타리’가 없었더라면 동물들은 살았을까?기사가 나간 후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 외국의 사례가 꼭 정답인 것만도 아니고, 문화나 역사 등 우리나라만의 실정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이 옳고 우리는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먼저 대형 재난을 겪고 그로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나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람과 동물을 함께 대피시키는지를 알게 되면 이번에 제기된 국가나 정부 차원의 '동물 보호 매뉴얼 마련'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미국은 현재 30개 이상의 주 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와 구조 및 보호와 회복을 제공하는 법이나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봉사 동물은 물론이고, 반려 동물과 농장 동물들도 대상으로 포함된다.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도 반려동물의 대피소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재난 대응 계획도 철저히 사람 위주였다. 이 때문에 반려 동물을 두고 대피하라는 구조대원들의 권유를 많은 주민이 꺼렸고, 실제로 반려 동물 때문에 대피를 포기했던 사람 중에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그 이듬해인 2006년 한 연구기관(Fritz Institute)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피를 거부한 사람들 가운데 무려 44%가 '반려 동물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대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2005년에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PETS Act(반려 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됐다. 이 법에 따라 연방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려는 지방 정부들은 재난 대응 계획에 반드시 동물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른바 '동반피난'이라고 하는 반려 동물의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animal-friendly shelter)도 대폭 늘었다. 그리고 동반 피난이 불가피하게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는 '동물보호 담당관을 포함한 현장 인력'이 가까운 시 보호소나 따로 마련된 동물 전용 대피소로 반려 동물을 안전하게 안내·인계하고 추후에 주인과 함께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반려 동물 때문에 대피를 거부한 사람들로 인해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족' 또는 '공동체' 단위 재난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재난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안전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더 공고해졌다.

재난 상황에서 다친 동물들을 이동 진료·치료하고 있는 구조대원들. 뒤로 North Valley Animal Disaster Group Livestock Rescue Unit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노쓰 밸리 동물 재난 구호팀의 이동 진료 차량이라는 뜻.
<일본>
2011년 대지진을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환경성의 '반려 동물 재해대책'을 통해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을 점차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아오시마에 이른바 '고양이섬'이 있을 정도로 동물 사랑이 각별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보다도 워낙 지진 같은 재난 상황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응책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동물들에 대한 안전 문제도 자연스레 제기되게 되었다.

일본 환경성은 2013년 '재해 시 반려 동물 구호 대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반려 동물과 함께 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반려 동물 동행 피난을 명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동행 피난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는 공감대에 따라서다. 실제로 대지진 당시 버려진 동물들은 야생화되어 문제를 야기했으며, 애지중지하던 반려 동물과 떨어져야만 했던 사람들은 크나큰 정신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연관기사] 동일본대지진 8년…한해 단 두 번만 허락되는 만남

비록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국가에서 반려 동물과의 동반 피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명시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비반려인들을 배려해 대피소 한쪽에 따로 반려 동물 수용 공간을 마련하거나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반려인들의 공간을 분리해 운영했다. 구호물자에 반려 동물용 사료를 포함해 지급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의 경우는 또, 재난이 워낙 잦으므로 주인이 없을 때 위기가 닥쳤을 경우를 대비해 유사시 이웃의 반려 동물 담당자까지 정해놓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재난 시 반려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민관봉사단체가 응급상담전화를 운영하고 '펫위기관리사'라는 자격증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미국과 일본 모두 "사람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난 발생 시에는 스스로 먼저 나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반려 동물도 챙길 수 없다"면서 "지진 발생 시 무서워서 숨은 반려 동물을 찾다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2차 피해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항상 우선순위는 '나'에게 두고, 다만 내 몸 하나 가눌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반려 동물까지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재난 상황에 대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지진 경보가 울리면 미리 마련해 놓은 피난 장소에 반려 동물이 들어가 몸을 피하도록 교육(크레이트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언제·어디서·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도록 반려 동물에 인식표를 2개 이상 착용하도록 하며, 대문에 반려 동물을 키우는 집임을 알려주는 '펫 레스큐' 표지판을 붙여놓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소방관 등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라고.

<호주·뉴질랜드>
영국 연방으로 동물구호단체의 효시인 RSPCA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재난 상황에서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한 대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들 나라는 그동안 사람에 비해 동물들의 구호 문제가 소홀히 다뤄져 왔음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비용을 진단하고, 특히 독거노인이나 홈리스처럼 반려 동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동물 구호가 체계화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뤄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보호 책임의 소재(liability issues)와 같은 법적 문제 해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성서대학교 김성호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외국에서는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구조하고, 또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재난 속에서 살아남아 '희망의 아이콘'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동물전문매체 ‘더도도’가 보도한 그리스 산불 당시 벽돌 오븐에 들어가 살아남은 유기견 기사
그러면서 "이번 강원도 산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더 폭넓은 논의와 위기 상황에서의 체계적 동물 구조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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