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월호 참사 5년 뒤 인천항…운항관리자의 하루

입력 2019.04.16 (07:06) 수정 2019.04.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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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30분. 인천항 여객터미널 3층 운항관리실로 박진규 씨가 출근했습니다. 8년 차 운항관리자인 박 씨는 오늘 조출 당번입니다. 조출자의 주 업무는 날씨 점검. 먼바다와 앞바다의 바람과 파고를 살펴봅니다. 바람이 초속 13m보다 세거나, 파도가 2.5m를 넘으면 해양경찰과 해양수산청에 통보하고 여객선 운항을 중단해야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습니다.

현재 인천항에서 근무하는 운항관리자는 모두 9명. 세월호 사고 이후 법적으로 의무화된 여객선 '운항 전 점검'을 맡고 있습니다. 배는 주말 없이 뜨기 때문에 정해진 휴일이 없고 3명씩 돌아가며 쉽니다. 인천항에서 운항하는 여객선 10여 척을 하루 6명이 나눠 관리하는 셈입니다.

운항관리자 박진규 씨가 무작위로 고른 구명조끼를 점검하고 있다.운항관리자 박진규 씨가 무작위로 고른 구명조끼를 점검하고 있다.

GPS 점검부터 승객명단 확인까지 30분 걸려…"'만에 하나'때문에 보고 또 본다"

아침 7시. 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으로 박 씨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여객선 꼭대기층 조타실. 사이렌과 비상벨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작동 여부를 살피고, 통신센터와 말을 주고받으며 통신계 감도를 점검했습니다. 뒤이어 향한 곳은 객실. 구명조끼를 무작위로 골라 이리저리 뜯어 살핍니다. 운항 직전에는 시간 관계상 무작위 점검을 하지만, 한 달에 한두 차례는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박 씨는 말했습니다.

여객선 화물칸에 고박된 차량이 늘어서 있다.여객선 화물칸에 고박된 차량이 늘어서 있다.

세월호 블랙박스가 공개됐을 때, 배가 기우뚱하자 한쪽으로 우르르 쏠리던 차들의 모습에 모두가 탄식을 쏟았습니다. 이제 고박 관리는 더 꼼꼼해졌습니다. 박 씨는 차를 묶고 있는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정도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더러는 손이나 발로 눌러보기도 했습니다. 화물트럭 한 대는 몇 톤짜리인지 묻더니, 끈을 두 개 더 늘려 고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유사시 물에 띄울 구명부기 잠금장치가 너무 세게 잠겨있지는 않은지, 기관실 기관 작동에 이상은 없는지도 살폈습니다. 다시 조타실로 올라, 승객·화물 명단을 선장과 확인하고 나란히 서명한 뒤에야 '운항 전 점검'은 끝이 났습니다. 590톤짜리 여객선을 도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박 씨는 "세월호 전후로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여객선들이 정박해 있는 인천항 여객터미널의 모습여객선들이 정박해 있는 인천항 여객터미널의 모습

전국 연안에 운항관리센터는 11곳, 운항관리자는 모두 106명입니다. 세월호 사고 전까지 운항관리자들은 모두 '해운조합' 소속이었습니다. 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에서 배를 '셀프 점검'하니 잘 될 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은 모두 '선박안전기술공단'으로 소속을 옮겨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해운조합에 있었을 때는 솔직히 견제가 잘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공공의 역할을 하며 독립적으로 일하다 보니 운항 전 점검이 주된 일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리 강도가 높아지니 안전점검에서 '항행정지'라는 고강도 처분을 받는 여객선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아직 한 건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전체 해양사고는 늘어난 반면, 여객선 사고는 매년 감소 추세입니다. 2015년 66건에서 16년 65건, 17년 46건, 지난해에는 44건으로 줄었습니다.

여객선을 자주 이용하는 인천지역 섬 주민들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낍니다. 인천 백령도에 사는 장다희 씨는 "세월호 사고 뒤부터는 배를 탈 때 신분증과 표를 대조해 검사하고 있어, 달라진 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인천 대청도 주민 최영권 씨 역시 "배에서 구명조끼 착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며, "그런 면에서는 많이 안전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항행정지' 처분을 받은 여객선 전체를 살펴봤더니, 71%는 기관설비 고장이나 선체 손상 때문이었습니다. 선박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도, 안전 점검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운항하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운항 전 점검을 아무리 강화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여객선 기관실을 살피는 운항관리자여객선 기관실을 살피는 운항관리자

해양수산부는 올해 안에 운항관리자를 142명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승객 관리도 더 체계적으로 바꿉니다. '바코드'로 티켓을 인식하는 승객관리시스템을 정식 도입할 예정입니다. 모두 세월호가 떠나기 전 있었다면 좋았을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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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6 07:06:04
    • 수정2019-04-16 07:20:16
    취재후·사건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30분. 인천항 여객터미널 3층 운항관리실로 박진규 씨가 출근했습니다. 8년 차 운항관리자인 박 씨는 오늘 조출 당번입니다. 조출자의 주 업무는 날씨 점검. 먼바다와 앞바다의 바람과 파고를 살펴봅니다. 바람이 초속 13m보다 세거나, 파도가 2.5m를 넘으면 해양경찰과 해양수산청에 통보하고 여객선 운항을 중단해야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습니다.

현재 인천항에서 근무하는 운항관리자는 모두 9명. 세월호 사고 이후 법적으로 의무화된 여객선 '운항 전 점검'을 맡고 있습니다. 배는 주말 없이 뜨기 때문에 정해진 휴일이 없고 3명씩 돌아가며 쉽니다. 인천항에서 운항하는 여객선 10여 척을 하루 6명이 나눠 관리하는 셈입니다.

운항관리자 박진규 씨가 무작위로 고른 구명조끼를 점검하고 있다.
GPS 점검부터 승객명단 확인까지 30분 걸려…"'만에 하나'때문에 보고 또 본다"

아침 7시. 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으로 박 씨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여객선 꼭대기층 조타실. 사이렌과 비상벨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작동 여부를 살피고, 통신센터와 말을 주고받으며 통신계 감도를 점검했습니다. 뒤이어 향한 곳은 객실. 구명조끼를 무작위로 골라 이리저리 뜯어 살핍니다. 운항 직전에는 시간 관계상 무작위 점검을 하지만, 한 달에 한두 차례는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박 씨는 말했습니다.

여객선 화물칸에 고박된 차량이 늘어서 있다.
세월호 블랙박스가 공개됐을 때, 배가 기우뚱하자 한쪽으로 우르르 쏠리던 차들의 모습에 모두가 탄식을 쏟았습니다. 이제 고박 관리는 더 꼼꼼해졌습니다. 박 씨는 차를 묶고 있는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정도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더러는 손이나 발로 눌러보기도 했습니다. 화물트럭 한 대는 몇 톤짜리인지 묻더니, 끈을 두 개 더 늘려 고박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유사시 물에 띄울 구명부기 잠금장치가 너무 세게 잠겨있지는 않은지, 기관실 기관 작동에 이상은 없는지도 살폈습니다. 다시 조타실로 올라, 승객·화물 명단을 선장과 확인하고 나란히 서명한 뒤에야 '운항 전 점검'은 끝이 났습니다. 590톤짜리 여객선을 도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박 씨는 "세월호 전후로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여객선들이 정박해 있는 인천항 여객터미널의 모습
전국 연안에 운항관리센터는 11곳, 운항관리자는 모두 106명입니다. 세월호 사고 전까지 운항관리자들은 모두 '해운조합' 소속이었습니다. 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에서 배를 '셀프 점검'하니 잘 될 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은 모두 '선박안전기술공단'으로 소속을 옮겨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해운조합에 있었을 때는 솔직히 견제가 잘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공공의 역할을 하며 독립적으로 일하다 보니 운항 전 점검이 주된 일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리 강도가 높아지니 안전점검에서 '항행정지'라는 고강도 처분을 받는 여객선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아직 한 건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전체 해양사고는 늘어난 반면, 여객선 사고는 매년 감소 추세입니다. 2015년 66건에서 16년 65건, 17년 46건, 지난해에는 44건으로 줄었습니다.

여객선을 자주 이용하는 인천지역 섬 주민들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낍니다. 인천 백령도에 사는 장다희 씨는 "세월호 사고 뒤부터는 배를 탈 때 신분증과 표를 대조해 검사하고 있어, 달라진 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인천 대청도 주민 최영권 씨 역시 "배에서 구명조끼 착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며, "그런 면에서는 많이 안전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항행정지' 처분을 받은 여객선 전체를 살펴봤더니, 71%는 기관설비 고장이나 선체 손상 때문이었습니다. 선박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도, 안전 점검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운항하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운항 전 점검을 아무리 강화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여객선 기관실을 살피는 운항관리자
해양수산부는 올해 안에 운항관리자를 142명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승객 관리도 더 체계적으로 바꿉니다. '바코드'로 티켓을 인식하는 승객관리시스템을 정식 도입할 예정입니다. 모두 세월호가 떠나기 전 있었다면 좋았을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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