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후쿠시마 엄마들의 고군분투기

입력 2019.04.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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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들어선 측정실은 분주하기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돌아가고, 흰색 연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기계는 24시간 풀가동합니다. 그래도 밀려드는 측정 의뢰를 소화하기가 벅차요."

후쿠시마 현 이와키시에 위치한 '방사능 시민측정실'. 글자 그대로 기기를 사용해 방사성 물질 함유 정도를 측정해주는 곳이다. 후쿠시마의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곳. 그리고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곳. 그곳에 다녀왔다.

여전히 곳곳에서 기준치를 넘어서는 '세슘'

측정실에는 후쿠시마 등 여러 지역에서 보내진 측정 의뢰품이 쌓여있었다.

쌀에서부터, 흙, 산나물, 꿀 등등.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안전한지를 알고 싶어하는 후쿠시마주민들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들이다.


"아직도 산나물이나 야산의 흙 등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세슘이 상당량 검출됩니다."

이와키 방사능 시민측정실 이이다 아유미 씨의 설명이다.

공개된 측정치만 봐도 지난해 10월 미나미소마시에서 채취된 버섯에서 3.052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수치다.

시민 측정실이 위치한 이와키 시의 경우도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남쪽으로 40km가량 내려와 이바라키 현의 경계에 있는 만큼 이제 어느 정도 방사능 공포에서 벗어났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해 채취한 버섯에서 2,631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원전 폭발 후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사능 공포는 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후타바 군에서 55만 6,500베크렐, 이와키 시에서 채집된 진공청소기 먼지에서 2만 3,692베크렐, 새의 둥지에서 836베크렐 등등 모두 지난해 하반기 측정된 결과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을 때에는 공기 중에서만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었죠. 지금은 그나마 그 수치는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엄마들...바다의 방사성 오염 감시도 철저히


시민 측정실에서 재고 있는 방사성 물질 검사는 의뢰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밀려드는 시민들의 의뢰를 소화하기 위해 측정기기를 24시간 돌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빼먹지 않는 것이 바닷물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다.

특히 시민측정실은 지난 2015년부터 세슘 외에도 스트론튬과 트리트늄까지 검사 대상을 확대해 매달 바닷물을 채취, 그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지난해 4월과 7월에도 미량이기는 하지만 스트론튬이 검출돼, 엄마들의 걱정을 샀다.

"원전 사고 전하고 비교하면 수치에서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비슷할 때도 있고 시료에 따라 결과가 좀 다릅니다."

스트론튬이나 세슘이 검출되는 건, 후쿠시마 원전 부지 주변의 오염물질과 오염수 등이 지하로 스며들어 빗물 등과 함께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이다 씨는 "오염물질이 새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100만 톤 오염수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


더 걱정인 것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계획이다.

폭발한 핵연료 등을 식히기 위해 막대한 양의 냉각수가 쓰였고,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오염수만 이미 100만 톤 가량돼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에서는 보관이 더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일본 정부는 이를 처리 후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상적인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냉각수를 처리해 방류하는 만큼, 기준치 이하라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지만 송두리째 삶의 터전이 흔들려버린 후쿠시마 주민 중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민 측정실이 바다 오염 감시를 계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바닷물과 관련해서는 오염수를 해양에 유출하는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이다 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아이들을 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3월 후쿠시마 대지진과 지진해일, 그리고 원전사고가 있은 지 8개월 뒤 만들어진 이와키시민 측정실.

먹을 것 등에 대한 단순 측정에서 시작해 신체 내부 피폭 검사, 갑상선 검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원전 사고 후 이곳저곳에서 방사능 측정실이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곳은 사실 이와키 측정실이 유일하다고 할 만하다.


"저도 아이의 엄마고, 저 연구원도 애 엄마, 저분도 애 엄마예요." 뭐라 따로 설명할 것도 없는 이 측정실이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2017년부터 병원까지 개설해 의료적 상황까지 확인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반응이 이제 양극으로 갈라지는 것 같아요. 이제 무뎌져서 괜찮지 않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방사능 오염이 걱정돼 의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방사성 물질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현재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도 모르죠. 후쿠시마 원전이 완전히 폐로 될 때까지 아마 100년?

어른들은 자신들이 판단할 수 있잖아요. 먹을 것을 가린다는 등등.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지가 없어요. 어른들을 따를 뿐이죠. 그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이다 씨는 그런 의미에서 WTO 결정으로 후쿠시마 등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가 유지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글자 그대로 엄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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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후쿠시마 엄마들의 고군분투기
    • 입력 2019-04-16 14:22:51
    특파원 리포트
"실례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들어선 측정실은 분주하기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돌아가고, 흰색 연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기계는 24시간 풀가동합니다. 그래도 밀려드는 측정 의뢰를 소화하기가 벅차요."

후쿠시마 현 이와키시에 위치한 '방사능 시민측정실'. 글자 그대로 기기를 사용해 방사성 물질 함유 정도를 측정해주는 곳이다. 후쿠시마의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곳. 그리고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곳. 그곳에 다녀왔다.

여전히 곳곳에서 기준치를 넘어서는 '세슘'

측정실에는 후쿠시마 등 여러 지역에서 보내진 측정 의뢰품이 쌓여있었다.

쌀에서부터, 흙, 산나물, 꿀 등등.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안전한지를 알고 싶어하는 후쿠시마주민들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들이다.


"아직도 산나물이나 야산의 흙 등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세슘이 상당량 검출됩니다."

이와키 방사능 시민측정실 이이다 아유미 씨의 설명이다.

공개된 측정치만 봐도 지난해 10월 미나미소마시에서 채취된 버섯에서 3.052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수치다.

시민 측정실이 위치한 이와키 시의 경우도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남쪽으로 40km가량 내려와 이바라키 현의 경계에 있는 만큼 이제 어느 정도 방사능 공포에서 벗어났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해 채취한 버섯에서 2,631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됐다.

원전 폭발 후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사능 공포는 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후타바 군에서 55만 6,500베크렐, 이와키 시에서 채집된 진공청소기 먼지에서 2만 3,692베크렐, 새의 둥지에서 836베크렐 등등 모두 지난해 하반기 측정된 결과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을 때에는 공기 중에서만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었죠. 지금은 그나마 그 수치는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엄마들...바다의 방사성 오염 감시도 철저히


시민 측정실에서 재고 있는 방사성 물질 검사는 의뢰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밀려드는 시민들의 의뢰를 소화하기 위해 측정기기를 24시간 돌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빼먹지 않는 것이 바닷물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다.

특히 시민측정실은 지난 2015년부터 세슘 외에도 스트론튬과 트리트늄까지 검사 대상을 확대해 매달 바닷물을 채취, 그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지난해 4월과 7월에도 미량이기는 하지만 스트론튬이 검출돼, 엄마들의 걱정을 샀다.

"원전 사고 전하고 비교하면 수치에서 차이가 있는 것도 있고, 비슷할 때도 있고 시료에 따라 결과가 좀 다릅니다."

스트론튬이나 세슘이 검출되는 건, 후쿠시마 원전 부지 주변의 오염물질과 오염수 등이 지하로 스며들어 빗물 등과 함께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이다 씨는 "오염물질이 새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100만 톤 오염수 방류하겠다는 일본 정부


더 걱정인 것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계획이다.

폭발한 핵연료 등을 식히기 위해 막대한 양의 냉각수가 쓰였고,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오염수만 이미 100만 톤 가량돼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에서는 보관이 더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일본 정부는 이를 처리 후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상적인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냉각수를 처리해 방류하는 만큼, 기준치 이하라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지만 송두리째 삶의 터전이 흔들려버린 후쿠시마 주민 중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민 측정실이 바다 오염 감시를 계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바닷물과 관련해서는 오염수를 해양에 유출하는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이다 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아이들을 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3월 후쿠시마 대지진과 지진해일, 그리고 원전사고가 있은 지 8개월 뒤 만들어진 이와키시민 측정실.

먹을 것 등에 대한 단순 측정에서 시작해 신체 내부 피폭 검사, 갑상선 검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원전 사고 후 이곳저곳에서 방사능 측정실이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곳은 사실 이와키 측정실이 유일하다고 할 만하다.


"저도 아이의 엄마고, 저 연구원도 애 엄마, 저분도 애 엄마예요." 뭐라 따로 설명할 것도 없는 이 측정실이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2017년부터 병원까지 개설해 의료적 상황까지 확인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반응이 이제 양극으로 갈라지는 것 같아요. 이제 무뎌져서 괜찮지 않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방사능 오염이 걱정돼 의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방사성 물질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현재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도 모르죠. 후쿠시마 원전이 완전히 폐로 될 때까지 아마 100년?

어른들은 자신들이 판단할 수 있잖아요. 먹을 것을 가린다는 등등.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지가 없어요. 어른들을 따를 뿐이죠. 그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이다 씨는 그런 의미에서 WTO 결정으로 후쿠시마 등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가 유지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글자 그대로 엄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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