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人災 ①] “설마가 사실로…” 포항, 지금은 안전한가?

입력 2019.04.15 (08:01) 수정 2019.04.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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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불안한 단층에 방아쇠를 당겼다"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 지난달 20일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 지난달 20일

118명의 인명피해와 수천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포항지진. 일부 학계에서 인근 지열발전소를 원인으로 지목할 때 대다수는 '설마' 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이 문제를 추적한 정부조사단은 '사실'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열발전소는 땅속 깊이 구멍을 뚫고 물을 넣은 뒤 지열로 달궈진 증기로 전기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단층을 자극했다는 겁니다. 본진 이전에도 높은 압력을 물을 넣을 때마다 남서쪽 깊은 곳을 향해 차례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규모 1.0 이상의 지진만 무려 63차례였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더 센 압력으로 물을 주입했습니다. 불안했던 단층에 방아쇠를 당긴 셈입니다.

안도의 한숨...거세진 배상 요구

자연 지진이 아니란 소식에 포항 주민들은 일단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지열발전소가 멈춰섰으니, 큰 지진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아닐까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지진이 아니라 '인재'였다는 조사 결과는 포항 시민들에게 황망함과 분노도 안겼습니다. 원인이 분명해진 만큼, 책임자 처벌과 피해 배상을 분명히 하라는 움직임은 거세졌습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열발전소 개발사업을 주관한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사업자 대표 등을 살인과 상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포항지진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 지난 2일포항지진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 지난 2일

처벌과 배상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란 공감대도 커졌습니다. 지난 2일 포항 시민 3만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진이 난 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없다",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도시 재건을 위한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포항, 지금은 안전한가?

그렇다면 지금 포항은 안전할까. 지열발전소는 2017년 11월 지진 이후 멈춰섰고, 지하에는 물 6천 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물을 잘못 뺐다간 또 지진이 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스위스 바젤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세계 최초로 화산 지대가 아닌 곳에 지열발전소가 들어선 곳입니다. 2006년 물 주입 엿새 만에 규모 3.4의 지진이 났고, 스위스 정부는 즉시 가동은 중단한 뒤 영구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 배출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압력이 증가하며 또 지진이 났습니다. 마르쿠스 다이콘 스위스 바젤시 환경에너지부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주입한 물의 수온이 올라가서 수압이 높아졌고 지난해 닫았던 시추공을 다시 열어 압력을 낮춰야만 했다"면서 "땅을 조사해 흔들림이 감지되면 압력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물 배출과 압력 조절을 해야하는걸까. 다이콘 씨는 "관리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물 배출 작업은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조금씩 1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데, 완전한 철거에 수 세대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이다"

포항에는 지열발전 중단 후에도 규모 2.0 이상 여진만 100여 차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달 안에 전문가 팀을 구성해 안전한 복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바젤의 교훈은 하나입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이란 겁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이 난 시기는 우리나라가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바젤 사례는 세계 학계에서도 연구됐고 특히 업계에서는 많이 알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할 때 바젤 지진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열발전 복구 과정만이라도 바젤의 교훈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젤시는 지열발전소 건설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과 그곳에 달아놓은 지진 관측 센서를 없애지 않고 지진 관측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관측된 내용은 규모 1 미만의 지진까지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열발전소와 관련된 작업 현장도 촬영해 공개합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시민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포항 지열발전소 복구를 해야 하는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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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4-15 10:55:16
    취재K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불안한 단층에 방아쇠를 당겼다"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 발표 기자회견, 지난달 20일
118명의 인명피해와 수천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포항지진. 일부 학계에서 인근 지열발전소를 원인으로 지목할 때 대다수는 '설마' 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이 문제를 추적한 정부조사단은 '사실'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열발전소는 땅속 깊이 구멍을 뚫고 물을 넣은 뒤 지열로 달궈진 증기로 전기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단층을 자극했다는 겁니다. 본진 이전에도 높은 압력을 물을 넣을 때마다 남서쪽 깊은 곳을 향해 차례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규모 1.0 이상의 지진만 무려 63차례였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더 센 압력으로 물을 주입했습니다. 불안했던 단층에 방아쇠를 당긴 셈입니다.

안도의 한숨...거세진 배상 요구

자연 지진이 아니란 소식에 포항 주민들은 일단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지열발전소가 멈춰섰으니, 큰 지진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아닐까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지진이 아니라 '인재'였다는 조사 결과는 포항 시민들에게 황망함과 분노도 안겼습니다. 원인이 분명해진 만큼, 책임자 처벌과 피해 배상을 분명히 하라는 움직임은 거세졌습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열발전소 개발사업을 주관한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사업자 대표 등을 살인과 상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포항지진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범시민 결의대회, 지난 2일
처벌과 배상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란 공감대도 커졌습니다. 지난 2일 포항 시민 3만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진이 난 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없다",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도시 재건을 위한 '포항 지진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포항, 지금은 안전한가?

그렇다면 지금 포항은 안전할까. 지열발전소는 2017년 11월 지진 이후 멈춰섰고, 지하에는 물 6천 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물을 잘못 뺐다간 또 지진이 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스위스 바젤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세계 최초로 화산 지대가 아닌 곳에 지열발전소가 들어선 곳입니다. 2006년 물 주입 엿새 만에 규모 3.4의 지진이 났고, 스위스 정부는 즉시 가동은 중단한 뒤 영구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 배출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압력이 증가하며 또 지진이 났습니다. 마르쿠스 다이콘 스위스 바젤시 환경에너지부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주입한 물의 수온이 올라가서 수압이 높아졌고 지난해 닫았던 시추공을 다시 열어 압력을 낮춰야만 했다"면서 "땅을 조사해 흔들림이 감지되면 압력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물 배출과 압력 조절을 해야하는걸까. 다이콘 씨는 "관리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물 배출 작업은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조금씩 1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데, 완전한 철거에 수 세대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이다"

포항에는 지열발전 중단 후에도 규모 2.0 이상 여진만 100여 차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달 안에 전문가 팀을 구성해 안전한 복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바젤의 교훈은 하나입니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이란 겁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이 난 시기는 우리나라가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바젤 사례는 세계 학계에서도 연구됐고 특히 업계에서는 많이 알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할 때 바젤 지진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열발전 복구 과정만이라도 바젤의 교훈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젤시는 지열발전소 건설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과 그곳에 달아놓은 지진 관측 센서를 없애지 않고 지진 관측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관측된 내용은 규모 1 미만의 지진까지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열발전소와 관련된 작업 현장도 촬영해 공개합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시민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포항 지열발전소 복구를 해야 하는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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