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人災 ④] 지진안전대책 사업단 ‘셀프 평가’…위험관리 손놓은 정부

입력 2019.04.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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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인구 50만 대도시에 아시아 최초 심부지열 발전 방식 지열발전소
지진으로 중단된 지열발전소 참여 독일업체가 포항 시추작업 감독
지진안전대책 마련도, 평가도 사업단 '셀프'…위험관리 손 놓은 정부

인구 50만 포항시에 안전 검증 안 된 지열발전소…이제야 신중하겠다는 산업부

우리나라는 주요 화산지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포항 지열발전소에 적용된 기술은 지하 4~5km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야만 하는 심부지열 발전 방식이었습니다. 아시아 최초였고 개발만 된다면 보통 신재생에너지가 가지는 한계, 즉 전력생산이 불규칙하다는 문제가 없어 기대가 굉장히 컸습니다.

문제는 아시아 최초의 도전이자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50만 명이 거주하는 포항시 인근에 지었다는 점입니다. 손익 계산을 따져본다면 도시 옆에 건설하는 게 좋겠지만, 위험관리를 우선 고려했다면 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지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포항 지열발전소가 2010년부터 본격 추진됐지만, 이보다 앞서 스위스 바젤의 지열발전소는 2006년 물 주입 후 지진이 일어났고 2009년 폐쇄됐습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가 이미 존재했던 겁니다.

그럼에도 지난달 포항 지열발전소가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산업통상자원부는 추가로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은 없다며 앞으로는 신중하게 사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힙니다.


지진으로 중단된 지열발전소 참여 유럽업체가 포항 시추작업 감독

지열발전소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진과 안전 관리는 제대로 됐을까? KBS 특별취재팀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취재팀은 포항 지열발전소의 시추 작업을 관리 감독했다고 소개한 한 업체의 문건을 제보받았습니다. 바로 유럽의 지열발전업체 'BESTEC'입니다. 그런데, 이 업체는 주요 사업으로 포항의 지열발전소와 함께 독일 란다우 시의 지열발전소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란다우시 지열발전소는 2007년 가동을 시작했지만, 2년 뒤 규모 2.7의 지진이 나면서 결국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BESTEC'이 포항 사업에 앞서 참여했던 독일의 지열발전소에서 지진이 일어나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이 업체가 포항 사업에 참여해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추 작업을 관리·감독한 겁니다. 누가 참여하는지 제대로 몰랐던 포항 시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지진 안전대책 마련도, 평가도 사업단 '셀프'…위험관리 손 놓은 산업부와 에기평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지진안전 대책 마련과 평가를 모두 사실상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셀프'로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 주관사 넥스지오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제출한 2013년도와 2015년도 연차보고서를 보면 이런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2013년도 연차보고서 지진 위험 관리 항목에서 미소진동, 즉 지진 계측 시스템 구축과 감시, 해석기술 개발을 "100% 완료했다"고 보고합니다. 2015년도 연차보고서에서도 역시 시추와 물 주입에 따른 지진 감시와 해석 기술 개발을 계획대로 "100% 완료했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지진 위험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해석 기술 개발을 100% 완료했다는데 그 평가방식으로 "자체평가"를 버젓이 적어놨습니다. 말 그대로 평가를 스스로 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 4월 포항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하지만 물 주입을 잠시 중단했을 뿐 넉 달 뒤 물 주입을 다시 시작합니다. 사실 물 주입 중단 결정도 사업단 측이 '자체 작성'한 위기관리시스템 신호등 체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특히, 취재과정에서 사업 평가기관인 에너지기술평가원에 안전관리를 왜 사업단이 자체적으로 평가하도록 뒀는지 문의했지만 끝내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가까운 특별취재팀의 취재기간 동안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경우가 사실상 없을 정도로 철저히 책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진이라는 초유의 위험 관리를 민간업체를 중심으로 한 사업단 자체에 맡긴 산업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 그리고 그러한 허술한 관리를 틈타 위험을 담보로 사업을 계속한 넥스지오. 애꿎은 포항 시민의 피해에 정부도, 민간기업도 함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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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수록 人災 ④] 지진안전대책 사업단 ‘셀프 평가’…위험관리 손놓은 정부
    • 입력 2019-04-18 07:00:48
    취재K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 아니라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인공지진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지난달 정부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KBS 특별취재팀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불러온 민관 합동 포항 지열발전소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중단까지 의혹과 과제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인구 50만 대도시에 아시아 최초 심부지열 발전 방식 지열발전소
지진으로 중단된 지열발전소 참여 독일업체가 포항 시추작업 감독
지진안전대책 마련도, 평가도 사업단 '셀프'…위험관리 손 놓은 정부

인구 50만 포항시에 안전 검증 안 된 지열발전소…이제야 신중하겠다는 산업부

우리나라는 주요 화산지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포항 지열발전소에 적용된 기술은 지하 4~5km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야만 하는 심부지열 발전 방식이었습니다. 아시아 최초였고 개발만 된다면 보통 신재생에너지가 가지는 한계, 즉 전력생산이 불규칙하다는 문제가 없어 기대가 굉장히 컸습니다.

문제는 아시아 최초의 도전이자 시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50만 명이 거주하는 포항시 인근에 지었다는 점입니다. 손익 계산을 따져본다면 도시 옆에 건설하는 게 좋겠지만, 위험관리를 우선 고려했다면 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지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포항 지열발전소가 2010년부터 본격 추진됐지만, 이보다 앞서 스위스 바젤의 지열발전소는 2006년 물 주입 후 지진이 일어났고 2009년 폐쇄됐습니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가 이미 존재했던 겁니다.

그럼에도 지난달 포항 지열발전소가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산업통상자원부는 추가로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은 없다며 앞으로는 신중하게 사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힙니다.


지진으로 중단된 지열발전소 참여 유럽업체가 포항 시추작업 감독

지열발전소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진과 안전 관리는 제대로 됐을까? KBS 특별취재팀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취재팀은 포항 지열발전소의 시추 작업을 관리 감독했다고 소개한 한 업체의 문건을 제보받았습니다. 바로 유럽의 지열발전업체 'BESTEC'입니다. 그런데, 이 업체는 주요 사업으로 포항의 지열발전소와 함께 독일 란다우 시의 지열발전소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란다우시 지열발전소는 2007년 가동을 시작했지만, 2년 뒤 규모 2.7의 지진이 나면서 결국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BESTEC'이 포항 사업에 앞서 참여했던 독일의 지열발전소에서 지진이 일어나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이 업체가 포항 사업에 참여해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추 작업을 관리·감독한 겁니다. 누가 참여하는지 제대로 몰랐던 포항 시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지진 안전대책 마련도, 평가도 사업단 '셀프'…위험관리 손 놓은 산업부와 에기평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지진안전 대책 마련과 평가를 모두 사실상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셀프'로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 주관사 넥스지오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제출한 2013년도와 2015년도 연차보고서를 보면 이런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2013년도 연차보고서 지진 위험 관리 항목에서 미소진동, 즉 지진 계측 시스템 구축과 감시, 해석기술 개발을 "100% 완료했다"고 보고합니다. 2015년도 연차보고서에서도 역시 시추와 물 주입에 따른 지진 감시와 해석 기술 개발을 계획대로 "100% 완료했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지진 위험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해석 기술 개발을 100% 완료했다는데 그 평가방식으로 "자체평가"를 버젓이 적어놨습니다. 말 그대로 평가를 스스로 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 4월 포항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하지만 물 주입을 잠시 중단했을 뿐 넉 달 뒤 물 주입을 다시 시작합니다. 사실 물 주입 중단 결정도 사업단 측이 '자체 작성'한 위기관리시스템 신호등 체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특히, 취재과정에서 사업 평가기관인 에너지기술평가원에 안전관리를 왜 사업단이 자체적으로 평가하도록 뒀는지 문의했지만 끝내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가까운 특별취재팀의 취재기간 동안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경우가 사실상 없을 정도로 철저히 책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진이라는 초유의 위험 관리를 민간업체를 중심으로 한 사업단 자체에 맡긴 산업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 그리고 그러한 허술한 관리를 틈타 위험을 담보로 사업을 계속한 넥스지오. 애꿎은 포항 시민의 피해에 정부도, 민간기업도 함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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