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성차별, 도쿄대도 예외는 아닙니다”…큰 울림 된 노교수의 입학축사

입력 2019.04.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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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일본에서 도쿄대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가 갖는 의미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곳, 나라의 미래 동량들이 있다는 '절대적인 인정'의 의미가 일본 사회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일본을 이끌 '인재'의 의미에는 '남성 인재'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성차별, 도쿄대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12일 도쿄대 신입생 입학식. 여성학자이며 여성학 전문가인 사회학과 우에노 치즈코 명예교수는 입학 축사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질타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화두로 던졌다.

단순한 성차별 질타를 넘어 일본 사회에서 큰 울림이 되고 있는 노 교수의 축사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여성에게는 높은 도쿄대의 장벽...일본 내의 성차별 의식

"아들은 대학까지, 딸은 2년제까지." 우에노 교수가 꼬집은 일본 부모들의 성차별 인식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남자 55.6%, 여자 48.2%이다.

도쿄대의 경우를 보면 이는 더 확연하다. 학부에서 여학생의 비율은 20%에 머물고, 대학원 석사는 25%, 박사는 30.7%가 여성이다. 우에노 교수는 연구직이 되면 조교 중 여성 비율은 18.2%, 준교수 11.6%, 교수는 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 비율보다 낮은 수치란다. 도쿄대 내 학부장과 연구과장 자리 15개 가운데 여성은 1명. 역대 총장 중에 여성은 아예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거쳐온 학교는 평등 사회였습니다. 성적에 남녀차별은 없죠.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는 시점부터 숨겨져 온 남녀 차별이 시작됩니다. 사회에 나가면 더 노골적인 성차별이 횡행합니다. 도쿄대 역시 안타깝게도 그중 하나입니다."

도쿄대 내 동아리인데도, 도쿄대 여학생은 받지 않고 다른 대학 여학생은 가입을 허용하는 남자 동아리가 아직도 존재하는 게 도쿄대의 현실임을 우에노 교수는 비판했다.

"어느 여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대학이야?'라고 상대가 물으면 도쿄'의' 대학...'이라고 한다고. 왜냐하면, 도쿄대생이라고 하면 상대가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왜 남학생은 도쿄대생임을 자랑스러워하는데, 여학생은 답하기를 주저하는 걸까요? 남성의 가치와 성적은 하나로 보면서, 여성의 가치와 성적 사이에는 불합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귀엽네'라는 말을 듣는 존재가 됩니다. '귀엽다'는 어떤 가치일까요? 사랑받고, 선택받고, 보호받는다는 가치에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이 성적이 좋은 것이나, 도쿄대 학생이라는 것을 숨기려는 겁니다."


"노력하면 보답 받을 수 있었던 당신들의 축복받은 환경...이제 남을 위해"

이처럼 신랄한 사회 비평이 이어졌지만, 노 교수의 말은 단지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데 머물지 않았다.

"여러분은 노력하면 그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하지만 이제는 노력해도 그것이 공정하게 보답 받지 못하는 사회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그 보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 힘을 내보려 해도 할 수 없는 사람, 너무 열심히 노력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림들이 있습니다. 해보기도 전에 "나 따위가"라며 의욕을 꺾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 교수가 말하는 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즉 내가 잘나서가 아닌 "노력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그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가 열리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는 말라는 충고를 선택받은 '도쿄대생'들에게 전한 것이다.

"당신들의 능력을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만 쓰지 마십시오. 축복받은 환경과 타고난 능력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욕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돕기 위해 사용하세요."

여학생들을 위한 여성학 권위자의 충고는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강해지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세요. 여성학을 낳은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여성운동입니다만, 페미니즘은 결코 여자도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다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약자로서 존중될 것을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지극히 남성적인 사회, 그 속에서 답을 찾아온 어느 노 교수가 일본 사회에 던진 한 마디 한 마디였다.

우리나라의 책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신입생을 위한 축사에 불과했지만, 아사히 신문 등 주요 언론에서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그만큼 우에노 교수의 지적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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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성차별, 도쿄대도 예외는 아닙니다”…큰 울림 된 노교수의 입학축사
    • 입력 2019-04-17 07:01:22
    특파원 리포트
도쿄대.

일본에서 도쿄대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가 갖는 의미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곳, 나라의 미래 동량들이 있다는 '절대적인 인정'의 의미가 일본 사회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일본을 이끌 '인재'의 의미에는 '남성 인재'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성차별, 도쿄대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12일 도쿄대 신입생 입학식. 여성학자이며 여성학 전문가인 사회학과 우에노 치즈코 명예교수는 입학 축사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질타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화두로 던졌다.

단순한 성차별 질타를 넘어 일본 사회에서 큰 울림이 되고 있는 노 교수의 축사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여성에게는 높은 도쿄대의 장벽...일본 내의 성차별 의식

"아들은 대학까지, 딸은 2년제까지." 우에노 교수가 꼬집은 일본 부모들의 성차별 인식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남자 55.6%, 여자 48.2%이다.

도쿄대의 경우를 보면 이는 더 확연하다. 학부에서 여학생의 비율은 20%에 머물고, 대학원 석사는 25%, 박사는 30.7%가 여성이다. 우에노 교수는 연구직이 되면 조교 중 여성 비율은 18.2%, 준교수 11.6%, 교수는 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 비율보다 낮은 수치란다. 도쿄대 내 학부장과 연구과장 자리 15개 가운데 여성은 1명. 역대 총장 중에 여성은 아예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거쳐온 학교는 평등 사회였습니다. 성적에 남녀차별은 없죠.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는 시점부터 숨겨져 온 남녀 차별이 시작됩니다. 사회에 나가면 더 노골적인 성차별이 횡행합니다. 도쿄대 역시 안타깝게도 그중 하나입니다."

도쿄대 내 동아리인데도, 도쿄대 여학생은 받지 않고 다른 대학 여학생은 가입을 허용하는 남자 동아리가 아직도 존재하는 게 도쿄대의 현실임을 우에노 교수는 비판했다.

"어느 여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대학이야?'라고 상대가 물으면 도쿄'의' 대학...'이라고 한다고. 왜냐하면, 도쿄대생이라고 하면 상대가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왜 남학생은 도쿄대생임을 자랑스러워하는데, 여학생은 답하기를 주저하는 걸까요? 남성의 가치와 성적은 하나로 보면서, 여성의 가치와 성적 사이에는 불합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귀엽네'라는 말을 듣는 존재가 됩니다. '귀엽다'는 어떤 가치일까요? 사랑받고, 선택받고, 보호받는다는 가치에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이 성적이 좋은 것이나, 도쿄대 학생이라는 것을 숨기려는 겁니다."


"노력하면 보답 받을 수 있었던 당신들의 축복받은 환경...이제 남을 위해"

이처럼 신랄한 사회 비평이 이어졌지만, 노 교수의 말은 단지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데 머물지 않았다.

"여러분은 노력하면 그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하지만 이제는 노력해도 그것이 공정하게 보답 받지 못하는 사회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그 보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 힘을 내보려 해도 할 수 없는 사람, 너무 열심히 노력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림들이 있습니다. 해보기도 전에 "나 따위가"라며 의욕을 꺾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 교수가 말하는 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즉 내가 잘나서가 아닌 "노력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그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가 열리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는 말라는 충고를 선택받은 '도쿄대생'들에게 전한 것이다.

"당신들의 능력을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만 쓰지 마십시오. 축복받은 환경과 타고난 능력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욕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돕기 위해 사용하세요."

여학생들을 위한 여성학 권위자의 충고는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강해지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세요. 여성학을 낳은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여성운동입니다만, 페미니즘은 결코 여자도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다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약자로서 존중될 것을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지극히 남성적인 사회, 그 속에서 답을 찾아온 어느 노 교수가 일본 사회에 던진 한 마디 한 마디였다.

우리나라의 책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신입생을 위한 축사에 불과했지만, 아사히 신문 등 주요 언론에서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그만큼 우에노 교수의 지적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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