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박유천을 박유천이라 부르지 못하는 경찰

입력 2019.04.12 (11:23) 수정 2019.04.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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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나 씨가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다고 지목한 연예인이 박유천 씨입니까?"

황하나 씨 마약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맞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확인해주기 곤란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실무책임자이자, 취재 문의처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이다.

경찰이 박 씨를 수사하고 있는 지난 10일 박 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하면서 사실상 '팩트'가 됐다.

박 씨 측은 경찰에서 황 씨가 거론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마약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 이후 경찰은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크게 3가지였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확인해 준 적도 없고, 확인해 줄 수도 없다. 박 씨 측에 연락한 적 없다. 다만, 박 씨가 자진 출석한다면 입장을 들어보겠다.'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다는 박 씨 측 설명이 거짓말이라고 한 셈인데, 이 내용과 경찰이 그동안 밝힌 내용을 따져보면 박 씨 측이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경찰이 수사하는 연예인은 박 씨가 맞는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경찰은 '박 씨가 자진 출석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수사 선상에 올려놓지도 않은 연예인을 조사할 이유는 없다. 수사 선상에 있지도 않은 박 씨가 경찰에 연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박 씨를 조사할 일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경찰은 황 씨 관련 수사하고 있는 연예인이 1명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 또 박 씨를 수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경기남부청 관계자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기까지 한 상황이다. 결국 박 씨가 그 연예인이라는 얘기다.

경찰이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연예인이 누군지 밝힐 경우 연예인과 그 공범들의 증거 인멸과 도주 가능성이 있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해석은 박 씨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사람들은 이미 박 씨가 수사 대상인 걸로 확정 지었다.

경찰이 끝까지 수사하는 연예인을 숨기고 싶었다면, 박 씨 기자회견 직후에도 연예인과 관련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으면 그만이다.

박 씨에게 연락한 적은 없지만, 조사는 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박 씨를 수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주지 않으면서도 확인해준 것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박 씨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경찰 수사 대상을 박 씨로 확정 지은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경찰은 또다시 '확인 불가 모드'에 들어갔다.

황하나 씨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황하나 씨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찰은 이번 황 씨 수사에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오보나 추측성 기사가 나오면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고, 특히 오보는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경찰청 공보규칙인데도, 이러한 내부 규정조차 무시하는 걸로 보일 정도로 '묵묵부답' 행태를 보였다.

경찰이 연예인을 피의자로 입건했고, 통신 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도 고장 난 레코드처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연예인 수사에 대해서는 불필요하게 긴 입장 문을 내서 혼란을 불러왔다.

물론 경찰이 수사하는 연예인이 정말 박 씨가 아닌데, 박 씨가 조사를 받겠다고 하고 박 씨가 황 씨의 옛 연인이라 참고삼아 조사할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이 경우 박 씨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고, 피의자인 연예인은 따로 있다는 얘긴데, 박 씨가 피의자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경찰 수사라인에서는 경찰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칫 수사 방해가 될 수 있어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확인 불가 모드'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박유천을 박유천이라 부르는데 경찰만 박유천을 박유천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경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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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2 11:23:10
    • 수정2019-04-13 10:42:22
    취재후·사건후
"황하나 씨가 자신에게 마약을 권유했다고 지목한 연예인이 박유천 씨입니까?"

황하나 씨 마약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맞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확인해주기 곤란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실무책임자이자, 취재 문의처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이다.

경찰이 박 씨를 수사하고 있는 지난 10일 박 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하면서 사실상 '팩트'가 됐다.

박 씨 측은 경찰에서 황 씨가 거론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마약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 이후 경찰은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크게 3가지였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확인해 준 적도 없고, 확인해 줄 수도 없다. 박 씨 측에 연락한 적 없다. 다만, 박 씨가 자진 출석한다면 입장을 들어보겠다.'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다는 박 씨 측 설명이 거짓말이라고 한 셈인데, 이 내용과 경찰이 그동안 밝힌 내용을 따져보면 박 씨 측이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경찰이 수사하는 연예인은 박 씨가 맞는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경찰은 '박 씨가 자진 출석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수사 선상에 올려놓지도 않은 연예인을 조사할 이유는 없다. 수사 선상에 있지도 않은 박 씨가 경찰에 연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거라면 박 씨를 조사할 일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경찰은 황 씨 관련 수사하고 있는 연예인이 1명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 또 박 씨를 수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경기남부청 관계자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기까지 한 상황이다. 결국 박 씨가 그 연예인이라는 얘기다.

경찰이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연예인이 누군지 밝힐 경우 연예인과 그 공범들의 증거 인멸과 도주 가능성이 있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해석은 박 씨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사람들은 이미 박 씨가 수사 대상인 걸로 확정 지었다.

경찰이 끝까지 수사하는 연예인을 숨기고 싶었다면, 박 씨 기자회견 직후에도 연예인과 관련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으면 그만이다.

박 씨에게 연락한 적은 없지만, 조사는 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박 씨를 수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주지 않으면서도 확인해준 것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박 씨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경찰 수사 대상을 박 씨로 확정 지은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경찰은 또다시 '확인 불가 모드'에 들어갔다.

황하나 씨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찰은 이번 황 씨 수사에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오보나 추측성 기사가 나오면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 있고, 특히 오보는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경찰청 공보규칙인데도, 이러한 내부 규정조차 무시하는 걸로 보일 정도로 '묵묵부답' 행태를 보였다.

경찰이 연예인을 피의자로 입건했고, 통신 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도 고장 난 레코드처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연예인 수사에 대해서는 불필요하게 긴 입장 문을 내서 혼란을 불러왔다.

물론 경찰이 수사하는 연예인이 정말 박 씨가 아닌데, 박 씨가 조사를 받겠다고 하고 박 씨가 황 씨의 옛 연인이라 참고삼아 조사할 가능성도 조금은 있다.

이 경우 박 씨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고, 피의자인 연예인은 따로 있다는 얘긴데, 박 씨가 피의자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경찰 수사라인에서는 경찰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칫 수사 방해가 될 수 있어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확인 불가 모드'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세상 모두가 박유천을 박유천이라 부르는데 경찰만 박유천을 박유천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건 경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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