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떠나보낸 ‘그곳’…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가족’
입력 2019.04.17 (06:25)
수정 2019.04.1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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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참사 당시 애타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5년 전 팽목항으로 달려왔던 희생자 가족 중 몇몇은 아직도 진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양창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진도 팽목항.
5년 전 사고 수습으로 붐비던 항구엔 노란 리본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조그만 컨테이너 안에서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고영환 씨는 5 년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영환/세월호 유가족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고, 죽음으로서 받은 자리가 이 자리이기도 하고요."]
같은 단원고 학부모였던 조인호 씨와 한복남 씨는 아예 진도로 내려온지가 벌써 여러 해입니다.
[조인호/세월호 유가족 : "못 떠나겠어서 그냥 살게 됐어요. 본의 아니게 아이들 때문에 제2의 고향이 된 거죠."]
같은 슬픔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녀를 떠나보낸 그곳에서 새로 터전을 잡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복남/세월호 유가족 : "그 얼굴을 하나하나 제가 확인했던 자리예요. 그 공간만 가도 애들 얼굴이 그대로 다 떠올라요."]
참사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
무심한 세월이 5 년이나 흘렀지만 금쪽같은 아이들 모습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애타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5년 전 팽목항으로 달려왔던 희생자 가족 중 몇몇은 아직도 진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양창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진도 팽목항.
5년 전 사고 수습으로 붐비던 항구엔 노란 리본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조그만 컨테이너 안에서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고영환 씨는 5 년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영환/세월호 유가족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고, 죽음으로서 받은 자리가 이 자리이기도 하고요."]
같은 단원고 학부모였던 조인호 씨와 한복남 씨는 아예 진도로 내려온지가 벌써 여러 해입니다.
[조인호/세월호 유가족 : "못 떠나겠어서 그냥 살게 됐어요. 본의 아니게 아이들 때문에 제2의 고향이 된 거죠."]
같은 슬픔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녀를 떠나보낸 그곳에서 새로 터전을 잡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복남/세월호 유가족 : "그 얼굴을 하나하나 제가 확인했던 자리예요. 그 공간만 가도 애들 얼굴이 그대로 다 떠올라요."]
참사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
무심한 세월이 5 년이나 흘렀지만 금쪽같은 아이들 모습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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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떠나보낸 ‘그곳’…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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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7 06:26:00
- 수정2019-04-17 07:10:53
[앵커]
세월호 참사 당시 애타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5년 전 팽목항으로 달려왔던 희생자 가족 중 몇몇은 아직도 진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양창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진도 팽목항.
5년 전 사고 수습으로 붐비던 항구엔 노란 리본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조그만 컨테이너 안에서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고영환 씨는 5 년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영환/세월호 유가족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고, 죽음으로서 받은 자리가 이 자리이기도 하고요."]
같은 단원고 학부모였던 조인호 씨와 한복남 씨는 아예 진도로 내려온지가 벌써 여러 해입니다.
[조인호/세월호 유가족 : "못 떠나겠어서 그냥 살게 됐어요. 본의 아니게 아이들 때문에 제2의 고향이 된 거죠."]
같은 슬픔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녀를 떠나보낸 그곳에서 새로 터전을 잡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복남/세월호 유가족 : "그 얼굴을 하나하나 제가 확인했던 자리예요. 그 공간만 가도 애들 얼굴이 그대로 다 떠올라요."]
참사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
무심한 세월이 5 년이나 흘렀지만 금쪽같은 아이들 모습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애타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진도 팽목항은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5년 전 팽목항으로 달려왔던 희생자 가족 중 몇몇은 아직도 진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양창희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참사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진도 팽목항.
5년 전 사고 수습으로 붐비던 항구엔 노란 리본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조그만 컨테이너 안에서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고영환 씨는 5 년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영환/세월호 유가족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고, 죽음으로서 받은 자리가 이 자리이기도 하고요."]
같은 단원고 학부모였던 조인호 씨와 한복남 씨는 아예 진도로 내려온지가 벌써 여러 해입니다.
[조인호/세월호 유가족 : "못 떠나겠어서 그냥 살게 됐어요. 본의 아니게 아이들 때문에 제2의 고향이 된 거죠."]
같은 슬픔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녀를 떠나보낸 그곳에서 새로 터전을 잡고 힘겨운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복남/세월호 유가족 : "그 얼굴을 하나하나 제가 확인했던 자리예요. 그 공간만 가도 애들 얼굴이 그대로 다 떠올라요."]
참사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
무심한 세월이 5 년이나 흘렀지만 금쪽같은 아이들 모습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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