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트럼프 ‘대선 특급무기’ 어산지?…핫한 시점에 다시 등장한 이유?

입력 2019.04.12 (07:06) 수정 2019.04.12 (07: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기의 폭로자', '성범죄 전력의 해커'. 상반된 수식어가 따라붙는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라는 이름과 그의 모습이 아주 오랜만에 전파를 탔다.

미국의 기밀 누설 혐의로 '1급 수배자'였던 그가 2012년 2월, 성범죄 혐의로 쫓기게 돼 에콰도르로 망명을 신청한 뒤 7년여 만이다. 하지만 망명이 좌절돼 장장 7년 넘게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은신해온 그가 체포됐다. 문서 하나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결기에 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못 본 사이 확 바뀐 외모도 놀라웠지만 '왜 갑자기 어산지가 다시 등장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거대한 정치적 배경이 없는 한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어산지 체포는 에콰도르 정부가 영국 경찰에게 대사관 진입을 허용해 가능했다. 영국은 누구로부터 그를 넘기라는 요청을 받았을까? 체포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으로 시선이 향했다. 곧 "미국의 송환 요청에 따라 어산지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영국 경찰의 발표가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왜 지금 그를 데려가려는 걸까? '헛방'으로 끝난 뮬러 특검 수사 이후 미국 내 '트럼프 VS 반 트럼프' 진영 간 거대한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벌어진 '어산지의 출현'이 예사롭지 않다.

■ 어산지, 대선 직전 '이메일 폭로' ... 힐러리에 '강펀치'

호주 국적의 이름 없는 해커였던 어산지는 2010년, 위키리크스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올려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에도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 등 수많은 폭로를 이어갔지만, 자신도 "그동안 수집한 정보 중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 폭로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을 공개한 것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과 존 포데스타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과 존 포데스타

어산지는 2016년 11월 대선 직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2,050개를 공개했다. 상당수는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직후인 2014년 참모인 존 포데스타에게 보낸 것들이었다. 포데스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금도 워싱턴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로 통한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어산지를 "러시아 정보기관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의 대통령 도전에 해를 끼치기 위한 러시아의 활동에 관여했다'는 식으로 부인했지만, 공개된 이메일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반 트럼프 성향이 강한 주류 언론은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보다는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에 일방적인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은 SNS나 미국의 유튜버들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힐러리 이메일’ 폭로하는 어산지‘힐러리 이메일’ 폭로하는 어산지

특히, 클린턴 전 장관이 월가의 거물들에게 보낸 메일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후원자였던 재력가들에게 "정치인은 공식적인 입장과 사적인 입장을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며 정치인의 이중성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공식적인 입장이 거슬리더라도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가 하면,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정치권과 금융권이) 짜고 치는 게임이라는 의심에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난 당연히 예외다. 나와 내 남편이 누리는 경제적 부 때문이다"라며 후원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2009년,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닌 이유는 사람들이 나에게 소리쳐 금융시스템을 욕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했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행보가 금융권 후원자들을 위한 쇼였다는 얘기다.

어산지도 독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의 메일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ISIS의 후원국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ISIS를 후원하는 국가들이 클린턴 재단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외국 자금과 미국의 은행, 정보기관, 무기상, 언론 등 모두가 힐러리의 배후에서 연합 세력을 구축해 미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들 기득권층은 트럼프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FBI, '이메일 스캔들' 덮었나?

클린턴 전 장관은 어산지의 폭로가 있기 1년 전인 2015년,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로 이미 홍역을 치렀다. 장관 재임 기간(2009~2013년) 내내 국무부의 공식 이메일 대신 개인 계정만으로 공무를 본 것이 문제가 됐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은 연방법을 위반한 중범죄다. 클린턴 측은 수십만 쪽에 달하는 이메일 중 5만 5천 쪽 분량만 제출해 빈축을 샀다. 그 이유는 훗날 어산지가 알려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코미 前 FBI 국장제임스 코미 前 FBI 국장

더 큰 문제는 어산지의 폭로뿐 아니라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수사 과정과 결과였다. 스캔들이 터진 지 1년 만에 FBI는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수사결과를 내놨다. 결론은 '불기소 권고'였다. 제임스 코미 FBI 당시 국장은 "힐러리 클린턴이 장관 당시 개인 서버로 주고받은 메일 중 110건이 비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고의적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 서버를 왜 썼는지', '비밀이 뭔지', '고의적 의도의 기준이 뭔지', '고의가 아니면 괜찮은 건지' 등 의혹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메일 스캔들'과 달리 같은 시기 제임스 코미의 FBI가 의욕적으로 수사하던 다른 사건이 있었다. 바로 트럼프 후보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 '러시아 스캔들'이었다. 주류 언론의 관심도 '러시아 스캔들'에 쏠려있었다.

■ "민주당이 배후" X파일 의혹, 어산지는 알고 있나?

'러시아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된 이후에도 수사가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며 주류 언론과 전쟁을 벌여왔다. FBI에서 특검으로 이어진 수사는 "사기극", "마녀 사냥"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러시아 스캔들'과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은 폭로와 수사 시점도 겹치지만, '중대한 연결고리'가 하나 있다. 바로 FBI가 2016년 7월, 트럼프 캠프에 대한 도청 영장을 발부받는데 증거로 낸 이른바 '러시아 X파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영국 비밀정보국(MI6)요원 출신 크리스토퍼 스틸이 작성한 '러시아 X파일' 배후에 힐러리 캠프와 민주당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스틸 전 요원은 '퓨전 GPS'라는 정보업체 의뢰로 X파일을 작성했다. 그런데 퓨전GPS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와 대선 기간 다수의 용역계약을 맺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어산지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빼내기 위해 해킹한 곳이기도 하다. 어산지가 3년 전 폭로한 이메일 외에 또 다른 이메일이나 자료, 특히 '러시아 X파일' 관련 기밀을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고도 기득권 세력(Establishment)으로부터 대통령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특검 수사가 진행됐고 주류 언론은 관련 의혹을 줄기차게 머리기사로 다뤄왔다. 탄핵 가능성까지 끊임없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어산지가 설령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추가 자료를 갖고 있었다 해도 선뜻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스파이 활동'" ... 트럼프의 '선전포고'

그런데 대반전이 찾아왔다. 2년 넘게 진행돼 지난달 끝난 뮬러 특검 수사의 결과가 '혐의없음'으로 나온 것이다. 충격에 빠진 민주당은 법무부를 향해 "못 믿겠다. 보고서 전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주류 언론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

이런 가운데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현지시각 10일, 상원 청문회에 나와 러시아 스캔들 조작 여부를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스파이 활동'이라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바 장관은 "트럼프 캠프에 대해 스파이 활동이 있었고 이에 대해 상당 부분 조사를 진행했고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법무부 감찰관실은 트럼프 캠프 도청 영장 발부 과정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 중이다. 유타주 연방검사인 존 후버 검사도 감청 신청 절차에 위법 행위 여부를 수사 중인데 힐러리 측의 범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상원 법사위원장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러시아 스캔들' 조작 여부를 수사할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뮬러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자 "윌리엄 바 장관에게 특검 임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오바마 도청’으로 반격 나선 트럼프…‘맞불 특검’ 카드로 대선판 흔든다

와신상담하며 '반격의 때'를 기다려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자신을 공격해온 세력을 겹겹이 포위한 형국이다. 바 장관의 발언으로 또 한번 힘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불법이며, 미수에 그친 쿠데타 반역"이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현역 대통령을 상대로도 수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스캔들 자체가 조작으로 결론 난다면 실제 반역죄에 해당할 수 있다.

■ 트럼프 "어산지와 관계없다" 강력부인...어산지 미국 송환 추진은 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해 반격의 최종 목표가 누구인지 암시한 바 있다. 클린턴 전 장관에게는 대선 토론에서 면전에 대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당신은 감옥에 갇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사 페이지 폭로를 전한 ‘스타 폴리티컬’ 기사리사 페이지 폭로를 전한 ‘스타 폴리티컬’ 기사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이미 나온 바 있다. 2016년 9월 당시 FBI 변호사였던 리사 페이지의 문자메시지다. 페이지는 메시지에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알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FBI가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내리고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열중하던 때다. 그런데 최근 리사 페이지의 폭탄 증언이 나왔다. "뮬러 특검이 임명될 때까지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 측과 공모했다는 강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은 기소하지 말라고 FBI에 직접 지시했다"고도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자신은 위키리크스와 관계가 없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다만, "어산지와 관련된 것은 법무장관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어산지와 연락해 그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폭로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사실이라면 대선 때 트럼프 측과 어산지 사이에 모종의 '딜'이 오갔다는 얘기가 된다. 윌리엄 바 장관의 입을 통해 나온 트럼프 측의 '선전 포고' 직후, 힐러리 이메일 폭로 이후 세간에 잊혀졌던 어산지가 다시 등장했다. 시점이 참 미묘하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트럼프 ‘대선 특급무기’ 어산지?…핫한 시점에 다시 등장한 이유?
    • 입력 2019-04-12 07:06:06
    • 수정2019-04-12 07:07:08
    글로벌 돋보기
'세기의 폭로자', '성범죄 전력의 해커'. 상반된 수식어가 따라붙는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라는 이름과 그의 모습이 아주 오랜만에 전파를 탔다.

미국의 기밀 누설 혐의로 '1급 수배자'였던 그가 2012년 2월, 성범죄 혐의로 쫓기게 돼 에콰도르로 망명을 신청한 뒤 7년여 만이다. 하지만 망명이 좌절돼 장장 7년 넘게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은신해온 그가 체포됐다. 문서 하나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결기에 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못 본 사이 확 바뀐 외모도 놀라웠지만 '왜 갑자기 어산지가 다시 등장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거대한 정치적 배경이 없는 한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어산지 체포는 에콰도르 정부가 영국 경찰에게 대사관 진입을 허용해 가능했다. 영국은 누구로부터 그를 넘기라는 요청을 받았을까? 체포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으로 시선이 향했다. 곧 "미국의 송환 요청에 따라 어산지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영국 경찰의 발표가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왜 지금 그를 데려가려는 걸까? '헛방'으로 끝난 뮬러 특검 수사 이후 미국 내 '트럼프 VS 반 트럼프' 진영 간 거대한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벌어진 '어산지의 출현'이 예사롭지 않다.

■ 어산지, 대선 직전 '이메일 폭로' ... 힐러리에 '강펀치'

호주 국적의 이름 없는 해커였던 어산지는 2010년, 위키리크스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올려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에도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 등 수많은 폭로를 이어갔지만, 자신도 "그동안 수집한 정보 중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 폭로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을 공개한 것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과 존 포데스타
어산지는 2016년 11월 대선 직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2,050개를 공개했다. 상당수는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직후인 2014년 참모인 존 포데스타에게 보낸 것들이었다. 포데스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금도 워싱턴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로 통한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어산지를 "러시아 정보기관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의 대통령 도전에 해를 끼치기 위한 러시아의 활동에 관여했다'는 식으로 부인했지만, 공개된 이메일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반 트럼프 성향이 강한 주류 언론은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보다는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에 일방적인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은 SNS나 미국의 유튜버들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힐러리 이메일’ 폭로하는 어산지
특히, 클린턴 전 장관이 월가의 거물들에게 보낸 메일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후원자였던 재력가들에게 "정치인은 공식적인 입장과 사적인 입장을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며 정치인의 이중성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공식적인 입장이 거슬리더라도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가 하면,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정치권과 금융권이) 짜고 치는 게임이라는 의심에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난 당연히 예외다. 나와 내 남편이 누리는 경제적 부 때문이다"라며 후원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2009년,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닌 이유는 사람들이 나에게 소리쳐 금융시스템을 욕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했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행보가 금융권 후원자들을 위한 쇼였다는 얘기다.

어산지도 독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의 메일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ISIS의 후원국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ISIS를 후원하는 국가들이 클린턴 재단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외국 자금과 미국의 은행, 정보기관, 무기상, 언론 등 모두가 힐러리의 배후에서 연합 세력을 구축해 미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들 기득권층은 트럼프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FBI, '이메일 스캔들' 덮었나?

클린턴 전 장관은 어산지의 폭로가 있기 1년 전인 2015년,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로 이미 홍역을 치렀다. 장관 재임 기간(2009~2013년) 내내 국무부의 공식 이메일 대신 개인 계정만으로 공무를 본 것이 문제가 됐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은 연방법을 위반한 중범죄다. 클린턴 측은 수십만 쪽에 달하는 이메일 중 5만 5천 쪽 분량만 제출해 빈축을 샀다. 그 이유는 훗날 어산지가 알려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코미 前 FBI 국장
더 큰 문제는 어산지의 폭로뿐 아니라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수사 과정과 결과였다. 스캔들이 터진 지 1년 만에 FBI는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수사결과를 내놨다. 결론은 '불기소 권고'였다. 제임스 코미 FBI 당시 국장은 "힐러리 클린턴이 장관 당시 개인 서버로 주고받은 메일 중 110건이 비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고의적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 서버를 왜 썼는지', '비밀이 뭔지', '고의적 의도의 기준이 뭔지', '고의가 아니면 괜찮은 건지' 등 의혹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메일 스캔들'과 달리 같은 시기 제임스 코미의 FBI가 의욕적으로 수사하던 다른 사건이 있었다. 바로 트럼프 후보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 '러시아 스캔들'이었다. 주류 언론의 관심도 '러시아 스캔들'에 쏠려있었다.

■ "민주당이 배후" X파일 의혹, 어산지는 알고 있나?

'러시아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된 이후에도 수사가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며 주류 언론과 전쟁을 벌여왔다. FBI에서 특검으로 이어진 수사는 "사기극", "마녀 사냥"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러시아 스캔들'과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은 폭로와 수사 시점도 겹치지만, '중대한 연결고리'가 하나 있다. 바로 FBI가 2016년 7월, 트럼프 캠프에 대한 도청 영장을 발부받는데 증거로 낸 이른바 '러시아 X파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영국 비밀정보국(MI6)요원 출신 크리스토퍼 스틸이 작성한 '러시아 X파일' 배후에 힐러리 캠프와 민주당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스틸 전 요원은 '퓨전 GPS'라는 정보업체 의뢰로 X파일을 작성했다. 그런데 퓨전GPS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와 대선 기간 다수의 용역계약을 맺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어산지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빼내기 위해 해킹한 곳이기도 하다. 어산지가 3년 전 폭로한 이메일 외에 또 다른 이메일이나 자료, 특히 '러시아 X파일' 관련 기밀을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되고도 기득권 세력(Establishment)으로부터 대통령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특검 수사가 진행됐고 주류 언론은 관련 의혹을 줄기차게 머리기사로 다뤄왔다. 탄핵 가능성까지 끊임없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어산지가 설령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추가 자료를 갖고 있었다 해도 선뜻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스파이 활동'" ... 트럼프의 '선전포고'

그런데 대반전이 찾아왔다. 2년 넘게 진행돼 지난달 끝난 뮬러 특검 수사의 결과가 '혐의없음'으로 나온 것이다. 충격에 빠진 민주당은 법무부를 향해 "못 믿겠다. 보고서 전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주류 언론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
이런 가운데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현지시각 10일, 상원 청문회에 나와 러시아 스캔들 조작 여부를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바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스파이 활동'이라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바 장관은 "트럼프 캠프에 대해 스파이 활동이 있었고 이에 대해 상당 부분 조사를 진행했고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법무부 감찰관실은 트럼프 캠프 도청 영장 발부 과정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 중이다. 유타주 연방검사인 존 후버 검사도 감청 신청 절차에 위법 행위 여부를 수사 중인데 힐러리 측의 범죄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상원 법사위원장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러시아 스캔들' 조작 여부를 수사할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뮬러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자 "윌리엄 바 장관에게 특검 임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오바마 도청’으로 반격 나선 트럼프…‘맞불 특검’ 카드로 대선판 흔든다

와신상담하며 '반격의 때'를 기다려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자신을 공격해온 세력을 겹겹이 포위한 형국이다. 바 장관의 발언으로 또 한번 힘을 얻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불법이며, 미수에 그친 쿠데타 반역"이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현역 대통령을 상대로도 수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스캔들 자체가 조작으로 결론 난다면 실제 반역죄에 해당할 수 있다.

■ 트럼프 "어산지와 관계없다" 강력부인...어산지 미국 송환 추진은 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해 반격의 최종 목표가 누구인지 암시한 바 있다. 클린턴 전 장관에게는 대선 토론에서 면전에 대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당신은 감옥에 갇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사 페이지 폭로를 전한 ‘스타 폴리티컬’ 기사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이미 나온 바 있다. 2016년 9월 당시 FBI 변호사였던 리사 페이지의 문자메시지다. 페이지는 메시지에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알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FBI가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내리고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열중하던 때다. 그런데 최근 리사 페이지의 폭탄 증언이 나왔다. "뮬러 특검이 임명될 때까지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 측과 공모했다는 강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은 기소하지 말라고 FBI에 직접 지시했다"고도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자신은 위키리크스와 관계가 없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다만, "어산지와 관련된 것은 법무장관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어산지와 연락해 그가 힐러리의 이메일을 폭로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사실이라면 대선 때 트럼프 측과 어산지 사이에 모종의 '딜'이 오갔다는 얘기가 된다. 윌리엄 바 장관의 입을 통해 나온 트럼프 측의 '선전 포고' 직후, 힐러리 이메일 폭로 이후 세간에 잊혀졌던 어산지가 다시 등장했다. 시점이 참 미묘하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